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이판사판 공사판?
언제까지 이판사판 공사판?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4.15 00:00
  • 수정 2020.04.15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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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동자 퇴직공제부금 현실화에 필요한 조건들
건설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편견을 낳는 불법다단계하도급 구조 없애야

[리포트]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건설노동자 퇴직금, 실질화가 필요하다 ④

5,000원에서 6,500원으로 건설노동자들의 퇴직공제부금 일액이 오른다. 지난 4월 10일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회에서 결정했다. 이후 고용노동부 장관의 고시로 확정된다. 건설노동자가 실제 받는 퇴직금 일액은 4,800원에서 6,200원으로 1,400원 올랐다. 퇴직공제부금은 ‘퇴직금 + 부가금’으로 구성돼 있다. 부가금은 건설근로자공제회 운영비 등으로 활용하는 돈이다. 도식화해서 비교하면 ‘4,800원 + 200원’이 ‘6,200원 + 300원’으로 오른 것이다.

건설노동자 퇴직공제부금 제도가 현장에서 적용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만난 건설노동자들은 공통적으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이라고 제도를 설명했다. 좀 더 살펴보면 플랜트건설노동자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제도조차 적용받지 못했다. 건설기계노동자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제도와 전혀 관계없는 노동자였다. 금액의 크기도 작았고, 작은 금액도 못 받는 노동자들이 발생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일액 수준을 높이고 퇴직공제부금 제도 안에 많은 건설노동자들이 들어오도록 적용 범위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였다.

ⓒ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건설노동자 퇴직공제부금,
현실화 위해 더 필요한 것은?

➀ 퇴직공제부금 일액 수준 향상
지난 4월 10일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회에서 결정된 퇴직공제부금은 6,500원이다. 현행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약칭 건설근로자법)이 개정되는 시점으로 예상하고 있는 5월 27일에 맞춰 고용노동부 장관 고시로 확정될 전망이다.

노사정은 현재 건설노동자가 1년에 일할 수 있는 날을 252일로 보고 있다. 252일 기준으로 1년 일하면 121만 원이었던 퇴직공제부금이 156만 원 정도로 오른다. 아직도 최저임금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건설근로자공제회 퇴직공제부금 정책협의회에 들어간 임용우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플랜트건설노조 정책기획실장은 “퇴직금이 제조업 평균 수준까지 가려면 1만 5천 원 수준까지는 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퇴직공제부금 제도상 5천 원에서 1만 원 사이의 액수만 퇴직공제부금으로 결정할 수 있다. 임용우 정책실장의 말은 퇴직공제부금 상한선을 확대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 가지 더 해결해야 할 사안이 있다. 퇴직공제부금은 국토부가 고시하는 요율(보험요율과 같은 개념으로 퇴직공제부금에 대한 계약자의 비용부담을 결정하는 비율) ‘직접노무비 × 2.3%’에 묶여있다. 따라서 현행 제도에서는 퇴직공제부금 상한선이 1만 원이지만 6,900원까지가 실질적 최대치이다. 일액 확대를 위해서는 요율에 대한 조정도 필요하다.

➁ 퇴직공제부금 누락 방지
퇴직공제부금이 일별로 집계되다보니 간혹 사용자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건설노동자의 노동 일 수를 축소 신고하는 경우가 있다. 임용우 정책실장은 전자카드제가 신고 누락을 방지할 수 있다고 전했다. 전자카드제는 쉽게 말해 현장 출퇴근을 건설노동자가 소지한 전자카드로 기록 관리하는 제도이다. 출퇴근이 명확히 기록되면 노동 일 수도 정확히 입력돼 사용자의 퇴직공제부금 납입 일이 누락되는 상황은 사라진다.

➂ 적정공사비 확보 & 발주자 직접 납부
퇴직공제부금 인상을 노사정이 논의하다보면 사용자 단체에서 제기하는 문제 지점은 간단히 말해 ‘돈이 없다’는 것이다. 발주처의 발주 예산 내에서 원청의 경쟁입찰이 진행되고 저가 낙찰되는 것이 건설산업의 구조다. 저가 낙찰은 인건비 및 사용자가 납부해야 할 퇴직공제부금 등의 삭감으로 이어지고, 불법다단계하도급 구조까지 결합되면 저가 낙찰의 폐해는 심해진다.

그래서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은 ‘적정공사비 확보’를 이야기한다. 건설업계에서도 적정공사비 확보는 주요 요구안이다. 송주현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은 적정공사비와 함께 발주자에게 퇴직공제부금 납부 의무를 부과하자고도 덧붙였다. 건설 사용자 단체의 ‘돈이 없다’는 이야기에 대해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인 ‘적정공사비 확보와 발주자 퇴직공제부금 직접 납부’를 노동조합이 함께 하겠다는 뜻이다.

➃ 퇴직공제부금 정책협의회 상설화
송주현 정책실장은 “퇴직공제부금 관련 논의를 하는 노사정 정책협의회를 상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설근로자공제회의 고민이기도 하다.

정책협의회 상설화의 필요성은 퇴직공제부금 인상 논의를 정례화하기 위해서다. 퇴직공제부금 수준에 대한 논의 주기는 따로 없다. 최저임금처럼 1년에 한 번씩 논의해 결정해야 한다는 어떤 법 규정도 없다. 지금까지 건설노동자의 퇴직공제부금 인상은 정부의 정책에 따라 시행됐다. 정권에 따라 인상인지 동결인지 결정되는 것은 물론, 아예 논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또한, 건설노동자의 퇴직공제부금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건설노동자의 노동 수준, 임금 수준, 삶의 형태와 퇴직공제부금 인상 시 사회경제적 효과 등을 분석하고 결과에 따라 인상의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상설 기구를 통해 객관적 근거로 건설노동자의 사회 보장을 논의하자는 뜻이다.

이러한 정책적 보완 논의와 보완에 대한 노동계의 정책 요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오랜 기간 요구한 정책은 반영되지 못했을까. 기저에는 ‘건설노동자가 왜 보통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라고 물음표를 달았던 사회적 인식과 무관심이 있었다. 좀 더 살피면 그러한 건설노동자를 향한 사회적 인식을 낳는 불법다단계하도급이라는 구조적 문제점도 있었다. 대한민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건설산업의 규모와 중요성에 비해 건설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처우는 열악했다.

대한민국 산업에서
건설산업의 위치

정부는 지난 3월 9일 제4차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건설산업의 현재 위치를 진단했다. 자료에 따르면 건설산업은 타 산업에 비해 취업자 규모가 크고 취업유발계수가 매우 높은 대표적인 일자리 창출산업이다. 취업자 규모는 202만 명에 달한다. 전체 취업인원의 7.4%를 차지한다. 특정 산업의 최종수요가 10억 원 발생할 때 직·간접적으로 유발되는 취업자 수는 11.0명으로 제조업이 7.8명보다 많다. 정부는 건설산업을 높은 전후방 생산유발(상품의 최종수요가 1단위 발생활 때 모든 부문에서 직·간접적으로 유발되는 생산액, 건설업 1.972 / 제조업 1.833, 전산업 평균 1.795)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선장을 뒷받침하는 기간산업(key industry)라고 분석했다. 건설산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규모와 사회경제적 유발 효과를 보면 중요 산업임이 확연하다.

그러나 건설산업의 규모와 중요성에 비해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정부는 건설산업이 불법 재하도급 등에 의한 공사비 하락 및 다단계 도급구조로 인해 ▲낮은 임금 및 복지수준 ▲낮은 고용안전성 ▲높은 안전사고 위험 등이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요소들로 청년층 취업 기피 및 고령화가 진행되며 산업에 활기가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정부도 지적한 ‘낮은 임금 및 복지수준’에는 건설노동자의 퇴직공제부금 제도에 대한 문제점도 포함하고 있다.

결국 건설산업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중요한데, 현재 건설노동자들의 노동 환경과 처우, 사회 보장으로는 미래까지 건설산업을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고 전망할 수 있다. 미래 없는 건설산업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불법 재하도급’이라는 것도 정부 자료로 다시 확인 할 수 있다.

ⓒ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불법다단계하도급과 고용 불투명성
건설노동자 임금과 처우는 뒷전으로

건설노동자 퇴직공제부금 제도 문제점의 근원에는 건설노동자 임금에 대한 전근대적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른 산업에 비해 임금 체불이 횡행하고, 한두 달 늑장 지급이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 또한 계약 수수료를 떼고 임금을 지급 받는다. 이러한 건설노동자 임금에 대한 전근대적 인식이 타파되지 않았는데, 건설노동자의 사회 보장 수단이자 사회임금의 성격인 퇴직공제부금이 건설노동자의 삶과 동떨어진 수준인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건설노동자 임금에 대한 전근대적 인식이 발생하고 유지되는 배경에는 ‘불법다단계하도급과 고용 불투명성’의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송주현 정책실장은 건설산업 불법다단계하도급이 고용 불투명성을 확대하고, 고용이 불투명하니 건설노동자 임금 문제가 발생하고 퇴직공제부금도 현실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시작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불법다단계로 인한 고용의 불투명성이라고 봐요. 적어도 다른 산업은 고용은 투명하잖아요. 누구나 지원할 수 있고 누구나 알 수 있는 게 현실인데, 건설산업은 아니죠.”

“시공참여자라는 개인사업자는 없어졌죠. 팀·반장 단위로 계약을 하는 건 여전해요. 불법다단계는 여전하죠. 그러니 임금이 적게 나와도, 체불돼도 어디 하소연 할 때도 없죠. 사고 나도 배상 받지 못하죠. 보험도 없죠.”

건설산업에서 ‘발주처 또는 시행사 – 종합건설업체 – 전문건설업체(토목, 건축, 조경 등) - 팀반장 단위 계약(재하도급) – 재재하도급’의 불법다단계하도급 구조(전문건설업체까지 하도급만 합법)는 필연적으로 공사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 입찰 경쟁을 위해 공사비를 낮추려 하고 자기 이익도 남겨야 되니 공사비를 최대한으로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인건비 역시 최대한으로 줄이려는 현상이 발생하고 퇴직공제부금 납부와 같은 기타 소요 예산을 지출하지 않으려 한다. 게다가 고용이 공정하도록 특정 형식과 체계를 갖춘 것이 아니니 인맥으로 고용이 유지된다. 건설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처우에 관해서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구조가 원청이 종건한테, 종건이 단종(전문건설업체)한테, 단종이 팀장들에게 도급을 주는 피라미드 형식이에요. 그래서 책임 회피할 수 있는 거예요. 산재든, 임금이든, 뭐든 간에. 원청은 우리는 돈 줬다. 하청은 원청 가서 이야기해봐라. 그런데, 우리는 일을 계속 해야 하고.”

취재를 위해 만났던 청년 건설노동자 김산 씨의 말이었다. 그도 불법다단계하도급이 건설노동자 처우 개선(임금, 사회 보장, 노동안전)을 막는 근본적인 원인이라 지적했다. 불법다단계하도급이 건설노동자의 노동 환경을 열악하게 만들었고,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안 좋아지기 마련이다.

이판사판, 공사판

“건설은 일용직인 거예요. 다 소모품으로 봐요. 너네 아니어도 쓸 사람 너무 많다고 보고, 여기는 날일 하는 사람으로 보고, 그리고 노가다라고 하는 환경 자체가 열악하니까 기본적으로 사회적 인식 자체가 비천한 거예요.”

“돈 못 버는 사람,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 일하다가 안 되면 에이 이거라도 해보지(건설 현장에서).”

“보통 토목건축은 이씨, 김씨, 박씨라고 불러요. 건설기계노동자는 이름으로 안 불러요. 3158, 9135처럼 차량 번호로 불러요.”

송주현 정책실장은 건설노동자를 향한 사회적 인식 자체에 문제를 제기했다. 불법다단계하도급이라는 구조로 빚어낸 인식이어서 그 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사회문화적 인식 개혁 자체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건설노동자들을 향한 편견, 소위 말하는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없애기 위해선 사람들의 마음 속 변화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건설노동자를 향한 편견과 편견을 재생산하는 구조로 건설노동자들이 1년 일하고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156만 원이라는 퇴직금을 받는 데 20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