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우리는 오해를 넘어 이해할 수 있을까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우리는 오해를 넘어 이해할 수 있을까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7.15 00:00
  • 수정 2020.07.15 0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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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의사소통의 본질은 오해다.”

끝나지 않는 말싸움을 할 때가 있습니다. 지치고 소모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종종 저는 이 말을 쓰곤 합니다. ‘대화를 계속 진행해봤자 이해에 도달하기는커녕 오해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대화하기 싫다’는 의사를 간접적로 내비칠 수 있습니다. 지금 대화를 계속 해봤자 백해무익하다는 의중이 잘 전달되기를 바라면서요.

본래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깡(Jacques Lacan)의 말인데 그가 이 말을 한 맥락과는 완전 다른 용도로 쓰곤 합니다. 의도와 맥락을 무시하고 대화를 어떻게든 끝내기 위해서 제 편한 방식대로 뚝 떼어낸 거죠. 이 말을 자주 쓰다보니 ‘대화’ 자체에 대한 기대치가 점점 낮아졌습니다. 약간의 논쟁이나 불협화음조차도 ‘이해의 과정’이 아닌 ‘오해의 징후’로 읽혔던 것입니다.

한국 사회의 ‘사회적 대화’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듯합니다. 다양한 수준의 사회적 대화 중에서도 특히 중앙단위 법정 사회적 대화기구는 시작과 동시에 ‘반쪽짜리’라는 오명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대화 상대가 아니라고 여기곤 했던 노사정 주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습니다. 바로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 즉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지난 5월 세간의 기대와 우려 속에 시작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안타깝게도 ‘우려’한 대로 결말이 났습니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제안하며 대화의 장을 열었던 민주노총이 내부 조직적 문제를 결국 극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합의문 협약식은 끝내 열리지 못했습니다.

정말 의사소통의 본질은 오해일 뿐일까요? “의사소통의 본질은 오해”라는 말에는 속뜻이 숨어 있습니다. 진정한 이해의 단계에 접어들기 위해서는 오해를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비록 불발로 끝났지만 우리는 실패에서 교훈을 구해야 합니다. 궁극적인 실패란 대화를 통한 변화의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커버스토리에서는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의 시작과 끝을 되짚어봤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사회적 대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전망해봤습니다. 오늘의 실패는 내일의 불가능성을 뜻하지 않습니다. 조만간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대화가 활발해지는 날을 상상하고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