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모의 노동일기] 의사들의 실력행사,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손광모의 노동일기] 의사들의 실력행사,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9.02 20:02
  • 수정 2020.09.02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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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동을 글로 적습니다. 노동이 글이 되는 순간 노동자의 삶은 충만해진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노동도 글로 담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살고 싶습니다.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의사단체와 정부의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료 확충 정책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의사단체는 이를 믿지 않았다. '공공의료 정책의 철폐’를 문서로 남길 때까지 의사단체는 진료를 거부할 것을 명백히 밝혔다. 강 대 강 대치가 길어지는 사이 코로나19라는 공동의 파국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이러한 사태 와중에 용어와 관련해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있다. 바로 정부와 의사 각각이 ‘의사단체의 진료거부’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관련해서다.

의사단체는 진료거부를 ‘의사파업’이라고 규정했다. 반면 정부는 파업이라는 말 대신 ‘집단휴진’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언론에서는 파업과 집단휴진을 혼용하고 있지만, 정부의 판단을 따라 집단휴진이라는 말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의사단체의 진료거부에 대한 여론은 냉담하기 그지없다.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환자의 생명도 저버린다’는 것이 세간의 일반적 인식이다. 하지만 진료거부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용어에서만큼은 의사파업이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정부가 의사파업이 아닌 집단휴진이라는 말을 사용한 데에는 법적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파업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상 정당한 권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개괄적으로 ❶노동조합법상 노동자일 것 ❷노동조합이 주도한 파업일 것 ❸파업의 목적이 근로조건 유지 및 개선을 목적으로 할 것 ❹노동조합법이 정하는 적법한 절차를 거칠 것 등의 조건이 있다.

정부는 ❶봉직의사를 제외한 개원의는 자영업자지 노동자가 아니며 ❷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회를 노동조합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❸의사들의 진료거부의 목적이 근로조건 향상이 아니라 정부 정책을 규탄하는 점과 ❹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았기에 ‘파업’이라는 표현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보건복지부가 26일 대한의사협회를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한 것도 이와 연관된다. 의사들의 집단휴진이 '노동권의 행사'가 아닌 공정거래법상 ‘담합행위’라는 것이다.

의사단체도 이러한 정부의 판단에 일정부분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도 의사단체가 ‘파업’이라는 말을 고집하는 이유에는 ‘의사는 노동자’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주장한다.

김대하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연합뉴스의 기사에서 “이번 파업이 노동법에서 규정하는 파업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며 “의사 직역에 대한 정부 통제가 강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노동자인 의사들이 사실상 파업이라고 집단행동을 통해 정당한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라고 평가해주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파업은 노사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헌법이 보장한 권리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정책의 큰 방향을 결정하는 정부에 반발하여 ‘의사 노동자’들의 요구를 관철시킨다는 의미에서 ‘의사파업’이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 말만큼은 진정성이 있기를 바란다. 단순히 자신들의 '파업'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사가 아니라 진정으로 스스로를 노동자로 인식했기를 바란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이번 '파업'이 끝난 후에는 다시 의사라는 직업군을 '일반 노동자'와는 다른 집단으로 인식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어떤 말을 사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곧 프레임의 문제다. 정부가 사용하는 ‘집단휴진’이라는 말에는 의사라는 직업이 우리사회에서 ‘노동자’이기보다는 ‘기득권 계층’이라는 인식을 내포하고 이를 강화한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의사와 노동자라는 단어의 거리를 ‘집단휴진’이라는 말에서 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의사파업'이 정당한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노동자들도 때때로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의 1차 청년의사단체행동을 하루 앞둔 8월 13일 ‘코로나19 위기극복 보건의료노조 전국 공동행동’ 기자회견에서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병원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로서 전공의 파업에 반대하지 않는다. 전공의도 노동자이며, 권리 투쟁을 하기 위해서 파업에 나서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공의 파업의 내용과 관련해서 보건의료노조는 다른 입장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며, “불법의료(PA 간호사 문제)가 만연한 현실은 간호사뿐만 아니라 전공의들이 더 잘 알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의사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본다. 전공의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의사 노동자’들은 본인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파업이라는 실력행사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의사단체들은 파업을 진행함과 동시에 의료인력 부족으로 인한 전공의 과로문제, PA 간호사의 불법의료 문제, 지역 간 의료격차 등 산적한 의료현장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의견을 함께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명분 없는 파업은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