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을 넘어, 사회 속으로
민주노총을 넘어, 사회 속으로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8.0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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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있는 참여로 성숙해질 민주주의
[커버스토리] 안녕? 스물두 살 민주노총 ⑦

“잘 몰라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새해 벽두 <참여와혁신> 기자들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장소를 찾았다. 목적지로 오가는 발길이 분주한 기차역에서, 출퇴근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하루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직장가 인근 식당에서, 술집에서. 젊은이들의 활기가 후끈한 대학가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민주노총을 아냐고, 민주노총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대답은 첫 문장처럼 짧은 한 마디였다.

이렇게라도 대꾸한 이들의 대부분은 노동자였고, 앞으로 노동자가 될 이들이었다. 그런데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 아니, 어쩌면 그만하면 다행이었을까? 악담에 가까운 비판도 많았다. ‘파업’ ‘강성’ ‘이념적’으로 비치는 집단이고, 이들은 ‘이기적’이며 ‘고집불통’이다. 그렇게 보이니 누군가가 만들어 덮어씌운 표현처럼 ‘귀족’이기도 하고, ‘폭력집단’이란 낙인도 찍는다.

정도의 차이가 있더라도 부정적인 반응만 일관되었다면 이해가 쉬웠을지도 모른다. 나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역할’ ‘노동자가 기댈 수 있는 곳’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애정 어린 시선도 공존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이렇게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경우가 흔할까? 

노총의 기능과 역할

노동조합총연맹(national center of trade unions)이란 기업, 직업, 산업별 등으로 조직된 개별 노동조합들이 공동의 이해관계를 추구할 목적으로 공동으로 조직한, 전국적 상위 조직을 말한다. 노총은 다양한 기업, 직업, 산업별 노동조합 운동 전체의 사령탑이다. 외부적으로는 가맹 노동조합을 대표해 자본이나 국가, 외부 사회와 교섭, 협의, 투쟁, 연대의 역할을 한다.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산하 노동조합을 통괄, 조정하고 소속 조직 및 조합원들에게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는 기능을 한다.

개별 사용자와 노동자 관계에서 발생하는 각종 불평등과 억압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단결과 연대로 공통의 이해관계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근본적 의의라고 보았을 때, 노동운동의 조직은 교섭력과 투쟁력을 높이기 위해 가능한 한 광범위한 조직적 형태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한 나라의 모든 노동자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뭉치자는 다소 극단적인 주장도 있지만, 지금의 노총 조직은 개별 노조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결합한 연합(confederation)조직이다. 이것은 산하 노동조합들이 직업별, 산업별, 이념별로 지향하는 바와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각각의 개별적 특성과 조직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도 있기 때문이다. 서로 상충하는 두 경향들이 긴장관계 속에서 탄생하고 유지되는 조직이 노총이다.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나라 대부분에 노총이 존재하며 또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단지 조합원의 이해관계와 관련한 내용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에 밀착해 있다. 또한 조직된 노동자들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미조직 노동자까지 포함한 노동자계급 전체의 대변자를 자임한다. 노동자 정당을 결성해 정치적 진출도 모색한다.

노총에 소속된 단위 노동조합은 총연맹에 인적, 물적 자원을 제공한다. 또한 일정한 권한을 노총에 양보하고 통제에 따르기도 한다. 한편으로 단위 노동조합은 대의기구를 통해 노총을 통제하기도 한다. 소속 노조들은 개별적으로 할 수 없는 기능과 역할을 노총을 통해 제공 받으며, 노총은 소속 노조 없이 그 존재 자체가 유명무실하다.

노동조합총연맹의 기능에 대해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동원(mobilization), 교환(exchange), 서비스제공의 기능이며 그 개요는 아래 [표1]과 같다.

이러한 구분은 기본적인 분류에 불과하다. 각 나라가, 노총이 처한 상황이나 지향하는 바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예컨대 노동운동이 사회에서 매우 안정적인 발언권을 가지고 있고, 노사정 3자가 서로를 인정하고 협력하는 나라에서는 노총의 교환기능이나 서비스제공기능의 비중이 커질 것이다. 반면에 국가나 자본으로부터 노동운동이 억압받고 있다면 동원기능이 중요하고 강조될 것이다.

민주노총의 선언과 강령, 규약 등에서 그 역할과 목표를 규정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운동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실현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 ▲노동기본권의 완전 쟁취 ▲노동조건 개선과 남녀평등 실현 ▲정책 및 제도 개혁 ▲전세계 노동자와의 연대 등으로 꼽을 수 있다. 정부나 사용자와의 교섭 및 협력보다는 동원과 투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해외 여러 나라의 노총들이 제시하고 있는 스스로의 역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스웨덴 LO ▲사용자단체와의 중앙교섭 ▲산하노조 간의 협력 조직화 ▲조합원을 위한 복지보험 ▲노조 이슈에 관한 정보제공 ▲경제정책, 공공복지제도, 산업정책 등 연구 개발 ▲사회민주당과의 협력 ▲국제관계
영국 TUC ▲산하노조 통합 위한 공통정책 개발과 추진 ▲노동자 중심 정책 실현을 위한 대정부 로비활동 ▲경제적, 사회적 이슈에 대한 캠페인 ▲각종 공공부문 기구에서 노동자 대표 ▲각종 국제기구에서 영국 노동자 대표 ▲고용관련 이슈에 관한 연구 ▲노조 간부에 대한 훈련 및 교육프로그램 운영 ▲산하노조의 조합원 서비스 개발 지원 ▲산하노조 조직충돌 예방 ▲국제 노동협력 연결
독일 DGB ▲정부, 정당 및 연방/주/지역정부 조직에서 노조 대표 및 공통의 이해관계 대변 ▲산하노조 활동 조정 및 지원 ▲산하노조 및 조합원 위한 법률적 보호 및 자문 ▲사법기구에서 노조 대표 ▲사회정책, 경제정책, 교육문화정책, 성평등 및 여성문제정책, 청년정책 등의 개발 ▲국제 노동협력
일본 연합(連合) ▲춘투를 통한 임금 및 노동조건 개선 요구, 공동투쟁 조직 ▲정책 및 제도개선 요구를 위한 정부와의 협의 ▲각 정부부서, 지자체 심의회 등에서 노동자 대표 ▲중소기업노동자, 파트타임, 파견, 유기계약 등 다양한 형태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균등처우 확립 ▲중소기업 육성책, 고용정책, 최저임금 인상 등에 노력 ▲지방정책 실현 추진, 노동상담활동, 노조결성의 지원 ▲시민단체 및 비영리단체 등과 제휴해 사회연대 네트워크 구성
남아공 COSATU ▲모든 노동자를 위한 사회적, 경제적 공정성 확보를 위한 투쟁 ▲노동자 간 연대 구축 ▲산별노조의 추진 ▲산하노조 지원 ▲재정운영
필리핀 KMU ▲노동자의 권리보호 및 증진 ▲어용노조, 경제주의 노조, 협력주의 노조로부터 노동운동 보호 ▲노동자들의 정치적 의식 제고 ▲제국주의, 봉건주의, 관료적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전국민주투쟁연합의 노조 참가 보장 ▲전세계 노동자 및 민중과 국제연대

 

총파업 전략의 한계

민주노총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라는 평가라든지, 좀 더 구체적으로 ‘존재감이 없다’는 류의 비판은 위에서 간략히 언급한 노총으로서의 기능이나 위상에 뭔가 삐걱거림이 있다는 것일지 모른다. 의도적 폄훼가 아니라, 민주노총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고민해 나가자는 차원에서 비판의 목소리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노동조합총연맹으로서 민주노총의 역할과 기능은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라고 표현해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각 선거 국면에서 민주노총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조합원을 비롯해, 노동자 대중의 이익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국가의 정책과 정치 상황에 개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그동안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위해 활용했던 주요한 전략은 총파업 투쟁이었다. 하지만 총파업 투쟁 전략이 과연 지속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인적, 물적 자원이나 동원력은 각 기업별 노조가 가지고 있는 현재, 자신들의 사업장과 직접 관련된 사안이 아닌 이상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할 지는 미지수다.

최근 5년여 사이를 살펴보아도 민주노총은 매년 총파업 선언을 거듭했다. 2013년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해 공권력의 민주노총 침탈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12월 28일 총파업을 결의한다. 또한 이와 연동해 2014년 2월 25일에는 국민파업을 선언한다.

민주노총 직선제 1기 집행부인 한상균 집행부는 2015년 4.24 총파업을 추진했으며, 2016년 11월에는 민중총궐기, 11월 30일에는 민중총파업을 조직한다. 2017년 6월 30일에는 최저임금 이슈와 연동해 사회적 총파업을 추진한다.

그동안 민주노총의 총파업 조직화 방식은 각 가맹 단위조직의 임단투 동력에 민주노총의 의제를 덮어씌워, 시기를 집중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이 민주노총 내부의 자평이다. 하지만 임단투 일정을 집중하는 데 한계를 보이며 결과적으로 위력적인 총파업 전개가 어려웠다는 평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 12만 조합원이 운집한 민중총궐기 집회는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전국민적인 촛불항쟁에 불씨를 당기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최저임금 1만 원’을 전면에 내세운 6.30 사회적 총파업은 그동안 노동운동 내에서도 소외당했던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들의 이슈를 전면에 내세웠다고 평가받는다. 이와 같은 경향은 민주노총 내에서 꾸준히 증가해 온 비정규직 조합원 규모를 함께 감안해 보아도 의미 있는 변화로 볼 수 있겠다.

노동자 목소리, 정치적 영향력 확대로 키우자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사회경제정책 및 노동정책의 결정 과정에 있어서 민주노총의 개입능력을 확대하고 관철가능성을 높이는 것, 다시 말해 민주노총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는 과제는 민주노총의 미래와 관련한 주요한 사안이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노동조합의 역할은 역설적으로 과거에 비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고민 속에서 민주노총이 ‘양극화’로 표현되는 사회적 불평등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 과제를 숙의하는 것은 자연스런 수순일지 모른다.

내용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형식의 측면에서 이와 같은 의제를 한국사회 주요 주체들이 논의하고 민주노총의 입장을 관철할 수 있도록 형식적 측면에서의 고려도 함께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직선제 2기 임원선거에서 출사표를 던졌던 4팀의 후보조 중 3팀이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사회적 대화 재개’와 관련한 공약을 들고 나선 것도 이와 같은 흐름으로 보인다. 새로 당선된 김명환 집행부는 11년 만에 대통령과 회동을 갖고, 18년 만에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참석했다.

노동자들의 해고 규제를 강화하고 실업급여 등의 안전망을 충분히 확충하는 것, 여성이나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노동시장 취약계층에 대한 차별금지와 청년·중고령 노동자들의 지원책 마련, 저임금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절실한 최저임금의 현실화 등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정책 과제 외에도 민주노총이 내셔널센터 차원에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지점에 대한 조언도 나온다.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숙련을 정책적으로 관리하며 산업과 지역의 정책결정에 비판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특정 지역이나 산업의 노동력 공급과 수요, 나아가 향후 전망까지 객관적으로 예측하고 이에 대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참여로 더욱 무르익을 민주주의

민주노총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준비해 나가는 큰 과제는 과연 누가 수행해야 할까? 지도부의 리더십만으로 이처럼 막중한 일을 추진해나갈 수 있다고 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민주노총 내에서 각종 사안들이 논의되고 결정되며 집행되는 구조에 대한 성찰도 요구된다.

매년 상정된 안건을 채 논의하지 못하고 유회를 반복하고 있는 실질적인 최고의사결정기구를 볼 때 더욱 그렇다. 민주노총 대의원으로서 책임감과 소명의식이 더욱 요구되는 지점이다. 첨예한 이해관계와 상반된 입장이 부딪쳤던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가능성을 참고해 볼 수 있겠다.

지난해 8월 1박 2일 일정으로 열렸던 정책대의원대회는 이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볼 수 있었다. 그동안의 대의원대회와는 구별되는 의제 설정 방식과 현장토론의 조직화, 당일 토론 등을 통한 조직 내 참여와 민주주의 제고를 위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동안 조직 상층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조직혁신과 관련한 논의가 대중적인 토론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았다.

▲ (왼쪽부터)백석근 사무총장, 김명환 위원장, 김경자 수석부위원장.

박수 받는 민주노총을 기대하며

‘변함없는 것’은 때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보석이나 귀금속이 귀한 이유 중 하나도 화학 반응을 거의 일으키지 않아 오래 아름다움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초심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 진부하게 들릴 만큼 우리는 변하지 않는 모습을 갈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때론 비판 받는다. 변화하는 세상과 연결고리를 애써 외면한다며 지탄 받는다. 사람도 조직도 마찬가지다. 민주노총 역시.

1995년 11월 11일 이후 스물두 살이 된 민주노총은 때론 변하지 않는다고, 때론 변했다며 비판 받았다. 아픔과 상처의 세월도 겪었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한 번쯤 겪어야 할 성장통이라고 하더라도 수시로, 너무 길었던 비판이 아닐까?

“인간다운 삶과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노동조건의 확보, 노동기본권의 쟁취, 노동현장의 비민주적 요소 척결, 산업재해 추방과 남녀평등의 실현, 사회의 민주적 개혁을 통해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함과 더불어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가열찬 투쟁, 전 세계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강화하고 침략전쟁과 핵무기 종식을 통한 세계평화 실현.”

민주노총 창립선언문에 열거된 민주노총이 바라는 세계상이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우리 사회에 남긴 족적을 찾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왔으며, 정규직 중심 기득권 노동운동이란 비판 속에서도 어느덧 비정규직 조합원은 조직 전체의 1/4에 달한다. 정치방침을 둘러싼 내홍과 거기에 대한 냉소에도 불구하고 부패한 권력을 몰아내는 데 인적, 물적으로 앞장섰던 것도 민주노총이다.

각자의 견해야 다양할 수 있겠지만, 이만하면 한번쯤 박수 받는 민주노총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아직도 세간의 시선이 싸늘하다면, 박수 받는 민주노총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고민은 과연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야할 지 좀 더 허심탄회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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