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이후를 대비하자
GM 이후를 대비하자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8.04.0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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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지원은 공장 가동을 연장할 뿐
장기적 안목의 산업정책 필요할 때
[기획] 위기의 한국 지엠 6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지엠 사태는 군산공장 폐쇄와 정부 지원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지나, 한국지엠의 구조조정을 어떻게 할 것이며 정부는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지난 3월 12일 시작된 경영실사가 한창 진행 중인 지금까지도 한국지엠의 미래는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확정된 바가 없다. 거기에 GM은 노조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지만 임단협 교섭은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선의 길은 무엇일지 모색해보자.

GM 중장기 전략에 한국지엠은 없다

한국지엠 사태에 대응해 대안을 모색하는 데에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GM은 결국 한국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메리 배라 GM 회장이 지난 1월 16일 ‘Deutsche Bank Global Auto Industry Conference’에서 직접 밝힌 GM의 중장기 전략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메리 배라 회장은 2020년까지를 운영성과 향상기간으로 설정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구조조정을 관통하는 GM의 전략은 5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GM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픽업트럭에 집중하고, 둘째, 중국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며, 셋째, 금융부문을 재건하고, 넷째, 북미시장과 중국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시장에서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하며, 마지막으로 미래형 자동차인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GM의 중장기 전략에서 한국지엠은 설 자리가 없다. GM은 북미시장과 중국시장에 집중하기 위해 주요 자동차시장 중 하나인 유럽시장에서 철수할 만큼 단호하다. GM의 유럽시장 철수로 유럽 수출을 위한 중소형차를 생산하던 한국지엠의 물량이 감소한 것이 사태의 원인으로 꼽히는 만큼, GM의 전략이 변하지 않는 한 한국지엠의 생산물량이 늘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렇다고 한국지엠에서 GM이 전략차종으로 꼽고 있는 픽업트럭과 미래형 자동차를 생산할 가능성도 낮다. GM은 픽업트럭 시장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는데, 픽업트럭의 생산은 미국을 비롯한 북미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미래형 자동차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도 미국 본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단적으로 자동차 모델 개발에 있어서 핵심으로 꼽히는 충돌테스트를 수행할 시험장도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지엠에서 미래형 자동차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이다.

GM이 집중하고 있는 북미시장과 중국시장에서는 이미 현지생산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지엠에서 차량을 생산해 북미시장이나 중국시장으로 수출한다는 것은 경영효율 측면에서 낭비에 가깝다. 한국지엠의 내수시장 점유율도 채 10%에 미치지 못해 연간 판매량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20만 대에 못 미친다. 20만 대 정도면 폐쇄가 결정된 군산공장을 포함해 한국지엠의 4개 공장 중 1개만 가동해도 생산할 수 있는 물량이다. 실제로 배리 앵글 사장은 향후 한국지엠의 생산량을 30만 대 수준으로 밝히기도 했다.

한국지엠에 신차로 투입하겠다고 알려진 트랙스 후속모델과 소형CUV 역시 한국지엠을 제외하면 세계 어느 지역에도 연간 10만 대 이상을 생산할 공장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국지엠에 투입하는 것일 뿐이다. 트랙스 후속모델과 소형CUV의 판매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두 차종에 대한 수요가 시들해지면 GM에게 한국지엠을 생산공장으로서 유지할 필요는 사라지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GM의 중장기 전략을 종합하면 한국지엠에 신차로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두 차종의 수요가 유지되는 때까지가 한국지엠의 유효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기간은 길게 잡아도 5년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효기간이 지나면 GM은 아무 미련 없이 떠날 조건이 되는 것이다.

할 수밖에 없는 자금지원, 준비하지 않은 대가

적어도 현재 펼쳐지고 있는 상황으로 볼 때 GM의 이 같은 전략에 변화가 있다고 볼 만한 점은 전혀 없다. 오히려 GM은 세계 각국의 철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매몰비용(철수비용) 최소화를 위해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4월 20일을 시한으로 정해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부도처리가 불가피하다는 배리 앵글 사장의 언급을 통해 무슨 수를 쓰든 한국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겠다는 GM의 의사가 분명하게 확인된다. 6월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한국 정부가 한국지엠의 부도와 그에 따른 대규모 실업사태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약점을 쥐고 흔드는 GM의 행보를 확인할 수 있다. 또 1차 희망퇴직에 이어 추가적으로 고강도 구조조정을 통해 1만 1천 명까지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에서는 노조의 힘을 빼고 양보를 이끌어내겠다는 GM의 전략을 읽을 수 있다.

지금 한국지엠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은 무엇일까? 우선 오펠 구조조정 당시 독일 정부가 취했던 강경한 입장을 한국 정부가 취할 수는 없다. 그와 같은 강경책은 그다지 미련이 남아있지 않은 GM에게 떠날 빌미를 줄 수밖에 없고, 그 책임은 모두 정부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GM은 한국 정부가 경영실사를 통해 대주주로서의 책임을 묻겠다는 카드를 꺼내드는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 수 있으나, 어쨌든 정부의 지원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라는 정치이슈를 앞두고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한 시점부터 그런 사정을 계산에 넣고 움직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한국지엠 사태가 이어지면서 실직자들이 생겨나고 있고, 협력업체들은 도산의 위험을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군산공장 폐쇄 이후 문을 닫는 협력업체들이 속출하고 있고, 많은 수의 노동자들은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일터를 떠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같은 문제들은 더욱 심각해지고 정부와 노조가 받는 압박의 수위는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당장은 급한 불을 끄는 것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GM으로부터 차입한 채무의 만기가 도래하고 있지만, 이를 해소하는 것은 현재 진행 중인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처리방안을 고민해야 할 문제다. 그보다 급한 것은 희망퇴직자들에 대한 위로금과 퇴직금, 노동자들의 임금, 협력업체에 대한 결제 대금 등이다. 이는 곧바로 노동자들과 협력업체들의 생존과 연결되기 때문에 무엇보다 우선해서 지급되어야 할 부분이다. 긴급자금을 투입해서라도 처리해야 할 부분인데, 다행히도 산업은행은 실사가 진행되는 중이라고 하더라도 단기자금 대출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급한 불을 끄고 나면 다음 순위는 GM의 요구대로 정부가 한국지엠에 자금지원을 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현재 경영 실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고 이를 토대로 대주주의 책임을 묻겠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정부와 산업은행은 GM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GM이 그동안 다른 나라들에서 보였던 행보를 감안할 때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군산공장에 이어 부평공장과 창원공장도 폐쇄하겠다고 압박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경우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고, 사회적으로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독일 정부와 같은 강경책을 쓸 수도 있겠지만, 그런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가 단지 구호가 아닌 현실로 나타나고 있을 만큼 사회안전망이 허술하기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있는 일자리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군산공장 폐쇄만으로도 노동자와 협력업체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지원을 하지 않고 GM이 철수함으로써 발생할 일자리 감소는 그 누구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자금지원은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조건이다.

정부와 산업은행이 자금지원의 조건으로 경영 실사를 통해 한국지엠이 현재의 위기를 맞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 대주주인 GM에 책임을 묻겠다고 한 것은 그 자체로는 나무랄 데 없는 카드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정부와 산업은행이 할 일을 다 한 것은 아니다.

당장은 일자리 유지할 방안이 필요하다

GM이 요구한 것처럼 산업은행이 보유한 한국지엠의 지분만큼 자금지원이 이루어지면 한국지엠을 몇 년 더 운영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자금지원의 효과는 단지 거기까지일 뿐이라는 점이다. 경영 실사를 통해 GM 계열사들에 대한 이전가격 등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점들이 바로잡히고 한국지엠에서 GM으로 빠져나가는 비용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자금지원의 효과가 연장되지는 않는다.

앞서 전제했던 것처럼 GM이 한국에서 철수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점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GM의 중장기 전략에 한국지엠의 설 자리가 없는데, 당장 GM의 요구대로 자금지원을 한다고 해서 없던 자리가 만들어질 리는 없다. GM의 전략이 대폭 수정되지 않는 한 한국지엠이 GM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자금지원을 하는 것은 한국지엠을 단지 몇 년 더 운영할 자금을 확보하는 것 이상이 될 수는 없다. 국민의 혈세를 민간기업의 회생에 투입하는 것이 옳은지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금지원을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대규모 실업사태를 감안하면 비록 단기적이 처방에 그칠지라도 자금지원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비판을 한다면 자금지원 그 자체보다는 정부와 산업은행이 지금 자금지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 원인을 만든 그동안의 직무유기를 비판하는 것이 더 낫다. 최소한 그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견제할 장치라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정부와 산업은행이 자금을 투입하더라도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는 마련해야 하겠지만 자금을 온전히 회수하는 것은 그리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이야기대로 5천억 원을 들여 1만 개의 일자리를 5년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자금지원을 해도 몇 년 후에는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캐나다 정부는 2009년 위기를 맞은 캐나다지엠을 살리기 위해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하지만 그렇게 회생했음에도 불구하고 GM은 201년에 또다시 캐나다 정부와 노조를 압박하기 위해 멕시코 공장으로 물량을 이전하려 시도한 바 있다. 정부가 한국지엠에 자금지원을 함으로써 정상화시킨다 하더라도, 지금 투입하겠다고 한 신차종의 수명이 다할 때쯤이면 GM은 또다시 자금지원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산업 간 벽을 넘어 결합을 고민하자

중요한 것은 그 때까지 GM의 철수 이후를 대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지원해야 할 자금은 GM의 철수 이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지금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GM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지만, 만약 준비가 되어 있다면 GM이 자금지원을 요구할 때 GM에 휘둘리지 않고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지엠이라는 개별기업뿐만 아니라 한국의 자동차산업 전반을 재편할 수 있는 산업정책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산업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일 뿐이다. 오히려 지금 우리나라 산업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훨씬 강력하면서도 세련된 산업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할 필요가 있다. 산업과 경제를 시장에 내맡긴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보면 분명해진다. 이미 차고 넘칠 만큼 학습비용을 지불했으면서도 그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마냥 ‘경제는 시장에 맡기고 규제는 최소화하라’는 주문만 외운다면 우리나라는 남미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지경까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입안된 산업정책을 바탕으로, 한국지엠의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GM을 통한 수출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므로 현재의 생산능력을 축소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러면서도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고려할 수 있다. 생산능력 축소에 따라 일터에서 떠나야 하는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것은 한국지엠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을 새롭게 운영하기 위한 대책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친환경차, 자율주행차를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미래형 자동차 개발과 충전인프라 구축 등의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협의가 일상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지난 4년 동안 해왔던 신뢰 구축과 지역사회 차원의 사회적 대화를 산업 차원에 적용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 같은 준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는 문제는 군산공장 폐쇄로 인한 군산지역의 공동화를 해소할 대안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실업자들의 전업을 지원한답시고 조리사 교육을 대안으로 내는 정도로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군산지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동차산업의 틀을 넘어서 다른 산업과의 결합을 시도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예를 들어 새만금 간척지를 활용한 태양광 발전소 건립을 추진하고, 군산공장을 전기차 개발과 생산의 기지로 활용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군산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을 전기차 공장과 태양광 발전소 건립의 양 방향으로 흡수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점도 고려할 수 있다. 특히 자동차산업과 에너지산업의 전환이 이슈로 등장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산업의 미래를 테스트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국지엠 사태를 우리나라 산업 전반을 혁신하는 계기로 삼아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산업을 재편하려는 노력이다. 그것이 단지 말의 성찬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실행되도록 하기 위한 로드맵을 수립하고, 그에 따라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