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계 바꾸기에 노사파트너십이 필요한 이유
임금체계 바꾸기에 노사파트너십이 필요한 이유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1.11.30 08:08
  • 수정 2021.11.30 1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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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혁신 네 번째 현장, 영진약품 주식회사
노사가 서로를 이해하는 힘이 일터를 변화시킨다

조금은 생소한 단어인 ‘일터혁신’은 노사가 힘을 합쳐 조직(기업)의 성과를 향상시키고, 노동의 질도 높이는 여러 혁신 활동을 뜻한다. 노사 모두에게 좋은 취지처럼 들린다. 그래서 이상적이고 이론으로만 실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노사 모두에게 좋은’이란 드문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꽤나 많은 일터가 드문 경험을 곳곳에서 겪고 있다. 그 경험을 만들어가는 데 노사발전재단이 일터혁신 컨설팅(9개 영역별)을 통해 돕고 있다. 일터혁신이 현장에서 실현되는 모습을 살펴보려 한다.

※노사발전재단의 일터혁신 9개 영역: 노사파트너십체계 구축, 작업조직·작업환경 개선, 고용문화개선, 임금체계 개선, 평가체계 개선, 장시간근로개선, 평생학습체계 구축, 장년고용안정체계 구축, 안전 일터 조성

왼쪽부터 김병규 영진약품 경영지원본부 인사실장, 박동하 영진약품노동조합 영업부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기자 gmson@laborplus.co.kr
(왼쪽부터) 김병규 영진약품 경영지원본부 인사실장, 박동하 영진약품노동조합 영업부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기자 gmson@laborplus.co.kr

일터혁신 현장 네 번째 방문지는 서울 송파구에 있는 영진약품 주식회사다. 1962년 설립된 역사가 오래된 기업이다. 2004년 KT&G에 인수됐고, 현재는 계열사로 있다. 의약품 원료 생산 및 다양한 의약품, 건강식품을 만들고 판매하고 있다. 영업조직과 생산조직을 갖추고 있으며, 공장은 화성과 전주에 있다. 총 640명의 임직원이 일하고 있다. 영업부 인원이 281명(44%)으로 비중이 가장 크고, 생산부 인원이 218명(34.1%)으로 두 번째로 많다. 임직원 평균연령은 37.6세, 평균 근속은 10년이다. 전체 인원 중 3040이 가장 많은 항아리 구조이다. 유노조 사업장으로 영진약품노동조합이라는 기업노조가 있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60% 정도다. 특이한 점은 영업부 조직률(65%)이 생산부 조직률(35%)보다 높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제약회사는 영업부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다. 전체적인 조직률이 높다보니 영진약품은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다른 회사들에 비해 반영이 많이 되는 편이다.

첫 통합형 일터혁신 컨설팅 사례
영진약품을 만나다

노사발전재단의 일터혁신 여러 사례 중 영진약품 사례는 두 가지 이유에서 눈에 띈다. 첫 번째는 500인 이상의 대규모 기업의 일터혁신 사례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일터혁신 사례는 100~199인 규모에 집중돼 있다. 따라서 대규모 기업의 일터혁신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다. 두 번째는 노사발전재단이 올해 처음 선보이는 집중육성 컨설팅 프로그램의 사례라는 점이다. 집중육성 컨설팅은 ‘기업 자체 혁신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 컨설팅, 이행, 정부지원 등을 종합 지원한다. 컨설팅 영역도 최대 3개에서 5개로 늘렸다. 또한 5개 영역 신청 시 각각 연계된 영역을 신청해 시너지를 높이는 효과를 노렸다. 예를 들어 임금체계개선 영역이라면 그에 따르는 평가체계 개선 및 평생학습체계 구축(교육훈련 시스템 구축) 영역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다. 즉 영진약품의 사례가 통합형 일터혁신의 효과성을 확인해볼 수 있는 사례라는 것이다. 박동하 영직약품 노동조합 영업부 위원장과 김병규 영진약품 경영지원본부 인사실장, 조성욱 영직약품 경영관리본부 인사부장을 만나 이야기 영진약품 일터혁신 사례를 들어봤다.

임금체계 개편의 필요성
‘하지만 당장은...’의 리스크

영진약품은 임금체계 개편 컨설팅을 핵심으로 두고, 평가제도와 고용문화(일가정 양립 등의 기업문화) 컨설팅을 연계했다. 임금-평가-고용문화의 밑바탕이 되는 노사관계를 혁신하기 위해 노사파트너십 체계 구축도 컨설팅을 진행했다. 그 외 독립적으로 안전한 일터 영역의 컨설팅을 추진했다.

임금체계 개편이 이번 컨설팅의 핵심이었는데, 영진약품이 임금체계를 개편하고자 했던 이유는 내외부적인 맥락이 다양하게 있었다.(영진약품은 오래전부터 호봉제, 퇴직금 누진제, 29가지에 달하는 수당 등의 임금 체계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기업 실적이 안정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2016년부터 영업이익이 하향곡선을 그리다 2019년 크게 증가했다가 2020년 다시 크게 떨어졌다. 김병규 실장은 “항생제 원료 수출의 일본 수출 비중이 높았는데, 계약기간이 올해로 끝난다”며 “올해 마지막이다 보니 내년도와 내후년도를 위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결국 영진약품이 오래 전부터 유지해오던 호봉제와 퇴직금 누진제로 인건비가 계속 증가함에 따라 경영진 입장에서는 대책이 필요했다. 외부적으로는 제약바이오 산업군에서 신약개발 및 연구 분야에 우수한 인재 유치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요인이 있었다. 경영진은 현행 임금체계로는 젊은 세대와 우수한 인력을 유인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과 함께 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 내다봤다.

노동조합도 합의해서 진행한 임금체계 개편이지만 처음부터 적극 찬성한 건 아니었다. 노동조합의 첫 의견은 장기적 관점에서 필요성에 동의하나, 임금이라는 주제 자체가 굉장히 민감하단 것이었다. 넌지시 임금체계 개편을 왜 하냐고 반문한 셈이기도 하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임금 저하나 고용 불안을 야기할 개연성을 우려했다. 물론 기존의 임금체계에 대한 노동조합의 고민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박동하 위원장은 “수당이 29개 정도 있다. 너무 많다 보니 컨트롤도 어렵고 어떤 수당이 있는지 조합원들의 관심도도 떨어졌다. 게다가 인사이동, 조직 개편할 때마다 개인의 수당 항목이 달라지는 불편함이 있고 그 때마다 손을 봐야 하나 관리 측면의 불편함도 발생했다”고 전했다. 이때까지 영진약품 노사가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의견 합의 수준은 ‘개편 필요성 상호 인식’ 정도였다.

노사파트너십 구축이
임금체계 개편에 중요한 이유

영진약품 노사가 임금체계 개편 필요성은 공동으로 인식했으나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서로 이해관계가 달랐고, 노동조합의 우려도 있었다. 컨설팅 진행은 해야 했지만 성공적으로 나아갈지는 미지수였다. 그래서 임금체계 개편에 골몰하기보다는 노사파트너십 영역의 컨설팅을 우선 시작했다. 영진약품 노사파트너십 컨설팅 추진의 주요 내용은 노사 공동의 목표를 수립해 공유하고, 목표달성을 위한 과제를 실질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노사공동기구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것이었다.

노사 공동의 목표를 수립하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도 노사가 함께 했다. 목표나 비전을 나누는 프로그램도 진행했지만 노사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위한 상호 이해의 시간이 노사에게는 인상적인 시간으로 남았다. 조성욱 부장은 “노사발전재단의 교육프로그램 중 노사 갈등관리 프로그램이 있는데, 노사가 워크숍을 같이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갈등관리 교육을 받는 것”이라며 “워크숍을 하면서 서로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고 컨설팅을 진행해보자는 쪽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했다. 박동하 위원장은 “노동조합은 회사 입장으로, 회사는 노동조합 입장으로 서로 역할을 바꿔서 한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며 결론을 내보는 프로그램이 좋았다”며 “상대방 입장에서 이야기도 해보고 들어도 보며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노사가 서로에 대한 역할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면서 노사 공동 목표를 수립하는 데 수월했다. 이를 바탕으로 영진약품 노사는 노사공동 혁신TF를 만들어 임금체계 개편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로 영진약품은 임금체계 및 수당 구성항목을 단순화해 기본급을 확대하고, 생산직을 제외한 성과연봉제를 도입 방안을 마련했다. 상당히 많았던 수당 항목을 직무수당 등으로 통합해 직무급 실현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 평가지표도 개선해 성과연봉제에 맞는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성과연봉제 시행에 따른 거부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성과에 따른 임금 차등 수준을 낮게 책정하는 방향을 고려했다. 또한 낮은 평가라 할지라도 기존 임금 수준보다 하락하지 않도록 설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일터혁신의 징검다리
의견 조율과 조직문화

영진약품 노사는 일터혁신 컨설팅 과정에서 의견 조율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았다. 일터혁신이라는 과정을 진행하기 위한 기본이었기 때문에 노사의 신경이 집중됐다. 의견 조율은 ‘노-사’뿐만 아니라 ‘노-노’, ‘사-사’ 사이의 조율까지 말하는 것이었다. 박동하 위원장은 “컨설팅에 대한 본사-영업-공장 다 생각이 다르다”며 “각자가 업무 방식이 다르고 각 조직에 따라 형성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측의 일터혁신 컨설팅 실무 담당 부서는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 경영 그룹의 의견 수위를 조절해야 했다. 노사가 서로 납득할 만한 수준의 합치된 의견을 만들기 위해서 노사의 의견 조율뿐 아니라 각자의 내부 의견 조율도 중요했다.

그렇다면 의견 조율을 어떻게 해나갔을까. 의견 조율의 왕도는 없었다. 부단히 의견을 듣고 안 되는 것은 왜 안 되는지 설득하는 작업이 있었다. 흥미로운 지점도 있었는데, 영진약품의 조직문화가 개방성이나 수용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례로 MZ세대를 주축으로 한 조직문화 개선 TF팀이 운영되며 결정된 사항들이 속속들이 영진약품 내에서 실행되고 있다. 직급별 호칭을 폐지하고 ‘님’ 호칭 문화가 자리 잡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레몬 챌린지를 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와 유사하게 지목된 사람이 레몬 하나를 다 먹으며 코로나19 극복을 기원하는 것이다. 비타민C 가득한 신 레몬을 코믹하게 얼굴 찌푸리며 먹으면서 코로나19로 침체된 조직 분위기를 올리자는 TF팀의 기획이었다. CEO와 노동조합 위원장도 챌린지 대상으로 지목돼 레몬을 먹었다. MZ세대로 이뤄진 TF팀의 기획 행사가 기성세대로부터 반감을 사지 않은 건 아니지만, 기성세대들도 동참하면서 즐거워했다는 게 영진약품의 설명이다. 이처럼 조직문화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은 특징을 가지고 있어 ‘노-사’, ‘노-노’, ‘사-사’ 사이의 의견 조율에 도움이 됐다.

일터혁신 성공의 핵심은
이해타산보다 문제 해결

영진약품 노사의 의견 조율에 대한 고민과 수용성과 개방성이 높은 조직문화는 일터혁신 컨설팅이 진행되는 데 가교 역할을 했다. 나아가 영진약품의 일터혁신 성공 요인은 문제 해결을 다른 것보다 우선했다는 점이다. 노사의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는 주제인 임금체계 개편이었다. 노사 각자의 실리만을 궁리했다면 임금체계 개편에서 대립되는 입장만 반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김병규 실장은 “노동조합이 허심탄회하게 동참했던 것이 가장 큰 성공 요인”이라고 했다. 이해타산만을 계산하기보다는 문제 해결을 우선 순위에 두고 노동조합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조합의 허심탄회한 참여를 만든 데는 경영진의 관점도 중요했다. 박동하 위원장은 “노사의 공동목표임을 강조하고, 누구의 책임을 떠나 우리 모두의 책임과 우리 모두의 일자리 문제라는 관점을 공유했다”고 설명했다. 노사 서로가 문제 해결을 우선에 두고 마음을 모으는 경험을 축적하다보니, 축적은 신뢰가 됐다. 신뢰는 영진약품 노사가 일터혁신을 끝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는 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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