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케어솔루션노조, “이제는 우리를 케어할 솔루션을 찾을 시간”
LG케어솔루션노조, “이제는 우리를 케어할 솔루션을 찾을 시간”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6.19 17:52
  • 수정 2020.06.1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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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제품 유지·관리하는 케어솔루션 매니저 노동조합을 만들다
금속노조 서울지부 LG케어솔루션지회는 18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 앞에서 ‘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지회 단체교섭 요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참여와혁신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금속노조 서울지부 LG케어솔루션지회는 18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 앞에서 ‘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지회 단체교섭 요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참여와혁신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LG전자의 정수기, 공기청정기, 스타일러(의류 관리기), 건조기, 전자레인지, 안마의자 등 제품의 대여 및 유지·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케어솔루션 매니저들이 노동조합 깃발을 꽂았다.

금속노조 서울지부 LG케어솔루션지회는 지난 5월 27일 노조를 설립하고, 지난 6일 노동조합 출범 총회를 가졌다. 지난 17일에는 LG전자 제품의 대여 및 유지·관리 서비스를 담당하는 LG전자의 자회사이자 케어솔루션 매니저들이 소속돼있는 하이엠솔루텍(주)에 단체교섭을 하자며 요구안이 담긴 공문을 발송했다.

LG케어솔루션지회는 18일 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 앞에서 개최한 ‘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지회 단체교섭 요구 기자회견’에서 “일에 관한 모든 책임은 우리 매니저에게 떠넘겼지만, 권리는 아무 것도 없었다”며 “이제 노동조합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교섭을 통째 응어리진 매니저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케어솔루션 매니저들의 ‘응어리진 목소리’는 무엇이었을까? <참여와혁신>은 지난 10일 서울 중구 금속노조 서울지부 사무실에서 LG케어솔루션지회(이하 지회) 김정원 지회장과 김진희 수석부지회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우리는 ‘가짜 사장’입니다”

케어솔루션 매니저(이하 매니저)는 LG전자 고객이 구매한 정수기, 공기청정기, 스타일러, 전자레인지, 안마의자 등의 대여 및 유지·관리를 위해 각 가정 혹은 기업에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문점검노동자다.

방문점검 주기는 제품마다 다르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정수기의 경우 3개월에 한 번, 공기청정기는 3개월 혹은 6개월에 한 번, 나머지 제품은 6개월에 한 번 점검이 이루어진다. 제품 사용에 필요한 소모품도 함께 전달한다.

매니저들은 자신이 맡은 제품 하나를 ‘계정’이라고 표현하는데, 한 가정에 정수기, 공기청정기, 안마기 등 여러 제품이 있는 경우는 ‘다계정’이라고 표현한다. 지회에 따르면 매니저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매니저 한 명당 150~200개 정도의 계정을 맡아 관리하며, 많으면 하루에 13~14개 정도의 계정을 처리한다.

매니저들은 LG전자의 제품을 직접 손으로 관리하고 고객들에게 LG전자 제품과 서비스를 영업하지만, LG전자 소속은 아니다. LG전자의 해당 서비스를 담당하는 자회사 하이엠솔루텍(주)에 소속돼 있다. 이곳에서 매니저들은 ‘가짜 사장’으로 불리는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기본급이 전혀 없는 100% 건당 수수료를 받으며 일한다.

가짜 사장의 서러움은 한둘이 아니다. 고용 안정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 연차휴가, 4대 보험 등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 산재 보상도 받을 수 없고, 퇴직금도 없다. 매니저 일을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차량 역시 개인차량을 사용해야 한다. 유류비, 보험료 등 차량 유지비도 매니저 개인이 부담해야 하고 식대 역시 지급되지 않는다.

김정원 지회장은 “기름값이 비쌀 때는 한 달에 20만 원 정도가 기름값으로 나간다”고 토로했다. 100% 건당 수수료로 이루어진 임금을 받는 매니저들에게 이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매니저들에게는 시간외수당 개념으로 평일 8시 이후, 토요일 5시 이후, 일요일에 업무를 할 경우 건당 1,000원의 추가 수수료가 지급되는데, 김진희 수석부지회장은 늦은 저녁, 그리고 주말에 일하는 매니저들의 수고에 못 미치는 금액이라고 지적했다.

“일 때문에 낮에 시간을 못 비우는 분들은 퇴근 후 8시 이후에 방문점검 시간을 잡는 경우가 있어요. 매니저 입장에서는 저녁 6시 이후의 업무와 주말 업무를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는 거죠. 평일에는 8시 이후에 일하면 추가 수수료가 나온다고 하지만, 8시 이후에는 계정을 1~2개밖에 처리를 못 해요. 매니저들은 원래 받는 돈에서 1,000~2,000원 더 받자고 저녁 9시까지 일하는 상황이 생기는 거죠.”

LG전자 케어솔루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매니저 지원 자격에는 ‘차량을 소지한 여성(경력자와 주부 사원 우대)’이 명시되어 있다. 경력 단절을 겪은 여성들에게는 매력적인 지원 자격인 데다가 자유로운 시간 관리로 일과 가사를 병행할 수 있다는 소개도 이어진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김진희 수석부지회장은 “매니저 모집공고를 보면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실제 방문을 원하는 고객들의 시간은 제각각”이라며 “고객의 사정에 맞춰 방문점검을 하다 보면 야간근무, 주말근무를 피할 수 없고 원거리를 운전해 갔는데 갑작스러운 방문 취소로 헛걸음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금속노조 서울지부 LG케어솔루션지회 김진희 수석부지회장, 김정원 지회장, 문준호 사무장. ⓒ 참여와혁신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왼쪽부터 금속노조 서울지부 LG케어솔루션지회 김진희 수석부지회장, 김정원 지회장, 문준호 사무장. ⓒ 참여와혁신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정수기 곰팡이 논란’
매니저들,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다

매니저들의 불만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러다 매니저들이 목소리를 내고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는데, 바로 LG전자 직수형 정수기 곰팡이 논란이다.

지난해 10월경 LG전자 직수형 정수기에서 곰팡이가 발견됐다. 제품 결함으로 단열재 두께가 모자라 응결 현상이 생겨 발생한 곰팡이였다. 소비자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즉각적인 ‘A/S’가 필요한 상황에서 사태 수습은 매니저들에게 넘어왔다. 이때 매니저들이 회사로부터 제시받은 건당 수수료는 단돈 3,000원이었다.

매니저들은 ‘매니저들의 고유 업무인 유지·관리 업무가 아닌 A/S 업무를 헐값에 떠넘긴다’고 분노했다. 지회에 따르면 본래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할 LG전자 서비스기사는 당시 LG 건조기 콘덴서 불량으로 업무가 폭증해 정수기까지 맡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지회는 “사태 수습을 위해서는 정수기를 완전히 분해한 뒤 내부 단열재를 교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만큼 업무 강도도 높은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매니저들에게 돌아오는 건당 수수료는 3,000원이었다. 결국, 매니저들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보통 부엌에 가면 정수기만 덩그러니 있지 않잖아요. 정수기 주변에 여러 물건들이 많은데, 그 협소한 공간에서 정수기를 180도 돌려서 분해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매니저들은 처음 하는 일이니까 손에 익지도 않아서 처음 할 때는 1시간 30분이 걸렸어요.” (김정원 지회장)

“교육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어요. 매니저들 한자리에 모아놓고 영상을 보여주더라고요. 기술 강사가 정수기만 놓여 있는 테이블 위에서 분해하고 단열재를 교체하고 조립하는 영상이었어요. 손놀림이 빠르고 숙련된 기술자가 한 걸 보고서 ‘수수료 3,000원이면 되겠지’ 하고 책정한 거죠. 서비스기사님들이 하면 15,000~20,000원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을 일을 우리보고는 3,000원에 하라고 한 거죠.” (김진희 수석부지회장)

매니저들은 일방적인 업무 지시와 부당한 수수료 책정에 반발해 SNS에 ‘LG케어솔루션 매니저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이 만들어진 지 일주일 만에 전국 4,000여 명 매니저 중 1,700명에 가까운 매니저들이 모임에 가입하고 의견을 모았다. 결국 정수기 곰팡이 논란은 회사가 뒤늦게 수수료를 ‘3,000원→5,000원→1만 원’으로 올리면서 일단락됐지만, 이때 모임을 만든 모임장과 공동리더는 매니저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노동조합 설립의 초석이 마련된 계기였다.

금속노조 서울지부 LG케어솔루션지회에서 만든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금속노조 서울지부 LG케어솔루션지회에서 만든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매니저 괴롭히는 등급제·영업 압박 폐지돼야”

현재 지회는 노조 가입 홍보와 함께 본격적인 올해 단체교섭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회는 요구안 마련을 위한 우선순위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는 그동안 노조 준비 과정 및 설명회 등에서 간추려진 요구안 10개를 제시하면 매니저들이 우선 요구안 5개를 고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설문조사 결과, ▲등급제 폐지(92.2%) ▲영업 압박 폐지(83.5%) ▲평일 6시 이후 연장수당, 주말 휴일수당 지급(78.9%) ▲유류비 등 차량 유지비 지급(69.1%) ▲A9 케어 폐지 및 신규업무 프로세스 도입 시 사전 논의(59.5%) ▲점검 수수료 인상(48.3%) ▲산재보험 가입 및 보험료 100% 회사 부담(46.8%) ▲영업 수수료 인상, 상품권 등 타 사이트와 비슷한 수준 제공(37.3%) ▲악성 고객으로부터 감정노동 보호 대책(34.4%) ▲감염병 예방 및 생계보장 대책(21.4%) 순으로 요구가 높았다.

현재 하이엠솔루텍(주)은 기본 수수료 체계를 ‘S-A-B-C-D’ 5단계 등급제로 운영해 수수료를 차등 지급하고 있다. 입사 후 3개월 동안은 B등급 기준으로 수수료를 받아 갈 수 있지만, 3개월 이후부터는 평가 및 실적에 따라 등급이 결정되며,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로 결정된다. 등급 간 수수료 차이는 300원으로, 최상 등급인 S등급과 최하 등급인 D등급은 1,200원의 수수료가 차이 나는 셈이다.

황수진 금속노조 서울지부 미조직사업부장은 “등급을 평가하는 기준은 출석률, 계정처리율, 고객만족도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실상 등급을 가르는 건 ‘영업’에서 발생한다”며 “그러다 보니 매니저들은 영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회사에서도 과도한 영업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희 수석부지회장은 “영업을 하면 영업에 대한 수수료를 추가로 지급하는 게 아니라 영업을 못 한다고 수수료를 깎는 구조”라며 “점검은 똑같이 했는데 영업 실적 차이로 인한 등급제 때문에 누구는 9,000원, 누구는 9,300원을 받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요구안 우선순위 다섯 번째를 차지한 ‘A9 케어서비스’도 매니저들에게 분노를 안겨다 준 사건 중 하나다.

최근 회사는 LG 무선청소기 모델 A9 케어서비스 교육 및 홍보 동영상이라며 이를 매니저들에게 전달했다. 동영상에는 매니저가 바닥에 무릎 꿇고 제품을 분해한 뒤 케어하고 다시 조립하는 모습이 담겼다. 회사는 동영상에서 사용한 것과 똑같은 무릎 방석을 매니저들에게 지급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매니저들은 “최소 40분에서 1시간 이상 걸리는 일을 무릎 꿇고 하라는 거냐”며 “이 발상에는 매니저에 대한 존중은 전혀 발견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지회는 ‘가전제품을 상전으로 모셔야 하는’ A9 케어서비스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으며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품 렌탈 및 관리·유지 업무 매뉴얼을 제작할 시 실제 현장 상황을 잘 아는 매니저들과 사전 논의를 진행할 것을 함께 요구하고 있다.

케어솔루션 LG 청소기 모델 코드제로 A9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케어솔루션 LG 청소기 모델 코드제로 A9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이제는 제품이 아닌 ‘매니저’를 케어할 시간”

지회는 지난 17일 하이엠솔루텍(주)에 단체교섭 요구안을 전달하며 교섭 준비를 위한 실무면담을 제안했다. 회사에서 이를 응하면 본격적인 교섭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회는 “회사가 매니저들의 노동자성을 부인한다면 그에 맞는 법적 대응과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전국적 행동에 나설 것”이라며 “LG전자의 고객에게 매니저들의 현실을 알리고 함께하는 권리 찾기 운동도 준비할 것”을 밝혔다.

김정원 지회장은 “매니저들이 ‘점검 도구’ 취급을 받지 않고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며 아직 노동조합 가입을 망설이는 매니저들에게는 이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많이 가입하셔야 저희가 힘을 얻고 든든하게 4,000여 명의 매니저분들을 지켜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걸 당당하게 요구하려면 많은 매니저분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게 중요해요. 노동조합에 가입한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으니까 안심하시고 가입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