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기온 상승, 노동조합의 당면 과제
평균기온 상승, 노동조합의 당면 과제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1.11.01 11:14
  • 수정 2021.11.01 1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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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탄소중립위원 95명 중 노동계 인사는 ‘1명’
“노동조합이 기후위기 논의 이끌려면 의식적 노력 동반되어야”

10월 29일 충남 당진시는 시청사 정문 출입구에 기후시계를 설치했다. 시계에 표시된 시간은 약 7년. 산업혁명 이전보다 지구 평균기온이 1.5℃ 상승하기까지 남은 시간이다. 국내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손꼽히는 지역인 당진시에는 석탄 화력발전소가 밀집해있다. 당진시는 “국가적 기후위기 극복에 대한 대응 의지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당진시청에 설치된 기후위기시계 ⓒ 당진시
당진시청에 설치된 기후시계 ⓒ 당진시

‘평균기온이 1.5℃’는 지구적 재앙을 막기 위한 수치다. UN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평균기온이 2℃ 상승하면 4억 명 이상이 여름철 극심한 불볕더위에 노출되고 10억 명 이상이 물 부족에 시달린다. 생물의 1/3은 멸종위기에 놓인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세계 195개국은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 1.5℃ 선을 넘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온실가스 감축은 필수 과제다. 비록 당진의 석탄 화력발전소들은 많은 양의 전기를 공급해 주고 있지만, 결국 폐쇄될 운명이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도 그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석탄발전량은 2017년 40.7%에서 2021년 36.7%로 매년 감소했다. 반면, 신재생 에너지는 2017년 5.7%에서 2021년 8.0%로 꾸준히 증가했다(매년 6월 기준). 정부는 2034년까지 석탄 화력발전소 28기를 폐지할 계획이다.

인류의 미래를 위한 길이지만, 이 변화를 마냥 달가워할 수 없는 이들도 있다. 석탄 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까 걱정한다. 남태섭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기획실장은 2034년이면 최소 43%의 발전소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비단 발전소노동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고탄소 산업’으로 분류되는 업종은 기후위기에 따른 산업전환이 불가피하다. 석유화학, 시멘트, 정유, 반도체, 디스플레이 노동자 등도 중장기적으로 고용위기를 겪을 우려가 있다. 친환경차로 대전환 중인 자동차산업의 경우, 완성차업체 노동자도 불안하지만, 부품사 노동자는 특히 심각한 고용위기를 겪을 우려가 크다. 내연기관 부품만 생산하는 기업은 존폐 자체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들 산업에서 일자리가 감축되면, 지역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석탄 화력발전이 밀집한 충남, 제철과 조선업이 다수 소재한 전남과 거제, 울산 등은 '기후 리스크'가 매우 큰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 기사는 10월 12일 열린 한국노총중앙연구원 ‘기후변화와 노동’ 토론회와 10월 21일 열린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 ‘기후위기와 노동’ 토론회를 토대로 작성했다.

노동계 빠진 산업전환 대책

얼마 남지 않은 시간과 국제 사회의 압박에 정부는 산업전환에 점차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10월 27일 국무회의에서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줄이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확정했다. 당초 계획보다 5%p높인 수치지만, IPCC 등 국제기준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환경단체 등에서는 감축 목표 상향을 주장하고 있다.

노동계에서도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정책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변화의 과정에서 노동의 참여를 보장하지 않는 것을 심각한 문제로 지적한다. 노동계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산업전환은 ‘정의로운 전환’, 즉 일자리 상실 위험을 줄일 수 없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언급되는 사례가 2050 탄소중립위원회 구성이다. 사용자를 대표할 위원은 다수인 반면, 노동계에선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만이 참여하고 있다.

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탄소중립 정책 이행 과정에 이해관계자의 광범위한 참여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그러나 2050 탄소중립위원회는 기업 측 참여자가 많고 노동자, 지역민, 국민의 참여는 굉장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동조합이 참여해서 기후위기를 초래한 기존 체재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후위기에 따른 산업전환 과정에 노동조합이 참여해야 사회적 갈등을 막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현우 연구기획위원은 “한국판 그린뉴딜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이로 인해 성장하거나 창출된 산업 및 기업, 일자리와 상대적으로 위축 및 소멸할 부문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 환경이 크게 변화하고 경제적 혜택을 누리게 될 부문과 이로부터 배제되는 부문 간 노사갈등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초래될 것”이라며 “따라서 노동조합은 주요 이해당사자로서 이에 대한 대응 방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관련 논의에서도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 논의 이끌어가는 각국 노조
“의식적인 노력 동반되어야만 가능해”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뉴욕을 강타했을 때, 병원노동자들은 피해 지역을 복구하고 부상자를 응급 치료했다. 상황은 열악했다. 강력한 태풍으로 단전과 단수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병원노동자들은 그제야 자신이 사는 지역 사회와 기후변화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 이후 북미 간호사 노동조합 등은 기후변화가 국민의 건강과 의료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며, 이를 노동조합의 의제와 정책 요구로 상승시키는 시도를 활발히 벌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사례처럼 기후변화는 한국 공중보건이 직면할 큰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기후위기가 산업 전방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노동조합의 소극적 대응은 아쉬운 부분이다. 아직까지 한국 노동계에선 기후위기와 관련한 활동이나 의제를 찾아보기 어렵다. 양대 노총에서 기후위기 관련 의제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노동조합은 일자리 위기를 체감하는 발전소와 일부 제조업, 나아가 친환경 교통을 주장하는 운수 분야 정도다. 총연맹의 한 관계자는 “그간 노동조합에서 기후위기에 무관심했던 측면이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기후위기 관련 내부 역량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노동조합이 기후위기 논의에 주체로 참여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김석 민주노총 정책국장이 10월 18일 열린 '기후위기 못 막는 2030감축목표와 2050시나리오 거부한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김석 민주노총 정책국장이 10월 18일 열린 '기후위기 못 막는 2030감축목표와 2050시나리오 거부한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이에 기후위기에 따른 산업전환 시대에 노동조합이 주체로 나서려면 내부 동력을 강화해야한다는 의견이 많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정의로운 전환이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통과에 대해서 조합원도 잘 모른다. 노동조합은 조직화로부터 힘이 나오는 만큼, 기후위기 관련 교육 시간을 확보해서 조합원과 공감을 형성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각국의 노동조합은 기후위기를 의제화하기 위해서 다양한 교육을 하고 있다. 벨기에 노동조합이 운영하는 조직인 RISE는 노동조합 대표자에게 환경 문제에 관한 인식을 제고하는 교육 사업을 펼치고 있다. 환경에 관한 게임, TV 방송, 노조 간 포럼, 현장 활동, 조언 등을 제공한다. RISE의 활동에 영향을 받은 노동조합들은 BRISE라는 브뤼셀 지역 노조 내 환경 인식 네트워크를 만들기도 했다.

세계 노동조합 연합체인 ‘에너지 민주주의를 위한 노동조합(TUED)’은 영향력 있는 노조 교육 자료를 개발하고, 뉴스레터를 배포하고, 토론을 장려한다. 이를 통해서 기후 위기, 에너지 빈곤, 토지와 노동 황폐화에 대한 솔루션을 촉진하고 노동자의 권리 보호에 주력하고 있다.

일상 사업을 통한 참여도 기후위기에 관한 관심도를 높일 효과적 방법으로 제시됐다. 이창근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조합이 관심 가져야 할 정책으로 작업장 차원에서 시행할 수 있는 사업을 꼽았다. 이는 민주노총 조합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후위기와 노동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에서 응답자가 가장 중요하게 꼽은 기후위기 대응 과제이기도 하다. 이들 응답자는 ‘작업장 에너지 이용 절감,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등에 노동조합이 주력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한 활동으로 영국 노동조합 TUC는 2006년부터 작업장의 에너지문제와 기후변화 의제 활성화를 위해 ‘녹색작업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 에너지 사용도 절감했으며,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탄소절감의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이끌었다.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활동으로 환경문제에 관한 관심도를 높인 것이다. 아울러 TUC 지역본부에서는 2018년에 지역 저탄소 전환 계획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노동자에게는 기후변화 관련 이슈를 알리고 사용자와는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논의를 끌어내고 있다. 김현우 연구기획위원도 이러한 ‘작업장 녹색화’ 사업을 노동조합의 제일 과제로 꼽았다.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은 “기후 정의. 정의로운 전환, 생태·사회 전환은 점차 노동조합의 핵심의제로 자리 잡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자연스러운 과정은 아니며 의식적인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조합이 기후위기 대응 논의를 주도하려면, 정부와 기업 주도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의 문제점 완화에 그치지 말고 노동조합의 자원을 적극 투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실업, 질병, 사고 등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내년 3월 시행될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 기후위기로 인한 산업전환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했지만,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국제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그리고 구체적이지 못한 ‘정의로운 전환’ 이행계획과 재정을 근거로 ‘기업을 위한 녹색경영, 녹색성장’이라고 비판한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노동조합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기후위기를 의제화할 때라고 입을 모으기도 한다.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 탁선호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다만, 노동운동이 기후정의운동으로 곧바로 도약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노동의 과제와 기후운동의 과제가 교차·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의제화하여 운동으로 만들어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