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④] “건강경영 하고 싶어도 못한다” 소규모 사업장의 현실
[커버스토리④] “건강경영 하고 싶어도 못한다” 소규모 사업장의 현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1.08.06 00:20
  • 수정 2021.08.0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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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벌어지는 ‘건강 격차’… 몇몇 정부 정책 뒷받침하고 있지만
“건강경영의 주체는 기업” 건강경영 위한 사회적 분위기 형성돼야

건강경영, 화두가 된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직원의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국민과 노동자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건강경영’이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것을 시사해준다.”
작년 10월 한국노총에서 주최한 ‘자동차산업의 구조변화와 정책과제’ 토론회에서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위기가 노동자 보호를 위한 건강경영이 발전될 수 있는 기회를 높여주고 있다”면서, “노조는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 사회적 대화를 소집,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건강경영은 낯선 개념이다. 그러나 건강경영의 중요성을 고려해볼 때 앞으로 화두로 만들어나가야 할 의제일지도 모른다.

커버스토리④ 건강경영과 멀리 떨어진 소규모 사업장

지난 1월 8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 처벌, 5인 미만 제외?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확산법 거부한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건강경영은 기업이 경영 전략 중 하나로 노동자 건강을 바라보는 것. 때문에 건강경영은 기업의 선택 사항이다. 사업주가 건강경영에 대한 의지나 철학을 갖고 있다면 작은 거라도 건강경영을 실천할 수 있겠지만, 반대일 경우 해당 사업장에서 건강경영을 만나보기 어렵다. 또한, 건강경영에 쓰일 비용을 부담스러워 하는 소규모 사업장 등은 사업주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건강경영을 실천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때, 건강경영 여부에 따른 ‘건강 격차’가 발생한다.

건강경영의 ‘ㄱ’도 꺼내기 어려운 현실

노동자 건강을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 기업에게 노동자 건강은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건강경영에 대한 사업주의 자발성을 기대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이는 건강경영의 중요성과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건강경영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 건강과 안전을 기업의 선택 사항으로만 둘 수는 없다. 정부에서는 법을 통해 기업이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영역’을 마련해놓았다. 이 최소한의 영역을 제외한 부분이 앞에서 언급한 사업주의 의지와 철학으로 채워진다. 건강경영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기업, 공공기관 등 대규모 사업장, 이윤 창출 기업 등은 건강경영을 보다 쉽게 실천할 수 있지만, 소규모 사업장, 중소·영세기업, 사내하청업체 등에서는 건강경영의 ‘ㄱ’도 꺼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문제는, 작고 어려운 사업장일수록 일터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건강경영이 불가능한 곳에서 노동자들의 건강은 더욱 위협받는다.

영세 사업장일수록
노동자 건강관리 취약해

이진우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 센터장은 지난달 16일 ‘제2차 경기도 노동보건 포럼’에서 “50인 미만 영세 소규모 사업장은 열악한 작업환경과 근무 조건으로 노동자 건강관리가 취약하다”며 “전체 노동인구의 60% 이상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산업재해의 80% 이상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17년 근로환경조사에 따르면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주 45시간 이상 일하는 비율이 높았다.(10~49인 사업장 36%, 2~9인 사업장 51.8%) 안전보건대표자 또는 안전보건위원회가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2~9인 사업장 95.8% ▲10~49인 사업장 82.7% ▲50~249인 사업장 67.4% ▲250~499인 사업장 59.6% ▲500인 이상 사업장 43.9%로 조사돼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안전보건을 다루는 담당자가 부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회사 내 안전 조직 또는 안전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창구가 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높았다.(▲2~9인 사업장 94.1% ▲10~49인 사업장 75.2% ▲50~249인 사업장 57.3% ▲250~499인 사업장 48.8% ▲500인 이상 사업장 34.3%)

또한, 전체 재해자의 33.3%(2만 2,694명), 산재 사망자의 35%(231명)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나온다는 것 역시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2020년 9월 기준) 그럼에도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됐는데,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해당 법이 중소기업까지 적용될 경우의 사업주 어려움을 주장하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의견을 수용한 것이라고 그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렇듯 여력이 없고 비용이 부담된다는 이유로 국가에서 제정한 법 테두리 안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사업주의 의지로 건강경영을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이때 사업장과 노동자 간에 심각한 ‘건강 격차’ 문제가 발생한다.

김형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 건강경영 현주소에 대해 “건강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쉽게 말해 여력이 있는 기업과 없는 기업의 편차가 너무 크다. 우리가 흔히 대기업이라고 부르는 원청에서는 원청 정규직을 위해 건강하고 안전한 노동환경을 마련하지만, 그 과정에서 협력업체는 원청의 이윤 창출을 위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불안정하고 불편한 노동을 한다. 이런 상황에 놓인 협력업체에게 ‘건강경영이 기업에게도 좋은 거니까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협력업체를 통해 많은 이윤을 얻고 그 이윤으로 원청기업이 원청 직원만을 위한 건강경영을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건강경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소규모 사업장, 중소·영세기업, 사내하청업체에서 건강경영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건강경영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기업이 더 많은 상황에서 건강 격차를 줄이는 일은 현재로선 정부의 몫이 더 커 보인다. 김형렬 교수는 “정부는 노동자들의 건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가 건강 격차라는 걸 알아야 하고, 건강 격차 해소는 지금 상황에서 기업 차원에서 하기 어려우니 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의 지원 정책이 필요한 건 맞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정부가 지원해줄 수 없으니 정부 지원 수준이 어느 정도 조정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진행하는 건강친화기업 인증제를 홍보하는 포스터(좌)와 경기도 노동자 건강증진센터에서 진행하는 우리 회사 건강주치의 사업을 홍보하는 포스터(우)

정책① 중앙 정부의 ‘건강친화기업 인증제’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2019년 12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을 근거로 올해 12월 4일부터 ‘건강친화기업 인증제’를 도입한다. 건강친화기업 인증제는 노동자의 건강증진을 위해 직장 내 문화와 환경을 건강 친화적으로 조성하고, 노동자 스스로 건강관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업에 정부가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다. 기업 인증을 위한 주요 심사지표에는 ▲건강친화경영(경영진의 의지, 직원 관리 등) ▲건강친화제도(근로시간, 휴가 제도 등) ▲건강친화활동(기업 내 건강증진 프로그램 등) 등이 포함돼 있다. 지난 5~6월에는 시범사업을 위해 참여기업을 모집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인구의 절반 이상인 54.4%가 경제활동인구이며(통계청 2019년 기준), 연평균 노동시간은 1,967시간에 달해 OECD 37개 회원국 중 세 번째로 긴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다.(1위 멕시코 2,137시간, 2위 코스타리카 2,060시간) 정부는 기업의 문화나 환경이 개인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보고 건강친화기업 인증제를 도입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제도 시행에 앞서 대기업·중소기업 노동자 2,000명, 기업 보건관리자 525명을 대상으로 대국민 인식조사를 하기도 했는데, 대부분의 직장인은 직원 건강관리를 위한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기업 내 건강증진 활동이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전체 노동자의 79.5%는 직원 건강관리를 위한 회사 차원의 건강증진 활동이 ‘중요하다’고 응답했으며, 소속 직장에서 건강증진 활동 및 프로그램 시행 시 참여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노동자 비율은 94.7%를 기록했다. 이어 건강증진을 위해 필요한 활동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신체활동(52.8%), 정신건강 관리(48.5%), 영양·식단 관리(33.1%) 순으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복수응답 가능)

정책② 지방 정부의 ‘우리 회사 건강주치의 사업’

지자체 사업으로는 경기도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서 진행하는 ‘우리 회사 건강주치의 사업’이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자영업자, 소상공인, 특수고용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건강관리에 취약한 노동자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사업을 진행한다. 앞서 같은 사업(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건강관리)을 안전보건공단 근로자건강센터가 먼저 시작한 바 있지만, 이렇게 지자체에서 직접 지역 안전보건증진사업을 하는 건 경기도가 전국 최초다.

우리 회사 건강주치의 사업은 ‘경기도 노동자 건강증진 조례안’(2019년 4월 29일 시행)에 의거한 사업으로, 현재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과 파주병원이 사업을 위탁받아 병원 내 노동자건강증진센터를 설치·운영 중이다.

사업의 주요 내용은 세 가지로, 먼저 ‘사업장 위험성 평가’는 안전보건·작업환경 관리가 어려운 사업장을 대상으로 작업환경 위험성 평가와 환경개선 컨설팅을 진행하는 사업이다. 또한 ‘노동자 건강진단’을 통해 산업안전보건법 제130조에 따른 일반건강진단과 특수건강진단을 시행한다. 직접 찾아가는 검진버스 운영,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맞춤형 특수건강진단 시행 등이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사례관리’는 노동자들의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한 개인별 맞춤 관리 서비스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나아가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소규모 사업장 감염관리 사업으로 사업장 감염 컨설팅, 코로나 감염 교육, 감염 예방 물품 지원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기업 건강경영 위한 사회적 분위기 형성돼야”

노동자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정부가 여러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바라볼 일이지만,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건강경영의 주체는 결국 기업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사업장 간, 노동자 간 건강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노동자 건강관리 등에 꾸준히 관심을 갖되, 최종적으로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건강경영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올해 건강친화기업 인증제의 기대효과 중 하나로 ‘기업의 건강경영 장려’를 언급한 것처럼 정부는 이와 같은 정책이 지속해서 확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형렬 교수는 기업이 건강경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한다. “기업이 건강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는 상황과 노동자 건강을 만들어가려는 상황이 부딪혀 갈등 관계가 생길 텐데,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정부 규제나 정책을 통해 강제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반대로 사업주가 자발적으로 건강경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노동자 안전보건 문제를 챙기지 않았을 때 이것이 기업에게 큰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과 노동자 건강이 기업에게 경쟁력이 된다는 것을 꾸준히 설득하는 사회적 작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