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점검원은 계륵? 렌털업계 고속성장의 이면
방문점검원은 계륵? 렌털업계 고속성장의 이면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9.09 21:31
  • 수정 2021.09.10 0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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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영업·자가수리 제품 확대 … 방문점검원 고용위기
​​​​​​​‘특고’ 딱지부터 떼자 … 노동자성 인정 및 업종별 노사대화 필요성↑

방문점검 노동자는 정수기, 공기청청기, 안마의자 등 생활가전 렌털산업 성장과 함께 늘어났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렌털산업은 고공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정작 방문점검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빠졌다.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위원장 강규혁, 이하 서비스연맹)과 서비스연맹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공동위원장 이도천·이현철, 이하 가전통신노조)은 9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가전통신노조 대회의실에서 ‘코로나와 기술변화로 밀려나는 방문점검원 토론회’를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위원장 강규혁, 서비스연맹), 서비스연맹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공동위원장 이도천·이현철)은 9일 오후 2시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 대회의실에서 ‘코로나와 기술변화로 밀려나는 방문점검원 토론회’를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코로나19와
렌털산업의 성장

한국의 렌털산업은 1998년 웅진코웨이가 최초로 정수기 렌털사업을 시작한 이후 청호나이스, 쿠쿠 등 중견기업을 중심으로 지속 발전했다. 그러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은 한국 렌털산업을 급격히 성장시키는 요인이었다. 재택근무,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 생활가전에 대한 수요가 대폭 증가한 것이다. 한국 렌털시장 규모는 2016년 25조 9,000억 원, 2018년 31조 9,000억 원, 2020년 40조 1,000억 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방문점검 노동자의 처지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온라인 판매가 확대되면서 방문판매 비율이 줄어들었다. 코로나19의 위험으로 방문점검 자체가 어려워지기도 했다. 또한 자가 설치 및 수리가 가능한 렌털제품이 점점 늘어났다. 방문점검 노동자의 역할이 축소된 것이다.

신현화 가전통신노조 SK매직MC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코로나19 국면을 거치며 렌털업체들은 앞 다퉈 비대면 영업을 확대하고 있고, 자가 점검 정수기 등 방문점검 노동자들이 필요하지 않는 제품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면서, “하지만 기술변화의 영향을 제1선에서 받는 노동자들은 어떤 심리상태인지, 어떤 어려움을 겪을 것인지에 대한 관심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정원 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지회 지회장은 “LG도 당장은 아니지만 자가 점검 정수기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한다”면서 “매니저들 사이에서 우리의 일거리가 줄어들고 고용이 위협받는다는 불안감이 있다”고 전했다.

대거 채용이 고용불안 야기
‘특고’의 아이러니

방문점검 노동자들은 회사와 보통 1년 단위 위수탁계약을 맺고 일하는 특수고용형태근로자다. 특고라는 지위 때문에 방문점검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더욱 크다. 구조조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김순옥 가전통신노조 코웨이 코디코닥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최근 노동조합 자체 설문에서 조합원 80% 이상이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노동조합을 탈퇴하는 조합원의 탈퇴사유도 대부분 업무해약으로 인한 탈퇴였다”고 말했다.

김정원 지회장은 “매니저 업무위탁계약서상 계약해지 사유가 굉장히 다양하다. 고의가 아닌 업무상 실수더라도 손쉽게 계약해지 사유가 된다.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계약해지가 가능한 상황이 고용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전통신노조에 따르면 코웨이는 최근 지국 통폐합 등으로 팀장, 지국장 등 160여 명의 정규직을 명예퇴직하는 구조조정이 이뤄진 바 있다. 반면 ‘프리코디’, ‘셀프코디’ 등 아르바이트 개념의 방문점검 노동자는 대거 채용하고 있다. 김순옥 수석부지부장은 이러한 채용이 또 다른 방법의 ‘구조조정’이라고 지적했다.

“방문점검원인 코디·코닥들은 기본급 없이 일한 만큼의 건당 수수료를 받고 정해진 계정을 나눠서 처리해야 한다. 무분별한 코디 충원은 구조조정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최근 코웨이는 코로나19로 인해 방문을 꺼리고 직접관리를 원하는 고객의 요구에 맞춰 자가 관리 제품을 쏟아냈다. 점검 주기가 2~6개월로 긴 제품도 늘어났다. 그로 인해 올 상반기 점검계정 수가 줄었다. 그럼에도 프리코디, 셀프코디와 같은 제도를 만들어 코디를 대폭 충원하고, 판매망도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일정 수입이 보장되지 않아 스스로 업무해약을 하고 나가는 코디들이 늘어났다.”

노사 함께 ‘업계 규범’ 만들어야

정경은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연구원은 방문점검 노동자의 고용불안에 대해 “근본적으로 3~5년 주기로 교체되는 제품이 자가점검, 자가수리가 가능한 제품으로 전환되면서 방문점검원의 위기를 부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코로나19와 판매방식 변화 외에도 전자산업 기술변화가 더 근본적이라는 점에서 산업차원의 대응이 본격화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업차원에서 노사가 방문점검원의 위기를 함께 풀어가야 하지만 단체교섭은 더디다. 지난해 5월 코웨이지부가 노동조합 설립신고증을 받은 이후, 방문점검 노동자들의 노조법상 노동자성은 인정되는 추세지만, 사용자들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인해 정작 교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김정원 지회장은 “렌털제품 방문점검 노동자는 특수고용이 당연하고 소모품처럼 써도 된다는 생각이 만연하다”면서 “노동조합이 설립된 렌털회사들은 공통적으로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본부 본부장은 “수수료 명세서 공개, 수당 되물림 문제, 산업안전과 관련 조치, 영업실적 압박 등 방문점검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 최소한의 조건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생활가전업체들과 노동조합이 규범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플랫폼 배달 종사자 협약,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치대책위 중심의 활동도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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