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화의 ‘반복되는 결말’, 언제쯤 바뀔 수 있을까?
사회적 대화의 ‘반복되는 결말’, 언제쯤 바뀔 수 있을까?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7.15 00:00
  • 수정 2020.07.16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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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결국 ‘무산’ … 이번에도 ‘반쪽짜리’ 사회적 대화
민주노총, 내부 반발 못 넘어 … ‘성공적’ 사회적 대화 경험은 다음으로

커버스토리 ➍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무엇을 남겼나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A to Z

코로나19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시작했다. 썩 사이가 좋지 못한 한국 사회 노사정은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화 테이블에 두런두런 둘러 모였다. IMF 노사정 대화 이후 22년 만이었다.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으며 시작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안타깝게도 ‘결렬’로 끝이 났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 무용론’이 고개를 들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다시 ‘사회적 대화’의 맥을 이을 것인지 복기해야 한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의 A부터 Z까지 다시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숨 가쁜 날들이었다. 민주노총이 4월 17일 제안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한국노총이 5월 11일 수락했다. 이후 5월 20일 총리실 주관으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열렸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노사정은 쉴 틈 없이 물밑 회의를 이어갔다. 대화 중간 중간 각 주체는 서로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날 선 대립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6월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노사정은 마침내 공동 잠정합의문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7월 1일 10시 30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 협약식만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어김없이 마지막에 발생했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던 민주노총이 정작 내부 반발에 부딪혀 협약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반대하는 조합원들과 취재 경쟁에 몰입한 기자들에게 꼼짝없이 6시간 동안 둘러싸였다. 정동에서 삼청동으로 가는 길이 막힌 것이다. 1999년 이후 반쪽이 돼버린 사회적 대화기구의 복원은 20여 년이 지난 현재도 쉽지 않았다.

6월 30일 민주노총 앞 노사정 합의를 반대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의외의 6월 말 합의 성공
그러나 기쁨은 순간

“잘 됐으면 좋겠지만……. 잘 되겠어요?”

기대는 컸다. 하지만 누구도 낙관하지 않았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바라보면 주변의 시선이었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기한을 특정하지 않았다. ‘최대한 이른 시일’ 내 합의하도록 하자는 다소 헐거운 말만이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묶어줬다.

예상과 다르지 않게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순탄치 않았다. 5월 20일 상견례로 시작한 이후 협의 과정 곳곳에서 주체 간 갈등이 드러났다. 26일 요구안 발표부터 노사는 삐걱거렸다. 경영계는 해당 날짜를 지키지 않고 다음 날 30개 경제단체의 목소리를 빌려 요구안 제출을 대신했다. 또한 최저임금 문제를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테이블로 가져오려는 경영계의 움직임에 노동계는 강하게 반대하기도 했다.

갈등이 곳곳에서 표출되는 와중인 6월 17일 한국노총은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의 잠정적인 기한을 ‘6월 말’까지로 선언했다. 이후 성공 가능성을 낮춰 보는 전망이 더욱더 많아졌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했다. 28~29일 집중 협의를 거쳐 노사정이 잠정합의안에 도달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어 한국노총이 30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합의문 원안 수용’을 결정하자 성공에 대한 기대감은 커졌다.

열쇠는 민주노총이 쥐고 있었다. 강한 내부 반발이 예상됐지만, 김명환 집행부가 출범부터 ‘사회적 대화’를 표방해왔기 때문에 ‘대승적 결단’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부의 벽은 높았다. 7월 1일 10시 30분으로 예정된 협약식 10분 전,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의 참여가 어렵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버스는 지나갔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끝

7월 2일 현재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반대하는 조합원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김명환 위원장은 2일 오후 5시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임시대의원대회’ 소집 건을 다뤘다. 김명환 위원장은 1일 “빠른 시일 내에 임시대의원대회를 소집하여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정부 또한 민주노총 내의 의사결정이 다소 늦어진다고 해도 기다릴 수 있다는 눈치다. 민주노총이 노사정 합의에 참여한 때가 22년 전인 만큼, 민주노총의 참여를 통해 최선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들은 민주노총의 결정이 뒤집히기 어렵다고 본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원장은 “모든 가능성이야 열어놔야겠지만, 민주노총 내부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다른 특별한 변수 없이 입장을 번복하기는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예측했다.

이어 “현재 집행부가 사회적 대화에 반대하는 조합원들을 얼마나 설득해서 마음을 바꾸게 할 거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을 보면 만만치 않은 문제”라고 짚었다.

이정식 전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도 “상황이 반전될 수는 없을 것 같다”면서, “서로 각자 입장을 정리한 것 같다. 민주노총에서 해보겠다고 하는데 갈수록 태산인 것 같다”고 밝혔다.

실제로 7월 2일 오후 5시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진행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김명환 위원장은 다수 중앙집행위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7월 20일 임시대대를 소집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사회적 대화를 반대하는 중앙집행위원들은 “대다수 언론은 민주노총이 22년 만에 어렵게 만들어진 합의를 발로 차버렸다고 비난하나 우리 중집 성원들은 ‘잠정합의안’이 가장 취약한 비정규 노동자를 보호하고, 힘겹게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려는 전체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확신한다”면서, “위원장의 소신은 결코 민주노총을 뛰어넘을 수 없다. 김명환 위원장과 주요 지도부는 재벌과 자본의 책임이 빠진 노사정 잠정합의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코로나19는 위기이자
기회이기도 했다

평소 ‘사대주의자’(사회적대화주의자)를 자임하던 이정식 전 총장은 특히 이번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의 결말을 아쉬워했다.

이정식 전 총장은 “한국노총도 의사결정과정을 다 거쳤다. 주체들의 역할은 알아서 미리 했어야 했다”면서, “민주노총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그 정도로 여유롭지 않았다. 각자 스스로 해야 할 몫이 있는 것이다. 좋은 기회였다”고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이어 “이러한 실패의 경험이 쌓이면 갈수록 어려워진다. 어렵지만 한 발짝이라도 진전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면서, “이러한 경험이 누적되면 정말로 다음에는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이나 신뢰가 떨어질 수도 있다”고 이번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의 결과를 복기했다.

박지순 원장은 이번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이후 코로나19 위기가 극심해지는 국면에서 민주노총이 처할 어려움을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기간산업의 구조조정이 일촉즉발인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가용할 수 있는 대응 수단이 ‘투쟁’으로 좁혀진다는 것이다.

박지순 원장은 “민주노총 내에서 정세를 보는 시각차가 큰 것 같다. 현장에서는 기간산업 구조조정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해고금지 약속을 받지 않으면 사실상 모든 게 무의미하다고 보는 것”이라면서, “반면, 집행부 입장에서는 사회적 대화의 끈을 유지해야 설득력 있게 정부와 경영계에 대응할 수 있다는 생각일 것이다. 그게 아니면 투쟁밖에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코로나19 사태로 투쟁 역시 쉽지 않다고 박지순 원장은 지적한다. “서울시가 7월 4일 민주노총의 집회도 금지한 상황이다. 팬데믹(Pandemic) 현상이 완화되지 않으면 투쟁도 지금으로서는 마땅치 않을 수 있다”면서, “사회적 대화를 배제하고 가기에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현 집행부로서는 사회적 대화의 틀을 계속 유지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이번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합의가 무산되면서 그 의의가 퇴색했다고 지적했다.

박용철 부소장은 “사용자나 노조나 정부에서 합의 없이도 이행하는 게 있다. 그러나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합의에서는 기존에 이행하던 사항을 확대하거나 새로운 점이 포함됐다”면서, “합의 사항조차 권고에 그치는 것이다. 합의해도 이행이 쉽지 않은데 합의가 안 된 상태에서 자발적인 참여를 바라기는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반복되는 결말
사회적 대화의 의미는?

이번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최종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 자체에 의미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화는 ‘과정’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의 이후 내부 조정 실패에 따른 퇴색’이라는 과정은 지난 한국 사회에서 진행된 ‘사회적 대화’에서 볼 수 있었던 ‘뻔한 결말’이다. 실패의 역사가 반복된 셈이다. 그러한 반복 속에서 사회적 대화 자체의 의의도 점점 옅어지고 있다.

박용철 부소장은 “과정을 거쳤다고 무조건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고 본다”면서, “대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내부적인 갈등만 더 키웠다는 점에서 오히려 퇴보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타깝고 답답하다. 위원장이 주도했지만, 조직에서 거부해 좌절시킨 점에서 그동안 보여줬던 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이번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민주노총이 주도해서 뭔가를 시도해보려고 했고 합의 직전까지 갔다’ 정도의 제한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정식 전 총장은 이번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합의 실패가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보여줬다고 진단했다. “그 나라의 민주주의 역량에 걸맞은 사회적 대화를 하는 것이다. 꼭 민주노총 탓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적 대화’가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민주노총에서 풀어야 할 숙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정식 전 총장은 “합의의 내용 면에서는 양대 노총은 물론 노사정 각각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그러나 위원장의 공약이 사회적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었고,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도 먼저 제안을 했으면 위원장이 책임질 수 있다. 조직 내부의 이견을 조정하는 것은 민주노총이 풀어야 할 숙제”라고 지적했다.

박지순 원장은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의 경험이 너무나 오래됐기 때문에 이번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노동계를 아우르는 차원에서 진행된 점에서는 분명히 큰 의의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면서, “그러나 여전히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의 기본 룰을 지키는 데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이제는 부탁하고 요청하는 차원이 아니라 민주노총도 사회적 대화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대화의 성공은 또다시 다음으로 미뤄지게 됐다. 하지만 이번에 실패했다고 사회적 대화가 불필요한 건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고 그 속에서 이해관계의 충돌이 빈번해지는 만큼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은 점점 커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각 주체들은 이 같은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이번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의 과정은 각 주체들에게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 질문을 던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