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③] 기업복지에서 건강경영 투자로
[커버스토리③] 기업복지에서 건강경영 투자로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8.06 00:15
  • 수정 2021.08.0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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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강경영 ‘취약’ 수준… 복지비 부담 증가 여력 없다?
​​​​​​​건강경영 비용 아닌 투자… ‘정확한 진단’과 ‘노동자 참여’ 전제조건

건강경영, 화두가 된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직원의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국민과 노동자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건강경영’이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것을 시사해준다.”
작년 10월 한국노총에서 주최한 ‘자동차산업의 구조변화와 정책과제’ 토론회에서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위기가 노동자 보호를 위한 건강경영이 발전될 수 있는 기회를 높여주고 있다”면서, “노조는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 사회적 대화를 소집,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건강경영은 낯선 개념이다. 그러나 건강경영의 중요성을 고려해볼 때 앞으로 화두로 만들어나가야 할 의제일지도 모른다.

 

커버스토리③ 건강경영, 비용이냐 투자냐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게 느껴집니다. 분위기도 그렇고 구조적으로 문제가 개선되긴 어려워 보여요. 퇴사 후 취업은 힘들다고 말리지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가장 먼저 아닐까 싶어서 고민입니다.”

익명의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의 글이다. 흔히 직장생활을 하면 일정 정도의 건강은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기업의 규모가 작을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커진다. 한국의 기업들은 노동자의 건강에 관한 관심이 크지 않다. 한국은 건강경영의 불모지다.

한국의 건강경영 ‘취약’ 수준

기업 건강경영지수(Worksite Health Index·WHI)를 개발한 윤영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기업이 노동자의 건강을 체계적이고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건강경영의 실현이라고 설명한다.

WHI는 ① 건강경영에 친화적인 구조조직을 가지고 있는지 ② 건강경영을 위한 계획을 얼마나 수립하고 이행하는지 ③ 구성원의 건강 상태는 어떤지 ④ 산업안전보건 수준은 어떠한지 ⑤ 건강경영에 대한 평가와 피드백 시스템은 어떠한지 등 5가지 요소에 따라 건강경영을 평가한다.

윤영호 교수는 “최고경영자가 실제로 구성원의 건강 상태를 인지하는지, 경영철학과 비전에 건강경영을 담고 있는지, 실제적인 정책에도 언급되고 있는지, 또한 구성원 건강을 위한 시설·인력·장비 등을 구축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구성원의 건강 상태는 ‘신체적 건강’부터, 스트레스 등 ‘정신적 건강’,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 워라밸)이 보장된 ‘사회적 건강’, 일과 자아실현을 뜻하는 영적 건강까지 망라하는 개념이다. 구성원의 영양부터 운동, 상담, 여가, 자기계발까지 기업이 구성원의 건강을 다층적인 수준에서 체계적이고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더 나아지도록 한다는 게 건강경영의 핵심이다.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개개인에게만 맡겨두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건강경영은 미진한 상태다. 윤영호 교수가 2019년 152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국내 기업 건강경영 진단’ 결과를 살펴보면, 한국 기업의 건강경영지수는 100점 만점에 평균 36.3점을 기록했다. 100대 기업으로 대상을 한정했을 때도 53.8점에 지나지 않았다.

늘어가는 복리후생 비용, 여기서 더?

기업의 입장에서 건강경영은 부담스럽다. 건강경영의 범주가 식단, 운동, 상담, 여가, 자기계발 등 수많은 영역에 걸쳐 있고, 이를 통합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업이 복리후생 지출을 적게 하는 것도 아니다. 기업의 복리후생비는 매해 증가하고 있다. 기업 지출 중 복리후생 비용으로 산정되는 것은 간접노동비용 중 퇴직급여와 채용 관련 비용, 법정노동비용(4대 보험료 등)을 제외한 법정 외 복지비용, 교육훈련비 등이다.

법정 외 복지비용에는 ▲주거비 ▲건강보건비 ▲식비(기업체 직접 운영) ▲교통·통신비 ▲보육지원비 ▲보험료 지원비 ▲자녀 학비보조 ▲휴양·문화·체육·오락비 ▲우리사주제 지원비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액 등이 포함된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하는 ‘기업체노동비용 조사’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월평균 1인당 법정 외 복지비용은 2016년 19만 7,000원, 2017년 21만 1,000원, 2018년 21만 9,400원, 2019년 22만 4,000원을 기록해 총 노동비용 중 4%대를 유지하고 있다. 3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 월평균 1인당 법정 외 복지비용은 2019년 기준 32만 7,800원으로 총 노동비용의 5%가량이다. 기업이 건강경영을 하기에는 여건상 부담스럽다는 게 빈말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기업이 건강경영에 대한 지출을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만 여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복리후생제도를 바라보는 한국 기업의 전반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8년 진행한 ‘기업 복리후생제도 발전방향’에서는 “기업복지가 시작된 1990년대 기업의 복리후생이 임금 보완성 성격으로 설계됐던 경향이 지금까지 조금도 변화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어떠한 원칙을 가지고 기업의 복리후생제도가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30여 년 전과 같이 임금을 보조하는 수단에 복리후생제도가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노동자 건강에 대한 지출을 포함한 복리후생제도 전체가 비용으로만 인식된다.

윤영호 교수는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건강경영을 펼치는 걸 비용으로 생각한다. 노동자를 언제든지 교체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이라면서, “많은 기업을 상대해보면 실무선에서는 건강경영에 동의하지만, 실제로 이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아직은 여력이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김형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도 “노동자 건강은 기업에게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노동자 건강 문제를 비용으로만 인식하거나, 노동자 개인의 몫으로 돌려왔다”며 “결국 노동자 건강 문제는 사업주의 자발성에 기대기보다는 법적인 강제 측면에서 다뤄졌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건강경영 실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로 최고경영자의 관점 전환을 꼽는다. 최고경영자가 경영의 우선순위에 노동자의 건강을 두는 것을 사회적 책임이라고 여기며, 이 같은 활동이 곧 생산성 향상과도 직결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기업정책에도 반영해야 한다는 말이다. 달리 말해 노동자 건강에 사용되는 지출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건강경영에 투자하라

앞에서 설명한 윤영호 교수의 연구 결과처럼 건강경영에 들어가는 지출은 비용이 아닌 투자가 될 수 있다(커버스토리① 참조). 최근에는 노동자들의 인식변화에 따라 직장 선택 기준으로 임금 수준 못지않게 건강을 지킬 수 있는지도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고 있다. 앞서 지적했듯 여기서 말하는 건강도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 사회적 건강까지 망라한다. 워라밸 보장, 건강한 조직문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에서 2021년 5월 실시한 ‘2021년 청년일자리 인식 실태조사’를 보면, 구직 시 1순위로 고려하는 사항으로 일과 여가의 균형 보장이 27.9%로 1위를 차지했고, 임금 만족도가 25.9%, 건강한 조직문화, 사내분위기가 12.9%, 기업의 미래성장 가능성이 10.1%로 뒤를 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이 복리후생제도를 좀 더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기업 복리후생제도 발전방향’에서는 “이제까지 기업 복리후생이 기업 구성원의 몰입과 헌신을 유도하는 중요한 기제라고 이야기돼 왔지만, 기업전략이나 가치와의 연계 필요성에 대해서 논의된 적은 없다”며 “총보상 이론에서 복리후생이 보상의 중요한 요소이며, 더 나아가 근로자가 조직에 머무는 시간과 헌신에 대한 보상 기제라는 점에서 기업전략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총보상 이론이란 노동자가 임금에 대한 욕구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이 원하는 성과로 나타나길 원하는 능숙함(Competence) 욕구 ▲다른 구성원들과 관계 맺기를 원하는 관련성(Relatedness) 욕구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고 결정하고 싶은(Autonomy) 욕구 등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기업이 충족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론이다. 노동자의 다층적인 욕구를 기업이 충족시키는 일은 “궁극적으로 웰빙(Well-being)”, 요컨대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게 한다.

현재 임금보완성 수단으로만 사용되고 있는 한국 기업의 복리후생제도를 건강경영이라는 틀로 재편하여 ‘고용브랜드화’를 노려볼 수도 있다. 건강경영이 강조된 기업의 복리후생제도를 통해 기업 내부 노동자에게는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어 주고, 기업 외부 노동자에게는 ‘다니고 싶은 직장’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과학적 진단·평가와 노동자 참여 중요

최고경영자의 결단과 더불어 건강경영을 실제로 시행할 때 중요하게 고려될 지점은 과학적인 진단과 평가다. 과학적 진단·평가가 부재한 건강경영은 낭비를 초래한다고 윤영호 교수는 경고한다.

“과학적 설계가 되지 않은 건강프로그램을 시행하면 오히려 예산 낭비다. 기업의 유형에 따라서 문제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기업의 시스템을 평가하고 직원의 건강을 진단한 결과를 바탕으로 맞춤형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생산성이 올라간다. 사내에 그냥 피트니스 센터 하나 설치하는 것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최고경영자가 직원 건강을 신경 써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니까 선의에서 다른 기업을 따라서 도입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효과는 장담할 수 없다.”

이에 더해 노동자의 참여도 건강경영 실현에 중요한 요소다. 《건강 신드롬 Wellness Syndrome》(2016, 민들레)의 저자 안드레 스파이서(Andre Spicer)와 칼 시더스트롬(Carl Cederstrom)은 기업의 건강프로그램이 비용 낭비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 건강을 저해하고 고용에 대한 불안을 야기한다고 주장했다.

가령 기업 건강프로그램이 노동자에게 이루기 어려운 체중감량 목표치를 제시하고, 감량 여부를 인사평가에 반영해 업무에 방해될 정도로 체중감량에 집중하게 하고, 더 나아가 체중감량을 이뤄내지 못하면 ‘실패자’라는 조직 내 분위기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예방하는 방법으로 스파이서는 가장 먼저 “노동자에게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한지 물어보기”를 제시한다. 아무리 좋은 건강프로그램일지라도 노동자의 참여와 자발적인 동의 없이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윤영호 교수도 건강경영 실현에 있어서 최고건강책임자(Chief Health Officer·CHO) 선임과 더불어 건강경영위원회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윤영호 교수는 “직원들이 어떤 건강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또한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도 직원들의 의사가 중요하다”면서 “참여와 책임의 문제가 있다. 직원들이 참여해서 그 결과에 책임감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강경영은 단순히 노동자가 건강해야 한다는 당위만 주장하지 않는다. 측정 가능한 비용 효과와 더불어 기업의 이미지를 더 좋게 만들 수 있기도 하다. 노동자와 함께 건강경영을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