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노조 릴레이기고] ③ 대학원생이 마주하는 성차별과 성폭력
[대학원생노조 릴레이기고] ③ 대학원생이 마주하는 성차별과 성폭력
  • 참여와혁신
  • 승인 2020.10.23 18:25
  • 수정 2020.10.2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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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조합원 익명 기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지부장 신정욱, 이하 대학원생노조)가 지난 10월 6일부터 국회 앞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학원생이 국회 앞 농성을 해야 할 정도로 절박한 사정이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대학원생들이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2019년 12월 발생한 경북대실험실 폭발 사고였습니다. 학업 및 노동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임에도 피해 학생은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했습니다. 수억 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대학도 사회보장제도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피해 학생과 가족들은 외줄을 타는 심정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피해사례들을 모아보니 공통적인 사항이 있었습니다. 피해 학생들 상당수가 조교, 학생연구원 등 학업과 노동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노동을 할수록 대학 또는 교수와의 종속성이 강해졌지만, 문제 발생 시 대응할 수 있는 방어수단은 전혀 없었습니다.

대학원생노조는 실험실 사고로부터 안전한 대학, 권력형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대학을 만드는 핵심 대안이 바로 학생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대학원생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비롯한 각종 대학공공성 확보를 위한 예산 근거를 만들기 위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역시 제정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법안 쟁취를 위해 농성을 지속하겠다는 대학원생노조, 그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릴레이 기고를 통해 듣습니다. 기고는 10월간 총 다섯 번 연재될 예정입니다.

 

ⓒ 대학원생노조

 

증가한 여성 대학원생 비율, 그러나 제자리걸음인 성평등인식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조합원 익명 기고]

진리의 상아탑. 한국 사회에서 대학이라는 공간을 일컫는 단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단연 ‘상아탑’인데, 배움과 진리를 추구하고 지식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공간으로서의 학문공동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단어일 터다. 그러나 상아라는 단어가 가진 그 백색의 순수한 이미지와 고결함이라는 상징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대학의 벽이 상아로 되어 있다면, 그 견고함 뒤에는 오늘도 한숨과 고통으로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한국의 대학원생 수는 약 32만 명에 달하며, 그 중 남성이 49.4%, 여성이 50.6%이다. 한 해 대학원에 입학하는 여성의 수는 2000년에는 전체의 37.8%에 불과했으나 점점 증가하여 2017년 처음으로 전체 입학생의 절반을 넘어섰다. 여성의 사회참여율이 증가함에 따라 이러한 통계 수치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대학원에 입학하는 것에는 성공했다 하더라도 여성 대학원생들은 연구 생활에서 생각지 못한 난관에 부딪힐 수 있는데, 바로 일상생활 속에 만연한 성차별과 성폭력이다.

여성 대학원생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식이나 전문성을 폄하당하는 일이 빈번하다. 연구활동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개인사나 가정을 이유로 연구에서 배제당하고 강제로 학술활동을 중단하는 사례도 있다. 한 예로 대학원생 A씨는 석사학위 과정이 1년 남은 상태에서 혼인했다는 이유로 교수에 의해 일방적으로 업무에서 제외 당했다. 일방적인 조교 고용해지에 대해 고용노동부에 문의했으나, 4대 보험 미가입자로 노동자 인정이 되지 않아 해결 방도가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는 여성을 가정에 구속된 존재로 보는 구시대적인 성차별관념의 답습이다. 뿐만 아니라 대학원생이 임금을 대가로 지식을 생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여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른 사례로, 대학원생 B씨는 해외 학회 참가 중 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하여 연구실을 옮겨야 했다. 그러나 성희롱이 지속되었고 연구비에서 지급되어야 할 인건비와 출장비조차 교수로부터 지급받지 못하였다. 또한, 동료 대학원생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대학원생이 교수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교수가 학내 성폭력상담소에 신고 학생을 색출하려 한 사건도 있었다. 불이익과 사회적 배척을 염려하여 피해 사실을 드러내고 고통을 호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잘 보이지 않을 뿐, 속으로 분노와 아픔을 삼키며 속앓이하는 이들은 도처에 있다.

 

대안은 대학 내 인권센터 설치 및 대학원생 노동자성 인정과 지도교수의 무소불위적 권력 분산

연구실 내의 성차별과 성폭력, 그리고 그러한 문제점에 대해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은 어떻게 바꿔 나갈 수 있을까.

첫째로 대학 내 인권센터를 내실화해야 한다. 2018년 교육부 조사에 의하면 대학원과 4년제 대학 238개교 중 인권센터가 설치되어 있는 학교는 73%에 불과하다. 대학 내 성폭력 관련 기관 인력은 평균으로 계산하면 대학당 1명도 채 되지 않으며, 신고접수사건 이외에도 학생 고민상담과 성폭력 예방교육, 행정 업무 등을 겸임하고 있어 피해사건 전담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대학 내 성희롱, 성폭력 고충상담 담당자의 고용형태는 61%가 무기계약직, 비정규직이라 이들의 고용 불안정성이 학내 사안 처리에 대한 집중도와 완결성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모든 대학에 성희롱, 성폭력 문제해결을 위한 인권센터 설치를 의무화하고, 피해자에 대한 심리적 조력 및 법률지원에 전문성을 보유한 인력이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돼야 한다.

둘째로,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이 법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다. 대학원생은 연구 실적, 생계유지, 학비 마련 등을 이유로 학교에서 조교로 근무하거나 연구과제 참여 형태로 보수를 받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상 대학원생에게는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학원생이 노동자라는 사실이 인정된다면 근로기준법에 따른 계약으로 대학원생 조교 및 연구자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성희롱의 경우에도 직장 내 성희롱 문제로 법적 해결을 시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학원생이 동료 원생이나 교수에 의한 성희롱 또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호소하더라도 연구를 계속하고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가해 학생 또는 가해 교수와 같은 공간에서 계속 생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문제이다. 피해자는 조교 임용 여부나 장학금, 논문지도와 졸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피해를 입어도 호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교수 1인을 중심으로 모든 연구 활동이 운영되기 때문에 가해 교수가 징계를 받으면 다른 학생들의 연구 진행도 어려워진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조력과 지원을 받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외국에서는 다수의 교수가 논문 지도를 하게 하는 등 지도교수 1인의 영향을 분산할 수 있는 심사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학 제도의 혁신적 개편과 조직 내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

 

“그저 무사히 졸업하고 싶을 뿐” 성평등한 대학원을 위한 입법 촉구

현재 21대 국회에는 대학 내 구성원들이 성추행, 성폭력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개정법률안 의안이 상임위원회 심사 중이다. 그 중 하나는 인권센터 설치를 의무화하고 매년 인권실태 조사를 실시하도록 하는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둘째로는 학생이 피해자인 성희롱, 성폭력, 부당한 업무지시 사건에 대해서는 교직원을 기존의 최장 3개월에서 최장 12개월까지 정직 가능하도록 하고, 교원징계위원회에 학생을 포함할 수 있도록 하는 사립학교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교육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있다.

마찬가지로 성폭력, 성희롱 범죄의 징계에 대한 소청 심사 및 결정 시에는 피해자의 요구가 있을 시 피해자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는,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있다. 또한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대학 평가에 성폭력 예방교육 및 성폭력 예방 조치 여부를 반영하여 성폭력교육 이수 효과 제고를 도모한 개정안이다.

이러한 법률개정안이 성공적으로 반영되어 대학원생이 성폭력 및 성희롱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시작점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 진리의 상아탑이 진정으로 지식의 등대이자 명예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