메가뱅크,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나만 YES?
메가뱅크,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나만 YES?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1.05.3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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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금융지주 매각 방침 결정…메가뱅크엔 대부분 부정적
은행 대형화 추세라지만 역할 무엇인지 따져야
[특집 1] 금융산업, 태풍이 불고 있다…① 메가뱅크, 좋은 거야 나쁜거야?

ⓒ 참여와혁신 포토DB
지난 3월,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MB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한 강만수 대통령실 경제특보가 산은금융지주 회장으로 선임되자 그가 줄기차게 주장했던 ‘메가뱅크(초대형은행)’가 가시화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금융권 내에서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해 경쟁입찰 과정에서 매수자를 찾지 못해 민영화가 연기된 우리금융지주에 대해 정부는 올해 반드시 민영화한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금융위원회 산하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이하 공자위)를 통해 매각 방침을 확정했다.

산은지주 밀어주기?

지난 5월 17일, 공자위는 △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 조기 민영화 △ 금융산업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 고려 등의 이유를 들어 정부 산하 예금보험공사가 56.97%의 지분을 보유한 우리금융지주를, 지난해 자회사 분할매각 방침과 달리 일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지난해 매각 과정에서는 최저입찰 규모를 ‘지분의 4% 이상 인수 또는 합병’에서 ‘지분의 30% 이상 인수 또는 합병’으로 변경했다.

이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공자위가 우리금융지주를 산은금융지주에 밀어주기 위해 기존 매각 방침을 변경한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덩치가 커서 시중 금융지주회사들이 인수를 꺼려하던 우리금융지주를 자회사와 함께 일괄매각하기로 한 것은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들과 금융노조에 따르면 우리금융지주 일괄매각과 최저입찰 규모 변경으로 자금여력이 충분한 금융회사만이 입찰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자금 여력을 갖고 있는 금융회사는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실탄을 확보해 둔 하나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산은금융지주 등 4개 빅은행으로 압축된다. 그러나 이들 은행들은 지난해 우리은행 매각 입찰에도 참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강만수 회장 취임 이후 메가뱅크를 주장했던 산은금융지주가 가장 유력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일괄매각과 최저입찰 규모 변경은 우리금융지주 산하 우리은행, 경남은행, 광주은행 등의 독자적인 생존방안 모색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국민주 방식을 통한 민영화로 독자생존 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고 자사주 매입, 우호적 산업자본의 참여(현재 9%까지 소유 가능) 등을 통해 독자적인 민영화 방안을 강구했지만 이번 매각방침 결정으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광주은행의 경우도 광주지역 상공인들이 지역 은행으로서의 위상을 고려해 인수를 추진하고 있었지만 광주은행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우리금융지주 전체를 인수해야하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에 봉착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법까지 바꿔야하나

‘금융계의 삼성이 필요하다’며 MB정부 초기부터 메가뱅크론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강만수 산은지주회장에 대한 특혜 시비를 낳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공자위의 이번 결정과 함께 금융위원회가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을 개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우리금융지주에 대한 매각이 실패한 이유로 금융지주회사법에서 규정한 금융지주회사 간 지분 소유 하한제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5조의 4항은 금융지주회사가 다른 금융지주회사를 소유할 경우 지분 95% 이상을 인수하도록 했다. 이는 자본이 충분한 금융지주회사가 여러 금융지주회사를 과도하게 지배함으로써 독과점의 폐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금융위는 특례조항을 신설해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금융지주회사는 다른 금융지주회사가 이를 인수할 경우 지분 50% 이상을 소유할 것’으로 개정할 예정이다. 이 경우 우리금융지주를 인수하려는 금융지주회사는 약 12조가 아닌 7조원 정도의 자금만 있어도 인수가 가능해지게 된다. 이에 대해 유주선 금융노조 부위원장은 “현재 남아있는 정부 소유 금융지주회사는 우리금융지주와 산은지주밖에 없는데 이러한 특례조항을 만들겠다는 것은 산은지주의 인수를 돕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며 “특례조항 삽입으로 외국 금융자본이 국내 금융지주 인수에 나설 경우 역차별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어 무차별적인 은행 사냥이 시작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외환위기로 주춤했던 메가뱅크론의 재등장

이 때문에 금융위와 공자위의 이번 결정이 한국형 메가뱅크를 탄생시키기 위한 시나리오의 일부라는 주장은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시장에서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렇다면 MB정부는 왜 그토록 메가뱅크를 원하는 것일까?

한국형 메가뱅크론은 MB정부의 금융산업 구조조정의 마지막 로드맵이었다. 글로벌 금융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내 시장에만 머물러 있는 금융산업을 글로벌 체제로 변화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메가뱅크로 외국 금융자본들과 승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초기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생각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한풀 꺾이게 된다.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금융선진국의 대형 IB은행들이 속속 무너지는 상황에서 메가뱅크론을 내세우기가 쉽지는 않았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다. 당시 한국전력은 이명박 대통령의 자원외교를 통해 UAE의 원전 공사를 수주하지만 UAE가 신용등급 AA 이상, 자산규모 세계 50대 이내 은행의 보증서를 요구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그 정도의 조건을 충족하는 은행이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전력은 2천억 원의 수수료를 지급하고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으로부터 보증서를 발급받기에 이르렀다. 이러자 국내에서는 향후 외국 대형 플랜트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라도 메가뱅크가 필요하다는 메가뱅크론이 재등장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반대하는 메가뱅크

그렇다면 현재 메가뱅크에 대해 학자들이나 금융계 관계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한마디로 부정적인 시각이 대부분이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박사는 “인위적으로 메가뱅크를 만드는 것으로 경쟁력이 생기지 않는다”며 “덩치가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데 지금과 같이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든 메가뱅크가 시장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전효찬 연구원은 “메가뱅크라는 것을 자산규모의 크기로 볼 것이냐 업무의 글로벌화로 볼 것이냐에 따라 이야기의 초점이 달라질 수 있다”면서도 “만약 자산 규모의 크기로만 메가뱅크를 이야기한다면 현재 시중은행과의 차별성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게 본다면 KB, 신한, 하나 등도 상당히 큰 은행이다”라고 밝혔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도 “메가뱅크는 경제관료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며 “은행 대형화는 국내 시장에서의 금융시장 독점으로 전환되어 금융소비자에게 오히려 피해만 주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메가뱅크에 반대했다.

지난 5월 24일 한국금융연구원 주최로 열린 ‘국내 금융산업 재편과 글로벌 경쟁력 제고 방안’이란 주제의 토론회에서도 메가뱅크 무용론에 대한 학자들의 열띤 토론이 있었다. 토론회에 패널로 참가한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GDP의 50%가 넘는 메가뱅크를 만드는 것은 시스템 리스크를 가져올 수 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모든 나라들은 이것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중은행 노동조합이 대부분 소속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위원장 김문호)은 정부의 메가뱅크 추진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금융노조는 지난 5월 16일, 메가뱅크 반대 기자회견을 통해 “금융산업의 일대 지각변동을 초래할 정부의 금융정책이 어떻게 몇몇 관료들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조변석개 할 수 있는가”라며 “초대형 금융기관이 부실화되면 금융시스템 및 국민경제 붕괴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정부는 외환위기의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한국경제연구원 안순권 박사는 “아직 우리나라에는 메가뱅크의 폐해가 없다. 외국의 경우 메가뱅크가 파생금융상품에 과도하게 투자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인데 우리는 아직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며 “한국은 해외 대형 플랜트 수주 등 고부가가치 금융시장에 투자를 해야 하는 중요한 단계에 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메가뱅크가 필요하다”고 드물게 메가뱅크 찬성론을 펼쳤다.

▲ 지난 5월 16일, 금융노조는 관치금융 철폐 및 메가뱅크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미국 또한 대형 은행 규제 나서

그렇다면 2008년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미국은 현재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앞서 학자들도 이야기했지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금융회사의 대형화를 규제하는 방향으로 정책 방향을 잡고 있다.

2010년 1월, 오바마 정부의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ERAB) 폴 볼커(Paul Volcker) 위원장은 대형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섰다. 일명 볼커룰(Volcker rule)로 불리는 이 방안은 은행을 포함한 예금취급기관 및 계열회사의 위험투자 금지, 비은행 금융회사의 위험투자 제한, 금융회사의 대형화 규제 등으로 구성됐다. 이 규제안은 다소 완화된 형태로 2010년 7월 15일 일명 도드 플랭크 법안(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으로 불리는 금융개혁법안에 포함되어 미국 상원을 통과했다.

결국 미국 또한 금융회사의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게 되면 대마불사(too-big-to-fail)와 독과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대형 은행의 역할론

그렇지만 은행 대형화를 무조건 반대해야 할까? 한국에서의 은행 대형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IMF 이후 한국의 금융시장은 부실은행을 우량은행으로 합병하는 과정이었고 지금도 금융구조조정이란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KB국민은행의 경우만 봐도 1998년 대동은행을 합병한 이후 1999년 장기신용금고를 인수했고, 동남은행을 인수했던 주택은행과 2001년 합병해 자금규모로 국내 최대은행을 설립했다. 지금도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어윤대 회장은 틈틈이 다른 은행을 합병해 리딩뱅크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2000년 평균 30조 원이던 자산규모가 10년 만에 평균 90조 원대에 육박한다는 사실만 봐도 은행의 대형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덩치가 커졌다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췄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대답이다. 한국의 은행들이 나름 대형화 됐지만 앞서 삼성경제연구소 전효찬 연구위원이 지적한대로 외국 대형 투자회사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따른다. 국내 은행은 대부분 소매금융 수신을 통한 규모 확장에 주력했다.

이에 대해 김성호 우리투자증권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외국 대형 은행이나 증권사의 경우 100여 년이라는 기간 동안 축적된 노하우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글로벌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했다”며 “결국 해외 영업이라는 것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인데 그러한 네트워크와 그에 따른 인력풀도 없이 덩치만 키운다고 해서 해외 영업이 가능할 것이란 발상은 도대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일침을 가했다.

결국 문제는 은행 대형화에 있다기보다 그 역할에 있다는 지적이 현재로서는 가장 타당해 보인다. 대부분의 금융관계자들도 은행의 대형화는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에 소규모 은행으로 승부하자는 것은 무모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대형 은행으로서의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 그에 따라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 없는 인위적인 대형화는 자칫 금융시장 독과점으로 이어져 국내 금융소비자에게 피해만 끼칠 수 있다는 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