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하청노동자,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져
23살 하청노동자,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져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5.06 18:23
  • 수정 2021.05.06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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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원청 무리한 지시와 안전관리 소홀로 사고 발생”
원청사 동방, "책임 통감··· 조사 결과 기다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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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사고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지난달 22일, 23살 이선호 씨가 300kg 무게의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쓰러졌다. 평택항 부두에서 컨테이너 바닥 정리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머리와 가슴뼈 곳곳이 부러져 크게 다친 그는 곧 숨을 거뒀다.

사고 뒤 15일이 지났지만 장례는 치러지지 않았다. 유가족은 안전관리 소홀 문제 등 사전에 막을 수 있던 참극이라며 사건의 진상규명 이뤄질 때까지 빈소를 유지하겠단 입장이다.

6일 오전 이선호 씨의 유가족과 친구들은 민주노총 평택안성지부, 정의당 경기도당, 진보당 경기도당 등 13개 단체로 꾸려진 대책위원회와 경기도 평택시 평택항 신컨테이너화물터미널 앞에서 이선호 씨 산재 사망사고 진상 규명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학교 3학년생인 이선호 씨는 군 제대 뒤 1년가량 평택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학비와 생활비 충당을 위해 틈틈이 일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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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 컨테이너 ⓒ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항만하역업체 ‘동방’이 하청을 준 인력회사 ‘우리인력’에서 일하던 이선호 씨가 원래 하던 업무는 동식물 검역이었다. 그런데 지난 3월부터 원청 관리자가 바뀌면서 인력 통폐합이 이뤄졌고 FRC(Flat Rack Container)라는 오픈형 컨테이너 작업까지 추가로 맡게 됐다.

FR컨테이너는 일반 컨테이너에 안 들어가는 화물을 적재할 때 사용된다. 사방이 열려 있으며 나무 바닥만 있다. 적재물을 옮길 땐 앞뒤 300kg 무게의 날개(사진 주황색 박스 표시)를 펴야 한다.  

대책위의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달 22일 이선호 씨는 처음으로 FR컨테이너 해체 작업에 투입됐다. 원청 직원의 지시로 컨테이너 양 날개 안전핀을 제거하고 바닥의 나무 합판 잔해를 정리했다.

오후 4시 10분경, 잔해를 정리하던 이선호 씨의 반대편에서 지게차 기사가 충격을 줘 날개 한쪽을 접었다. 그 진동으로 이선호 씨 쪽 날개도 접혔다. 300kg 무게의 날개에 깔린 그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유일한 목격자인 외국인 노동자는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고 있다.
 

대책위, 사고 배경으로
‘소홀한 안전관리+원청 무리한 지시’ 지적

대책위는 소홀한 안전관리와 원청의 무리한 지시가 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현장에 안전관리자, 신호수가 없었고 안전장비(안전모)도 지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이 이뤄졌다”며 “사전에 현장에서 어떠한 안전 교육도 없었다”고 말했다. 무게 때문에 웬만한 반대편 진동에 의해 넘어지기 어려운 날개의 불량 문제도 짚었다.

또한 대책위는 “평소 FR 컨테이너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나무 합판 조각을 정리하지 않는데 사고 당일 원청직원은 두 번이나 해당 업무를 지시했다는 증언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화물노동자들도 비슷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김근영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인천지역본부장은 “예전보단 많이 줄었지만 화물노동자들도 FR 컨테이너 날개를 접었다 펴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업무 매뉴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 임의로 방법을 터득해 날개를 접다가 발목이 삐거나 손을 다치는 노동자들이 있다”고 했다.

김근영 본부장은 “매뉴얼이 있더라도 현장에서 제대로 안 지켜졌을 것”이라며 “모든 위험성이 있는 작업은 혼자 해선 안 된다. 수신호 해주는 사람 등이 포함된 2인1조가 기본이 돼야 한다”고 재발방지 대책을 강조했다.

이날 유가족과 대책위는 ▲원청 동방의 이선호 씨 사망에 대한 책임 인정과 사과 및 재발방지책 마련 ▲노동부 등 관계당국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중대재해 조사보고서 공개 ▲평택항 내 응급치료시설 마련 등을 요구했다.

이선호 씨의 빈소는 경기 평택시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15일째 향을 피우고 있다. 유가족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질 때까지 빈소를 지킬 계획이다.

동방 “조사 결과 기다리는 중”

원청인 동방 측은 “작업 지시한 점을 인정한다”며 “경찰 조사뿐 아니라 고용노동부 조사도 진행 중이라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참여와혁신〉과 통화에서 밝혔다.

컨테이너 불량 문제에 대해선 “컨테이너는 선박회사 소유”라며 “불량 여부는 전문가가 정확히 확인해 봐야 한다”고 했다.

사고 현장에 안전관리자가 없었단 지적엔 “그 부분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관리감독자가 동시에 일을 진행해 다른 곳에 가 있어 사고 현장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 평택해양수산청 담당 주무관은 “사고 당일 점검을 진행했다. 본부에 보고하고 고용노동부 측에 전달했다”며 “수산청은 노동안전 관련 권한이 없다. 사고조사, 개선명령 등은 고용노동부 관할이라 조사 과정은 고용노동부 측에 문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가족 입장에서 제기하는 수산청의 책임에 대한 의견은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사고 당일 부두 운영사에 노동안전 유의 공문을 보냈고, 5월 6일·13일·23일 부두 운영사 대표들을 불러 노동안전 관련 간담회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사고를 조사한 고용노동부 평택지청 근로감독관은 이날 자리를 비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고용노동부 평택지청 관계자는 “조사 진행 담당자가 아니라 정확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