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노조 릴레이기고] ② 재해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 연구활동종사자
[대학원생노조 릴레이기고] ② 재해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 연구활동종사자
  • 참여와혁신
  • 승인 2020.10.20 10:40
  • 수정 2020.10.20 10: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래영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사무국장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지부장 신정욱, 이하 대학원생노조)가 지난 10월 6일부터 국회 앞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학원생이 국회 앞 농성을 해야 할 정도로 절박한 사정이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대학원생들이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2019년 12월 발생한 경북대실험실 폭발 사고였습니다. 학업 및 노동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임에도 피해 학생은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했습니다. 수억 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대학도, 사회보장제도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피해 학생과 가족들은 외줄을 타는 심정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피해사례들을 모아보니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피해 학생들 상당수가 조교, 학생연구원 등 학업과 노동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노동을 할수록 대학 또는 교수와의 종속성이 강해졌지만, 문제 발생 시 대응할 수 있는 방어수단은 전혀 없었습니다.

대학원생노조는 실험실 사고로부터 안전한 대학, 권력형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대학을 만드는 핵심 대안이 바로 학생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대학원생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비롯한 각종 대학공공성 확보를 위한 예산 근거를 만들기 위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역시 제정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법안 쟁취를 위해 농성을 지속하겠다는 대학원생노조, 그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릴레이 기고를 통해 듣습니다. 기고는 10월간 총 다섯 번 연재될 예정입니다.

ⓒ 대학원생노조 

 

안전으로부터 소외된 학생들

[김래영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사무국장]

작년 12월 경북대학교 화학관 1층 실험실에서 시료 폐액을 혼합 처리하던 중에 폭발이 일어났으며, 그로 인한 화재로 4명의 학생이 중경상을 입었다. 현장에서 연기를 들이마셔 치료를 받은 학생 1명을 포함하면 피해자는 5명이 된다. 이 사고로 한 학부생은 20% 전신화상, 한 대학원생은 89% 전신화상을 입었다.

화상은 그 범위가 넓고 심할수록 오랜 치료기간과 많은 치료비용이 든다. 심지어 치료 예후도 좋지 않은 편이다. 2015년 당시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분석한 연구실사고 통계 분석에 따르면, 연구실 사고의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상해 유형은 전체의 29%를 차지하는 화상이다. 대부분은 경미한 사고이나, 1년에 한 두 번꼴로 큰 사고가 일어난다고 한다.

2019년도 연구실 사고 현황 통계에서 통계대상인 전체 4,075개 기관 중 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8%, 338개이다. 그러나 연구실 사고 발생 140개 기관 중 62%, 87개가 대학이며, 전체 사고 건수 379건 중 81%인 308건이 대학에서 일어난 연구실 사고로 집계되었다. 즉, 거의 대부분의 사고가 대학 연구실에서 일어났다는 말이다.

대학 연구실의 연구활동종사자들은 대부분이 대학원생이다. 대학원생은 연구활동에 종사하는 기간이 짧은 편이다. 졸업하면 연구실을 떠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출연연 및 기업의 연구활동종사자들은 근속년수가 길며, 출연연 등에 소속된 학생은 그 비중이 적다. 반면에 대학 내 연구활동종사자들은 대학원생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렇기에 대학 내 연구소는 꾸준한 안전관리가 쉽지 않은 편에 속한다.

이렇게 연구실 사고 대부분이 대학에서 발생하는데도 연구활동에 종사하는 학생들은 안전의 사각지대에 있다. 일반적인 연구소는 사업장으로 인정받고 있어서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고, 연구소와 근로계약을 맺고 연구하는 연구자는 연구개발 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서 산업재해보상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학에서 연구활동에 종사하는 학생들은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도,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그들을 보호하는 제도는 연구실안전법에 따른 안전기준과 연구실안전법에서 가입을 의무화한 연구활동종사자 상해보험이라는 민간보험 뿐이다.

현행 연구활동종사자 상해보험에서 요양급여, 즉 치료비를 배상하는 한도는 최저 5천만 원이다. 대부분의 학교는 보험료 절약을 위해 최저한도로 가입한다. 이 보험의 특징은 의료실비보험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연구 중 발생한 경미한 부상의 경우에는 민간보험 특성상 치료비 청구가 쉽다. 그러나 요양급여 한도가 낮아서 치료비가 많이 드는 중상해의 경우에는 치료비 전부를 보장하지 못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화상 사례인데, 또 연구실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상해 유형이 화상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연구활동종사자 상해보험의 요양보험 한도를 1억 원으로 상향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으나, 이 경우 보험료 상승은 불가피하며, 경북대 사건처럼 치료비가 5억을 훌쩍 넘기는 경우 여전히 대책이 없다. 따라서 요양급여 상향의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경북대 사고 피해자들이 산재보험 적용을 받았다면 치료비가 얼마가 나오든 요양급여 범위 내에서 보장한도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산재보험은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기를 촉진하기 위하여 이에 필요한 보험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재해 예방과 근로자의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사회보험이기 때문에 건강보험처럼 요양급여로 지급가능한 치료대에만 제한이 있을 뿐, 보장한도액 제한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보험의 특성상 산재보험은 가입강제 즉,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은 산재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며, 기존에 가입하지 않았어도 산업재해로 인정되면 산재보험 적용 신청하여 산재보험 수혜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학내 연구실에서 연구활동에 종사하는 학생들의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면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 연구활동종사자의 근로자성에 대해서는 찬반이 거세다.

연구실은 사업장인가? 근로제공을 조건으로 지급받는 장학금 내지 금전은 임금인가? 학생 연구활동종사자가 학교 또는 교수에게 종속되어 지휘·감독을 받아가며 일하는가? 학교나 교수가 연구시간 및 연구장소를 지정하는가? 이 질문들에 모두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학생 연구활동종사자는 근로자에 해당하고, 당연히 사회보험의 수혜자가 되어야 한다. 출연연 소속 학생 연구활동종사자들은 이미 대다수가 근로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사회보험의 수혜를 받고 있다. 그런데 그들과 거의 같은 연구활동을 수행하는 대학 소속 학생 연구활동종사자들은 당장 근로자성부터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는 근로자가 아니더라도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하게 하는 특례조항들이 몇몇 있다. 이 특례조항에 학생 연구활동종사자가 추가된다면, 학생 연구활동종사자의 근로자성 인정여부 논쟁을 회피하고 산재보험 가입대상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학생 연구활동종사자의 산재보험 가입 특례와 관련해서는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여러 번 논의된 바 있었으나, 통과되지 못한 채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되었다. 그런데 경북대 폭발 사고 치료비 지급 논란이 가시화되면서, 학생 연구활동종사자의 산재보험 가입 특례 입법이 재점화되어 제21대 국회에서 다시 입법논의에 들어갔다.

이와 더불어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을 강조하는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도 조합원총회 의결로서 학생 연구활동종사자의 산재보험 가입 특례 입법 등 4대 입법 요구안을 내걸고 국회 정문 앞에서 농성장을 차리고 대국회 농성에 돌입했다.

안전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예방도 사후보장도 모두 중요하다. 학생 연구활동종사자들은 같은 일을 하는데 신분이 다르다는 이유로, 소속이 다르다는 이유로 마땅히 받아야 할 사회제도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제20대 국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제21대 국회에서는 대학 내 연구활동종사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학생 연구활동종사자들의 안전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