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파업 7일차··· "우리한테 '노동자'는 고급 단어"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파업 7일차··· "우리한테 '노동자'는 고급 단어"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12.22 08:57
  • 수정 2020.12.22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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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소영 LG트윈타워분회 분회장

지난달 용역업체로부터 오는 31일자 해고 통보를 받은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7일째 전면 파업 중이다.

앞서 LG트윈타워를 관리하는 LG그룹 계열사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은 청소노동자들이 속한 용역업체 '지수아이앤씨'와 이달 말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고, 청소노동자들도 이달 말 계약이 만료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에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LG트윈타워분회는 지난 16일 파업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이 1년 넘게 교섭을 해태하고 고소고발로 노조파괴를 노리고 있다는 정황이 뚜렷하다"며 "원청인 LG와 사옥을 관리하는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이 집단해고를 철회하고 고용승계를 보장하라"고 밝혔다. 

22일 기준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사옥 로비에서 전면 파업에 들어간 지 일주일이 흘렀지만 사측은 묵묵부답, 청소노동자들이 통보받은 해고 날짜만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에서 '구광모 회장이 책임져라' 피켓을 들고 고용승계를 촉구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에서 '구광모 회장이 책임져라' 피켓을 들고 고용승계를 촉구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우리한테 '노동자'는 고급 단어예요"

LG트윈타워분회 분회장 박소영 씨에게 '청소부'가 아닌 '청소노동자'라는 "고급 단어"는 아직 낯설다. 어느 건물이든 도로든 "청소는 기본 중에 기본"인데도 "무시당하고 짓밟혔기에" 인권은 청소부와는 별개인 줄 알고 살아서다.

2015년 8월, 소영 씨는 예순의 나이에도 청소일을 할 수 있고 아침밥까지 챙겨주는 대기업 LG 건물에서 일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소영 씨는 당시 5년째 청소일을 했지만 "이렇게 노예처럼 일하는 곳은 처음"이었다고 회상했다.

LG트윈타워에서는 1년에 8번 토요일에 1,300평 규모 식당 바닥 왁스 작업을 해야 한다. 소영 씨는 들어간 지 2주만에 왁스 작업에 투입됐다. 독한 약품 냄새에 눈을 뜰 수 없었고, 한여름이라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소영 씨는 동료에게 "세상에, 나는 청소를 5년 넘게 했지만 이렇게 수용소처럼 힘든 데가 있었냐"고 토로해야 했다.

상여금이 따로 없는 최저임금은 물론이고 '근무시간 꺾기'도 있었다. 회사는 청소노동자들의 점심시간을 1시간 30분으로 정해 일7.5시간, 주37.5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맞췄다. 남은 시간은 주말근무를 지시했다. 법정 소정 노동시간(일8시간, 주40시간)을 지켜서 운영하면 주말근무에 따로 수당을 지급해야 하지만 회사는 공짜로 일을 시켰다. 왁스 작업도 주말근무의 일부였다. 

관리자의 갑질도 이어졌다. 사정이 생겨 빠진 동료를 대신해 일해도 돈이 어디로 새는지 일당을 온전히 받지 못했다. 특히 야간조 관리자는 청소노동자들이 헬스장 청소 추가 업무로 받은 수당을 자신의 개인 계좌로 입금하도록 지시했고, 청소노동자들에게 돌아가면서 5만~6만 원짜리 오리탕을 사 오도록 했다.

"관리자 입맛에 맞는 사람은 청소하기 쉬운 곳을 주고, 아닌 사람한테는 회장실 등 까다롭고 어려운 곳으로 밀어 넣는 걸 '내려친다'고 이야기했어요." 소영 씨는 노동자들이 말을 안 들으면 관리자의 '내려치기'가 뒤따랐다고 했다. 

"박소영 씨는 왜 불만이 없어요?" 

그래도 지수아이앤씨와 1년에 한 번씩 만나는 면담 자리에서 소영 씨는 불만이 없다고 했다. 소영 씨는 다만 한 가지만 확인했다. 정년이었다. 면담 때마다 관리자는 건강에 이상이 없으면 얼마든지 1년단위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거면 됐다. 그래서 소영 씨는 "박소영 씨는 왜 불만이 없어요?"라는 질문에 "저는 오래 일해야 하기 때문에 건강할 때까지 일할 수만 있다면 불만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지난해 3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 회사가 청소노동자의 정년이 만65세라고 발표한 것이다. 당시 만64세였던 소영 씨는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곳을 서둘러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주변 건물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에게 정년이 언제까지냐고 물었더니 70세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원래는 65세였는데 노동조합의 힘으로 정년을 연장했다는 그는 소영 씨에게 노조 조직부장 연락처를 건넸다.

"LG는 큰 회사니까 우리가 노조 만들었다고 하면 창피해서라도 빨리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겁 없이 달려들었어요."

소영 씨는 지난해 8월부터 두 달간 조합원 39명을 모았다. 10월에 노동조합 첫 총회를 하자 소장은 사시나무 떨듯이 덜덜 떨었다. "노조를 만드니까 회사에서 어마어마한 서류를 불태워서 놀랐어요. 소장은 일주일도 안 돼 자기가 모든 총대를 메고 나가겠다고 했고요."

지난해 11월 노조와 지수아이앤씨가 교섭을 시작하면서 일터는 조금씩 바뀌었다. 우선 '근무시간 꺾기' 문제가 해결됐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이제 토요일 공짜노동을 하지 않는다. 매해 계약서를 4월에 작성한다는 이유로 1월부터 인상된 최저임금을 4월부터 적용받던 관행도 사라졌다. 

하지만 10여 차례 이어간 교섭에서 노조의 처우개선과 정년연장 요구에 대해 회사는 '시급 60원 인상' 외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교섭을 끌었다.

그러다 지난달 30일 지수아이앤씨는 LG트윈타워를 관리하는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과 계약 만료를 이유로 청소노동자들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사측은 별도의 사직서에 서명하면 250만~500만 원의 위로금을 주겠다고 했다. 사실상 청소노동자 80여 명에 대한 집단해고 통보였다. 소영씨는 "회사는 노조와 교섭하는 척 시간을 끌다가 결국 이렇게 우릴 우롱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 측은 "계약 종료 통보 관련 면담이나 위로금 지급 등은 지수아이앤씨 단독으로 진행한 것"이라며 "업체 변경 후에도 직원들의 고용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박소영 LG트윈타워분회 분회장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박소영 LG트윈타워분회 분회장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우리는 나가면 이제 일할 곳이 없어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대부분 60세 이상 고령이다. 소영 씨는 "우리는 나가면 이제 일할 곳이 없다"며 "코로나19로 식당도 문을 다 닫았고, 예순 넘으면 어디에서도 잘 안 뽑는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당장 500만 원 위로금이 아쉬워도 꾸준히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 남편도 지역에 내려가서 아파트 청소일 하거든요. 나도 가려고 했는데 딸이 아파서 제가 돌봐야 해요. 여긴 다 그래요. 우리 세대만 해도 자식들이 부모들을 어느 정도 뒷받침해줬는데, 이젠 오히려 부모가 자식들도 살기 어려우니까 생활비를 보태줘야 해요. 다 뼈주사 맞아가면서 일하는 거예요. 기가 막힌 현실이죠."

소영 씨를 비롯해 계속 일을 해야 하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16일부터 집단해고 철회와 고용승계 보장을 요구하며 사옥 로비에서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7일째 대리석 바닥에서 잠들며 아침, 점심, 저녁 선전전을 이어가고 있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집단해고를 막기 위해 시민사회도 힘을 모으고 있다.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 해결을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16일부터 온라인을 통해 집단해고 철회 성명을 받고 있다. 온라인 서명엔 21일 오후 6시 기준 1만 3,000여 명이 참여했다. 공대위에는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전태일재단·한국비정규노동센터·한국여성민우회 등 69개 단체가 함께한다.
  
공대위는 지난 18일 LG에 면담 요청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공대위는 "원청인 LG, 자회사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 용역업체 지수아이앤씨 모두 노조의 거듭된 고용승계 보장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LG가 비정규노동자 고용승계에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길 바라는 시민사회의 의견을 전하고 LG의 입장을 확인하고자 한다"며 오는 23일 오후2시 면담을 요청했다. 

소영씨는 인터뷰 끝에 전태일을 떠올렸다. 

"저는 예전에 전태일 열사가 미싱사였는데 왜 갑자기 몸에 불을 살랐을까 의문을 품은 적이 있어요. 이제 그 심정을 조금 알 것 같아요. 청소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인간답게 살 수 있다면 저도 그런 각오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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