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야, 아빠가 싸워줄게”
“선호야, 아빠가 싸워줄게”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5.14 00:26
  • 수정 2021.05.14 0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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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평택항 산재 사망 故이선호 씨 추모문화제 열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mskang@laborplus.co.kr
13일 저녁 열린 故이선호 씨 추모문화제에서 아버지 이재훈 씨가 울고 있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mskang@laborplus.co.kr

지난달 22일 평택항 부두에서 일하다 300㎏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청년노동자 이선호(23) 씨 아버지 이재훈 씨는 아들이 사망한 현장에서 8년간 작업반장으로 일했다. 아들이 숨진 뒤 현장을 잘 아는 그의 눈엔 아무리 봐도 아들의 잘못이 안 보였다. 

이재훈 씨는 “내 자식이 바보같이 죽었단 소린 안 듣게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사측의 잘못을 따지던 중 “사고 직후 원청 직원이 윗선에 보고하느라 119 신고가 늦어진 점, 말도 안 되는 위험한 공간에서 작업 지시가 있었다는 점” 등이 보였다. 

그때 선호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아빠, 끝까지 싸워줘.”

사건 진상규명이 이뤄질 때까지 빈소에 향을 끄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재훈 씨는 “원청이 하루에 10만 원만 주고 안전관리자 한 사람만 세워놨으면 우리 집 자식 안 죽었다. 도대체 기업하는 사람들이 10만 원씩 아껴서 얼마나 더 부자가 되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13일 이재훈 씨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가 저녁 7시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 마련한 ‘故이선호님 추모문화제’에 참석해 “한 가정은 완전히 박살났다”며 “두 번 다시 이 땅에서 우리 같은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가족이 없어야 한다. 그런 마음에서 이 자리에 모여주신 거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날 추모문화제에는 청년노동자, 하청노동자,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유가족 등 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이들이 모였다. 이들은 청춘을 상징하는 빨간 장미를 각자 손에 들고 앉았다.

경기도 시흥시 건설현장에서 형틀목수로 일하는 청년노동자 오동현(29) 씨는 “이선호군이 300kg이나 되는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을 거뒀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찰나의 순간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 생각하니 정말 마음 아팠다”며 “건설현장도 위험한 상황이 많다. 그런데 위험하다고 이야기하면 기술자가 그런 것도 못하냐고 타박당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의 죽음은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저도 더 노력하겠다. 나의 또 다른 동료 이선호군의 명복을 빈다”고 전했다. 

청년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은 이재훈 씨는 “일하다 다칠 수 있거나, 죽을 수도 있단 생각조차 못하고 일터로 내몰리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그 친구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일터에 간다. 아무것도 모른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 일하다 죽을지도 모르는 일을 한다. 그런 일을 시킨 사람은 어른이다. 어른”이라고 말했다.

故김용균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는 “올해 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된 이후 오히려 반복되는 산업재해 사망 소식에 마음이 참담하다”며 “그런데도 경영계는 법 시행령에 자신들의 의무와 책임을 축소하는 내용을 넣어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김미숙 대표는 “자식을 잃은 아픔은 부모를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강력한 분노도 만든다”며 “모든 일하는 이들이 안전한 세상을 우리가 함께 만들자. 행동으로 똑똑히 보여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추모문화제를 마친 이들은 한 줄로 서 회색 컨테이너 모형 위에 빨간 장미를 꽂고 이선호 씨의 죽음을 애도했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mskang@laborplus.co.kr
13일 저녁 아들의 추모문화제에서 눈물을 쏟는 이재훈 씨를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 위로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mskang@laborplus.co.kr

애도의 줄 옆에 선 이재훈 씨는 이내 눈물을 쏟았다. 아들이 “한 번만 더 보고 싶다”며 우는 그 옆엔 김미숙 대표가 섰다.

“싸울 거예요.” (이재훈)

“그럼요. 싸워야죠. 얼마나 소중한 자식인데··· 자식을 그렇게 엉망으로 죽인 걸 어떻게 용서할 수가 있어요.” (김미숙)

추모의 줄이 끝난 뒤 마지막으로 컨테이너 모형 사이에 끼어 누운 장미를 꺼내 바로 꽂은 이재훈 씨는 사진 속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선호야, 눈 크게 뜨고 있어. 아빠가 싸워줄게.”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mskang@laborplus.co.kr
13일 저녁 열린 故이선호 씨 추모문화제에서 이재훈 씨는 사진 속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울었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mskang@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