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C노사, 구조고도화 추진과 반대의 10년
KEC노사, 구조고도화 추진과 반대의 10년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09.09 19:05
  • 수정 2019.09.1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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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C 구조고도화 노사갈등 ➊ 구조고도화를 둘러싼 노사 간 시선 차이

경북 구미 반도체업체 KEC 노사가 구조고도화 사업 추진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9일 KEC는 50주년 기념행사에서 구조고도화 사업계획을 발표했으나, 같은 날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이하 지회)는 구조고도화 사업을 반대하는 끝장투쟁을 선포했다.

KEC가 추진하려는 구조고도화 사업은 KEC 구미공장 유휴부지 5만여 평에 백화점, 의료 클로스터, 복합환승센터, 오피스텔 등을 건설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노사의 주장은 첨예하게 갈린다. 회사는 구조고도화가 반도체 사업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지회는 회사가 구조고도화 사업을 빌미로 공장을 폐업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9월 9일 오전 10시 구미코(구미 엑스포) 앞에서 진행된 '구조고도화 빙자한 폐업의 굿판 걷어라!'는 기자회견 현장. ⓒ 전국금속노동조합

50주년 기념식과 노조파괴 장례식. KEC와 KEC지회가 9월 9일을 기리는 방식은 극과 극이다. ‘구조고도화 사업’은 이러한 간극을 해소하는 열쇠말이다. 지난 10년 동안 KEC는 구조고도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고, KEC지회는 필사적으로 반대해왔다. ‘구조고도화’라는 열쇠로 KEC의 지난 10년, 그리고 현재를 돌아봤다.

수차례 ‘부적격’으로 끝난 KEC의 구조고도화 사업

구조고도화 사업은 낙후된 산업단지를 보수, 개량하여 입주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사업이다. 산업단지의 체계적 관리를 통해서 지속적인 산업발전을 꾀하는 <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이하 산집법)에 근거한다. 산집법은 산업단지를 조성한지 20년이 넘으면 관할 기관인 한국산업단지공단(이하 산단공)으로 하여금 ‘구조고도화 사업계획’을 수립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구조고도화 사업은 심사를 통해 적절한 대행사업시행자를 선정해 시행된다.

KEC는 지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구조고도화 민간대행사업’에 참여를 추진했다. 그러나 결과는 번번이 실패였다. KEC는 2010년 처음 구조고도화 사업을 준비해 2011년 산단공에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부적격’ 판단을 받았다. 2012년에도 KEC는 직원 공청회를 계획하는 등 사업을 재추진했다. 그러나 준비가 미흡하다는 회사 자체적 판단으로 사업 계획을 취소했다.

그러던 KEC는 2013년 ‘구미공장구조고도화추진위원회’를 발족하면서 구조고도화를 본격적으로 재추진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사업 예정 부지에 가동되던 3공장(조립공장)을 폐쇄하기도 했다. 2014년 11월 28일 KEC는 3년 만에 구조고도화 사업에 재도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로 ‘부적격’ 판정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KEC는 또다시 구조고도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KEC는 접수 마감기한인 10월 2일 이전에 구조고도화 사업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KEC가 밝힌 2019년 구조고도화 사업 계획에 따르면, 총 공장부지 10만 평 중 오른편 유휴부지 5만 평을 ▲백화점(복합 문화센터) ▲의료클러스터(마을 형태 의료기관) ▲김천-구미 환승센터(문화복합 환승센터) ▲지식산업센터 ▲직원 기숙사 ▲소호클러스터(오피스텔-사무실) ▲오토갤러리 ▲도로 및 공원으로 조성하려고 한다. 2011년과 2014년 사업신청 때와 차이점은 ‘환승센터’와 ‘의료클러스터’가 계획에 추가됐다는 점이다.

5년만의 재도전? KEC는 왜 구조고도화에 목을 매나

KEC는 왜 구조고도화 사업을 재차 추진하는 것일까? 강세영 KEC 전략기획 파트장은 ‘반도체 사업 투자 재원 마련 때문’이라고 말한다. 강 파트장은 “자동차 전장부품 등 반도체 사업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2025년까지 약 1,500억 원의 투자를 계획 중이다. 하지만 현재 KEC의 유보이익금은 약 500억 원에 지나지 않는다”며, “구조고도화 사업을 통해 유휴부지 5만 평의 자산 가치를 높여서 대출금을 더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구미공단에 투자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구조고도화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강 파트장은 “더 많은 투자를 통해 매출을 2배 가량 성장시키고, 이익도 더 늘리겠다”고 말하면서 덧붙여 “남아있는 좌측 5만 평의 공장들은 정상적으로 가동되며 구조고도화 사업은 비어있는 유휴부지가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KEC 50주년을 알리는 현수막. ⓒ 전국금속노동조합

KEC지회가 구조고도화를 반대하는 이유

민주노총 금속노조 KEC지회(지회장 이종희)는 KEC가 말하는 계획이 터무니없다고 비판한다. 더 나아가 KEC지회는 ‘KEC가 구미공장을 돌릴 마음이 없다’고 주장한다.

KEC지회는 구조고도화 사업이 추진된다면 공장 가동에 필요한 환경이 망가져 공장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종희 지회장은 “반도체 제품은 먼지나, 수질, 진동 등에 아주 민감하다. 공장부지 절반에 지하 2층 지상 10층 대형 건물을 여러 채 짓는다고 하는데, 터파기 시작하면 먼지나 진동이 너무 가까우니까 발생될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가동 중인 공장에서 구조고도화 사업을 신청하는 경우가 없다. KEC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또한 KEC지회는 구조고도화 사업이 해외공장 외주화를 가속화해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4년 구조고도화 사업의 실패에는 구미시민의 ‘공장 폐쇄’ 우려가 컸다. KEC지회는 당시 ‘구조고도화 반대’ 서명운동을 벌여 6만 명의 동의를 얻은 적 있다. 이 지회장은 “지난 2013년에 회사는 구조고도화 사업을 하기 위해서 당시 잘 가동되던 3공장(조립공장)을 폐쇄했다”며, “2010년 이후에 KEC의 구미공장 투자가 전무했다. 해외공장 외주화로 노동자 수도 40% 줄고, 생산 규모도 그만큼 축소됐다”고 말했다.

9월 9일 오후 2시부터 진행된 '노조파괴 장례식' 현장. '노조파괴는 죽었다'라고 쓰여있는 관을 조합원들이 옮기고 있다. ⓒ 전국금속노동조합

덧붙여 KEC지회는 실제 구조고도화 사업에 선정돼도 시민안전과 입지의 경제성은 여전히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지회장은 “반도체에는 유해화학물질이 200여 가지나 사용된다. 거기에는 수소가스도 있다. 최근 구미공단에서 수소가스 폭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주위에 쇼핑몰을 짓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이 지회장은 “5공단이 최근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만약 구조고도화를 하고 싶으면 그런 인프라가 있는 곳에 해도 되는데, 굳이 잘 돌아가고 있는 공장 옆에 구조고도화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인구가 구미보다 많은 곳도 백화점이 어렵다. 원래 롯데백화점이 지금 들어온다는 말이 예전부터 있었지만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내린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회사 살리기 대 회사 죽이기

KEC지회의 주장에 대해 강세영 파트장은 ▲사업자로 선정될 시, 환경평가를 진행해 공장가동에 영향을 주는지 면밀하게 살펴볼 것 ▲해외공장은 모두 조립공장일 뿐,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곳은 구미공장뿐으로 구조고도화 사업 추진의 목적은 구미공장 재투자라는 점 ▲안전 문제와 경제성 문제는 산단공이 심사하는 사항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강 파트장은 “가동하지 않는 부지에서 구조고도화 사업을 하면 거의 다 땅을 팔고 떠난다. KEC는 절반의 부지를 가동 중에 있는 상태에서 절반의 부지를 개발하는 것”이라며, “구미공단 1호 기업으로 구미를 지키는 터줏대감인데, 사회적 공헌을 위해서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KEC지회는 “KEC 노조파괴 10년이다. 법원도 KEC의 기획 노조파괴의 진상을 밝히고,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으나 KEC는 아무런 사죄도 반성도 대책도 없다”며, “KEC가 노조파괴에 몰두한 배경에는 구조고도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두 번의 정리해고를 자행했고, 대상 부지에 있던 어셈블리 공장을 폐쇄했다. KEC는 공장부지를 상업용으로 변경해 복합쇼핑몰을 지을 탐욕을 포기하지 않는다. 멀쩡히 가동 중인 공장에 쇼핑몰을 지으면 반도체 공장은 제품 생산이 불가능하다. 폐업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