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춤거리는 ‘포괄임금제’ 금지, 국회가 나서나
정부가 주춤거리는 ‘포괄임금제’ 금지, 국회가 나서나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11.05 10:36
  • 수정 2020.11.0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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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정 정의당 의원, 포괄임금제 금지법 공동발의 제안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포괄임금제 금지’ 명시키로
5일 오전 9시 10분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진행된 ‘포괄임금제 금지법 공동발의 요청’ 기자회견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포괄임금제는 노동계에서 장시간‧저임금 노동의 주범으로 꼽는 제도다. 본래 출퇴근 시간을 기록하기 어려운 사업장에 한하여 법원이 인정한 제도지만, 현장에서는 노동자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는 게 노동계의 지적이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은 5일 오전 9시 10분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포괄임금제 금지법 공동발의 요청’ 기자회견을 가졌다.

류호정 의원은 “본래 임금은 정해진 기본임금에 노동자가 실제 일한 시간외노동에 대한 수당을 월급에 포함해 일괄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포괄임금제’와 같은 반칙을 쓰는 기업이 늘어났다. 현재는 국내 10인 이상 사업장의 절반 이상이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포괄임금제는 연장‧야간‧휴일 등 초과노동에 대한 가산수당을 월급에 포함해 일괄 지급하는 임금제도다. 포괄임금제를 실시하려면 노동자와 사용자는 근로계약서에 초과노동시간과 그에 따른 가산수당을 얼마를 줄지 미리 약정해야 한다.

포괄임금제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법률상 임금제도는 아니며, 판례와 고용노동부의 행정 해석상 존재하는 임금산정방식이다. 출퇴근 시간을 기록하기 어려워 노동시간 측정이 힘든 업종에 한하여 포괄임금제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출퇴근 시간이 명확해 가산수당 산정이 어렵지 않은 업종에서도 ‘비용 절감’을 이유로 악용되는 실정이다.

김정봉 금속노조 서울지역지부 주얼리분회 분회장은 포괄임금제가 악용되고 있는 현실을 토로했다. 김정봉 분회장은 “사업주들은 코로나19로 줄어든 주문량을 핑계로 단축근무를 강행하면서도 근무일수를 줄여 임금을 삭감했다. 그러나 포괄임금제라며 근무하는 날마다 야근을 강요한다”면서, “임금이 반 토막 난 주얼리 노동자는 야근까지 강요당하고도 야근수당은 꿈도 못꾼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한국사회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의 이면에는 포괄임금제가 주요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서승욱 화섬식품노조 크루유니언(카카오지회) 지회장은 “포괄임금제 하에서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비용 증가가 없기에 기업들은 장시간 노동 관행을 해결하려 하지 않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원인을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면서, “포괄임금제 폐지는 장시간 노동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이라고 지적했다.

배수찬 화섬식품노조 넥슨스타팅포인트(넥슨지회) 지회장도 “야간근로, 초과근로를 시키면 돈을 줘야 한다는 건 현대인의 상식이지만, 이 상식이 통하지 않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면서, “주6일제가 폐지될 때도 그러했듯 (포괄임금제 폐지로) 기업이 망할 것처럼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주40시간을 준수한다면 인건비 상승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법안 발의에는 10명의 국회의원의 동의가 필요하다. 류호정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 이후 공동발의 의원을 모집할 예정이다.

발언 중인 류호정 정의당 의원.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발언 중인 류호정 정의당 의원.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류호정 의원이 준비 중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에는 ▲포괄임금계약의 명시적 금지 ▲근로시간‧임금의 입증책임을 사용자에게 부담 ▲사용증명서 교부 시 근로계약서, 임금명세서, 취업규칙 사본, 임금대장 등을 함께 교부하도록 사용자에게 의무 ▲근로시간 측정‧기록 및 보전 의무를 사용자에게 부과 ▲사용자에게 임금명세표 교부 의무 부여 등이 규정돼 있다.

출퇴근 기록이 어려운 업종이 포괄임금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 류호정 의원은 “현행법에 명시된 유연근무제도를 활용하면 충분하다”고 답했다.

류호정 의원은 “이 법안은 포괄임금제를 금지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을 임금에 포함해 지급하는 것도 금지했다”며 “2017년 10월 정부는 ‘포괄임금제 지도지침’ 초안을 마련했지만 ‘실태조사 중’이라는 이유로 3년 동안 발표를 미루고 있다. 국회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