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노조 릴레이기고] ⑤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과 대학원생 교육·노동 환경의 개선
[대학원생노조 릴레이기고] ⑤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과 대학원생 교육·노동 환경의 개선
  • 참여와혁신
  • 승인 2020.11.11 14:58
  • 수정 2020.11.1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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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광 대학원생노조 후원회원,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전 위원장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지부장 신정욱, 이하 대학원생노조)가 지난 10월 6일부터 국회 앞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학원생이 국회 앞 농성을 해야 할 정도로 절박한 사정이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대학원생들이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2019년 12월 발생한 경북대실험실 폭발 사고였습니다. 학업 및 노동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임에도 피해 학생은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했습니다. 수억 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대학도 사회보장제도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피해 학생과 가족들은 외줄을 타는 심정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피해사례들을 모아보니 공통적인 사항이 있었습니다. 피해 학생들 상당수가 조교, 학생연구원 등 학업과 노동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노동을 할수록 대학 또는 교수와의 종속성이 강해졌지만, 문제 발생 시 대응할 수 있는 방어수단은 전혀 없었습니다.

대학원생노조는 실험실 사고로부터 안전한 대학, 권력형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대학을 만드는 핵심 대안이 바로 학생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대학원생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비롯한 각종 대학공공성 확보를 위한 예산 근거를 만들기 위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역시 제정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법안 쟁취를 위해 농성을 지속하겠다는 대학원생노조, 그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릴레이 기고를 통해 듣습니다. 기고는 총 다섯 번 연재됩니다. 

임순광 대학원생노조 후원회원,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전 위원장 

 

미친 등록금의 나라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고교 졸업 직후의 대학 진학생과 재수생을 합할 경우 90%를 넘긴다. 2020년을 기준으로 할 때 고교 졸업생은 약 50만 명인데 비해 대학 입학생은 약 55만 명에 달한다. 대학 중 사립대학은 88%다. 유럽의 다수 국가와 호주 등은 80~90% 이상의 대학들이 국·공립대학이고 미국 또한 70%의 대학이 국·공립대학이다.

정부의 고등교육 투자가 미진한 탓에 우리나라의 국민소득 대비 대학 등록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되어버렸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등록금 부담의 고통을 전가 받고 있다. 더욱이 대학서열체제 때문에 수도권으로의 대학생과 대학원생 집중 현상이 두드러져 많은 지역 출신의 학생들이 등록금뿐 아니라 주거비와 생활비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무책임한 대학, 정부, 국회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이 극심해질 동안 대학들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 대학들은 2009년 학부생 등록금이 동결되자 초기에 대학원생의 수를 늘리고 등록금을 올렸다. 강사를 줄이고 개설 강좌 수를 축소하는 형태로 비용을 절감했다. 부동산이나 주식 투기를 일삼고 일부 대학들은 적립금 쌓기에 치중했다. 그러면서 정작 OECD 회원국가 중 교수 1인당 학생 수로 표현되는 교원확보율은 최하위 수준에 머물렀다. 대부분의 대학이 국제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국내 법정기준 교원확보율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콩나물 교실과 위험노동도 일상화 되었다.

대학들은 재정 확보를 위해 연구프로젝트 수주에 혈안이 되었다. 국가에서 투입되는 연구개발과제의 규모는 1년에 5조 원쯤 되고 기업과제를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지는데 이는 경쟁 입찰이라서 안전이나 교육에 대한 투자보다는 연구실적 쌓기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비극의 한 토막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지식공장처럼 움직이는 실험실에서의 대학원생 노동은 산재 적용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착취되어 대학원생 상당수가 실험실 위험노동을 강요당하거나 각종 조교 노동 수행으로 제대로 공부하기 힘든 상태에 내몰리게 되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볼 때, 교육부는 대학을 ‘평가’함으로써 관료들의 입맛에 맞게 대학을 더욱 기형적으로 변화시켰다. 대학의 사회적 편익에 대한 고려는 배제된 채 일부 관료들의 행정 권력에 대학들이 막춤을 추고 있다.

잠시 눈을 돌려 해외를 보면 프랑스나 독일 등 많은 유럽의 나라들은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강조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의 특징은 등록금이 거의 없거나 매우 싸거나 학생들에게 연구노동에 대한 보수까지 지급하고 있다. 이는 고등교육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초·중등교육과정을 봐도 비슷한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통해 매년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예산으로 확보해 안정적으로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고등학교까지의 무상교육이 가능한 이유이다. 그런데 왜 고등교육은 안 되는가. 이 점에 대해 국회에서 잠시 관심을 가진 때도 있었다.

2004년에 박찬석 의원 등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후에도 김우남 의원(2009), 임해규 의원(2009), 권영길 의원(2011) 등이 각각 관련 법안을 대표발의 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한명숙 의원 외 126명의 국회의원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을 발의했다. 그 후에도 정진후 의원(2012), 정우택 의원(2013), 서영교 의원(2016), 윤소하 의원(2017), 안민석 의원(2017) 등이 각각 대표발의 했다. 문제는 이들 법안들이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한 채 의원들의 임기만료로 자동폐기 되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OECD 국가 평균 수준의 고등교육재정 확보를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고 있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의 필요성

2020년 11월 7일 개최된 ‘대학 무상화-대학 평준화 추진 본부’ 출범식에서 발표된 임재홍 교수의 글(2020)에 따르면, 모든 사람에게 교육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보편적인 의무·무상교육을 국가가 실시해야 한다는 근대시민혁명의 사고로부터 공교육이 출발하기 때문에 공적 관리와 공적 책임이 공교육의 핵심적 내용이다. 공교육 사상은 우리나라 헌법과 교육법에도 반영되어 초등교육과 중등교육 중 중학교 교육까지는 의무·무상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그리고 곧 고교무상교육이 실시된다. 문제는 고등교육이다.

우리 법체계는 고등교육 역시 공공성이 인정되는 공교육임을 인정하고 있다. 헌법 제31조에는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헌법상의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근거해서 제정된 「교육기본법」은 제2조에서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초·중등교육뿐 아니라 고등교육을 거쳐 심지어 사회교육에까지 적용된다.

우리가 구축한 교육체계가 진정한 공교육이라면 공교육의 효과는 사적 효과(개인적 편익)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되고 사유재로만 취급되어서도 안 된다. 오히려 개인에 대한 교육을 통해 사회가 얻는 사회적 편익인 공적 효과가 강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등교육은 지식의 생산과 보급을 통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발전에 기여하고, 민주주의의 유지와 발전(정치), 경제적인 부의 창출(경제), 인권보장과 범죄의 감소(사회), 인간적인 공동체의 유지(문화) 등 여러 면에서 사회적 편익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적 효과를 높이려면 고등교육의 비용을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가 더 부담해야 한다. 배움은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도움을 주는 것이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른 재정은 어디에 우선 투입되어야 하는가

고등교육의 핵심 당사자인 교원과 학생(대학원생) 그리고 직원에게 투여되는 교육비와 인건비는 대부분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공교육의 원리이다. 초·중등교육이 그러하듯 고등교육 역시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 그 대표적 방법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이다, 일부 교육관료들의 행정권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회의 입법과 예산 확정을 통해 국가의 교육적 책무를 다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마련된 재원은 ‘하후상박(下厚上薄)‘과 ‘학문 재생산 구조 안정’의 원리에 따라 다음과 같은 곳에 우선 사용될 필요가 있다.

먼저 대학생들의 등록금을 무상으로 해야 한다. 당장은 독일처럼 별도 수당까지 주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개인이 등록금을 내어 그 돈이 대학 재단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않고 국가가 직접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적정 교육비도 산출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고등교육의 사회적 편익을 증진시키는 주요 역할을 하는 대학원생의 등록금을 무상으로 하고 주거 문제를 해소하며 교육과 연구 활동에서의 노동조건을 개선해 주어야 한다. 특히 위험노동에 내몰리지 않도록 실험실 연구 활동의 안전을 강화하고, 연구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학내에서의 연구 외 노동시간을 최대한 단축시켜야 한다. 연구 외 노동을 할 경우에는 적정 임금이 제대로 보장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연구 외 노동이 남용되지 않고 학문재생산이 제대로 될 수 있다. 대학원생 기숙사 공간 확보도 필요할 것이다. 작게는 대학원생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비용을 연구 프로젝트 발주를 한 곳에서 의무 부담토록 해야 한다.

또한 가장 열악한 처지에서 교육·연구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강사들의 처우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 시간당 임금체계를 월급제로 바꾸면서 임금을 일괄 인상하고 직장건강보험 가입, 시수에 관계없는 퇴직금 지급, 출강 대학 개수에 관계없는 통합적 직장국민연금과 고용보험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대학원생 신분의 강사든 비전업강사든 전업강사든 기타 비전임교원이든 관계없이 보장해야 한다. 비정년트랙 전임교원과 비정규직원(직접고용이든 간접고용이든 관계없이)에 대한 지원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곧 고교무상교육이 시행된다. 이제는 대학무상교육의 단계로 가야 할 때다. 고등교육 예산도 초·중등교육부문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처럼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통해 지원토록 이끌어내자. OECD 국가 평균 이상의 재정 확충과 안정적 재정지원을 통해 대학의 공공성 확대와 질 높은 고등교육을 구현하자.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정부도, 대학도, 국회도 늘 대학원생이나 강사의 편에 서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는 강사 처우 예산을 38%나 삭감하는 예산안을 국회에 냈다. 처우개선, 권리보장 하겠다고 법개정 해 놓고 2년도 안 되어 발뺌하고 있다. 권리는 게으른 자에게 저절로 부여되지 않는다. 대학원생들의 국회 앞 농성이 의미 있는 이유이다. 매의 눈으로 저들의 꼼수와 무책임함을 분석하고 비판하며, 끝이 날 때까지 중단 없이 투쟁할 때 경북대 실험실 문제도, 대학원생 노동 문제도, 대학 공공성 강화도, 대학 개혁도 가능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