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3사 노조, ‘만 65세 정년’ 불 지폈다
완성차3사 노조, ‘만 65세 정년’ 불 지폈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3.03 18:38
  • 수정 2021.03.03 1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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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완성차 3사 지부, 국회에 정년연장 입법 촉구
시니어촉탁·베테랑 제도 등 정년 이후 ‘비정규직화’ 막아야
3일 오후 1시 30분 서울시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된 ‘정부와 국회는 정년연장 입법화를 신속히 이행하라’ 기자회견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김호규, 이하 금속노조) 산하 완성차노동조합들이 국회에 정년연장 입법을 촉구했다. 이들은 고령화 및 사회복지제도 미비에 따른 문제점을 정년연장을 통해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지부장 이상수), 기아차지부(지부장 최종태), 한국지엠지부(지부장 김성갑)는 3일 오후 1시 30분 서울시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정부와 국회는 정년연장 입법화를 신속히 이행하라’ 기자회견을 가졌다.

‘캄캄한’ 정년 후 20년 … ‘최소 65세 정년’ 필요

현재 한국의 정년은 만 60세(고령자고용법 제19조2항)다. 반면 OECD에서 발표한 2020년 한국인 평균 기대수명은 82.7세다. 정년퇴직 이후 평균 2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정년퇴직 노동자를 위한 재고용 정책이나 고령자를 위한 사회복지제도는 미미한 상태다. 이에 따라 정년퇴직 노동자들은 청소·경비 등 전문성이 낮고, 이전 직장보다 못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국민연금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수령액이 50만 원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수급 개시 연령은 현재 만 62세로 2033년까지 만 65세로 상향조정될 예정이다. 정년 이후 국민연급 수급까지 최대 5년의 공백기가 생기는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모인 이들은 “한국사회는 사회복지 시스템이 낙후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개인의 능력으로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면서, “모든 고령자의 생계를 정부에서 책임져 줄 수 없으며, 또한 그 자원도 매우 미비하기 때문에 스스로 경제활동을 통해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소한 국민연금 수령 연한과 연계한 정년연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년을 최소 만 65세까지는 연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도 사회보험 재정안정성 및 복지재원 관리를 이유로 수차례 정년연장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특히 홍남기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는 공개석상에서 ‘정년 연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중을 몇 차례 나타낸 바 있다.

왜 완성차 노동자들이?

정년연장을 금속노조에서, 특히 완성차 3사 노동조합이 나서서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촉탁직 문제 때문이다. 정년퇴직 노동자들은 단협에 따라 비정규직으로 재채용된다. 현대차에서는 시니어촉탁제도, 기아차에서는 베테랑제도라는 촉탁제가 운영되고 있다.

촉탁제는 회사 입장에서는 숙련인력을 값싼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과 단기 계약으로 고용 유연성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노동자 입장에서는 대다수가 정년 이후에도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노동조건 저하에도 불구하고 촉탁직을 받아들이는 형편이다.

현대‧기아차지부는 회사가 촉탁제도로 필요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최종태 기아차지부 지부장은 “현대차나 기아차에서는 정년퇴직한 선배들이 시니어촉탁, 베테랑제도를 통해서 다시 근무하고 있다. 결국 노동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회사는 정년을 이유로 퇴직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기존 급여에서 50~60%가 줄어든다. 일자리가 부족한 게 아니라 값싸게 인력을 쓰고 싶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지엠은 촉탁제를 운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지엠지부에게도 정년연장은 중요한 의제다. 한국지엠지부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면서 향후 3년간 1,200여 명의 정년퇴직자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7,700여 명 중 16%에 달하는 규모다.

그러나 정년퇴직 인원만큼 신규채용은 이뤄지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은 현대‧기아차도 마찬가지다. 김성갑 한국지엠지부 지부장은 “한국지엠지부의 경우 조합원이 7,700여 명이지만 한 해 250~300명씩 나가고 있다. 2023년 말경이면 1,200명 규모”라면서 “이 경우 승용2공장이 완전히 없어져도 되는 규모”라고 밝혔다.

김성갑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지부장, 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지부장, 최종태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전기차 시대와 정년연장 충돌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미래차 전환에 따라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고용규모가 축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 생산에 필요한 부품과 공정이 줄어드는 탓이다. 2019년 현대차 1기 고용안정위원회는 현대차의 전기차 전환으로 생산직 고용규모가 최소 20%, 최대 40%까지 축소할 것으로 보고한 바 있다.

이러한 전망에 당시 현대차 노사는 정년퇴직 등 자연감소분으로 고용규모 축소에 대응하기로 했다. 다만 고용축소 규모에 대해서는 노사의 의견이 갈린다. 당시 현대차지부는 2017~2025년까지 정년퇴직자 1만 7,500명에 발생함에 따라 회사에 1만 명의 추가 고용을 요구했다. 전기차 전환에 따른 고용 축소 규모를 7,000여 명으로 본 것이다. 반면 현대차는 지부의 요구에 난색을 표했다. 고용 축소 규모를 더욱 크게 전망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년연장이 자동차 패러다임 전환 흐름을 거스르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패러다임 전환으로 필요한 고용규모가 점점 축소되는데 정년연장으로 고용기간을 늘리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완성차 3사 노조 대표자들은 고용축소 규모가 현재 예상하는 것보다 작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상수 현대차지부 지부장은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의 작업 공수가 줄어드는 건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전체적인 공수는 줄지 않는다. 완성차에서 맡을 수 있는 공정이 현대모비스 등 모듈 공장으로 이전되기에 고용불안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모인 이들은 “정년연장으로 노동자에게는 안정적인 노후가 보장되고 기업은 고급 노동력 제공으로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 정부는 세수 확보로 국가재정 안정화를 기할 수 있다”면서 ▲정부차원의 정년연장 입법화 추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차원의 정년연장 법안 심의 등을 요구했다.

한편, 정년연장은 급격한 출생인구 감소 및 노령인구 증가에 대응해 안정적으로 사회보험을 운용할 수 있는 방안으로 꼽히고 있지만, 법률로써 정년을 정하는 것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는 상황이다. 경영계에서는 ‘영업의 자유’ 침해, 노동계에서는 ‘일할 권리’ 침해를 근거로 든다.

실제로 유럽국가에서는 법률로 정년을 정하고 있지 않고, 관행적으로 연금 개시 연령을 정년으로 삼는다. 미국에서는 1986년 ‘고용차별’을 이유로 정년 제도를 폐지했다. 나이가 일할 기회를 박탈하는 근거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우리나라에서도 2019년 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늘려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가동연한은 통상적으로 언제까지 육체노동을 할 수 있는가를 뜻하는 법률용어다. 가동연한 연장은 정년연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