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C지회가 11년째 ‘성실교섭’을 촉구하는 이유
KEC지회가 11년째 ‘성실교섭’을 촉구하는 이유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1.19 19:05
  • 수정 2021.01.19 1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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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C지회, 대법 판결에도 2010‧2011년 임단협 ‘아직도’ 미체결
복수노조제도가 남긴 ‘덫’... 지난한 법정 공방에도 문제해결 실마리 안 보여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br>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br>

복수노조는 KEC 노사갈등을 잘 보여주는 키워드다. 복수노조제도가 시행된 지 햇수로 11년이지만 현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금속노조 KEC지회는 11년째 회사에 ‘성실교섭’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KEC지회(지회장 황미진)는 19일 오전 10시 40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앞에서 ‘교섭해태 무죄 판결로 노조파괴에 뒷심 싣는 김천지원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건의 발단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KEC 노사는 2010년 임단협에서 노동조합 전임자 문제 및 영업조직 분리에 따른 고용문제 등을 두고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KEC지회는 6월 9일 부분파업, 6월 21일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회사는 6월 23일 직장폐쇄로 맞섰다.

이 과정에서 KEC지회는 사측에 10여 차례 교섭을 요청했으나 회사는 응하지 않았다. 결국 KEC지회는 2010년 10월 21일 교섭을 요구하며 공장점거에 나섰다. 숱한 갈등 끝에 금속노조와 KEC는 2010년 11월 3일 ‘노사합의문’을 통해 ▲공장 점거 철수 ▲교섭 속개 ▲공장 점거로 인한 손배가압류 최소화 등에 합의했다.

하지만 2011년에도 사측의 교섭거부는 여전했다. KEC지회는 수차례 사측에 교섭을 요청했지만 끝내 불발돼 법원에 ‘단체교섭응낙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그러던 중 복수노조제도가 시행된 2011년 7월 1일 상급단체 없는 기업노조인 KEC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이후 사측은 ‘교섭창구단일화’를 거치고 있다는 이유로 KEC지회의 교섭요구를 거부했다. 2011년 교섭창구단일화 결과 2노조인 KEC노동조합이 교섭대표노조가 됐다. 이어 KEC는 2012년 9월 7일 KEC지회와의 단체협약을 파기하고 KEC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KEC지회의 입장에서는 2년간 사측의 교섭 거부로 단협을 체결하지 못하다가 결국 단협이 파기된 꼴이었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단체교섭응낙가처분신청 소송에서 대법원(2012라1787)은 2012년 11월 12일 KEC지회의 단체교섭권이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복수노조제도가 시행되기 전 KEC지회가 가지고 있었던 2010‧2011년 단체교섭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덧붙여 교섭의 범위로 ▲노동조건에 관한 사항 ▲3조3교대에 관한 사항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KEC지회는 회사에 재차 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KEC는 대법원 판결에도 ‘교섭창구단일화 과정을 거친 KEC노동조합이 교섭대표노동조합’이라는 이유로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KEC는 2015년 5월 법원에 ‘단체교섭 의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KEC지회와 단체교섭을 할 의무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소송이다.

하지만 법원은 잇따라 KEC지회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2016다274607)은 2019년 7월 25일 “하나의 노동조합과 이미 단체협약이 체결되어 사업장의 모든 근로자에게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다른 노동조합은 여전히 단체교섭을 통하여 보다 유리한 단체협약을 새로 체결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 승소 이후에도 현장의 교섭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또 다시 소송전인 것이다. 2017년 12월 검찰은 지속적인 KEC의 교섭거부에 약식으로 벌금 100만 원을 처분했으나 KEC는 이에 불복하여 2018년 1월 정식 재판을 요구했다. 고용노동부는 2019년 4월 KEC의 교섭해태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두 사건은 2020년 7월 28일 한 사건으로 병합돼 재판이 진행됐다.

19일 오전 10시 40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앞에서 열린 ‘교섭해태 무죄 판결로 노조파괴에 뒷심 싣는 김천지원 규탄’ 기자회견 현장. ⓒ 금속노조 KEC지회

법원은 2021년 1월 13일 해당 재판에서 KEC에게 교섭거부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 150만 원 형을 내렸지만, 교섭해태에서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KEC)가 각 교섭에 불응한 데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면서,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정당한 이유 없이 단체교섭을 해태한다는 인식하에 그 교섭을 해태하였음이 합리적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교섭에 응하지 않은 건 잘못이지만, 교섭을 의도적으로 해태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에 금속노조는 즉각 항소를 요구했다. 황미진 금속노조 KEC지회 지회장은 “회사가 교섭을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노동조합으로서는 굉장히 힘들다. 회사는 2010년부터 노조파괴, 복수노조를 이용해서 지금까지 교섭에 응하지 않으려고 했다”면서, “2020년에 재판이 열리고 나서야 회사가 지회의 단체협약 요구안을 한 번 검토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사건이 오래되다보니 재판부가 전체 맥락을 파악하지 못했다 본다”고 지적했다.

KEC는 현재 명확한 입장을 밝힐 수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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