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혁신, 하나부터 열까지
일터혁신, 하나부터 열까지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2.01.05 17:52
  • 수정 2022.01.0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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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흥미롭지 않은데, 기술만 바뀐다고 생산성이 오를까?”
뉴노멀‧탈탄소‧디지털 전환 시대, 일터혁신의 필요성

<참여와혁신>은 지난해 하반기 일터혁신 현장 5곳을 찾아가 기사를 냈다. 노동자는 노동생활의 질을 올리고 기업은 성과 향상을 할 수 있게 하는, 마치 서로 다른 방향으로 뛰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이상적인 취지의 일터혁신이 어떻게 가능한지 실제 사례로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다만 사례 중심의 이야기다보니 일터혁신이 무엇인지, 정부 정책 사업으로 지정된 맥락은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를 전달하는 데 부족했다. 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봤다.

ⓒ 클립아트코리아

일하는 방식의 변화로
생산성도 올리고, 노동의 질도 올리고

‘일터혁신은 이거야’라는 하나의 정의는 없다. 말 그대로 일터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에 관한 다양한 행위를 모두 포괄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터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지, 더 나은 방향이라는 게 무엇인지, 일터를 바꾸는 다양한 행위의 대상은 무엇인지에 따라 일터혁신이 뜻하는 뉘앙스에 차이가 생긴다. 결국 일터혁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마다 강조하는 지점에 따라 일터혁신의 의미는 달라진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 혹은 생산방식의 변화에 방점을 둘 수 있고, 생산성 향상을 위한 조직혁신에 방점을 둘 수도 있다.

그럼에도 통상적으로 일터혁신은 노동자와 기업 모두가 지속성장할 수 있는 일터로 변화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통해 ‘노동생활의 질*’과 ‘생산성 및 품질 수준’을 동시에 높이는 것이다. 이는 ‘일터 구성원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조직적 활동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여러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어떤 활동이 있는지는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의 일터혁신 컨설팅 사업 영역을 보면 일터혁신의 세분화된 내용을 알 수 있다. 일하는 방식 변화의 직접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작업조직‧작업환경 개선 및 안전한 일터 조성, 간접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임금체계 개선 및 평가체계 개선, 평생학습체계 구축, 노사파트너십 체계 구축 등이다.

지난해 하반기 동안 돌아본 5곳의 현장 사례도 마찬가지다. 다섯 사업장의 노사 모두가 지속성장할 수 있는 일터를 고민하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꾀하고, 처음이니 정부 지원 사업인 일터혁신 컨설팅을 받은 것이다. 다만 5곳의 사례에 비춰봤을 때 일터혁신의 의미는 조직혁신에 무게가 있다. 첫 번째 일터혁신 현장으로 찾아갔던 인천관광공사의 김준홍 노조위원장은 일터혁신에 대해 “생산성 향상, 디지털 전환 등을 위한 기술혁신도 일터혁신의 한 부분이라고 본다. 그러나 기술 혁신으로만은 역부족이다. 조직문화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세 번째 일터혁신 현장으로 찾아갔던 우일정보기술의 이정 부사장은 “안전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는 생산성도 안 나온다”고 설명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 발전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한 조직문화와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두 사람의 분석이었다.

*노동생활의 질 : 흔히 QWL, Quality of Working Life라 부른다. 즐겁고 살맛나는 일터 생활로 노동의 의미와 노동의 보람을 느끼는 것을 뜻한다.

세계적 논의 속 일터혁신

그런데 왜 일하는 방식의 변화인 일터혁신이 필요할까. 일터에 봉착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다. 5곳의 일터혁신 현장 역시 그랬다. 경영 환경이 나빠져 생산성 향상을 위한 방법들을 고민해야 했고, 비효율적인 작업 환경을 개선해야 했다. 한편으론 내부 갈등으로 직원들의 몰입이 저하되는 일을 해결해야 했다. 퇴직 예정 인원이 너무 많아 숙련 기술이 한 번에 사라질 위기를 극복하기도 해야 했다. 일터혁신이 사회적으로 등장한 역사적 맥락도 범주는 넓지만 비슷한 이유에서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세계 경제가 불안정했다. 경제 성장은 정체되고 물가는 상승했다. 생산과 소비가 원활하지 않았다. 그 여파로 여러 문제들이 각국에서 나타났다. 그 과정에서 구조조정이 큰 문제였다. 노동자들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심리 상태는 일터에서 몰입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전반적으로 나아질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이때 기존의 비용 절감형 경로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논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선 일터에서 인건비 이외의 비용도 줄여야 했고, 이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을 엄격하게 통제해야 했다. 이러한 저비용을 추구해 빠르게 큰 이익을 회수하는 방식은 생산성이라는 수치에서 나은 결과를 보이게 하지만 지속가능성이 없었다. 연장선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은 노동자들의 창의적인 노동으로 가능하다는 논의들이 나왔고 비용 절감형 일터를 바꾸자는 의미를 획득한 일터혁신이 세계 속에 등장한다.

유한킴벌리 사례로 시작된
한국의 일터혁신

국내 일터혁신 등장은 유한킴벌리 사례가 한몫했다. 유한킴벌리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구조조정과 외주화 카드를 꺼내지 않고 3조3교대제를 4조2교대제로 바꿨다. 동시에 평생학습체계를 구축했다. 이러한 유한킴벌리 일터 모델이 1997년 외환위기로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관심을 사회로부터 받기 시작하면서 일터 혁신 모델을 강구하자는 움직임이 나왔다.

움직임의 결과물이 2003년 11월 뉴패러다임포럼이었다. 포럼 이사장 중 한 명이 당시 유한킴벌리 사장 문국현이었다. 곧 이어 노무현 정부는 뉴패러다임포럼에 큰 관심을 가지고 관계부처, 뉴패러다임포럼과 회의를 가지고 정부 사업화하기로 결정한다. 정부 사업을 실현하는 기관을 한국노동연구원 내에 설치하고, 기관의 이름은 뉴패러다임센터로 정했다.

2004년 3월 설립된 뉴패러다임센터의 사업 목적은 “노동생산성 향상과 고용창출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새로운 고용형태 모델을 발굴‧보급”하는 것이다. 새로운 모델, 즉 기존 패러디임을 극복한 뉴패러다임을 제시한다는 뜻이었다. 기존 패러다임을 초과노동, 산재다발, 노사대립, 제조업 공동화, 일자리 위축, 경쟁력 약화 등을 초래하는 인건비 경쟁모델로 지칭했다면, 뉴패러다임은 적정노동, 안전한 작업환경, 노사화합, 양질의 일자리 창출, 새로운 경쟁력 창출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중심 모델이었다. 뉴패러다임 센터는 2004년 3월 풀무원을 시작으로 컨설팅 사업과 연구사업을 시작했다.

뉴패러다임센터는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서 고성과작업장혁신센터로 탈바꿈한다. 2008년 10월 노동부는 ‘작업장혁신 추진 5개년 실천계획’을 수립해 일터혁신과 관련된 정책 사업방향을 설정했다. 관련사업 담당 주무 부서를 노사협력정책국 노사협력정책과로 변경해 일터혁신과 노사협력을 연결시키려 했다.(이전 뉴패러다임센터가 2005년 고용보험으로부터 컨설팅 비용을 지원받을 때는 노동부 고용정책과가 센터의 주무 부서였다.) 노동부의 계획에 이어서 한국노동연구원 내 뉴패러다임센터와 임금직무혁신센터를 통합해 고성과작업장혁신센터를 만든다. 기업이 위기 극복과 재도약할 수 있도록 경쟁력 향상에 기여한다는 비전을 가졌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2010년 정부의 일터혁신 사업은 노사발전재단이 맡게 된다. 고성과작업장혁신센터의 모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의 노사 갈등이 누적되며 센터 사업에 영향을 미쳤고, 이명박 정부가 이런 모습의 한국노동연구원을 불신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지배적이다. 2010년 이후부터 일터혁신 정부 사업은 노사발전재단이 도맡아 하고 있다.

전환의 시대, 일터혁신이 필요하다

최근 대두되는 탈탄소, 디지털 경제로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특히나 이번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기술혁신은 급격하며 기업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기업은 기술혁신을 일터에서 구현하고 완성해야 하는데, 기술혁신의 구현과 완성을 위해 기업은 일터혁신 방안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기술이 변화하는 만큼 변화를 받아들이고 주도하는 주체(일터의 구성원)의 변화인 조직혁신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일터혁신과 결합돼야 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 대학 비즈니스혁신센터 분석에 따르면 기업의 혁신성과에 R&D와 ICT 투자를 통한 기술혁신이 25%를 기여하는데 비해 경영, 조직, 작업과 관련된 일터혁신의 기여도는 75%에 이른다. 일터혁신이 기술혁신의 레버리지로 작용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뉴노멀이라고 부르는 저성장 시대를 극복할 방안으로 일터혁신을 많은 나라들이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일터혁신은 작업장 수준의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수준의 의제로 논의되는 경향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탈탄소와 디지털 전환을 선도하고 있는, 그리고 저성장 시기에 먼저 도착한 주요 선진국들로 대표되는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등이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일터혁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제조업 르네상스 정책이나, 독일의 산업4.0(Industrie4.0)과 노동4.0(Arbeit4.0)이 그 일환이다.

산업로봇 사용률은 세계 1위
생산성은 하위권인 이유

일터혁신은 일터에서 생산성 향상과 노동의 질을 올리자는 다소 상반돼 보이는 이야기들을 하나로 엮어보는 시도이다. 세계적인 맥락이나 국내의 맥락 속에서도 두 가지를 엮으려는 시도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일터혁신 전문가는 “일하는 사람들한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어떻게 흥미를 줄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생산성 향상은 자동으로 일어난다. 효율화 기술 개선보다도 시급한 부분이다. 잘 논의되지도 않는 부분이다. 그러니 일은 될 수 있으면 안하려 하고 일 끝나기만을 바라는 것 아닌가. 그 속에서 기술만 바뀐다고 생산성이 오를까”라고 이야기했다. 일터혁신을 도모하는 현장에서 고민해볼 거리이다. 한국은 산업용 로봇 사용률이 세계 1위이지만, 생산성은 세계 하위권인 이유가 별다른 데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 참고 자료
노사발전재단, 일터혁신 컨설팅 사업 가이드(2021)
한국노동연구원, 월간 노동리뷰 통권 제19호(2020)
한국노동연구원, 일터혁신의 이론 및 실천에 관한 기초연구(2019)
한국노동연구원, 월간 노동리뷰 통권 제169호(2019)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기술변화와 작업장 혁신(2018)
한국노동연구원, 일터혁신의 정책과제(2018)
한국노동연구원, 일터혁신 지원사업의 평가와 발전 방안(2012)
한국노동연구원, 작업장 유형과 혁신 성과(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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