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떻게 사회적 대화에 자리하게 됐나?
그들은 어떻게 사회적 대화에 자리하게 됐나?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7.15 00:00
  • 수정 2020.07.15 07: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IMF 이후 22년 만에 제대로 가동되는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서로 다른 셈법과 생각으로 마주한 노사정 주체들의 속사정

커버스토리 ➋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노사정의 속사정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A to Z

코로나19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시작했다. 썩 사이가 좋지 못한 한국 사회 노사정은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화 테이블에 두런두런 둘러 모였다. IMF 노사정 대화 이후 22년 만이었다.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으며 시작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안타깝게도 ‘결렬’로 끝이 났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 무용론’이 고개를 들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다시 ‘사회적 대화’의 맥을 이을 것인지 복기해야 한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의 A부터 Z까지 다시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성공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대화는 누구의 목소리가 더 큰지 알아보는 시간으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이러한 대화는 대개 ‘네가 그렇게 잘 났어?!’, ‘넌 정말 구제 불능이구나!’라는 말로 끝난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사회적 대화가 보여준 모습이다.

한국 사회는 사회적 대화의 불모지다. 노사정 주체들이 대화를 해본 적도 별로 없을 뿐더러, 서로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더 많은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월 20일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시작됐다. 1998년 이후 22년 만에 노사정 여섯 주체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노사정 주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사실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사회, 노동의 위기가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그러나 한편으로 각각의 주체들이 사회적 대화에 나서기까지의 구체적인 셈법은 달랐다. 나름의 복잡한 속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비록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의 결과 합의에 다다르지 못했지만, 노사정 주체들이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기까지의 고민을 찬찬히 되짚어 보는 작업은 큰 의미가 있다.

한국산업노동학회가 개최한 5월 26일 ‘코로나 대응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위한 노동의 과제’ 토론회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한국산업노동학회가 개최한 5월 26일 ‘코로나 대응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위한 노동의 과제’ 토론회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코로나19, 노사정 공통의 위기’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대화’는 위기 때 이루어졌다. 1987년 이후 대립적인 관계를 이어오던 노사정은 IMF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아 대화의 필요성을 자각했다. 당시 노사정 주체들은 법정 사회적 대화기구가 없었음에도 IMF 극복을 위해 사회적 대화의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이번에도 유사하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의 정식 명칭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다. 한국은 코로나19 확산을 성공적으로 방지했다고 평가받는다. 바로 ‘K-방역’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세계 어느 국가도 제대로 가늠할 수 없는 상태다. 언제 끝날지도, 어떤 결말로 귀결될지 모르는 미증유의 위기 상태를 극복할 필요성에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시작됐다.

노동계, ‘총고용유지’의 속사정

이번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에서 양대 노총이 주장하는 바는 큰 틀에서 그다지 다르지 않다. 양대 노총은 가장 주요한 슬로건으로 ‘총고용유지’를 내걸었다.

코로나19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약한 고리부터 무너뜨렸다. 코로나19는 고용과 실업의 경계선에 있는 특수고용노동자와 간접고용 비정규직, 임시계약직 등 불안정 노동자부터 타격했다.

<코로나 위기와 4월 고용동향>에서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코로나 위기 첫 두 달 취업자 감소(-102만 명) 폭은, 글로벌 금융위기 6개월 취업자 감소(-25만 명) 폭은 물론, 외환위기 첫 두 달 취업자 감소(-92만 명) 폭을 넘어섰다”면서 “코로나 위기에 따른 일자리 상실은 여성, 고령자, 임시일용직, 개인서비스업과 사회서비스업, 단순노무직과 서비스직 등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앞으로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약한 고리로부터 시작한 고용위기는 노동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짙다. 실제로 코로나19 위기가 급격하게 불어 닥친 관광, 항공 등 업종에서는 정규직·조직 노동자조차도 ‘무급휴직’, ‘희망퇴직’, ‘구조조정’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대 노총이 내건 ‘총고용유지’라는 슬로건은 노조조직률 10% 남짓의 ‘조직 노동자’의 보호만을 뜻하지 않는다. ‘일하는 모든 노동자를 보호하자’는 의미가 크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은 “위기 상황에서 취약계층 노동자부터 무너지고 있다. 약한 고리인 것”이라면서, “위의 그룹이 아래를 도와주지 않으면 유지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같은 듯, 다른 듯 양대 노총의 속사정

양대 노총은 ‘일하는 모든 노동자의 보호’라는 대전제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어서 서로 차이를 보인다. 사회적 대화에 임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의미다. 한국노총은 전략적으로 사회적 대화기구에 참여와 불참을 반복해온 반면, 민주노총은 1999년 이후 줄곧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 불가론을 고수하고 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 안 한다던 민주노총이?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 1기와 2기에 참여하고 3기부터는 공식적으로 불참을 선언했다. 1999년 2월 24일 민주노총 대의원대대 결정사항이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사회적 대화가 수지 맞는 장사가 아니었다는 경험칙이 있다.

1998년 2월 6일 노사정 합의는 크게 정부가 사회안전망 강화 및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는 대신, 노동계는 노동유연성을 양보했다. ‘정리해고제’가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당시 노동유연화 조치는 속전속결로 이뤄진 데 반해 사회안전망 강화와 노동조합 활동 보장을 위한 조치는 국회에 상정되기도 어려웠다.

실제로 당시 크게 쟁점 사항도 아니었던 ‘실업자의 노동조합 가입’은 노사정위 1기 때는 국회의 반대로 무산되고, 노사정위 2기 때는 법무부가 제동을 걸었다. 이러한 경험은 민주노총으로 하여금 지난 4월 17일 기존의 법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아닌 ‘총리실이 주재하는’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요구하게 했다.

민주노총의 의결구조 상 법정 사회적 대화기구에 참여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기구 불참이 대의원대회에서 의결됐기 때문에, 이를 뒤집기 위해서는 역시 대의원대회 혹은 그보다 상위의 의결기구인 조합원 총회에서의 의결이 필요하다.

실제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재편이 완료된 시점에서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가 집중 조명을 받았다. 2019년 1월 28일 열린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 당시 민주노총 대의원들은 경사노위 참여여부를 두고 장장 9시간 격론을 거쳤으나 결국 1999년의 결정사항을 뒤집지 못했다.

더불어 민주노총은 노사정 3자 구도보다는 노정 2자 구도를 선호해왔다.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민주노총은 기존의 대화기구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항상 새로운 기구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했었는데 주장하는 건 노사정이 아닌 노정협의였다”면서, “이러한 원칙이 이번에도 표현된 듯하나 민주노총도 노정협의로는 이번 위기 극복이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원장은 “민주노총은 노정대화를 요구해왔다. 경사노위 바깥에서 정부와 접촉하고 있다”면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민주노총이 노정대화를 추구하려는 하나의 명분일 수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왜 한국노총은 경사노위 바깥에서?

한국노총은 기본적으로 법정 사회적 대화기구에 참여한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단, 사안에 따라 노동계의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국면에서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합의한 ‘9.15 대타협’을 파기하고 노사정위원회에서 탈퇴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국노총은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개시되기 이전인 3월 6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선언’을 발표했다. 이미 사회적 대화기구에 참여하고 있고,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방안에 일정부분의 합의에 이른 만큼 한국노총의 입장에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불필요한 중복’이었다.

이러한 한국노총이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기까지는 깊은 고민이 있었다. 4월 21일 총리실이 공식으로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가를 요청한 이후 한국노총은 20여 일 동안 답변을 미뤘다. 29일 한국노총은 중앙집행위에서 집행부에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참가 여부를 결정하도록 위임했다. 당시 회의에서 기존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가 존재한다는 점과 합의 이후의 이행 기구가 확실하지 않은 점 등 여러 측면을 검토했다. 그러던 5월 11일 마침내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참여를 결정했다.

유정엽 본부장은 “3월에 이미 경사노위에서 노사정선언을 했다. 그렇게 때문에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려면 경사노위라는 틀이 맞는다고 봤다. 총리실 산하의 법외조직으로 가는 게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면서, “그런데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고 여러 노·사·정·사회단체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합의가 필요하다고 계속적으로 요구했다. 그래서 한시적이라는 조건으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정식 전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은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사회적 대화를 하겠다고 하면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들어오면 된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을 때 한국노총 입장에서 마냥 거부하기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가 심각했다. 경제사회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하는 국민여론이 컸다”고 지적했다.

정부, K-방역 이어 ‘대세 굳히기’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민주노총의 제안으로 시작됐지만, 일각에서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주도성이 컸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4월 18일부터 20일까지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두루 만나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참여를 요청했다.

또한, 사회적 대화에 대한 청와대의 기대도 있었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참여 여부를 놓고 한국노총에서 고심하던 5월 초 문재인 대통령은 두 차례나 사회적 대화와 관련한 발언을 했다. “경사노위의 재정상화”와 “거대한 갈등 사회에서 사회적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등의 내용이었다.

박지순 원장은 “정세균 총리가 디딤돌을 놨다고 본다. 한국노총과 민주당은 정책연대를 맺었고, 더욱이 한국노총은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대화의 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민주노총이 제1노총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민주노총을 껴안지 않으면 노동계의 위기가 크게 심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정세균 총리가 민주노총을 대화에 끌어 오는 게 필요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정책의 정당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민주노총까지 참여하는 ‘온전한’ 사회적 대화를 기획했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정부는 4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한국판 뉴딜’을 언급한 이후 6월 1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이어 3일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을 발표하는 등 코로나19 위기가 경제위기로 번지는 걸 막기 위해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점에서 노사 대화주체를 ‘들러리’로 세우는 사회적 대화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미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을 정부가 모두 세워둔 상태에서 노동계와 재계의 동의만 구하려고 한다는 지적이다.

유정엽 본부장은 “정부는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본격화되기 전에 이미 3차 추경안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면서, “기획재정부가 만든 계획 이외의 대책들이 사회적 대화에서 추가적으로 나와야 하는데 어려운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재계, ‘굳이 사회적 대화를?’

한편 재계의 입장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감이 막중한 상황이다. 그러나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에는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각계의 요구안을 일괄적으로 제출하기로 한 5월 26일 실무협의에서 경제계는 별도의 요구안을 내지 않고 이튿날인 27일 ‘30개 경제단체협의회 요구안’ 형식으로 발표한 사실을 들 수 있다.

27일 발표된 재계의 요구안은 ▲규제완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연장 등 주52시간 보완 입법 ▲유동성 극복을 위한 정부지원 ▲세제 혜택 등으로 ‘노동유연성 강화’와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에 대해 박용철 부소장은 “한국은 법적으로 해고의 자유가 까다롭기는 하지만 그걸 외주화, 용역화로 우회적으로 극복해왔다. 실질적으로 한국의 고용유연성은 엄청나게 강하다”면서, “법조항만 보고 해고하기 어렵다고 주장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정부 통계로 비정규직이 33%를 차지한다. 채용과 해고가 정말 자유로운 미국도 비정규직 비율이 15%”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은 수량적 유연화라는 선택지 하나만 가지고 있다. 필요 없으면 잘라버리는 것”이라면서, “기능적 유연화라고 해서 유럽에서는 수당 줄이기, 노동시간 단축 등으로 일단 기본급이나 고용을 유지하는 노력을 한다. 해고를 최대한 안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한국은 희망퇴직부터 받는다. 여전히 수량적 유연화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사각지대 노동자의 문제나 경제구조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 재계가 아직까지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현재 재계가 크게 요구하지 않아도 정부가 ‘경제 살리기’ 정책을 계속 펴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양보해야 하는 사회적 대화에 굳이 열심히 하지 않아도 정부의 지원은 나온다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 동심동덕이 필요하지만…

코로나19는 22년 만에 노사정 주체들을 한 자리에 앉게 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다 같이 힘쓰고 노력하는 ‘동심동덕(同心同德)’의 자세가 필요한 시기다. 그러나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의 결말은 결국 합의 실패로 귀결됐다. 주체들의 구체적인 셈법과 속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사회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노사정 각각이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더라도, 결국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라는 하나의 미래를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바라는 미래의 상을 지속적으로 맞춰나가는 작업, 즉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