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일터혁신, “아름다운 공장을 찾습니다”
인천의 일터혁신, “아름다운 공장을 찾습니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1.09 00:22
  • 수정 2020.01.09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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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단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 ‘환경개선을 인식개선으로’
일터혁신도 ‘사용자 중심에서 노동자 중심으로’

커버스토리② 인천 아름다운 공장을 찾아서

아름다운 공장을 다녀오다

지금의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키우고 양질의 일자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일터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대기업과 비교해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은 일터혁신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일터혁신에서조차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터혁신에 대한 오해는 여전하다. 일터혁신은 말 그대로 일하는 곳에서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을 말하는데, 일터혁신을 기술혁신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기계화 내지는 자동화로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노동자가 일하기 좋은 일터를 만드는 동시에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는 게 일터혁신의 정의라면 일터혁신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인천내항 7부두 곡물 사일로. ⓒ 인천테크노파크
인천내항 7부두에 위치한 곡물 사일로. ⓒ 인천테크노파크

50살 인천 산업단지, 취업하기 꺼리는 ‘청년들’

인천은 우리나라 대표 산업도시 중 하나로, 인천이 본격적인 산업도시로 성장한 것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1969년 한국수출산업공단 제4단지가 인천에 처음 들어섰으며, 현재 인천에는 총 11개의 산업단지가 존재한다.

11개 산업단지가 인천지역 경제성장에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하면서 제조업이 지역내총생산(GRDP)의 30%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2017년 기준 종사자 10명 이상 광업 및 제조업 사업체 수 4,711개, 종사자 수 18만 1,499명, 부가가치 23조 4,867억 원을 기록할 정도로 인천에서 제조업은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산업단지 중심으로 성장해온 인천시에 고민이 생긴 건 최근이다. 산업단지 노후화에 대한 마땅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세월이 흐르면서 제조업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대됐다. 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의 난개발 및 노후화, 이에 따른 열악한 근무환경 및 주변 환경문제가 발생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인천시의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제조업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제조업 및 산업단지 취업 기피 현상을 낳았다. 노후화된 산업단지는 구직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조차 거들떠보지 않는 일자리가 됐다. 반면에 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에서는 인재고용에 어려움을 호소하며 구인난을 겪고 있다. 2015년 한국산업단지공단 조사발표에 따르면 산업단지 입주기업의 25.1%가 생산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시는 인천지역 실업률 증가 원인을 이 같은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에서 찾았다. 인천시는 곧바로 해결책 찾기에 나섰으며,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를 위한 첫 번째 과제로 ‘인식개선’을 꼽았다. 이남주 인천시 산업진흥과장은 “시민들한테 산업단지에 대해 물어보면 먼지, 오염 등 부정적인 것만 나열하고, 청년들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답변을 해 심각성을 일깨웠다”며 “산업단지를 자신과 동떨어진 세상으로 보는 청년들에게 노후화된 산업단지에 대한 인식개선이 제일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50년 전 만들어진 산업단지는 철저하게 ‘물류중심’이었기 때문에 ‘사람중심’ 설계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인천시는 산업단지 이미지를 재창조하기 위해 노후 산업단지에 디자인을 입히고, 시민과 노동자가 함께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산업단지도 아름다울 수 있다”

인천시는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에 주목했다. 사람중심의 산업시설을 만들기 위해 ‘인식개선’과 ‘환경개선’ 두 가지 사업을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산업단지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알리는 게 사업의 목적이다.

지난 2016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인천지역 산업단지의 고용환경상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연구자료’에 따르면 산업단지 취업 고려 요인 중 1위가 근무환경으로 조사됐다. 인천시는 청년들을 산업단지로 유인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는 근무환경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오유선 인천테크노파크 환경디자인센터장은 “청년들은 임금을 많이 줘도 근무환경이 나쁘면 취업을 꺼린다”며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하기 때문에 산업단지로의 접근성, 문화 공간 및 휴게 공간 조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산업단지의 모습은 일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살아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며 “인천시는 근무환경 개선을 통해 이를 풀어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산업시설 환경개선 사업 인천시는 인식개선과 환경개선 사업을 위해 ‘서비스디자인(Service Design)’ 개념을 도입했다. 서비스디자인이란 서비스 수요자의 니즈(Needs)를 고려한 디자인을 말하는데, 인천시는 인천시민과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디자인을 산업시설에 입히기로 했다. 지금까지 진행된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주안국가산업단지 디자인거리 조성사업 ▲부평테크시티 주변 디자인환경개선사업 ▲서부산업단지 벽화거리 조성 ▲인천내항 사일로 슈퍼그래픽 조성사업 등이 있다.

인천 주안국가산업단지는 1969년에 조성돼 513개 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1만 1,968명이 고용돼 있다. 산단 내 안내판 부재, 휴게 공간의 부족, 불법 주정차로 인한 통행의 어려움, 어둡고 낙후된 보행길 문제가 발생해 골머리를 앓던 곳이기도 하다. 인천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구간에 산업단지 특화거리를 조성했다.

부평국가산업단지 환경개선을 위해서는 부평테크시티 주변 디자인환경개선사업을 실시했다.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시점을 기준으로 산업단지 내 거주자 및 노동자의 생활 기능 향상에 초점을 맞췄다. 출퇴근길 조성, 쉼터 제공 등이 대표적이다.

인천내항 사일로 슈퍼그래픽 조성사업, 일명 ‘사일로 프로젝트’는 오랜 시간이 흘러 흉물로 변해버린 곡물 사일로를 공공미술로 새롭게 탄생시킨 사업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벽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원래 해당 곡물 사일로는 담당 민원팀이 따로 존재할 정도로 시민들의 민원 접수가 많은 곳이었다. 곡물을 저장하는 사일로라는 인식이 부족해 사일로 주변을 지나다니는 시민들에게 ‘저기(사일로)에서 나오는 게 무엇이냐’, ‘몸에 해로운 물질 아니냐’ 등의 민원이 매일 접수됐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해당 사일로가 ‘곡물 저장창고’라는 걸 알리는 동시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외관을 개선하기로 했다.

준비 기간만 꼬박 2년이 걸렸다. 인천광역시, 인천항만공사, 인천 디자인센터, ㈜한국티비티 4개 기관이 참여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일로 시안 선정을 위해 시민 거리투표를 진행(총 2,174명 참가)해 ‘거대한 책 그리고 성장’(35.2%)이라는 최종 시안을 결정했다. 파릇파릇한 곡물과 함께 책 안으로 들어간 소년이 성인이 되어 수확을 마치고 책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그림에 담겼다. 사일로 모양이 거대한 책과 같아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 네 권씩 총 열여섯 권의 책으로 표현했다.

인천시의 산업시설 환경개선 사업 전과 후 비교. 인천테크노파크
인천시의 산업시설 환경개선 사업 전과 후 비교. ⓒ 인천테크노파크

인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장 어워드 또 다른 대표 사업 중 하나인 ‘아름다운 공장’은 2016년에 처음 시행됐다. 산업단지 안에 있는 중소기업 중에서 취업하고 싶은 근무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아름다운 공장을 인천시가 발굴하는 사업이다.

아름다운 공장은 앞서 이야기한 산업시설 환경개선 사업과 달리 인천시의 재정이 투입되지 않는다. 아름다운 근무환경을 인천시 지원 없이 자발적으로 조성한 공장을 인천시가 심사하고 선정한다. 대신 인천시는 아름다운 공장으로 선정된 기업에게 기업 디자인개발 지원, 중소기업 육성자금, 지방세 세무조사 유예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선정 기준이 아름다운 외관에만 있는 건 아니다. 이남주 산업진흥과장은 “외관이 아름답기만 하다고 선정되는 건 아니다”라며 “1차 서류 통과 기업을 대상으로 현장평가를 실시해 경영상태가 안정적인지, 보유기술에 미래지향성이 있는지, 근로복지가 잘 되어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선정한다”고 밝혔다. 오유선 센터장은 “아름다운 공장 선정을 통해 노후 산업도시 인천에 대한 긍정적인 사례를 제공하는 동시에 중소기업 재직자들의 행복한 근무환경을 위한 기업의 자체 개선을 장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스로드 인스로드는 ‘Incheon Industry Road’의 줄임말로, 인천의 우수 산업시설을 탐방해 기업의 홍보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만든 사업이다. 이 사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에 있다. 인천시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기업의 구인 미충원율은 6%, 신입직원의 1년 이내 퇴직률은 51.7%로 나타났다. 또한, 지역인재 타지역 유출비율은 61.8%로 조사돼 구직자들의 지역이탈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유선 센터장은 “인천시 안에는 제조업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증가해 발생하는 일자리 미스매치도 심각하지만 기업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몰라서 생기는 일자리 미스매치도 존재한다”며 “시 차원에서 기업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인식을 개선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인스로드 프로그램을 신청한 시민과 구직자들은 인천의 산업시설, 아름다운 공장 어워드 수상 기업 등을 둘러보며 인천 산업시설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음과 동시에, 그동안 산업시설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할 수 있다. 또한, 인천시는 인스로드에 취업 플랫폼을 구축해 질 좋은 일자리를 소개하고 체계적인 구인·구직 시스템을 제공하기도 한다.

[인천시 인스로드 프로그램 성과] 자료 : 인천테크노파크
[인천시 인스로드 프로그램 성과] 자료 : 인천테크노파크

아름다운 공장, 일터혁신이 될 수 있을까?

인천시의 사례처럼 근무환경을 아름답게 바꾸는 것만으로 일터혁신이 가능할까? 인천시는 이 질문에 “가능하다”고 답하며 “기업 경영진은 근무환경을 조성하는 일터혁신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유선 센터장은 “지금까지 주로 기업에서 진행하는 일터혁신은 생산성을 높이고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집중하는 사용자 중심의 일터혁신이었다”며 “근무환경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터혁신은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욕구를 채워줌과 동시에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일터혁신”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진 대부분의 일터혁신은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영업이익이 일터혁신 성과를 평가하는 지표였으며, 이 때문에 일터혁신을 기계화 내지는 자동화로 오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인천시 사례는 기존 제조업과 산업단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 시작이며, 결과적으로 산업단지와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양질의 일자리를 알리고 창출하는 사업으로 이어졌다. 인천시는 산업단지 설계를 ‘물류중심’에서 ‘사람중심’으로 바꾼 것처럼 일터혁신도 ‘물류중심’(사용자 중심)에서 ‘사람중심’(노동자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