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에 폭행당한 경비원 '극단적 선택', '임계장'은 "엉엉 울었다"
입주민에 폭행당한 경비원 '극단적 선택', '임계장'은 "엉엉 울었다"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5.11 06:54
  • 수정 2020.05.11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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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새벽, 입주민 폭행에 시달리던 경비원 스스로 목숨 끊어
'임계장 이야기' 저자 "이 죽음에 무심하지 말아주십시오"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다 10일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강북구 한 아파트에서 일하던 50대 경비원 A씨가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A씨는 현장에 '억울하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겼으며 경찰 조사 등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중순부터 최근까지 근무하던 아파트 입주민 B씨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새벽 2시, 해당 기사를 읽고 "엉엉" 울어버린 책 '임계장 이야기'의 저자 조정진 씨에게서 메일이 한 통 왔다. 

책 '임계장 이야기' 작가 조정진 씨가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했을 때 쉬던 지하 휴게실 ⓒ 조정진
책 '임계장 이야기' 작가 조정진 씨가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했을 때 쉬던 지하 휴게실 ⓒ 조정진

앞서 조정진 씨는 38년간 공기업 정규직으로 일하다 2016년 60세 나이로 퇴직한 뒤 노인 시급 일터에 뛰어들었다. 퇴직 뒤 버스회사 배차계장, 아파트 경비원, 고층빌딩 경비원 겸 주차관리원, ‘터미널고속’의 보안요원으로 차례로 일했다.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이름은 첫 일터에서 얻었다. 

그는 네 일터에서 모두 해고됐다. 버스에 머리를 부딪혀 다쳐서, 화단에 물 줄 때 양동이로 퍼부어서 아파트 자치회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 빌딩 본부장 사모님의 차량이 주정차 위반을 하길래 호루라기를 불어서, 마지막엔 뜨거운 여름날 매연이 자욱한 버스터미널에서 쓰러져서 해고당했다. 이후 7개월간 투병생활을 했다. 장기간 항생제를 맞아 콩팥이 손상돼 신장투석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몸이 상했다.  

노인 일터는 사람의 일터라 말하기 어려웠다. 수많은 노인노동자들이 “아프면 바로 잘리고, 들짐승과 별반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과중한 노동에 시달렸다.” 자존이 무너지는 상황은 수시로 찾아왔다. 그때마다 임계장은 참았다. 대신 그는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틈틈이 메모했다. 2년 8개월간 쓴 수첩 10권은 책 '임계장 이야기'(후마니타스)가 되었다. 

그는 지금 투병 뒤 주상복합 빌딩에서 경비원 겸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지난주엔 기자와 통화하며 "마음을 다하여 큰 소리로 구하면 응답이 있으리라고 굳게 믿는다"던 임계장은 10일 밤늦게 퇴근하고 나서야 뉴스를 접한 뒤 "무기력에 한없이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그는 간절하게 말했다. "이 죽음에 대해 무심하지 말아주십시오." 

 

아래는 조정진씨의 메일 전문

저는 책 '임계장 이야기'의 저자 조정진입니다.

오늘 밤늦게 퇴근하고 나서야 뉴스를 보고, 서울 강북구 아파트 경비원의 죽음을 알았습니다. 엉엉 울었습니다.

이런 억울한 죽음 막아보려고, 제가 병상에서 모르핀 진통제를 맞아가며 책을 썼는데,
세상은 그 어떤 외침도 다 외면하고 마는 것일까요?

저의 책 77페이지에 쓴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요. 오래된 아파트 .. 이중 삼중 주차... 폭언 폭행.... 억울해도 말할곳이 없는 설움. 노조도 없고, 노동청이나 구청에 신고해도 아파트의 눈치를 먼저 살피고.... 나이 60이 넘어 아파트 경비원 하는 노인이 ... 살아보고자 아파트 경비를 했지, 이렇게 죽으려고 노동을 했겠습니까?

고령이 되면 세상을 살아온 연륜이 있어 충동적으로 목숨을 내던지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억울하고 분해도, 말할 곳도 없고, 들어주는 이도 없어... 그냥 스스로를 던진 것입니다. 너무 불쌍합니다. 착한 분이었다고 해요. 법 없이도 살 분이었다고 주위 동료들이 말하네요.

아, 돌아가신 분이 남긴 유서가 보도되었습니다. 유서에 쓰여진 몇 자 안되는 글씨에 눈물이 계속 납니다. 제가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한 첫 날, 아파트 경비원 한 분이 투신하였는데, 또 다시 이런 참혹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의 동료였던 60-70대의 아파트 경비원들께서, 자기들은 글이 부족해 쓰지 못하니, 그분들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가 대신 책으로 써 달라고 저를 격려하였습니다.

그 격려에 힘입어 '임계장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곳에 하소연할 곳이 없어 제가 임계장 이야기를 통해 아파트 경비원의 외침을 세상에 전했지만 들어주는 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제 책은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아무 소용도 닿지 않고, 세상이 들어주지도 않을 일을 해서 동료들에게 죄송하고, 제 자신의 무기력에 한없이 괴롭습니다. 제 딴에는 사명감을 가지고 한 일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니 너무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제가 아파트에 근무할 때 만났던 대다수 주민은, 선량하고 상식(常識)을 가진 시민들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실상을 아직 몰라서 그렇지, 현실을 알게 되면, 반드시 아파트 경비원들의 노동여건이 나아질 것으로 믿었습니다. 지금도 그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 책이 나온 이후에, 이런 일이 다시 벌어졌습니다. 제가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할 때 갑질을 가장 심하게 했던 김갑두에 대해 책에 썼습니다. 강북구 아파트에서 늙은 경비를 구타한 주민은 그 김갑두보다 훨씬 더 악한 사람입니다. 저는 김갑두가 무릅꿇고 빌어라고 할 때, 그 때, 정말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삶의 의지란 그런 상황에서는 무너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임계장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을 때, 저는 저의 노동이, 경비원이라는 직업이 부끄럽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자랑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를 하려니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탈고에서 출판에 이르기까지 1년 넘게 걸렸던 이유가 그 망설임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제 가족이 책을 읽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면 분명히 아파할 것 같아 그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이제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훨씬 적은 제가. 이 세상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이것이라 생각하여 책을 냈습니다. 제가 진솔하게 사정을 알리면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개선이라도 분명 이루어지리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억울한 죽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무기력함을 절감합니다.

노인 노동자가 아프면 무조건 "노환"이라 하더군요, 그리고 바로 해고합니다. 일을 하다 부상을 입어도 마찬가지로 노환이라 합니다. 그러면 서울에서 생을 마감하신 이 경비원의 죽음도 노환인가요?

아닙니다. 사회적 타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분들이 모두 임계장들입니다. 임시계약직 노인장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너무 쉬워서 "고. 다. 자."라는 준말로 불리는 아파트 경비원... 그리고 청소원, 주차관리원 들....그리고 이천 물류창고에서 안전관리자도 없이 철골 구조물에 갇혀 불길을 피하지 못한 노동자들... 이들이 바로 고다자입니다. 그러나 그 분들 모두 우리 이웃입니다. 내 친구의 아버지일 수도 있고, 내왕이 뜸한 내 친척 중의 한 명일 수도 있어요. 노인 노동자가 450만명입니다.

노인 노동자의 문제는, 노인이라 불리는 고령자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노인 노동 문제는 청년 비정규직,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청년들의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노인이 되어 일하고자 원하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은 청년들이 정규직으로 취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제가 시급노동자로 일했던 다섯 곳의 일터에서 만난 경비원 동료들은, 자기 자녀들을 비정규직 안 시키려고, 그런 이유로 하나로 일터로 나오는 분이 아주 많았습니다. 자기 자식을 비정규직 시키지 않으려고 늙은 아비가 비정규직이 된 것이지요.

문과대학 졸업자의 10%만이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 있는 현실에서, 내 새끼는 비정규직 안 시키려고... 그래서 내 자녀가 정규직 취업할 때까지, 공무원 시험 합격할 때까지.. 기약없는 세월을 매연,배기가스,쓰레기 더미 속에서 오늘도 일하는 노인 노동자들입니다.

자신의 자녀를 비정규직 시키지 않겠다는 부모의 소망을 이기심이라 나무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부모된 이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므로. 제가 고층빌딩에서, 또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일할 때 그 빌딩과 터미널을 움직이는 인력의 80%가 비정규직 청년들이었습니다. 청년들은 저를 경비아저씨라고 친근하게 여겨 속내를 털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청년들의 현실과 청년들의 마음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난 이 청년분들도 이 "고. 다. 자" 인력, 고르기도, 다루기도, 자르기도 쉬운 인력이었습니다. 헐값에 젊음이 팔리고 있었습니다. 부모에게 부담주지 않으려 일터로 나와 일과 공부를 함께하는 자랑스러운 청년들이었습니다.

그 청년과 노인이 "고다자"라는 어이없는 동의어로 묶여 있었습니다. "노동에서 나오는 결과물들의 가치"는 서로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동 자체의 가치”는 모두가 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동이 신성한 것입니다.

엊그제까지 아파트 경비원으로서 일하며, 그 동료들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책으로 썼던 제가 이제 사회의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 여려분께 호소합니다. 이번 아파트 경비원이 고통스러운 죽음을 외면하지 말고 그가 왜 죽음을 선택하였는지? 살피고 헤아려 주십시오. 세상은 예전처럼 찰나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 다시 언젠가 억울한 죽음은 되풀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죽음에 대해 무심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노동, 고용, 복지, 안전을 담당하는 정부부처가, 수사를 담당하는 이들이 어떻게 하는지 살펴주십시오. 그리고 이 사회의 건강한 시민들이 억울한 죽음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번에도 이것을 그 흔한 "갑질"중의 하나라고, 그냥 노인 경비원 하나 죽은 일이라고, ,그렇게 넘어가면 안 됩니다.
분명한 사회적 타살입니다. 그 원인을 낱낱히 밝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개선안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초등학생처럼 삐뚤빼뚤한 글씨로 남겨진 피맺힌 유서, 서너 줄밖에 안되는 마지막 외침을 들어주십시오.
저는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이런 일을 막아보고자 혼신을 다해 노력해 보았지만, 너무도 무기력한 노인의 한 사람이라는 슬픔이 밀려옵니다.
혼자서 엉엉 울다가 문득 이렇게라도 호소하는 것이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는 지금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기때문에 빈소에 조문도 갈 수 없습니다.
하루를 쉬려면 대체근무자를 구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돌아가신 경비원의 심정만은 제가 알 수 있습니다.
그분도 살기 위해 노동을 한 것이지 그렇게 죽으려고 노동을 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020.5.11. 02:00

임계장 조 정 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