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②] 건강경영 위해 일터를 바꾼 회사들
[커버스토리②] 건강경영 위해 일터를 바꾼 회사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1.08.06 00:10
  • 수정 2021.08.0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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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몸과 마음 지켜 기업 성과로 환원”
“건강경영 성과 측정할 객관적 지표 필요”

건강경영, 화두가 된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직원의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국민과 노동자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건강경영’이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것을 시사해준다.”
작년 10월 한국노총에서 주최한 ‘자동차산업의 구조변화와 정책과제’ 토론회에서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위기가 노동자 보호를 위한 건강경영이 발전될 수 있는 기회를 높여주고 있다”면서, “노조는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 사회적 대화를 소집,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건강경영은 낯선 개념이다. 그러나 건강경영의 중요성을 고려해볼 때 앞으로 화두로 만들어나가야 할 의제일지도 모른다.

 커버스토리② 건강경영 사례를 살펴보다

건강은 크게 정신적 영역의 건강과 육체적 영역의 건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기준으로 건강경영의 영역도 크게 정신과 육체로 나눌 수 있다. 영역을 나눠보는 것은 사업장의 노동 형태에 따라 집중할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체로 감정노동자가 많은 사업장에서는 마음 건강, 힐링 등의 이름으로 건강경영이 이뤄진다. 중량물을 다루고 특정 자세를 반복하는 사업장, 위험 물질을 다루는 사업장, 소음 공정이 있는 사업장 등에서는 근골격계질환 예방 및 관리와 작업환경개선 등을 중심으로 건강경영이 이뤄진다. 물론 정신과 육체는 서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느 한 영역에만 치중해서는 건강경영이 성공하기 어렵다. 다만 집중할 분야가 다를 뿐이다. 노동자의 정신 건강과 육체 건강을 위한 경영 활동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사례를 살펴보았다.

사례1. 비티씨코리아서비스
감정노동자의 마음을 지켜라

2018년 설립된 비티씨코리아서비스는 고객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이다. ‘고객지원 서비스’라는 단어에서 이미 감정노동 사업장임을 짐작해볼 수 있다. 비티씨코리아서비스는 가상자산 거래소 플랫폼 상담, 디파이(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탈중앙화한 금융서비스) 상담, 가상자산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 상담 등 디지털금융 관련 상담 서비스를 위탁받아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전화, 게시판, 이메일, 채팅을 통한 다양한 방법으로 고객을 응대한다. 관리직군과 다수의 상담직군으로 구성돼 있다. 2021년 기준 60여 명의 정규직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사업장 소재지는 강남이다.

비티씨코리아서비스는 2018년에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2019년 초에 희망퇴직 및 대규모 인원 감축을 진행했다. 가상자산 시장의 침체로 회원 문의량이 줄어 일거리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시간당 응답 콜 수(CPH)가 급증했다. 업무량 급증으로 상담노동자들이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이는 바로 기업 경영활동에 영향을 미쳤다. 상담 서비스 품질이 저하됐기 때문이다. 저하된 서비스 품질로 문의 및 민원 상담이 더 들어와 업무량은 더욱 늘어나고 이는 다시 상담노동자들의 더 큰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상담노동자들의 높은 피로도와 직무 스트레스는 이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미 2019년 희망퇴직 후 고용불안에 대한 심리적 스트레스가 있던 터라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비티씨코리아서비스 경영진은 직원 면담을 실시했고, 대표이사가 간담회를 열어 임직원 모두가 회사 정상화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임을 공유했다. 그렇게 노사발전재단 일터혁신 컨설팅을 신청했다. 컨설팅은 2020년 5월부터 진행됐다.

노동자의 마음을 지켰더니,
기업의 성과로 돌아왔다

일터혁신 컨설팅에서도 감정노동자에 해당하는 상담사들의 과중한 업무 부담과 직무 스트레스는 기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터혁신의 중점은 감정노동자들의 직무 스트레스를 경감하고 예방하는 것으로 잡았다. 일터 내 체계를 노사가 새롭게 만들어 건강경영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우선 상담노동자들의 감정노동 수준을 평가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1:1 대면 심리 상담을 활용해 주기적으로 상담노동자들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면서 감정노동으로 겪고 있는 스트레스 수준을 측정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시기여서 비대면 영상 상담도 실시했다.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한 결과를 바탕으로 힐링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숲 체험 걷기, 명상과 요가 등 외부 활동을 지원하면서 노동자의 스트레스 완화와 스트레스 예방 활동을 펼쳤다. 플라워 테라피 형식으로 꽃꽂이를 통한 심신 관리도 한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낮추기 위해 3~4인으로 소규모 활동으로 전환했다. 비대면 힐링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번아웃 치료를 위해 컬러 테라피 영상 교육을 하기도 한다.

리프레쉬룸을 사업장 안에 마련했다. 자동 안마기도 설치했다. 코로나19가 급증한 시기에는 안마의자 공용 사용과 리프레쉬룸 사용을 중단하기도 했다. 대안으로 휴게실 스낵바 설치 등 기존 휴게시설을 강화했다. 직원보호프로그램으로 민원 및 장시간 통화 시 긴 휴식이 가능하도록 했다. 한편 코어타임(상담이 집중되는 시간)에 인력 재배치로 인력 활용도를 높여 개별 상담노동자들의 업무량 부담을 완화시켰다.

이러한 건강경영 체계를 마련함으로 직원들의 심리적 안정감이 일터혁신 이전보다 나아졌다. 상담 품질향상으로도 이어져 위탁사 콜센터 우수 품질 인증(KSQI, KSCQI) 획득하는 데 기여해 기업 신뢰도 역시 올랐다. 무엇보다 직원들의 사기충전과 업무 자신감 상승으로 직무 만족도가 높아진 것이 큰 성과다. 비티씨코리아서비스는 컨설팅을 통해 노동자의 건강이 서비스 품질에 영향도가 크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건강경영으로 지속가능한 기업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노동자 건강관리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투자

비티씨코리아서비스는 노동자의 건강을 기업 경영활동의 투자가 아닌 비용 지불로 인식하고 있다면, 우선 건강경영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위해 건강경영을 달성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모색해보는 걸 추천했다. 예컨대 근로복지넷의 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 노동자 지원 프로그램)를 통해 무료로 건강경영을 할 수 있다며 작은 시도부터 해보길 권했다.
* EAP: 기업의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노동자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사업장 기반 프로그램.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조직 관리, 노동자 건강, 알코올 및 약물 남용 문제, 정서적 문제, 직무 스트레스 등의 해결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

또한 건강경영을 위한 투자를 기업의 예산 계획에 포함해야 한다고 봤다. 즉흥적인 건강관리가 아닌 체계적이고 책임 있는 건강경영을 위한 방안이다. 계획적으로 건강프로그램을 운영해야 그 결과가 기업의 이익으로 돌아오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투자냐 비용이냐를 판가름할 기준을 만드는 작업이다. 비티씨코리아서비스에서는 계획적인 감정노동자 케어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예산안을 전년도에 사전 계획하고 운영한다.

비티씨코리아서비스의 향후 건강경영 계획은 구체적이다. 현재 코로나19에 대비하기 위해 검진 휴가 및 백신 휴가를 시행 중이다. 또한 서울서부근로자건강센터와 ‘우리회사 주치의’ 협약을 맺었고, 향후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등 다양한 전문가의 사내 상주로 노동자의 건강에 투자할 예정이다. 이에 따른 프로그램은 9월 이후부터 진행할 계획이다.

사례2. 월성전자
건강경영으로 몸을 지켜라

월성전자는 1996년 설립됐다. 인쇄회로기판(PCB)을 제조한다. 구리 회로 선이 도금돼 있는 녹색 플라스틱판이 PCB인데, 모든 전자제품에는 각 제품의 기능에 맞는 PCB가 들어간다. 월성전자는 인천에 소재하고 있으며, 총 180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그중 생산직 노동자가 135명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사회적 이슈인 산업안전에 더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건강이 더 중요시되면서, 월성전자 안에서도 작업환경을 안전하게 조성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PCB 제조업의 특성상 약품 사용이 많고 폐수 및 대기 환경오염물질을 배출하기 때문에,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작업환경 개선이 필요했다. 월성전자가 노사발전재단에 일터혁신 컨설팅을 신청한 이유다. 2020년 6월 말부터 20주 동안 일터혁신을 통한 작업환경 개선 활동이 진행됐다.

안전을 위한 작업환경 개선,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찾아라

일터혁신 컨설팅을 통해 달성한 가장 큰 작업환경 개선은 1급 발암물질 사용공정을 바꿔 산업안전에 다가섰다는 점이다. PCB 제조공정 중 무전해 동도금공정에는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치환제로 사용된다. 월성전자는 포름알데히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공정으로 완전히 전환했다. 공정 전환에 따른 비용이 만만치 않아 섣불리 전환할 수 있는 공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월성전자는 포름알데히드 사용을 줄이고 노동자 건강을 위해서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월성전자는 현장에서 바로 개선할 수 있는 것부터 작업환경을 바꿔나갔다. 검사기 운용 시에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안전커버를 닫을 수 있게 작업 방법을 교체했다. 소음 발생으로 인한 청각 장해를 방지하기 위해 안전보호구 착용 교육을 통해 소음 공간에서는 안전 장비를 반드시 착용하도록 개선했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염산 등 위험 물질 사용 시설에는 경고 표지 및 안전 수칙을 잘 보이게 부착했다. 배전 패널이 노출돼 있어 감전 및 누전으로 인한 재해 발생이 우려됐던 곳에는 안전보호판을 설치했다. 약품을 폐기하는 투입구 보호 커버도 보수해 약품 폐기 시 중대재해 발생을 예방했다. 시설물 보수나 교육 등 작업환경 개선 활동이 왜 이렇게 소소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은 것부터,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게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시설 개선이 안전으로 바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간접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자동화로 공정을 개선해 주야 2교대에서 3조2교대 체제로 노동조건을 개선했다. 흔히 말하는 맞교대가 노동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작업환경 개선을 통해 노동자의 건강 수준이 올라갔다. 월성전자는 노동자가 건강해지자 기업 성과로도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공정 실패지수가 25,000ppm에서 12,000ppm으로 줄어든 것이다. 절반이나 감소시킨 큰 성과였다.
* PPM : Parts per Million, 공정 불량률을 나타내는 단위. 백만 개 중 발생한 불량품 수. PPM 산출 공식은 총불량수/전체생산수 × 1,000,000

ⓒ 월성전자
ⓒ 월성전자

 

건강경영의 과학적 평가가 필요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자 건강 관리를 비용으로 볼 수 있다. 월성전자의 시선은 달랐다. “PCB 제조 산업은 제조 산업 중 3D에 속한다. 그래서 더욱 노동자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 건강에 대한 투자는 기업 자산으로 바로 연결된다”고 했다. 한편 “기업의 지불 여력에 따라 건강경영 정도가 달라지는 것은 현실”이라며 “그래서 더 투자는 기업이윤과 직결돼야 하고, 건강경영이라는 기업활동이 이윤으로 이어지는지 상관관계에 대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규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두 사례를 통해 ▲기업의 의지 ▲당장 할 수 있는 쉬운 활동부터 ▲사회적 관리와 지원 ▲건강경영 확산을 위한 객관적 지표의 필요성 등이 건강경영의 활성화를 위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