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노동정책은 NL(No Labor)?
MB 노동정책은 NL(No Labor)?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8.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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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이명박 정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① 새 정부 노동정책은 어디에 숨었나

‘친 기업’ ‘법 질서’만 강조할 경우 노정 정면 충돌 우려

노동정책 윤곽은 총선 끝난 이후  수면 위로 떠오를 듯

 

“드러난 내용이 있어야 전망을 하죠.”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전망을 해달라는 요청에 한 교수는 “코멘트 할만큼 나온 내용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지금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을 살펴볼만한 구체적이고 공식적인 언급이 전무하다시피 한 실정이다. 이명박 당선자의 직접 언급이나 혹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브리핑은 고사하고, 그 흔한 ‘관계자’의 입을 빌린 ‘전언’조차도 나온 것이 없다. 다만 전경련과 한국노총을 방문했을 때 나온 몇 가지 원론적인 이야기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MB 정부에는 노동정책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전망은 많은 부분 ‘정황’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간 이명박 당선자의 경제 분야 발언이나 한나라당이 추진해왔던 정책 등에서 ‘유추’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속뜻은?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 중 하나가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friendly)다. 이명박 당선자가 전경련 방문 등 여러 자리에서 즐겨 쓰면서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규정하는 단어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가 이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낸 지난 12월 28일 전경련 회장단과의 간담회에서 이 당선자는 “기업인이 마음 놓고 기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 “노사분규가 외국기업의 투자를 막는 요인이 됐다. 새 정부에서는 새로운 노사문화를 만들 것이며 근본은 준법 정신” 등의 이야기를 했다.

 

1979년 11월 전경련회관 준공식 때 당시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참석한 이래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자로는 첫 방문이었다는 상징성이나 단어가 가진 뜻 등을 감안할 때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말 그대로 ‘친 기업적’ 정부가 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런 새 정부의 방침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인수위 이동관 대변인은 1월 10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최근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것이 ‘프로(pro) 비즈니스’로 오해되는 경우가 있다”면서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개념을 ‘친 기업적’이 아닌 ‘기업 친화적’으로 해석해줄 것을 주문했다.

 

여기에 덧붙여 인수위 사공일 경쟁력특위 위원장도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사실 ‘프로 레이버’(pro labor)로 ‘안티 레이버’(anti labor)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1월 23일 한국노총과의 간담회에서는 이명박 당선자가 직접 나서 해명하기도 했다. 이 당선자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비즈니스맨 프렌들리’가 아니다. 비즈니스에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함께 있다. 노동자 없는 기업도 없고, 기업인이 없는 비즈니스도 없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말에 노사가 다 들어가 있는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어 보인다. 민주노총 김명호 정책기획실장은 “이명박 정부가 직접적인 ‘반 노동정책’을 쓰지는 않겠지만, 노골적 ‘친 기업정책’을 쓸 것은 확실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의 한 노무담당 임원도 “아직 확실한 그림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현 정부에 비해서는 훨씬 편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창원대 노동대학원 심상완 교수도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표현이 노동을 포함한다고 했지만, 사실 (새 정부가) 노동친화적이라고 할 수 없음을 명시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법 질서 확립의 칼날은?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함께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를 엿볼 수 있는 표현이 ‘법 질서 확립’이다.
이와 관련해 인수위가 한바탕 소동을 치르기도 했다. 인수위 이동관 대변인은 1월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불법폭력이나 집단행동에 대한 엄정한 대응 및 공무집행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 유관기관 합동으로 산업평화정착 태스크포스를 구성키로 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검찰, 경찰, 노동부 등이 참여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런 방침은 노동계와 시민단체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참여 주체들이나 내용으로 볼 때 군사정권 시절의 ‘공안기관 대책회의’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책연대 파트너인 한국노총까지도 강력 반발하자, 인수위는 발표 몇 시간 만에 이를 없었던 일로 했다.

 

비록 번복되기는 했지만 이 일이 일과성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1월 29일로 예정됐던 이명박 당선자와 민주노총의 간담회가 무산되는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인수위와 민주노총 양측이 밝힌 간담회 무산 이유는 ‘이석행 위원장의 경찰 출두 여부’였다. 인수위는 ‘출두를 약속했던 민주노총이 말을 뒤집었다’고 주장하고, 민주노총은 ‘애초부터 말도 되지 않는 전제 조건을 내세워 (당선자쪽이) 만나기로 한 약속을 파기했다’고 밝혀 엇갈리는 입장을 내놨지만 전제는 ‘경찰 출두’였다.

 

즉 ‘법 질서 확립’을 내세워 경찰 출두를 확답하지 않을 경우 민주노총 위원장과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집회 중 폴리스라인을 넘을 경우 전기충격기 사용’ 등의 입장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강력한 법 집행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한나라당 배일도 의원도 “보수정당의 기본 취지는 법”이라고 전제하고 “질서를 설정해 놓고 설정한 룰을 깨거나 어긴다면 엄격하게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민주노총 집행부가 대화를 강조하는 입장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당장 새 정부와 대화 테이블에 앉기는 어려워 보인다.

 


 

노동계와는 어떤 관계 유지할까?

이명박 당선자는 한국노총과 정책연대를 맺었다. 하지만 당선 이후 새 정부와 한국노총의 관계가 삐걱거리는 듯 보였다. 재계와의 만남은 이루어진 반면 한국노총와의 만남이 지지부진하면서 한국노총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들이 새어나왔다.

 

일단 한국노총과의 관계는 당초의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당선자는 한국노총을 찾아 “여러분은 정책협약을 맺고 선거운동을 함께 한 동반자다. 손님(기업) 먼저 찾아뵙고 인사하고 부탁하는 것이 맞다”고 해명했다.

 

또 18대 총선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에 양병민 금융노조 위원장을 포함시키는 등 유화제스처를 보였다. 따라서 당분간 한국노총과는 ‘프렌들리’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이용득 위원장이 제안한 양대 노총, 경총, 상의 간의 4자 회동이나 한국노총 출신에 대한 총선 비례 대표 배려 등에 대해 “4자 회동은 당에서 실무적으로 협의해서 추진토록 하라” “총선에서의 노동계 참여 문제 등도 당이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안다” 등 즉답을 피하고 원론적 답변을 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향후 전망은 좀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민주노총과의 관계는 상당 기간 냉각기를 거쳐야 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석행 위원장은 이미 신년 기자간담회를 통해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을 경우 강력한 총파업을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런 와중에 간담회 무산 건까지 터지면서 감정의 골이 상당히 깊어졌다. 민주노총 측에서는 “위원장더러 경찰에 출두하라 마라 하는 것은 안하무인 격 행동”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또 간담회 논의 초기 인수위 측에서 이 위원장에게 직접 연락을 하는 등 ‘의전’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고려대 노동대학원 김동원 교수는 “한국노총과는 정책연대를 맺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한국노총을 포용하려고 노력할테고, 민주노총은 무시하거나 강하게 압박하는 전략으로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정면충돌 분위기에 대해서는 기업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있는 한 대기업 노무 담당자는 “노정 갈등이 노사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동원 교수는 “(새 정부에) ‘노동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 어느 정도 참여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것이 (인수위가) 노동계 현안과 동떨어진 인식을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노동정책은 경제정책 하위 개념?

이런 가운데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이 안 보인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경제성장을 통해 모든 것을 이루겠다는 구상만 있을 뿐이지 제대로 된 노동정책은 없다”고 지적했고,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연구위원도 “노정 문제가 경제 성장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정도만 언급됐을 뿐 정해진 것이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창원대 심상완 교수도 “어떻게 바뀔 지는 속단하기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노동문제가 시장 기능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하는 생각이 깔려 있는 듯 하다. 그럴 경우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통합민주신당 우원식 의원도 “합리적 노사관계, 노동자의 권익을 확대하고자 하는 정책을 추구한다는 것이 경제성장을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며 “경제성장이냐 노동정책이냐는 식의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배일도 의원도 “근로계층에 대한 문제를 하위적 개념이나 부차적 개념으로, 경제성장만 되기만 하면 모든 게 다 이뤄질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며 “경제성장을 하게 하기 위해서도 노동 분야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고 주문했다.

 

김정한 연구위원은 “경제를 발전시키는 이유는 사회 발전”이라면서 “경제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가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양극화를 확대시키기 보다는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조언했다.


MB 노동정책, 언제 어떤 식으로 나타날까?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이 윤곽을 드러내는 것은 총선이 끝난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일단 4월 총선이라는 정치 일정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노정간 충돌이 일어날 경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려대 김동원 교수는 “새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공기업 민영화, 공무원 연금개혁, 교사 영어 강의 등 노사관계와 관련해서 적을 많이 만들었다”며 “총선이 끝나고 상반기와 여름에 노동계와 정권이 정면승부를 할 것 같은데 그때 기선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서 남은 5년간 분위기 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여론을 동원한다면 노동이 불리하다”면서 “노동이 큰 피해를 입고 여론 돌아선 가운데 내부 결속력 약해진다면 5년간은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노동계는 코너에 몰려 반발하면서 극한적으로 투쟁하고, 이는 다시 여론의 지지를 못 받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황’들을 종합할 때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을 가늠할 첫 번째 시험대는 공공부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 감축이나 공기업 민영화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수위와 속도로 진행되느냐에 따라 노동계와의 전면전이 되느냐 국지전이 되느냐가 판가름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산별교섭과 비정규직 문제도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산별교섭의 경우 재계에서는 이를 부담스러워하고, 노동계는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발 빠르게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가 재계의 손을 들어줄 경우 올 하반기 노정 대립은 물론 주요 업종 노사의 충돌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정규직 문제도 노사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친 기업’ 관점에서 접근할 경우 폭발성이 강한 뇌관이 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칼자루는 새 정부 쪽에서 쥐고 있다. 취임 초기에 힘을 받을 수 있는 시기라는 점과 과반수에 가까운 지지율, 그리고 이명박 당선자 특유의 불도저 스타일 등을 감안할 때 정부 주도의 일방통행이 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이럴 경우 현재의 우려대로 노동정책이나 사회정책은 모두 사라진 채 경제정책만이 남게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그 결과가 다시 사회적 비용을 높이는 ‘비경제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