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어떻게 할 것인가?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10.13 16:57
  • 수정 2020.10.13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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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합의 무산 이후 ‘사회적 대화’ 필요성에는 공감대 형성
​​​​​​​내부 소통의 문제 … 민주노총, 사회적 대화 어떻게 할 것인가?
공공기관 노정교섭 촉진을 위한 현장대표자 모임(이하 노정교섭촉진모임)이 10월 13일 오전 10시 서울시 여의도 국민건강보험공단 대회의실에서 개최한 ‘공공기관 노정교섭과 사회적 대화 기획 토론회’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버스 떠남’ / ‘고립된 섬’ / ‘밥상 걷어차는 민주노총’

위 문구들은 지난 7월 23일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합의가 무산된 이후 민주노총에 쏟아진 언론의 평가다. 하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단정'하는 평가는 내부로부터 변화하려고 하는 시도를 보지 못한다. 합의 무산 이후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가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열렸다.

공공기관 노정교섭 촉진을 위한 현장대표자 모임(이하 노정교섭촉진모임)은 10월 12~13일 서울 여의도 국민건강보험공단 대회의실에서 ‘공공기관 노정교섭과 사회적 대화 기획 토론회’를 가졌다.

노정교섭촉진모임은 국가철도공단노조, 국민건강보험공단노조 등 13개 공공기관 노조 대표자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지난 7월 23일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합의문 추인을 결정하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찬성 입장을 밝혔고, 합의안 무산을 계기로 노정교섭촉진모임을 결성했다.

양일 간 이뤄진 토론회의 마지막 순서는 ‘민주노총에서 사회적 대화 추진 평가 및 이후 과제’였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이 좌장을 맡고, 한석호 전태일재단 기획실장(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민경민 금속노조 미조직전략 조직국장, 황병래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위원장,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전 민주노총 정책실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합의 무산 이후

당초 김명환 집행부는 2017년 사회적 대화 추진을 모토로 내걸고 당선됐다. 1999년 이후 불참으로 일관했던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다시 시작해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9년 1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참여 건이 부결되고, 2020년 2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도 별다른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코로나19 대유행에 발맞춰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시작됐다. 4월 17일 김명환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제안하고, 한국노총, 경영자총협회 등 노사정 각 주체들이 동의하면서 5월 20일 본격적인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시작됐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코로나19 위기극복 방안만을 논의하며, 기존 법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와는 별도로 총리실 산하에서 진행됐다.

토론에 나선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 이주호 정책연구원장은 김명환 집행부에서 민주노총 정책실장을 지냈으며 7월 24일 김명환 위원장 사퇴 때 함께 사퇴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노사정 주체들은 우여곡절 끝에 6월 29일 합의문 도출에 성공했으나, 정작 대화를 시작했던 민주노총 내에서 합의문 추인이 지연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김명환 민주노총 전 위원장은 7월 23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합의문 추인 여부를 물었지만 결국 부결됐다. 김명환 전 위원장은 이에 책임을 지고 7월 24일 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찬성입장과 반대입장 간 격론이 벌어졌다. 반대 측에는 공공운수노조, 금속노조 등이 있었고, 찬성 측에는 보건의료노조, 서비스연맹 등이 있었다.

"소통의 어려움으로
합의문 의의 제대로 해석 못 해"

현재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지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의 논의 과정을 평가하고 앞으로 사회적 대화의 방향성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합의문 부결의 원인으로 ‘내부적 소통이 되지 않았다’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다. 단 이를 ‘집행부의 소통 능력의 부족’으로 보는지 아니면 ‘민주노총 내 의견그룹의 대립’으로 보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민경민 금속노조 미조직전략실장은 1999년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대화기구 불참을 선언했음에도 어떻게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추진할 수 있었는지 배경을 짚었다.

민경민 실장은 ▲촛불혁명 이후 정부의 성격변화 ▲민주노총의 제1노총 지위 확보 ▲코로나19로 인한 미조직 노동자의 어려움 가중 ▲산업정책 개입이 필요한 단위 사업장 문제 증가 ▲초기업단위·산별 교섭의 주춧돌 기대 등으로 중앙집행위원회 단위에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추진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경민 실장은 “왜 집행부를 제외하고 다 반대를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면서, “내부 절차적 과정에서 지도·집행력의 문제가 있었다. 상집 체계와 중집 체계의 문제”라며 논의과정에서 집행부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반면, 황병래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노조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1998년 정리해고제 도입 합의의 트라우마를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석했다.

황병래 위원장은 “2005년과 2020년 2차례의 (사회적 대화) 참여 논의에서 전 조합원과 대중에게 이익이 되는지 토론이 상실된 채 정파의 정략적 결합이 공조직의 의사결정을 장악하는 조직적 한계를 드러냈다”면서, “사회적 대화 참여를 주장하면 의도적으로 운동에 문제가 있는 단위로 낙인을 찍고 교조적 입장이 조직 내에 만연하여 상황변화에 따른 능동적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전락됐다”고 비판했다.

한석호 전태일재단 기획실장은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보다 내부 대화가 더 어려운 조직”이라고 비판하면서도 “1차적인 책임은 집행부에게 있다”고 밝혔다. 7월 23일 합의문 추인 여부를 묻는 임시대의원대회가 열리기 이전 1주일 남짓한 여유기간에 조금 더 공세적으로 합의의 의의를 설명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경민 실장도 “대화냐 협의냐 교섭이냐, 세 가지 영역이 있다. 이를 규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교섭국면으로 빠졌다”면서, “교섭은 자기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 없이 합의문이 만들어졌다. 합의문의 의의를 충분히 해석하지 못하고 찬반으로 넘어가게 됐다”고 비판했다.

합의문은 충분했는가?

다만 한석호 기획실장은 합의문 자체에는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합의문 조항이 너무 과다했다는 것이다.

이번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논의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은 “임금과 고용과의 교환방식을 거부했다. 특별한 개악 내용은 없다”면서 “사회적 합의 수준에 대한 민주노총 내부적 수용 기준과 원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사회적 대화는 경우에 따라 립서비스에 그칠 때도, 혹은 실질적인 성과를 얻을 때도 있다”면서, “이번에는 코로나19로 주변 환경에서 기대하는 측면이 있었다. 또한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대해 민감한 상태다. 뭘 주고 뭘 받을 건인지 논의가 부재했고 실질적으로 손에 쥘 수 있는 것에 비중을 높였어야 했다”고 밝혔다.

한석호 전태일재단 기획실장(중간)이 토론 자료를 보고 있다. 한석호 기획실장은 한상균 집행부에서 사회연대위원장을 지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이제 고민은,
“사회적 대화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 의견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대화 자체의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했다. 한석호 기획위원은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전략적 단계에서 ‘사회적 대화를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의 전술적 단계에 접어들었다”면서, “향후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와 관련한 고민의 초점은 ‘언제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사회적 대화를 할 것인가’이다”라고 진단했다.

이주호 정책연구원장은 “근본적으로 현장의 기업별 노사관계와 중앙의 과잉 정파정치를 극복하면서 대중운동과 초기업 교섭이 활성화 되지 않는 한 전국단위 사회적 대화의 성공은 불가능하다고 본다”면서, “비대위 차원에서 ‘사회적 대화 평가 TF’ 구성을 통해 평가를 마무리하고 11월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공약중심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민주노총 조직적으로도 사회적 대화를 전담하는 부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공통으로 나왔다. 민경민 미조직전략실장은 “금속노조는 내부 평가를 통해 몇 가지 의미 있는 이야기를 했다. 사회적 대화·교섭의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이후 보완해야 하는 지점을 제기하고 있다”면서, “핵심은 교섭위원회 등을 설치해서 내부적으로 조합원과 소통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주호 정책연구원장은 “16개 산별이 참여하는 ‘교섭전략위원회’를 구성해 일상적 소통과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가장 근본적으로 1995년 민주노총 창립 당시 구호였던 ‘산별노조 건설’, ‘사회개혁투쟁’ 전면화를 다시 내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선 이사장도 그동안 ‘사회개혁투쟁’이 민주노총에서 잊혔다면서, “사회개혁투쟁위원회를 전면화 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대화를 당장 시작하기는 어려워도 상황별, 의제별로 교섭과 대화를 촉진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박태주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법적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의 중요성을 놓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태주 선임연구위원은 “지금의 경사노위 체제에서는 민주노총이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다. 체제 개편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경사노위는 중요한 조직”이라면서, “경사노위 바깥의 일상적인 사회적 대화는 굉장히 어려울 수 있다. 경사노위 바깥에서 제도를 뛰어넘는 사회적 대화를 하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경사노위를 배제한 사회적 대화도 답은 아니”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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