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①] 아직은 낯선, 하지만 멀지 않은 ‘건강경영’
[커버스토리①] 아직은 낯선, 하지만 멀지 않은 ‘건강경영’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1.08.06 00:05
  • 수정 2021.08.09 14: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간극 메우려면 “일터 건강부터”
기업이 노동자 건강을 ‘경영할 때’ 생기는 변화는?

건강경영, 화두가 된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직원의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국민과 노동자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건강경영’이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것을 시사해준다.”
작년 10월 한국노총에서 주최한 ‘자동차산업의 구조변화와 정책과제’ 토론회에서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위기가 노동자 보호를 위한 건강경영이 발전될 수 있는 기회를 높여주고 있다”면서, “노조는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 사회적 대화를 소집,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건강경영은 낯선 개념이다. 그러나 건강경영의 중요성을 고려해볼 때 앞으로 화두로 만들어나가야 할 의제일지도 모른다.

커버스토리① 노동자 건강을 경영하다

우리 사회에서 ‘건강영영’은 아직 낯선 개념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장기화와 반복되는 중대재해, 산업재해 등으로 일터에서의 건강과 안전이 핵심 가치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건강경영이 화두로 떠오를 때가 머지않은 것이다.

말만 100세 시대,
한국인은 건강하지 않다

우리나라 기대수명(해당연도 출생아가 앞으로 살 것으로 기대되는 연수)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위국에 속한다.

지난달 보건복지부는 OECD에서 7월 2일 발표한 ‘OECD 보건통계 2021’의 주요 지표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및 각 국가의 수준을 분석했다. OECD 보건통계는 건강 수준, 건강 위험요인, 보건의료 자원, 보건의료 이용, 장기요양 등 보건의료 전반의 통계를 담은 데이터베이스다.

보건복지부 분석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83.3년으로, OECD 국가 평균인 81년보다 2.3년 길었다. 기대수명이 가장 긴 일본(84.4년)과는 1.1년의 차이를 보였다. 기대수명은 생활환경 개선, 교육 수준 향상, 의료서비스 발달 등에 의해 늘어나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대수명이 OECD 평균보다 높고, 매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는 건 긍정적으로 볼 일이다.

하지만 건강수명은 기대수명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82.7세였는데, 같은 해 건강수명은 64.4세로 조사됐다. 건강수명은 기대수명에서 질병이나 사고로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기간을 뺀 것으로, 건강한 상태로 살 수 있는 수명을 말한다. 2018년 통계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 18.3년을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보내는 셈이다.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기대수명은 점차 높아지는데 건강수명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점점 커지는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간극을 메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우리 건강을 결정하는지’를 따라가 보면 된다. 1974년 건강 결정 요인을 제시한 라론드(Lalonde) 보고서는 “사람의 질병과 사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생활방식이며 이는 전체 영향력의 60% 이상을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흡연, 음주, 신체활동, 식습관 등의 생활습관이 질병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뜻이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유전(5%)과 의료(10%)보다 건강습관(30%)과 사회적 조건(55%)이 건강을 결정한다”는 비슷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건강 유지에 필요한 습관이 유전적 요인과 의료적 요인보다 더 중요하다는 게 공통 목소리다. 여기서 강조한 ‘건강·생활습관 등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다시 따라가 보면, 이정표는 한국인이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일터’를 가리킨다.

“일터는 건강하고 안전해야 한다”
사회 분위기↑

일터 건강은 위에서 한 이야기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의 등장과 장기화는 기업에게 감염병으로부터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를 남겼다. 지난해 코로나19 집단감염을 낳은 일터의 공통점은 매서운 코로나19 확산세 속에서도 구성원의 안전과 건강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구로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 집단감염과 쿠팡 부천 물류센터 집단감염이 대표적이다. 두 곳 다 각각 150여 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시간이 지나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된다고 하더라도 어떤 감염병이 언제 또다시 창궐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때를 대비하기 위한 매뉴얼 마련 역시 기업 생존에 필수적인 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평택항에서 발생한 고 이선호 청년노동자 사망 사고, 광주 붕괴 참사 등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중대재해와 노동 과정에서 업무상 일어난 사고로 인한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 피해인 산업재해, 직업병에 대한 경각심 역시 날로 높아지고 있다. 노동계와 경영계 양쪽 모두에게 비판을 받고 있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일터에서 사람이 죽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는 여론에 힘입어 지난해 말 제정됐다. 다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진정한 의미의 일터 건강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는 상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내년 1월 27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건강경영,
“노동자가 건강한 것이 기업에도 이득이다”

물론,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다. 그렇지만 “일터는 건강하고 안전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기업은 노동자 건강을 나 몰라라 하고,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최근 벌어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쿠팡 탈퇴 등 소비자 불매운동 사례만 보더라도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지 못했을 때 그것이 기업에게 큰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도 확인됐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기업에게 노동자 건강은 ‘사회적 분위기가 이렇게 형성됐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챙겨야 하는 것인가? 노동자 건강은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기업이 지켜야 하는 하나의 규제밖에는 되지 않는 것인가?

이 같은 물음에 건강경영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노동자 건강을 챙기는 게 기업에게도 이득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건강경영은 기업이 경영 전략 중 하나로 노동자 건강을 바라보고, 일터에서 노동자 건강을 증진시켜 생산성 향상과 이윤 창출을 도모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나아가 지속가능한 경영과도 맞닿아 있다.

기업이 노동자 건강을
‘경영할 때’ 생기는 변화

건강경영은 기업 생산성에 노동자 건강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윤영호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업 건강경영지수(Worksite Health Index·WHI)와 결근율의 관계’를 꼽았다.

WHI는 기업의 건강관리 구조와 실행을 평가하는 도구로, 윤영호 교수 연구팀은 5개 영역 136문항으로 구성해 영역별로 0점에서 100점까지 수치화했다. 윤영호 교수가 지난 2016년 발표한 해당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동자 건강관리가 취약한 기업의 노동자일수록 건강 상태가 나쁘고 결근율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30개 대기업 건강관리 담당자 및 직원 2,433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해당 조사에서 5개 영역의 평균 점수는 60점으로, ▲구조조직(76점) ▲수요현황조사 및 계획수립(56점) ▲건강증진 및 질병 예방 프로그램(59점) ▲산업안전보건(54점) ▲평가 및 피드백(53점) 순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WHI 점수가 높은 기업의 결근율이었는데, WHI 점수가 높은 상위 50점 이상 기업은 그 이하 기업보다 결근율이 45%나 낮았다. 또한, 직장인이 규칙적인 운동(36%), 금연(36%), 일과 삶의 균형(23%), 적극적인 삶 살기(34%), 신앙과 종교 생활(20%)을 6개월 이상 실천한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결근율(20~36%)이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WHI 점수가 높을수록 신체적 건강(2.8배), 정신적 건강(2.2배), 사회적 건강(1.7배), 영적 건강(1.8배), 전반적 건강(2.0배)에서 양호한 결과를 보이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연구 결과가 1990년 미국에서도 있었다. 미국건강증진행위위원회에서 4만 3,888명(실험군 2만 9,315명, 대조군 1만 4,573명)을 대상으로 건강평가, 체중 관리, 금연 포상 등 포괄적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했더니 2년간 결근율이 14% 감소하고, 2년간 1만 1,726일 더 많이 작업하고, 1달러 투자로 3달러를 회수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윤영호 교수는 “이 외에도 이직률 감소, 업무 집중도 증가, 직무 스트레스 감소, 생산성 향상 등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 그 이후 추가로 진행된 다양한 연구를 통해 검증됐다”며 “직장인의 건강 상태가 개선되면 건강 악화로 인한 직접비용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결근율 감소 등 간접비용도 줄어들고, 생산성도 향상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직원 건강관리는 비용이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많은 기업이 노동자 건강을 챙기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기업에서 흔히 ‘건강복지’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비싼 종합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거나 회사 내에 피트니스 센터를 만드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건강복지는 대기업, 공공기관 등 ‘여력이 있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게 대부분이며, 노동자 개인이 자신의 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정도로만 작동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건강경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김형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건강경영을 이렇게 설명한다. “건강경영은 노동자 개인의 건강행태를 지원해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노동자가 건강 행위를 할 수 있는 지지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고 그 건강 행위를 지속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