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동자의새해소망⑥] “쫓기면서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금속노동자의새해소망⑥] “쫓기면서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2.27 21:07
  • 수정 2022.02.28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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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호’만은 될 수 없다는 사용자, 기대 없는 노동자
​​​​​​​노동 참여 통해 산재 근본적인 원인 없앨 수 있어

금속노동자의새해소망⑥ 안전하게 일하고 싶은 조선소 하청 노동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되고 나서 회사에 ‘조심합시다. 서로 경각심을 가집시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나오는 첫마디가 뭔 줄 압니까? ‘1호는 되지 말자.’ 그 얘기였어요.”
“2호면 괜찮다는 건가요?”
“그러니까요. 1호는 되지 말자. 타깃은 되지 말자.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달 27일 시행됐다. 시행 이후 여론은 사업주의 처벌과 면책 가능성에 쏠려 있다. ‘안전한 일터 만들기’라는 본래 취지는 뒷전이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현장이 더 안전해질 것 같으세요?” 조선소 하청 노동자에게 물었다. 질문을 접한 그는 어이없다는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오늘도 임금 안 나온 업체가 있어요. 임금도 안 나오는데 무슨 수로 안전을 챙기겠습니까? 하청업체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겁니다.” 물어본 이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법으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들은 안전한 일터를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노동의 참여는 어떤 모양일까. 노동의 참여가 현장의 위험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지난 15일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실에서 유최안 부지회장과 진성현 노안부장을 만났다. 두 사람은 거제의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에서 일한다.

진성현 노안부장(좌)과 유최안 부지회장(우).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판‧검사 그 다음이 용접사였죠”

유최안 부지회장은 탑재 용접사다. 작은 철판이 모여 커다란 배가 된다. 소조립된 철판이 모여 중조립, 중조립 된 철판이 모여 대조립, 대조립된 철판이 모여 P블록, P블록이 모여 MP블록, MP블록이 합쳐지면 마침내 온전한 배의 모습을 띤다. 탑재 용접사는 MP블록을 이어 붙인다. ‘조선소의 꽃’이라고도 불린다.

유최안 부지회장은 22년 전 거제로 내려왔다. “예전에는 우스갯소리로 판사, 검사, 용접사라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돈 하나 보고 왔죠. 일이 힘들어도 열심히 배워서 기량공만 되면 먹고사는 건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진성현 노안부장은 파워공이다. 용접이 끝난 배에 페인트를 바르기 전, 파워그라인더로 철판의 녹을 벗긴다. 에어공급호스(송기마스크)를 쓰고 ‘후드’라는 마치 녹슨 우주복 같은 작업복을 뒤집어 쓰고 일한다. 진성현 노안부장도 유최안 부지회장과 같은 이유로 17년 전 거제를 찾았다.

2000년대 초반 조선업 호황기. 조선소에 가면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말이 전국에 돌았다. 동시에 다소 일이 험하고 위험하다는 말도 덧붙었다. 그럼에도 조선소에는 사람들이 모였다. 소문과 현실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여기가 과연 사람이 일을 할 수 있는 곳인가. 의문이 들었어요.” 진성현 노안부장이 조선소의 첫인상을 말했다.

“후드 뒤집어쓰고 30cm 앞도 안 보이는 상황에서 아무런 안전 교육도 없이 그냥 일을 시켰죠. 그 당시에는 저는 초짜였으니까. 뭐 하고 뭐 해라.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현장에 투입이 됐어요. 후드에 에어를 공급하는 방법조차도 안 가르쳐줬죠. 막연하게 ‘후드 입고 그라인더 들고 여기서 여기까지 철판 까.' 이런 식으로 배웠어요. 지금은 신입사원들이 잘 안 들어오는데, 여전히 그런 식으로 일을 가르치는 현실이에요.”

유최안 부지회장은 취부(가용접) 보조로 일을 시작했다. “들어왔는데, 손가락이 없는 선배들이 많더라고요. 이가 몇 개 없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그는 얼마 있지 않아 취부에서 용접으로 직무를 바꿨다. 까딱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경험을 겪으면서다.

“취부 보조로 일하면서 유압 자키로 블록의 수평을 맞추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블록이 중심을 잃고 사람들 쪽으로 넘어왔어요. 그럼 피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취부들이 그 블록을 몸으로 막더라고요. 달라붙어가지고요. 재밌는 게 사람이 막으니까 블록이 안 넘어가더라고요? 하하. ‘이거 한 번만 못 막으면 죽겠구나’ 싶어서 용접사로 바꿨어요.”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이 2월 15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서문 앞에서 '하청노동자 2차 총궐기'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근골격계 질환은 기침 같은 고질병이죠“

사람이 죽었다. 그 이유로 중대재해 사고는 주목받는다. 부실한 안전관리 시스템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다만 사람이 죽지 않으면 그 원인은 지목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의 몸은 평소에도 위험 신호를 끊임없이 보낸다. 죽지 않고 일하는 것을 넘어 건강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진성현 노안부장은 이와 턱이 좋지 않다. 파워공은 수십 킬로에 달하는 에어공급호스를 들고 커다란 배 안을 돌아다닌다. 6Kg에 달하는 파워그라인더를 들고 좁고 불안정한 작업 공간에서 안간힘을 쓰며 일한다. 일할 때마다 이를 꽉 깨물 수밖에 없다.

“힘으로 하는 일이라 보니까 하도 어금니를 꽉 깨물어서 상태가 안 좋으신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역도선수처럼 악을 쓰고 일을 하다 보니까. 대부분 임플란트를 하고요.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서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채로 작업을 하다 보니까 타박상은 허다해요.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그라인더에 손을 다치는 것 같아요. 근골격계 질환은 그냥 기침 같은 고질병이죠.”

진성현 노안부장은 하청 노동자들에게 산재 문의를 많이 받는다. 자주 받는 문의 중 하나는 가령 ‘이런 부상’도 산재가 되느냐는 질문이다. “미묘하게 다치는 경우가 있어요. 그라인더 작업을 하다가 손이 1cm 정도 찢어졌을 경우에 산재를 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노동자들이 쉽게 결정하지 못하죠.” 회사에서는 통상적으로 공상 처리를 하고 2~3일 후 복귀하라고 한다. 아직 회복하지 못한 노동자는 아픈 손을 참으며 일한다. 잘 아물면 다행이지만 혹여 덧나면 노동자의 고민은 깊어진다. 아픈 몸으로 노동조합에 전화를 건다.

유최안 부지회장은 “지난해 기준 정규직 노동자의 산재 신청이 더 많았어요. 비정규직이 사람도 많고 좀 더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데 노출이 안 되는 거죠. 정규직‧비정규직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노동조합이 있는 집단과 없는 집단이 차이인 거죠”라고 말했다.

 

“운에 다 맡기는 것 같아요”

아파도 말을 못한다. 하청 노동자에게 산재 신청은 크나큰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 현실에서 안전 조치가 미흡하다고 ‘감히’ 말을 할 수 있을까? 침묵하는 이가 다수인 곳에서 말을 해도 모난 돌이 정을 맞을 뿐이다.

진성현 노안부장이 보여준 현장 사진. 누가봐도 발판이 필요해 보이는 장소에 발판이 없다(좌측 사진). 우측 사진에서도 한쪽은 발판이 설치돼 있지만 다른 한쪽은 그렇지 않다. 도장은 조선소 공정 중 마지막에 해당한다. 선공정에서도 똑같은 환경에서 일을 했다는 것이다. ⓒ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진성현 노안부장 : 저희가 이렇게 작업을 해야 됩니다. 사다리에 다리를 한 쪽을 걸쳐야 해요. 누가 봐도 여기 족장(발판)을 설치해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족장을 설치하려면 인건비가 들어가니까 사다리 하나만 설치해 놓은 겁니다.

유최안 부지회장 : 그런데 보세요. 도장은 마지막 공정이에요. 그 말은 이전 공정에서부터 계속 저렇게 작업을 했다는 거예요. 사람이 하는 일인데 누구는 발이 세 개 있는 게 아니잖아요?

진성현 노안부장 : 선공정에서 운 좋게 안 다쳤고, 후 공정에서 운 좋게 안 다치면 다음부터 이래도 되네? 하는 거죠

운에 다 맡기는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말했다. 아무리 강력한 원청의 안전 규정이 있다고 해도 납기일이 다가오면 다 흐지부지된다. 진성현 노안부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2010년 1월 2일 해양플랜트 쪽에서 두 분이 작업하러 들어가셨다가 아르곤에 질식하는 사고가 났어요. 그 후에 산소농도를 측정하는 업체가 생겼죠. 원칙은 산소농도를 측정하고 작업자들이 투입돼야 하잖아요? 당시에는 깐깐하게 봤어요. 그런데 그때가 지나니까 산소농도 측정하는 업체는 있는데. 측정하기 전에 벌써 작업자가 투입되는 상황이죠.”

“원청에서 이런 경우 작업을 하지 말라고 규정을 만든 게 있어요. 그런데 회사(하청)에서는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2인 작업을 해야 되는데 한 명만 투입시키죠. 조합원들이 작업거부를 해도 되냐고 상담이 좀 들어와요. 아시다시피 현재 조선소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까 있는 인력으로만 공정을 맞춰야 해요. 회사에서는 주52시간 핑계를 대면서 가령 9시간 동안 해야 될 일을 쉬는 시간 줄이고 안전 교육시간 통제하면서 공정을 맞추는 거죠. 사람은 적게 투입시키고 일은 더 많이 시키는 거예요.”

진성현 노안부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유최안 부지회장은 원청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원청에서 작업거부 하지 말라는 말은 안 하죠. 그런데 며칠까지 검사(공정 준수)는 받아야 된다고 하죠.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사고가 안 날 수 없는 거죠. 저도 그런 말은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돌아서면 그게 아니니까.”

안전을 지키면서 납기도 맞추라는 불가능한 요구 속에서 위험은 싹튼다. “사람이 죽어도 안 바뀌어요.” 유최안 부지회장이 담담히 말한다.

 

“노동조합 규모가 커지면
분명히 될 겁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는 두 사람은 현장의 안전을 위해 “노동조합이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사용자 입장에서 안전은 비용이다. 그러나 중대재해는 더 큰 비용이다. 동시에 안전은 노동자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비용을 따질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비용을 넘어서야 한다"고 유최안 부지회장은 말한다.   

“라이프라인 설치 같은 요구는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에요. 또 실질적으로 안전뿐만 아니라 작업 편리성과 생산성을 위해서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형식적으로 사인을 받기 위한 방식이니까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해요. 원인도 제거되지 않고요. 책임은 어차피 원청이 지지 않아요. 현재로서는 같은 원인으로 같은 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어요. 조선소의 고질적인 문제인 거죠.”

큰 비용을 소요하지 않고서도 사고의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 분명 있다. 두 사람은 노동이 참여할 때 그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형식적으로 “다들 알지? 알지? 하고 넘어가는” 안전교육도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원청의 참여도 필요하다.

“노동조합은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사측은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기 때문에 ‘벨트를 더 꽉매라’든지 노동자 쪽으로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어요. 여기에 대해서 노사 간 토론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봐요. 물론 돈이 들 수 있어요. 돈이 들 수가 있지만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손실은 더 크다고요. 그런데 하청업체 산안위 결론은 원청이 잡고 있다고 해요. 물론 노동조합 규모가 더 커지다 보면 분명히 될 겁니다. 업체별 노사협의회가 아니라 원청과 다 함께 하는 협의회를 만들면 됩니다.”(진성현 노안부장)

 

“쫓기면서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유최안 부지회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진성현 노안부장은 올해 새해소망으로 조선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바라는 ‘정규직 노동자의 모습’은 단순히 하청 노동자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그는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이 ‘여유’를 가지고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유최안 부지회장도 마찬가지다.

“작업 공간에 위험 요소가 있는지 없는지 파악하고 대처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현실은 일에 쫓기다 보니까 스스로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너무 바쁘게 일해요. 그런데 정규직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항상 여유가 있어요. 하청 노동자들은 너무 바빠요. 빨리 빨리 마인드가 너무 많고요.”(진성현 노안부장)

“조급함이 없어야 된다고 봐요. 검사 하루 안 받아도 문제될 거 없다. 그게 아니면 조선소 안에서는 사고가 끊어질 수가 없어요. 원청이 10일까지 하라고 해도 15일까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 15일까지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해요. 조선소에서 매년 사람이 죽었거든요? 그런데 요 근래 안 죽었어요.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요. 일이 없어서. 일이 많아지면 또 죽을 수밖에 없어요.”(유최안 부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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