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이 주의 질문 : 내가 김진숙과 함께 걷는 이유는
[언박싱] 이 주의 질문 : 내가 김진숙과 함께 걷는 이유는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1.01.17 13:39
  • 수정 2021.02.01 17: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희망뚜벅이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다시길위에 #12월30일부터 #2월7일까지

지난해 12월 30일, 김진숙은 ‘해고 없는 세상’ 깃발을 들고서 환하게 웃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자신의 복직을 위해 애쓰는 이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며 병상에서 일어나 걷기만 한 시간이 오늘로 17일째다.

김진숙의 환한 얼굴에도 주변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두 번째 암 수술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방사선 치료도 미루고 떠난 여정이었기에 힘내라고 응원할 수도, 잘했다고 박수칠 수도 없었다. 평소 그의 뚝심을 아는지라 더욱이 말릴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혼자 보낼 수는 없지. 사람들은 함께 걷기로 했다. 희망버스에 이은 희망뚜벅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춥고 먼 길 작은 온기라도 보태보자며 사람들이 모이자 출발할 땐 3명이었던 조촐한 발걸음이 지금은 50명을 넘겼다.

그리고 여기 김진숙과 첫걸음부터 함께한 희망뚜벅이가 있다. 황이라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비정규직부장과 차해도 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이다.

황이라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비정규직부장(왼쪽),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가운데), 차해도 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오른쪽) ⓒ 금속노조
황이라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비정규직부장(왼쪽),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가운데), 차해도 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오른쪽) ⓒ 금속노조

황이라 씨는 희망뚜벅이를 시작하기 약 2주 전 김진숙 씨로부터 의논하고 싶은 게 있으니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덥석 만나기엔 마음 한구석이 개운치 않았다. 요양병원에서 편히 쉬셔야 할 분이 왜 보자고 하실까. 궁금증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당시는 중대재해처벌법 통과를 앞두고 국회가 들끓던 때고, 김진숙 씨의 복직을 위해 노동계를 포함한 시민사회 곳곳에서 단식과 농성 등을 통해 목소리를 내던 때였다. 김진숙 씨와 20년 가까이 알고 지냈기에 만나면 그가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쉽게 그려졌다. “그 전부터 어떤 고민을 하는지가 눈에 보였고, 성격을 아니까 보자고 하는데도 안 봤어요. 바쁘다고 피했죠.”

마냥 피할 수 없어 만나게 된 자리에서 아니나 다를까 걸어서 청와대까지 가야겠다는 말을 꺼냈다.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고 둘이서 조용히 가자는 말에 안 된다며 귀를 막았다. 암 재발, 두 번째 암 수술, 방사선 치료…. 김진숙 씨가 있어야 할 곳은 길 위가 아니라 병상이었다.

두 절실함이 부딪혔지만, 같이 안 가면 혼자라도 가겠다는 말에 결국 백기를 든 건 황이라 씨였다. “주변에서 왜 안 말렸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지도위원을 잘 아시는 분들은 말릴 수 없다는 걸 잘 아니까 못 말린 것에 대해 이해한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하루에 걷는 거리는 11~13㎞, 휴식은 중간에 한 번, 걷는 시간은 3시간~3시간 30분 정도다. 월요일 빼고 주 6일을 걷는다. 1월 12일까지만 하더라도 숙소를 따로 잡지 않고 부산집을 왔다갔다했다. 아침에 전날 도착한 장소로 가 그날 정해진 양을 걷고 다시 귀가하는 식이다. “지도위원님 건강이 안 좋으시니까 잠이라도 제대로 잘 수 있도록 하자고 그렇게 했는데 부산에서 점점 거리가 멀어지니까 이제 그마저도 힘들게 됐어요. 그래서 13일부터는 숙소를 잡기로 했어요.”

황이라 씨와 김진숙 씨의 공통점은 같은 해고자 출신이라는 것. 부산지하철 매표소에서 일했던 황이라 씨는 26살에 해고됐다. 당시 복직투쟁을 하던 때 만난 게 김진숙 씨다. 이것만으로도 황이라 씨가 김진숙 씨와 함께 걷는 이유는 충분하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은 35년 전에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정의 실현의 문제니까 이 사람이 복직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면서 걸어요. 김진숙이라는 사람 개인의 복직은 아닌 거죠. 저는 결국 복직이 안 됐지만, 김진숙이 복직한다면 저의 해고도 위로받는 느낌이랄까요. 실제로 희망뚜벅이 중에 해고된 분들이 많아요. 대우버스, 한국게이츠,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아시아나케이오…. 우리의 슬로건인 해고 없는 세상을 원하는 분들이죠.”

김진숙 씨와 차해도 씨의 만남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5월 6일 세상을 떠난 한진중공업 박창수 열사를 추모하기 위해 한진그룹 해고자들이 한데 모였고, 당시 해고자였던 두 사람은 이곳에서 처음 만났다(차해도 씨는 89년 해고됐으나 6년 뒤 대법원 판결로 복직하게 된다).

박창수 열사 이후에도 한진중공업에서는 계속해서 열사가 나왔다. 손배가압류와 노조 탄압에 맞서 진행한 고공농성 129일째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주익 열사와 김주익 열사의 죽음을 괴로워하다가 자결한 곽재규 열사. 김진숙 씨와 차해도 씨는 2003년 10월 17일, 10월 30일 연이은 두 사람의 장례를 함께 치르고 함께 아파했다. 그렇게 쌓아온 시간이 어느덧 30년이다.

차해도 씨는 2019년 12월 31일 자로 정년퇴직자가 됐지만, 복직하지 못한 김진숙 씨가 여전히 아프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그 긴 발걸음을 함께 하게 된 건 그 이유에서다.

“김진숙 지도위원에 대한 부채감과 의무감이 있어요. 2003년 열사 두 분을 보내면서 노사 협상이 있었는데, 그때 김진숙 지도위원만 복직에서 제외하는 협상을 했어요. 그때 제가 지회장이었고요. 2008년에도 협상을 했지만 그때도 복직을 이뤄내지 못한, 교섭 대표로서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부채감이 있죠. 마지막 투쟁이라고 하면서 복직투쟁에 나섰는데 이 투쟁은 내가 함께해야겠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17일 희망뚜벅이의 현재 위치는 충청북도 영동군. 목표로 잡은 2월 7일 청와대까지는 약 3주의 시간이 남았다. 김진숙은 오늘도 힘차게 걷는다. 혼자가 아니다. 그의 옆에는 희망뚜벅이로 불리는 이들이 그의 옆을 지켜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