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노조 릴레이기고] ④ 대학원생의 노동권으로 대학의 변화를
[대학원생노조 릴레이기고] ④ 대학원생의 노동권으로 대학의 변화를
  • 참여와혁신
  • 승인 2020.10.26 16:35
  • 수정 2020.10.2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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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경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정책위원장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지부장 신정욱, 이하 대학원생노조)가 지난 10월 6일부터 국회 앞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학원생이 국회 앞 농성을 해야 할 정도로 절박한 사정이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대학원생들이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2019년 12월 발생한 경북대실험실 폭발 사고였습니다. 학업 및 노동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임에도 피해 학생은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했습니다. 수억 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대학도 사회보장제도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피해 학생과 가족들은 외줄을 타는 심정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피해사례들을 모아보니 공통적인 사항이 있었습니다. 피해 학생들 상당수가 조교, 학생연구원 등 학업과 노동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노동을 할수록 대학 또는 교수와의 종속성이 강해졌지만, 문제 발생 시 대응할 수 있는 방어수단은 전혀 없었습니다.

대학원생노조는 실험실 사고로부터 안전한 대학, 권력형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대학을 만드는 핵심 대안이 바로 학생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대학원생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비롯한 각종 대학공공성 확보를 위한 예산 근거를 만들기 위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역시 제정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법안 쟁취를 위해 농성을 지속하겠다는 대학원생노조, 그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릴레이 기고를 통해 듣습니다. 기고는 10월간 총 다섯 번 연재될 예정입니다.

강태경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정책위원장 ⓒ 대학원생노조

 

일하는 대학원생 노동권은 연구의 기회를 평등하게 개방하는 길

대학원생노동자, 대학원생이 노동자라는 것은 무슨 말일까? 우리 노조는 대학원생 모두가 그 자체 그대로 노동자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일을 하는 대학원생이라면 노동자로 대우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기고에서는 대학원생이 일하는 가장 많은 경우인 학생연구원과 조교에 대해 이야기하고 대학원생들의 노동권이 보장된 곳들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고민할 지점들을 제안해보도록 하겠다.

 

대학원생들은 무슨 일을 할까?

대학원생노조는 대학원생이 대학 또는 학계에서 수행하는 업무의 종류를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다양한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연구원, 대학에서 일하는 조교(연구, 교육, 행정), 학회의 실무를 수행하는 간사, 대학에서 수업을 하는 강사다. 이 네 가지와 같은 업무를 누군가가 대학 울타리 밖에서 한다면, 그의 활동은 노동으로 인정받고 각각을 하는 직업이 존재한다.

하지만 학교 안으로 들어가서 대학원생들이 하면 노동이 아니게 된다. 제도적으로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전업 대학원생임을 인정받기 위해 ‘4대 보험 미가입’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다고 4대 보험을 국가가 들어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노동을 하는데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시키는 대로 일하는 노예라고 여겨지기 쉽다. 그리고 한번 그렇게 선을 넘는 것이 반복되다보면 사적인 일도 시키고, 부당한 지시도 하게 되며, 인격을 무시하는 행동들이 따라붙을 여지가 생긴다. 대학원생이 하는 일들 중 대표적인 두 경우를 보자.

 

1. 학생연구원

과제를 수행하는 연구원들 중에 대학원생, 학부생 들은 학생연구원이라고 통상 불린다. 이번 국회 과기부 국정감사에서 경북대학교 사건을 다룰 때도 언급되었지만, 다수의 연구실은 대학원생들을 뽑지 않으면 연구를 할 수 없다.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그 연구를 수행할 노동자가 없으면 안 되는 자명한 이치인 것이다.

90년대 BK21이 시작된 이래, 대학도 연구과제를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국가연구과제, 그리고 기업에서 다양한 연구과제를 공고하고, 경쟁입찰을 거쳐 선정된 연구실에서 과제를 수행한다. 이제 국가에서 투입되는 연구개발 과제의 규모만 1년에 5조 원가량 되며, 기업 과제를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진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경쟁입찰구조라는 것이다. 즉, 연구책임자인 교수를 중심으로 해당 연구실은 일종의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SCI급 논문의 연구실적을 계속 만들어야 하고, 연구과제비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달성해야 한다. 연구실이 하나의 기업처럼 돌아가면서 연구실을 유지관리하기 위한 제반 노동과 비용이 들어간다. 인원들은 상주하여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실적을 위해서는 수백만 원을 들여 비행기를 타고 가서 해외발표를 하지만, 대학원생들의 인건비에 해당하는 학생연구비는 절약이 기본이다. 안전에 대한 투자나 교육보다는 실험 한번 더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결국 많은 대학원생들은 여느 연구소의 연구원과 그리 다를 바 없이 과제 신청을 위한 제안서를 쓰고, 선정된 과제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공계에서 이런 업무는 일상이 된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인문사회계열과 예체능계열도 이런 과제 중심의 연구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의 ‘대학원생모집’ 탭에만 들어가 봐도 유사 구인시장이 존재한다.

 

2. 조교

조교는 연구조교, 교육조교, 행정조교가 있다. 연구조교는 교원의 연구를 보조하고, 교육조교는 수업을 보조하며, 행정조교는 교직원과 같이 대학 내 행정업무를 수행한다. 전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의 활동과 우리 노조의 활동, 조교복무 가이드라인이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배포되면서 기본적인 방향은 잡혔고 2019년 하반기에 발표된 체결률은 약 40%였다.

많은 경우 명목상의 구분과 실질적인 업무는 다른 경우들이 많다. 과거부터 명목과 무관하게 다양한 업무를 혼합하여 수행해왔기 때문에, 명목적인 조교 TO가 현실에 맞게 아직 조정되지 못한 것도 현실이다. 이런 부분은 대학원생이 노조로 조직되면서 공적인 단체협상을 통해 조교 업무와 TO를 재정리하는 작업들이 필요하다. 어떤 일이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바꾸는 것이 더 나은 지는 당사자들이 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로장학’이라는 애매한 제도로 인해, 조교들의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교수는 대학원생들을 위한 ‘장학금’의 취지를 살려 거의 일을 시키지 않고 돈을 받아가게 해주는 한편, 지급된 장학금이 시급으로 계산하면 최저임금도 안될 정도로 혹독하게 일을 시키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렇게 복잡한 현재의 상황은 정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난감하게 만든다.

이와 관해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바로 캐나다의 첫 대학원생노조가 맺은 첫 단체협상이다. 캐나다 토론토대학 대학원생노조(캐나다 공공노조 3902지회 유닛1)의 전신인 대학원생조교노조(GAA, Graduate Assistants’ Association)는 토론토대학에서 1973년 교육조교 7명으로 시작했다. 이들이 1975년 노조를 설립하고 첫 단체협상을 맺은 내용은 당시 444가지로 집계된 조교의 급여의 유형을 단 3개로 정리하고 조교의 채용과정과 탄원과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대학원생의 복잡한 상황이 단체협상을 통해 정리된 중요한 사례다.

 

대학원생 노동권 인정은 연구 접근성의 평등한 개방

현재 전세계적으로 고등교육이 가장 발전한 나라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꼽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수의 다수도 미국에 유학을 다녀왔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나라 대학원생들은 유학에 관심이 많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학위과정 내에서 조교 등의 일을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하고 대학을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제일 비싼 등록금의 나라에서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은 바로 대학원생의 노동권을 쟁취했기 때문이다.

미국 위스컨신-매디슨 대학에서 1966년 이래 이어지고 있는 교육조교노조 TAA(Teaching Assistants’ Association)는 북미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원생노조다. 이곳의 조합간부들과 2019년에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가장 자랑스러운 성과가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이들은 대학원에 와서 조교노동을 통해 등록금을 해결하고 생활비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쟁취한 것을 꼽았다. 그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과 상관없이 연구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대학원이 개방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조교제도는 노동에 따른 급여가 아니고 장학금이어서 최대 등록금만 100% 면제해주고 있다. 대출을 받든지, 추가로 연구과제를 수행하든지, 아니면 주변에서 경제적 도움을 받아야지만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경제적 장벽에 따른 문턱은 올라간다. 당연히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부업을 하다보면 학업시간도 부족해진다. 계급적 차이가 연구자 재생산에서 그대로 반영된다. 그나마 일거리라도 있는 공대보다 인문사회계열은 더욱 열악하고, 돈을 벌기 위한 휴학과 학업을 반복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조교의 노동권을 인정하고, 대학에서의 조교 업무를 발굴하고, 협상을 통해 조교노동과 학업이 연계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간다면 연구에 대한 기회, 지식 생산의 역량을 갖출 기회를 보다 평등하게 많은 사람에게 개방되리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