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시대, ‘사회적 대화’는 백신일까
불확실성의 시대, ‘사회적 대화’는 백신일까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0.07.15 00:00
  • 수정 2020.07.23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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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번먼트(government)에서 거버넌스(governance)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다층적 ‘대화’가 필요하다

커버스토리 ➎ 향후 ‘사회적 대화’는 어떻게?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A to Z

코로나19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시작했다. 썩 사이가 좋지 못한 한국 사회 노사정은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화 테이블에 두런두런 둘러 모였다. IMF 노사정 대화 이후 22년 만이었다.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으며 시작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안타깝게도 ‘결렬’로 끝이 났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 무용론’이 고개를 들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다시 ‘사회적 대화’의 맥을 이을 것인지 복기해야 한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의 A부터 Z까지 다시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 서로 사랑하는 한 마음 되자”

코리아나, <손에 손 잡고> 중 (1988년 서울올림픽 주제가)

기원전 776년 전후 그리스는 전쟁과 감염병으로 인한 위기를 맞이했다. 아테네의 왕은 위기를 막기 위한 묘책으로 스파르타와의 휴전 협상을 위해 올림피아제전을 열자고 제안한다. 기존 8년마다 신을 모시기 위해 여는 올림피아제전은 그때부터 4년 주기로 바뀌었다.

1988년, 서울에서는 세계평화를 위한 올림픽이 개최됐다. 그 당시의 서울올림픽 개최가 주는 의미는 87년 사회변혁의 중점을 지나 ‘우리 모두 한번 잘 살아보자’는 외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 위기는 IMF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이 위기가 언제 종식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손에 손 잡고 위기라는 이 벽을 넘어’설 수 있도록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가야만 한다.

경사노위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

각 경제·사회 주체들의 사회적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구성된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는 기존 노사정위원회의 틀을 깨고 2018년 새롭게 출범했다. 정부의 주도성이 도드라졌던 과거 노사정위원회의 틀을 벗어던지고,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 등을 지향하는 체제로 구축됐다. 현재 경사노위는 다양화된 노동환경 변화에 발맞춰 의제별·업종별 위원회를 발족하고 연구회·간담회 등을 주기적으로 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노사정 간의 사회적 대화는 경사노위를 통하지 않고 있다. 제1노총의 지위를 확보한 민주노총은 기존의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에서의 사회적 대화를 거부하고, 총리실에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고, 총리실이 이를 수용해 5월 20일 첫 회의를 가졌다. 3월 5일 경사노위에서 ‘코로나19 위기 극복 위한 노사정 합의 선언’이 있었지만 민주노총은 빠져 있었다.

그리고 2017년 12월, 새롭게 출범한 김명환 민주노총 집행부는 문재인 정부 출범에 따라 변화된 정치적 지형 속에서 민주노총의 목표이기도 한 사회개혁 추진을 위해 ‘사회적 대화 참여’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후 민주노총은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해 기존 노사정위를 경사노위로 재편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는 대의원대회의 결의를 필요로 하는 사항이었고, 김명환 집행부가 끝내 대의원대회의 벽을 넘어서지 못함으로써 경사노위 참여는 무산되고 말았다.

한편 6월 2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이후 합의 이행 점검에 대해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제안할 때 여기서는 시급한 사안만 다루자고 했기 때문에 큰 합의를 이루고 나서는 다시 정상으로 복귀해야 한다”며 “경사노위를 무력화하고 다른 대화채널을 만드는 것은 신의에 어긋난다”고 밝힌 바 있다.

사회적 ‘대화’는 사회적 ‘합의’와 달리 연속성 갖고 논의를 이어가야 하는 속성을 지닌다. 그렇다면 한시적으로 발생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의 후속 논의를 위해서는 기존 준비된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로 복귀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원장은 “경사노위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사회적 대화를 위해 만든 법정 기구다. 인력·예산·공간 등이 마련된, 현 시스템을 최적화시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경사노위”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노정협의체’를 지향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경사노위로 후속 논의를 이관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민주노총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민주노총의 요구’에서 사회적 논의 확대에 대해 “코로나19 위기를 초기업 산별 노사관계 중심의 민주적 노정, 노사관계 확대라는 우리 사회의 기본 과제 중 하나를 앞당겨 실현하는 계기로 자리매김”이라 제시했을 뿐, 경사노위 참여에 대해 언급하진 않았다.

민주노총이 후속 논의에 대한 선택지로 삼고 있는 ‘노정협의체’는 기존 경제·사회 주체인 경영계의 의견을 배제하면서 노동계가 요구하는 최선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노정협의체는 민주주의 체제의 구성원인 경영계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정당성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정부에 의존적인 협의체 특성상 5년마다 바뀌는 정부의 정책 기조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자명하다.

비대해지는 정부, 경제·사회 주체인 노와 사는?

20세기 경제학자인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는 그의 저서 <불확실성의 시대>를 펴내며, 현대의 특성을 ‘불확실성’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세계경제포럼인 다보스포럼은 AI(인공지능)·IoT(사물인터넷)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며, 예측이 어렵고 빠르게 변화하는 현 상황에 구체적으로 대응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산업 변화 외에도 이번 팬데믹 국면은 또 다른 ‘불확실성’을 보여줬다.

코로나19로 인해 각국 정부의 힘은 실로 비대해졌다. 대공황, 스페인 독감 때와 비슷한 양상이다. 각국 정부는 감염병 통제의 명목으로 국가 구성원의 자유를 제한할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 타파를 위한 경기부양책으로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예로, 첨단 기술을 활용한 방역체계로부터 비롯된 개인의 사생활 노출과 추경예산안을 통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통해 긴급 상황에서의 일시적 대응이라는 이면에 서서 국가 권위의 비대화로부터 이어지는 권위주의의 도래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거번먼트(government) 체제로 갈 것인지 거버넌스(governance) 체제로 갈 것인지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두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통치’라는 데서 공통점을 가지나, 거번먼트의 경우 특정·소수집단으로부터 비롯된 ‘강제력’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협치’라는 수평적 의사결정구조의 의미를 갖는 거버넌스와 차이가 있다.

이로 미뤄봤을 때, 정부 권위의 비대화는 경제·산업의 두 주체인 ‘노’와 ‘사’의 주체성 위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구성원의 주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참여’가 필요하며, 그렇기에 노·사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사회적 대화’는 더욱 중요하다.

이정식 전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은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가 오히려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노동계와 경영계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모든 걸 해결하는 모습으로 한국 사회 노사관계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여전한’ 합의를 할 것이냐, ‘역전한’ 대화를 할 것이냐

과거 ‘사회적 대화’로 불렸던 노사정 협의는 과정보다 결론 도출을 우선시하는 ‘합의’의 관점에 치우쳐 있었다. 이해당사자들의 주문이 아닌 정부의 주문에 맞추는 주객전도(主客顚倒)의 문제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입법과정에서 보인 정부의 일방적 태도로 인해 ‘사회적 대화’의 본 의미는 그 취지가 무색해졌다. 이는 정부가 참여 주체를 바라보는 관점이 시혜적이라는 점과, 사회의 유기적 특성을 고려치 못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정식 전 총장은 “‘대화’란 일상적으로 하는 것이다. 합의란 일상적 대화를 기반으로 위기의식과 정보 등을 공유하다가 서로의 의견이 일치했을 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정식 전 총장은 이어 “정책은 영향 받는 당사자인 국민, 노동자, 기업 등의 의견을 듣고 시행하는 것이 부작용을 줄일 수 있고, 효과를 높일 수 있다”며 “(사회적 대화의 틀 속에서) 경제·산업의 주체이자 파트너인 노와 사를 위한 정부의 역할은 장소, 정보, 제도적 장치 등의 준비를 통해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국가 코포라티즘적 관점에서 완전히 벗어나, 이해당사자들 중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발적 참여를 통해 책임감을 갖고, 투명하게 의사결정을 수행토록 성숙한 문화를 적립해 나가야만 한다는 뜻이다. 이는 곧 민주주의의 실현이기도 하다.

이남신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은 지난 5월 26일 열린 코로나19 긴급토론회에서 “코로나 위기 대응이란 공동 목적으로 극적으로 성사된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이견 갈등과 이해 충돌이 있더라도 상호신뢰에 기반한 공동의 책임을 끝까지 붙들고 놓지 말아야 한다. 현 시기 사회적 대화 실패는 공동의 실패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코로나19는 무한 성장주의를 기반으로 내달리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허점을 여과 없이 보여줬고, 이는 기존 선형경제 패러다임 변화 등에 해당하는 사회대변화의 필요성을 실감나게 했다. 예측 불가능한 위기 해소를 위해 사회 갈등을 축소하고 빠른 협의를 통한 공동체적 대응이 시급한 시점에서, 지속적인 ‘사회적 대화’는 효과적인 예방책이 될 수 있다.

사회적 대화, ‘탈중앙화’ ‘지역거점’으로 나아가야

‘더 이상 고도성장은 이어질 수 없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 말은 우리 사회가 팽창사회에서 수축사회로의 전환을 맞이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수축사회로의 전환은 저성장·마이너스 성장·고용 없는 성장 등에서 비롯된 세대·계층·계급 간 갈등 심화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이정식 전 총장은 “다른 나라가 200년 걸린 성장을 30~40년 만에 하려다보니, 구조적 문제부터 시작해 세대적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압축된 갈등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며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이러한 측면을 가속화 시켰다”고 말했다.

현재의 심각성을 인지한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 대표자들이 모여 당락을 결정하던 과거와 달리, 경사노위 산하 의제별·업종별 위원회를 발족하고 대화의 층위를 지역으로 넓히기 위한 규범을 세우는 등 중층화 전략을 택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추진에 있어 지지부진하다고 평가한다. 경사노위와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어떻게 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안도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며, 지역 대화기구의 운영 또한 미진한 곳이 많다.

위기는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위기의 피해가 모두에게 동등한 것은 아니다. 위기는 4대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비정규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먼저 습격한다. 현 시점에 ‘사회안전망’ 강화와 ‘사회공헌기금’ 구성 등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인프라 구축 방안이 제시되는 이유다. 실물경제의 큰 비중을 담당하는 이들의 피해는 국가 경제의 위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새로운 시대를 보여주며, 그에 따른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을 각인시켰다. 이정식 전 총장은 “앞으로 사회 흐름의 변화는 중앙 집중의 측면에서 분산·분권·다양화·창의 등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노동시장도, 노사관계도, 사회적 대화도 과거의 관행과 관습을 벗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세부적이고 다양화된 층위에서 논의되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