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 10년 “폐기가 답이다”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 10년 “폐기가 답이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6.01 20:22
  • 수정 2021.06.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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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갈등 끝에 ‘합의 없이’ 제정된 복수노조법 10년 … “복수노조제도, 노무관리수단 돼”
​​​​​​​10일간 국회→세종시 고용노동부 농성 투쟁 시작
ⓒ 금속노조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김호규)이 1일 오전 11시 국회 앞에서 진행한 ‘부수자! 교섭창구 단일화, 되찾자! 노조할 권리 금속노조 농성투쟁 돌입’ 기자회견 ⓒ 금속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의 폐기를 요구하는 현장의 목소리가 거세다.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김호규)는 1일 오전 11시 국회 앞에서 ‘부수자! 교섭창구 단일화, 되찾자! 노조할 권리 금속노조 농성투쟁 돌입’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13년 유예 끝에 마련된 복수노조법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어떤 노조가 교섭권을 가질 것인지 결정하는 제도다. 현행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조합원이 1명이라도 많은 노동조합에게 교섭권을 부여하는 승자독식구조다. 교섭창구단일화 과정을 거쳐 조합원이 다수인 노동조합을 확인하고, 다수 노조에게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보장한다. 소수 노조의 교섭권 침해 가능성에 대해서는 교섭대표노조에게 공정대표의무를 부과한다.

단 사용자가 교섭창구단일화를 원하지 않고 다수의 노조와 모두 교섭을 원할 경우 개별 교섭을 진행할 수 있다. 또한 한 사업장 내에서도 노동조건 및 고용형태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일 경우 노동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교섭단위를 분리해 별도의 교섭권을 부여받을 수 있다.

이 같은 내용의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2009년 12월 30일 마련됐다. 복수노조 허용 자체는 1995년 11월 민주노총 설립 직후 강하게 제기됐던 의제다. 탄탄한 조직을 구성하고도 복수노조가 허용되지 않은 탓에 민주노총에 ‘불법’ 딱지가 붙은 것이었다. 1997년 3월 노조법 개정에 따라 상급단체의 복수노조 설립은 허용됐다. 그러나 단위사업장에서 복수노조 허용은 5년 간 적용을 유예했다. 어떤 노동조합이 회사와 교섭을 할 것인지, 즉 교섭권 분배 문제가 상당한 갈등을 낳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노사정 모두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단위사업장 복수노조 허용은 수차례 유예됐다. 그러던 중 유예 13년차였던 2009년 12월 30일, 국회에서 당시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중재안(일명 ‘추미애 대안’)이 통과됐다. 현행 제도의 기반이 되는 법안이다. 복수노조가 단위 사업장에서 전면 허용된 것은 법 통과 1년 6개월 후인 2011년 7월부터였다.

하지만 ‘추미애 대안’은 노사정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동시에 복수노조 허용을 더 이상 유예할 수 없다는 분위기에 따라 마련됐으며, ‘절충적 성격’이 짙었다. 이에 따라 제도 시행 시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양대 노총 모두의 우려가 지대했다.

7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에서 한국노총 조합원 15만여 명(주최측 추산)이 모인 가운데 열린 '전임자 임금 노사자율 쟁취,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저지 및 노동운동 말살음모 분쇄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2009년 11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에서 한국노총 조합원 15만여 명(주최측 추산)이 모인 가운데 열린 ‘전임자 임금 노사자율 쟁취,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저지 및 노동운동 말살음모 분쇄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DB

권리보장이 아닌 노무관리 수단된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

우려는 곧바로 현실이 됐다. 특히 금속노조 산하 사업장에서는 복수노조 시행 전후로 ‘노조 파괴 컨설팅’이 성행했다. 사용자가 지배·개입하는 노동조합을 설립해 기존 노동조합 활동 방해, 창구단일화를 통한 교섭권 획득 등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억누르는데 사용된 것이다. ‘창조컨설팅’의 컨설팅 사업장으로도 유명한 유성기업, KEC, 발레오만도가 대표적인 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황미진 KEC지회 지회장은 “복수노조법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노조 파괴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복수노조법은 노조 파괴를 위해서 만들어진 법”이라면서, “(2010년도 교섭에 이어) 사측이 2011년도 교섭을 거부하는 바람에 수개월을 길거리에서 지내야 했다. 교섭거부의 이유는 2011년 7월이 되면 복수노조법 발효가 돼서 KEC지회와 교섭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고 비판했다. ▶ 관련기사 : KEC지회가 11년째 ‘성실교섭’을 촉구하는 이유

이 같은 결과는 자유로운 노동조합 설립과 가입이라는 헌법상의 노동기본권뿐만 아니라, ‘기존 노동조합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노동조합 설립을 제한한다는 노동조합법상의 규정에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또한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사용자에게 실질적으로 교섭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는 점에서도 비판받고 있다. 사용자가 교섭하기를 원하지 않는 노동조합이 다수 노조일 때는 개별 교섭을 취할 수 있고, 반대의 경우 창구단일화를 통해 교섭대표노조와 교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준성 금속노조 법률원 노무사는 “창구단일화 절차는 사실상 노동조합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도를 넘어, 사실상 사용자들의 노무관리 전략의 일환이 됐다. 민주노조가 생기면 대항노조를 결성하고 키워서 교섭권을 몰아주는 장면은 이제 노사관계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풍경”이라면서 “심지어는 어용노조가 다수노조를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 개별교섭을 선택하여 어용노조를 전략적으로 키워주는 방식도 가능한 것이 현행 노조법”이라고 비판했다.

2020년 4월 28일 낮 11시 30분 진행된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위헌소송 제기’ 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금속노조는 “교섭창구단일화는 10년이 지나 민주노조를 탄압하는 사용자의 강력한 무기가 됐다”면서, “복수노조 제도를 악용해 가짜노조, 어용노조를 무차별적으로 양산했고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가동했다. 사용자의 교섭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춘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사용자가 교섭파트너를 선택할 수 있는 괴상한 제도가 됐다”고 비판했다.

금속노조는 1일부터 11일까지 국회, 헌법재판소,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세종시 고용노동부 등지에서 교섭창구단일화제도 폐기를 주장하는 농성을 이어갈 계획이다.

한편, 민주노총은 2020년 2월 헌법재판소에 현행 교섭창구단일제도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이어 4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9조의2(교섭창구단일화 절차)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한 바 있다. 한국노총은 복수노조제도가 시행되기 바로 직전인 2011년 6월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헌법재판소는 2012년 “한국노총이 주장하는 자율교섭 제도가 단체교섭권을 덜 침해하는 제도라고 단언할 수 없다”며 헌법소원에 ‘소극’ 처분을 내리며 헌법소원의 심판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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