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기계노동자, 퇴직금은 ‘그림의 떡’
건설기계노동자, 퇴직금은 ‘그림의 떡’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4.13 15:21
  • 수정 2020.04.13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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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성 인정받아야 퇴직금도 받을 수 있어
건설기계 1인 사업자, “전속성, 종속성, 사업장 표식 등 충분”
21년부터 건설기계 1인 사업자도 퇴직공제 적용 받나?

[리포트]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건설노동자 퇴직금, 실질화가 필요하다 ③

연속 기사로 건설노동자의 퇴직금에 대해 다뤘다. 노동자임에도 퇴직금을 꿈꾸지 못했던, 퇴직금이 자신의 노후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도 못했던 건설노동자들에게도 90년대 말부터 퇴직금이 생겼다. 사회 보장 성격의 제도가 생긴 것이다.

제도적으로 미진한 지점은 분명했다. 하루씩 적립되는 퇴직금 일액 자체가 사회 보장 성격이라기에는 너무 적었다. 공사금액 규모에 따라 퇴직공제부금 제도에서 제외되는 노동자들(플랜트건설노동자)이 다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보완할 수 있는 제도 자체는 있었다.

그런데 퇴직공제부금 제도 자체조차 꿈꿀 수 없는 건설노동자들이 있다. 건설기계노동자들이다. 굴착기, 덤프트럭, 레미콘, 크레인 같은 건설현장에서 모든 건설기계 장비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자기 명의의 건설기계 장비 1대를 가지고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퇴직공제부금 제도 적용조차 꿈꿀 수 없다.

그들이 퇴직공제부금 제도 적용도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이영철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건설기계분과위원회 분과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20년간 덤프트럭 운전을 한 그의 삶과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 건설기계노동자
퇴직공제부금 제도 ‘그림의 떡’

“현재 당연 가입 이런 표현이 아니라 퇴직공제부금에 가입할 수 없죠.”

이영철 분과위원장의 말문을 열었다 건설기계노동자는 당연 가입 대상의 목록에도 낄 수 없는 신세라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행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약칭 건설근로자법)로 정한 퇴직공제부금 제도는 법률 이름에도 나왔듯이 ‘근로자, 즉 노동자’에게만 해당하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왜 건설기계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상에도, 노조법상에도 노동자가 아닐까? 자신의 명의로 된 건설기계장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개인사업자라고 불리는 ‘특수고용노동자’이다. 하지만 개인사업자라기에는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 그들의 노동 전반을 살펴보면 전속성, 종속성, 사업장 표식 등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기준 안에 그들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건설현장에서 ‘근로계약서’가 아닌 1인 1차주로 ‘운반 및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할 뿐이다.

건설기계노동자들에게 퇴직공제부금 제도는 ‘그림의 떡’이다. 그래서 이영철 분과위원과 그의 동료들은 노후가 걱정스럽다.

“퇴직 이후 아무런 보장이 없죠. 사실은 퇴직공제부금 제도 자체가 열악하잖아요? 1년 동안 일해도 퇴직금 121만 원이에요. 그걸 퇴직금이라고 건설노동자들이 받는 건데, 건설기계노동자들은 그마저도 없는 거죠. 20년, 30년 일하고 나서도 아무 것도 없는 거죠. 노후 고민되죠.”

“노조 자체적으로 여러 가지 설문조사를 했어요. 노후를 위해 저축하거나 노후 대비 연금을 들거나, 설문조사를 보면 쉽지 않은 상황이죠. 대부분 소득수준이 낮아 당장 먹고 살기 바쁘니까 미래를 생각하고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닌 것 같아요. 조사해봤을 때.”

이영철 분과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월 소득 수준은 작년 기준 최소 150만 원에서 최대 400만 원대의 구간 안에 분포한다. 장비 기종마다 소득 수준은 다르지만 해당 구간 안에서 월 평균 소득은 250만 원대이다. 그는 월 평균 250만 원의 수입으로는 저축조차 생각하지도 못한다고 ‘또’ 강조했다.

“건설기계노동자들 연령대가 4050이 주축이란 말이에요. 4050이 월 250만 원 정도 받아서 살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이 있죠. 만약에 4050이 자녀가 있다면 가장 돈 많이 들어갈 고등학교 대학교 보내는 나이대이고.”

건설기계노동자,
개인사업자 아닌 노동자다

건설기계노동자가 퇴직공제부금 제도 안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것이 시급하다. 노동자성을 판가름할 전속성, 종속성, 사업장 표식 등의 근거가 건설기계노동자들에게 분명히 존재한다는 게 이영철 분과위원장의 설명이다.

“레미콘을 예로 들면 본인이 영업하지 않죠. 레미콘 공장에다가 생산을 한 레미콘을 회사의 요구에 의해서 건설현장에 가져다주는 역할뿐이잖아요.”

“근데 레미콘이 단순하게 내 소유라는 거죠. 그럼에도 레미콘 공장에 소속돼서 레미콘을 건설현장에 매일 운반하고, 현장 나가면 작업지시 받아 지시에 따라 일해야 하고, 회사 내에 만들어져있는 대기 장소에서 대기해야 하고.”

“도로 위에 지나다니는 레미콘차 보면 알겠지만 흔히 우리가 아는 레미콘업체를 예를 들면, 삼표라 표식이 있잖아요. 누가 봐도 삼표 차량인 거죠. 명의는 내 명의인데, 레미콘 공장에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덤프도, 굴착기도 모든 건설기계가 마찬가지죠. 회사 지시에 따라, 정해진 작업량에 따라서만 일해야 하죠.”

해당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표식을 가지고 계약에 따라 전속적으로 일하며 작업 지시를 받는 등 종속성을 가진 채로 건설기계노동자들은 ‘노동’하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추가 비용 없이
퇴직공제 당연 적용 가능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은 건설기계노동자들(다수의 건설기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1인 1차주만)이 퇴직공제부금제도가 적용되는 데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공사발주 시 공사원가(설계노무비)에는 이미 건설기계노동자의 퇴직공제부금에 해당하는 퇴직급여충당금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건설기계노동자 중에는 자신의 명의로 장비를 소유하지 않고 기사로만 일을 하는 노동자가 있다. 그들은 퇴직공제부금 제도 당연 가입 대상자이다. 설계노무비에는 이들을 위한 퇴직급여충당금이 반영돼 있다.

그런데 시공 전 계획 단계에서 건설기계 장비가 해당 건설 현장에 몇 대가 필요한지만 산정하지, 자차 기사(건설기계 1인 1차주)가 올지 자기 명의의 장비가 없는 기사가 올지는 미리 정하지 않는다. 결국 설계노무비 퇴직급여충당금은 해당 건설현장에 필요한 건설기계 장비 대수를 기준으로 산정되기 때문에 사업주가 건설기계 1인 1차주의 퇴직금도 건설근로자공제회에 충분히 납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기본계획’ 발표
건설기계노동자도 가입 대상될까?

정부도 역시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사회보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지난 3월 9일 정부가 발표한 ‘제4차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기본계획’에 따르면 퇴직공제금의 사회안전망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건설기계 1인 사업자까지 퇴직공제 가입대상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21년부터 그간의 국회 논의사항, 노사 입장 등을 반영하여 건설기계 1인 사업자까지 확대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영철 분과위원장은 정부의 계획이 그대로 실행되리라 굳게 믿지는 않았다.

“의지의 문제죠. 20대 국회에서도 건설기계 1인 사업자 퇴직공제부금 제도에 적용 하자는 법안이 왜 통과 못 했겠어요? 집권여당도 국정과제로 발표했지만 실질적으로 통과시키기 위한 법 개정에 노력이 그만큼 선행돼야 하는데... 정부가 그만큼의 의지가 있느냐, 의구심이 들죠.”

다른 한편으로도 정부의 퇴직공제부금 제도 가입 대상 확대 추진이 계획만큼 쉽지 않으리라 예측할 수 있다. 퇴직공제부금 제도 가입 대상 목록에 건설기계 1인 1차주를 넣기에는 많은 반발들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많은 반발들의 핵심은 ‘또 다시’ 건설기계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이 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건설기계 1인 1차주가 건설기계‘노동자’로 인정받는 것이 우선하지 않으면 논의가 공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영철 분과위원장은 현재 일하고 있는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사회 보장도 걱정했지만, 인터뷰 말미에는 산업의 미래도, 청년 건설기계노동자들의 미래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건설기계 분야에서 일을 하려고 해도 노후보장이 돼야 일하죠.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올 수 있는 역할을 우리 세대가 해야 하죠. 국가도 당연히 해야 하지만 우리 노조도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고요. 이것이 통과되면 제 노후도, 건설기계 산업의 미래도 밝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