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창구단일화제도 10년, 다시 '위헌소송' 제기
교섭창구단일화제도 10년, 다시 '위헌소송' 제기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4.28 18:09
  • 수정 2020.04.29 0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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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교섭창구단일화제도 위헌소송제기
‘노노갈등’ 유발, “쟁의권과 교섭권은 헌법상 기본권”

 

4월 28일 낮 11시 30분 진행된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위헌소송 제기' 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노동자 괴롭히는 손해배상가압류’와 함께 노동계에서 대표적인 ‘노동악법’으로 꼽힌다. 민주노총은 4월 28일 오전 11시 30분 서울시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위헌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지난 2010년 1월 1일 국회에서 통과돼 같은 해 7월 1일부로 시행됐다.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야당의 반대에도 1월 1일 새벽을 노려 타임오프제와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를 골자로 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입법 취지는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도록 하여 근로조건의 통일성 확보 및 교섭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하는 것이었다.

교섭상대를 사용자 입맛대로

하지만 입법 취지와 정반대로 현장에서는 여러 부작용이 이어졌다. 가장 크게는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교섭 노동조합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먼저 현행 교섭창구단일화제도에 따르면, 교섭창구단일화 과정에 참여한 노조 중 조합원이 많은 노조가 교섭권을 가져가게 돼있다. 소수 노조는 물론이고 조합원이 한 명이라도 적은 경우 교섭권을 얻을 수 없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인 구조다.

이러한 구조는 노동조합의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을 침해한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도 조합원 유치를 위한 갈등이 거세지는 요인이 된다.

노조가 제기하는 더 큰 문제는 사용자가 이러한 구조를 악용한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사용자는 창구단일화 과정을 거친 교섭대표노조와 교섭할지, 아니면 각각 개별 노동조합별로 교섭할지 선택할 수 있다. 사용자의 입맛에 맞는 노동조합을 우대하는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사용자의 눈 밖에 난 노동조합이 조합원 수가 많으면 개별 교섭을 진행하고, 조합원 수가 적으면 창구단일화를 통해 교섭대표노조와 교섭하는 식이다. 박원우 금속노조 삼성지회 지회장은 삼성의 노조파괴 사건에서 교섭창구단일화제도가 핵심 수단으로 사용됐다고 지적한다.

“삼성지회의 사업장은 에버랜드 삼성물산이다. 삼성의 노조파괴와 창구단일화제도는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삼성그룹의 조직적 노조파괴 이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노조 설립 직후 노조 간부를 해고하고, 조합원 모두를 징계했다.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고 경찰, 공무원을 동원해 갖은 범죄 행위를 자행했다. 최근 유죄 판결을 받은 인물들 중에는 삼성물산의 복수노조인 에버랜드 기업노조 전현직 위원장 모두가 포함돼있다. 삼성물산은 여전히 그 인물과 관련된 노동조합과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현실이다. 삼성지회는 9년 동안 창구단일화를 통한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단 한 번도 누린 적 없고, 교섭 참가조차 배제됐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2011년 헌재는 헌법소원 심판 대상 아니라고 판결

2010년 7월 1일 개정 노동조합법이 시행되고 1년 후 한국노총은 2011년 6월 헌법재판소에 교섭창구단일화제도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당시 한국노총은 교섭창구단일화제도가 아닌 개별교섭제도를 주장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듬해 4월 24일 “한국노총이 주장하는 자율교섭 제도가 단체교섭권을 덜 침해하는 제도라고 단언할 수 없다”며 헌법소원을 ‘소극’ 처분을 내리며 헌법소원의 심판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당시 헌법재판소의 논리는 ▲사용자 동의 시 개별교섭 허용 ▲교섭단위 분리 가능 ▲공정대표의무 존재 등으로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 모인 이들은 교섭창구단일화제도가 위헌이라는 것에 공통적으로 입을 모았다. 조현주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현행 교섭창구단일화제도가 ▲산별교섭권의 침해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교섭권 침해 ▲최소침해성 위배 ▲법익 균형성 위배 ▲평등권 침해 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중 산별교섭권 침해는 교섭창구단일화제도가 ‘기업별 교섭’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현주 변호사는 “노동조합법에서는 초기업별 노동조합 형태도 가정해 사용자단체와 산별교섭도 가능하도록 규정한다”면서, “금속노조는 사용자단체협의회와 중앙교섭을 실시한다. 그런데 사업장에서 금속노조 조합원이 다수가 아니게 될 경우 사용자단체협의회에서 탈퇴한다. 실질적으로 중앙교섭을 형해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양동규 민주노총 부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엄강민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법률로 기본권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제한하는 경우에도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면서, “노동자들의 쟁의권과 교섭권은 본질적으로 기본권에 해당하지 않는지 물을 수밖에 없다. 자본의 유불리에 따라서 대표노조교섭, 개별노조교섭 또는 때에 따라서 노조를 만들어서 할 수 있게 만든 제도가 창구단일화제도”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민주노총은 4월 말~ 5월 초까지 금속노조를 시작으로 건설산업연맹, 화섬식품노조, 민주일반연맹도 교섭창구단일화제도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이라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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