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동자의 새해소망③] 부유하는 공단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을
[금속노동자의 새해소망③] 부유하는 공단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을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1.20 22:26
  • 수정 2022.02.14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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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은 파견 금지? … ‘아웃소싱’ 만연한 공단, 법‧제도는 먼 이야기
보호수단은 노조 밖에 … ‘미조직 사업’에 나서는 이유

 

금속노동자의 새해소망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한 가지씩 목표를 세운다. 평소 간절히 바라고 쉽게 이룰 수 없는 것들이 주로 새해목표로 세워진다. 그렇기에 새해목표는 새해소망이라고 바꾸어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금속노동자들의 새해소망은 무엇일까? 작은 공단 노동자의 권리 보장, 안전한 일터 보장, 불법파견 철폐, 교섭창구단일화 폐지, 원하청 불공정 거래 근절, 외투기업 규제 등이 간결하게 말하자면 ‘노동기본권 실현’이었다. 금속노조가 ‘새해목표’로 이뤄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금속노동자들의 간절한 새해소망을 들어봤다

금속노동자의 새해소망 ③ 노조가 절실한 공단 노동자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부평공단 전경, 빌딩처럼 보이는 건물은 사실 모두 아파트형 공장이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언뜻 보면 높은 빌딩들이 즐비한 이곳. 인천에 오랫동안 살지 않은 사람이면 아파트형 공장이 속속 들어선 부평공단이 공업단지라고 쉽게 생각하기 어렵다. 부평공단은 인천시 부평구 청천동 일대에 4단지, 부평구 십정동, 서구 가좌동과 미추홀구, 주안구에 5단지로 구성되며 약 2,000개의 작은 회사들이 즐비해 있다. 제조업부터 유통물류, IT기업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약 2만 6,000명의 노동자들이 부평공단으로 출퇴근한다.

이재영 금속노조 인천지부 부평공단지회 지회장은 부평공단에서 일하는 2만 6,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부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해고로 잘리든 물량이 달려서 잘리든, 뭐가 됐든 간에 결국 이 공단을 돌 수밖에 없는 조건이에요. 부평이든 조금 멀어도 주안이나 가좌든 일을 찾아서 계속 뺑뺑이 도는 거예요.” 법과 제도 바깥에서 부유하는 공단 노동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노동조합이라고 이재영 지회장은 생각한다. 그가 ‘미조직 사업’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언컨대 99.9%가 아웃소싱이에요“

부평공단지회는 이름만 볼 때 지역지회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DGF오토모티브라는 한국지엠 2차 협력업체 노동자를 가입 대상으로 하는 단위사업장지회다. 왜 이렇게 이름을 지었을까. 이는 파견직을 적극 활용하는 부평공단의 일반적인 고용형태와 무관하지 않다.

이재영 지회장은 2011년 회사 설립 직후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용보험상 그가 일한 기간은 약 2년에 지나지 않는다. 2020년 5월 10일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후에서야 그는 파견직에서 벗어나 정규직이 됐다. 제조업에서 파견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은 부평공단에 통용되지 않는다. 이재영 지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아웃소싱 업체 통해서 파견직을 사용하거든요? 노동조합 만들기 전에 우리도 아웃소싱 업체가 총 8곳이었어요. 소속이 다르다 보니까 같은 공장에서 일해도 월급날이 누구는 20일, 누구는 30일이었어요. 또 연차가 없다든가. 산재가 발생해도 아웃소싱 업체랑 이야기하라면서 책임을 회피하기도 하고요. 근로계약도 보통 기간을 명시하지 않거나 364일 단위로 해요. 단언컨대 공단에 있는 99.9% 업체가 다 아웃소싱 쓸 거예요. 법은 뭐 있으나 마나고 고용노동부나 근로감독관도 이런 건 단속을 안 하죠.”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DGF오토모티브 공장 전경.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2017년 이재영 지회장은 해고를 당했다. 간접적 이유는 한국지엠에서 생산하는 차량의 단종, 직접적으로는 아웃소싱 업체에 의한 일방적인 해고였다. 60~70명 되던 직원이 15명대로 줄었다. 이때 이재영 지회장은 퇴직금을 정산받지 못했다. 당연히 있겠거니 했던 퇴직금은 근로계약상 근무일수가 1년이 안 된다는 이유로 증발됐다.

한국지엠에서 내려온 도급비는 1차 하청업체를 거치고, 2차 하청업체를 거친다. 여기서 또 한 번 아웃소싱 업체를 거친다. 2차 하청업체가 아웃소싱 업체에 쥐여준 도급비에서 아웃소싱 업체가 가져가는 몫은 노동자 1명당 평균 14%다. 이재영 지회장은 아웃소싱 업체의 수익이 “노동자들이 연차를 써야 되는데 못 쓰고, 휴업수당을 받아야 되는데 못 받고, 산재 처리해서 치료를 받아야 되는데 못 받는 금액”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작은 공단의 노동자들에게 ‘사각지대’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단언컨대 99.9%.” 일상적인 무법지대에서 공단 노동자들은 일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준 안정감과 당당함

2017년 해고됐던 이재영 지회장은 2019년 회사(당시 신화어셈블리)에 다시 입사한다. 한국지엠에서 트레일 블레이져 차종을 생산하면서 물량이 확보된 것이다. 당시 신화어셈블리는 200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했다.

그러나 2년여의 시간 동안 바뀐 것이 없었다. 여전히 회사는 아웃소싱 업체를 통해 노동자를 고용했다. 연차 강제 소진, 부실한 식단. 무료노동과 임금체불, 관리자의 폭언도 그대로였다. 6개월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주겠다는 약속은 거짓이었다.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금속노조 인천지부와 닿게 되면서 실제 설립으로 이어졌다.

노동조합이 설립되기 이전 식단. 당시 신화어셈블리 노동자 사이에서는 '개밥'이라고 불렸다. ⓒ 금속노조 부평공단지회
노동조합이 설립되기 이전 식단. 당시 신화어셈블리 노동자 사이에서는 '개밥'이라고 불렸다. ⓒ 금속노조 부평공단지회

“공단 내에서 선전전이 되게 많았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계속 물티슈를 받고 유인물도 받았죠. 상담을 몇 번 받긴 했지만 사실 노조를 만들 용기는 없었어요. 그러다가 진짜 ‘노조 어떻게 만들지’ 생각하니까 그때 받았던 유인물이 있었던 거죠. 연락을 하니까 ‘밥이나 먹자’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시작됐죠.”

2020년 5월 10일 마침내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노동조합 이름은 ‘크레아부품사지회’. 원청 크레아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지회는 출범과 동시에 ‘정규직 전환’을 주장했다. 여기서 정규직은 원청 크레아의 정규직이 아니라 아웃소싱 고용을 없애자는 것이었다. “2차 하청업체의 정규직이죠. 원청의 정규직이 아니고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저희는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있고, 연차를 정당하게 쓸 수 있게 됐어요. 안정감이 생기는 거죠.”

노조 설립 이후 이재영 지회장은 조합원들에게 ‘정규직’이라는 안정감 이외에도 “당당함”이 생겼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당당함’이란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고 자신의 권리를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졌다는 의미다.

“예전에는 뭐 시키면 공짜로 2시간씩 더 해줬는데 이제는 조합원들이 먼저 ‘우리는 주40시간이 원칙이다. 잔업 시키려면 동의서 갖고 와라’ 이렇게 직접 이야기를 해요. 스스로 부당하다고 여기는 걸 거부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당당해지신 것 같아요.”

사업장 울타리를 넘어서
“노동조합의 기본은 미조직 사업”

DGF오토모티브 공장 앞에 걸린 부평공단지회의 현수막. 노동조합명이 글로리오토부품사지회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그렇다고 노사관계가 평탄한 것은 아니었다. 노조가 만들어지고 2년여 동안 회사는 신화어셈블리에서 글로리오토, 글로리오토에서 DGF오토모티브 두 차례나 폐업과 신설을 반복했다. 이에 맞춰 노동조합의 이름도 크레아부품사지회에서 글로리오토부품사지회, 글로리오토부품사지회에서 부평공단지회로 변했다. 이재영 지회장은 노조명을 ‘부평공단지회’로 바꾼 배경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우스갯소리로는 또 폐업할 수도 있으니까 부평공단지회로 이름을 바꾸자는 말도 있었어요. 실제로는 저희도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까지는 정말 공단에 부유하는 노동자였고, 보이지 않는 손들이었어요.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테두리 밖 노동자들이었죠. 그런데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니까 부평공단 내에서 그런 노동자들이 엄청 많이 보이더라고요.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권리를 확실하게 지키는 울타리인데, 우리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공간을 넓혀서 좀 더 큰 울타리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부평공단지회의 이러한 목표는 앞서 지적했듯 부평공단의 노동자가 “단언컨대 99.9%” 동일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점과 연결된다. 나의 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올려야 한다는 점을 부평공단지회 조합원들은 경험칙으로써 체득하고 있다. “전 조합원이 미조직 활동가로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재영 지회장은 본다. 실제 부평공단지회는 미조직 사업에 큰 방점을 두고 있다. 공단 어디든지 떠돌며 부유하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건 법이나 제도보다 노동조합이라는 것을 그는 더욱 널리 알리고 싶다.

다만 그동안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미조직 사업은 총연맹이나 산별노조, 지역본부가 ‘해야 하는데 잘 안되는 일’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기업별 교섭체제가 뿌리박힌 한국에서 단위사업장 노동조합이 미조직 사업에 나서는 일 자체가 낯설다. 그래도 그는 “노동조합 활동의 기본은 미조직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항간에는 미조직 사업이 지치고 성과가 안 보인다고 해요. 단위사업장에서는 1년 중 8개월을 교섭하고, 4개월은 교섭 평가하고 이후엔 내년 교섭을 준비하니까 현실적으로 어렵죠. 그런데 공단 노동자들은 노조 만들기도 어려워요. 이들도 법이 어떻다는 건 알고 있을 거예요. 현실적으로 주변에 동료도 없고, ‘회사가 정말 바뀔까’라는 의문이 더 크죠. 이런 모습들이 오히려 미조직 사업을 우선해야 하는 이유라고 봐요.”

해고 걱정 없는 공단 만들기

노조 설립 이후 ‘정규직’을 쟁취한 부평공단지회이지만, 여전히 고용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22년 8월 이후 한국지엠 부평2공장의 생산계획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DGF오토모티브에서도 60여 명이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있다. 나아가 이재영 지회장의 우려는 단지 내 사업장에만 그치지 않는다.

“여기서 60명이 만약에 나가잖아요? 그러면 지입차 4대가 줄어요. 네 명의 일자리가 없어지는 거죠. 또 식당에 세 분이 계시는데 인원이 줄어드니까 한 분 나갈 거고요. 저희 공장에 납품하는 사업장에서도 물량 떨어지니까 자를 거고요. 저희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진짜 많은 곳이 걸려 있어요.”

이재영 금속노조 인천지부 부평공단지회 지회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이재영 지회장의 새해소망은 이렇듯 소리소문없이 잘려 나가는 공단의 보이지 않는 손들이 좀 더 많이 보이는 것이다. “상담이 더 많이 들어와서 인천지부나 부평공단지회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더 많이 들었으면 해요.” 그의 장기적인 목표는 “공단 노동자들이 고용불안 없이 일할 수 있는 것”이다.

“부평공단지회가 장기적으로 지역지회로 변모하거나 공단 전체를 아우를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해고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공단’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이 들어요. 지자체와도 협의해야 될 거고, 금속노조나 인천지부와 얘기를 많이 해야 되겠죠? 고용불안 없는 공단 만들기. 우리가 갖고 있는 숙제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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