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동자의새해소망⑤] “부품사 없으면 차 만들지도 못해요”
[금속노동자의새해소망⑤] “부품사 없으면 차 만들지도 못해요”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2.22 14:35
  • 수정 2022.02.23 2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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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전환 여력 없는 부품사, 말라가는 하청 노동자
​​​​​​​원하청 불공정 구조 바꿔야 부품사 산업전환 가능

금속노동자의 새해소망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한 가지씩 목표를 세운다. 평소 간절히 바라고 쉽게 이룰 수 없는 것들이 주로 새해목표로 세워진다. 그렇기에 새해목표는 새해소망이라고 바꾸어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금속노동자들의 새해소망은 무엇일까? 작은 공단 노동자의 권리 보장, 안전한 일터 보장, 불법파견 철폐, 교섭창구단일화 폐지, 원하청 불공정 거래 근절, 외투기업 규제 등이 간결하게 말하자면 ‘노동기본권 실현’이었다. 금속노조가 ‘새해목표’로 이뤄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금속노동자들의 간절한 새해소망을 들어봤다

금속노동자의새해소망⑤ 원하청불공정거래 해소

전북 익산시 익산공업단지에 위치한 서연인테크 사업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전북 익산시 익산공업단지에 위치한 서연인테크 사업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지금 하청업체 그대로 놔두면 정말 큰 위기가 올 거예요. 하청업체들 줄도산하면 차를 만들 수가 없잖아요?”

황의택 금속노조 전북지부 서연인테크분회 분회장은 인터뷰 내내 답답한 심경을 전했다. 서연인테크는 전북 익산산업단지에 자리한 버스 시트제조업체다. 현대차 전주공장의 1차 협력업체이자 서연그룹의 자회사다.

국내 버스 제조업은 2010년 중반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다 코로나19로 바닥을 쳤다. 원청조차 허덕이는 상황. 하청업체의 사정은 더욱 심했다. 황의택 분회장이 말하는 답답함은 직접적으로 일감이 줄어들어 반토막 난 조합원의 월급 명세표에서 나온다. 하지만 산업전환의 국면에 맞닥뜨린 지금 해결은 쉽지 않다.

원청이 허덕이면
하청은 말라간다

서연인테크는 2014년 이후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연인테크의 어려움은 원청인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의 상황과 맥을 같이 한다.

2014년은 현대차 전주공장 버스 생산량이 6만 9,577대로 정점을 찍었던 시기다. 현대차 전주공장의 손익분기점은 6만 대. 그런데 2014년 이후 현대차 전주공장의 생산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0년 3만 5,000여 대를 기록했다. 국내 버스 산업이 하락세를 보이던 와중에 코로나19라는 결정타를 맞았던 것이다.

원청의 수익성 악화는 하청업체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황의택 분회장은 경쟁체제가 도입됐다고 말한다. ‘복사발주’가 이뤄진 것이다.

“원래 서연인테크가 독점으로 공급했거든요? 그런데 이원화가 됐어요. 경쟁을 붙인 거죠. 관광버스 시트에 경쟁을 붙여서 지금은 물량이 많이 줄어든 상태예요. 현대차는 2016년부터 급격하게 연 생산량을 줄여왔어요. 이원화된 것도 딱 그 시기예요. 결국 가격 경쟁에서 저희 회사가 밀린 거죠.”

서연인테크의 현대차 전주공장 물량 의존도는 80~90%에 달한다. 에디슨모터스나 건설기계에 들어가는 시트를 제작하고는 있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원하청 전속 거래로 인해 원청의 위기가 하청업체로 쉽게 번진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하청업체의 거래선 다변화를 제시한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납품처를 가지면 한 업체에 위기가 와도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의택 분회장은 “투자해서 기술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만한 자금력이 협력업체에 없다”고 말한다.

“그걸(거래선 다변화) 못하는 게 현실이죠. 다른 완성차업체에도 독점하고 있는 협력업체가 있을 건데 거기에 또 경쟁해서 들어가야 하잖아요? 그렇다고 노동조합이 영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황의택 분회장은 결정적으로 회사의 사정이 나빠진 계기를 중국 동반 진출로 기억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해외동반진출은 부품업체 국내 고용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자동차부품업 노사관계 현황 기초분석>, 월간 노동리뷰, 정흥준‧박명준, 2020년 12월), 황의택 분회장은 승용차가 아닌 상용차 부문에서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다고 전했다.

“현대자동차가 해외 공장 이전을 하면 협력업체도 같이 따라가게 돼 있어요. 승용차는 잘 나갔어도 상용차는 다 망했죠. 여기서 적자 폭이 엄청 커지면서 회사가 많이 힘들어졌어요. 솔직히 사측의 입장을 물어보면 원청에서 단가 인상만 해줘도 문제 없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원청이 단가 인상을 했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우리 조합원들한테 다가오는 건 없잖아요? 다시 교섭을 해야 하는 거죠.”

더군다나 평균적으로 4년마다 신차가 나오는 승용차와는 달리 상용차의 신차 개발은 10여 년이 걸릴 정도로 느리다. 신차 개발 주기가 원하청 관계에서 중요한 이유는 단가 협상의 주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비전이 없다고 느낀 거예요”

국내 상용차 시장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최근 진행되는 전기차 전환은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답답함을 더한다.

“현대차‧기아에서 상용차를 만들지만 투자가 미비한 상태죠. 정부에서 산업전환 지원한다고 말은 많지만 보면 다 완성차 이야기잖아요? 협력업체에 대한 얘기는 없어요. 특히 상용차의 주요 부품은 해외에서 많이 들여와요. 원청에서 산업전환을 할 때 20~30년 함께한 협력업체에 지원을 줘야 해야 하는데, 그런 건 없죠. 기술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요. 전라북도에 지아트(자동차융합기술원)가 있다고 하지만 협력업체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게 없어요. 산업전환으로 직업 전환 훈련을 한다는데 대부분 식품산업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것 같고요.”

서연인테크는 최근 생산직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120여 명에 달하던 직원 수는 현재 60여 명대로 줄었다. 황의택 분회장의 고민을 더하게 건 이번 희망퇴직 당시 젊은 조합원 대다수가 나갔다는 점이다. 더불어 황의택 분회장은 서연인테크에 납품하는 2차 하청업체에서 사업을 더 이상 영위하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고 전한다.

“이번 희망퇴직으로 노동조합 조합원 평균 연령이 다소 늘었어요. 젊은 친구들이 너무 많이 나갔죠. 비전 없다고 본 거예요. 특히 부품사에서는 오히려 젊은 분들이 많이 나가고 있어요. 비전을 좀 만들어줘야 될 텐데. 계속 이렇게 가다 보면 비전은커녕 회사 유지하기도 힘들 것 같으니까. 나가는 거죠. 또 생산량이 줄면서 서연인테크에 납품하는 협력업체도 이 단가에 못 한다고 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황의택 금속노조 전북지부 익산지역금속지회 서연인테크분회 분회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황의택 금속노조 전북지부 익산지역금속지회 서연인테크분회 분회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원하청 구조 개선 없이는
부품사 산업전환 어렵다

위기의 징조는 분명하다. 그러나 뾰족한 대책이 있는 건 아니다. 황의택 분회장은 2015년부터 6년간 금속노조 전북지부 사무국장을 지냈다. 특히 마지막 임기(2020~2021년)에는 '상용차 산업 위기 대응과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전북대책위원회(상용차대책위)'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책위에서 황의택 분회장은 협력업체 노동자를 대표해 목소리를 냈다.

“문제점은 다들 알고 있지만 실제 개선을 위한 활동이 사실상 어려운 현실이죠. 솔직히 얘기하면 부품사에 대한 대책을 논의해도 답이 없는 현실 속에서 돌파구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의문이 많이 들었어요. 더구나 상용차 대책위에서도 올해에는 협력업체 자금‧기술 지원을 위한 조사를 들어가기로 했지만, 작년에는 솔직히 들러리 선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타타대우나 현대차 등 완성차 위주의 판단과 전략으로 상용차 대책이 이루어졌죠. 이해는 하지만 제가 부품사 소속이잖아요? 사무국장하면서 많이 답답했죠.”

홍석범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원하청 관계의 특징을 ▲수직적-위계적 공급사슬 ▲활발한 전속적 거래 ▲빈약한 하청업체 지원제도 ▲복사발주 경향으로 인한 부품사 간 높은 경쟁강도로 요약하면서 “자동차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직접 다루지 않으면 미래차가 본격화되는 시대에 이러한 문제들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산업전환협약의 의의와 후속과제>, 2월 17일 금속노조 토론회)

부품업체의 원활한 산업전환을 위해서는 원하청 불공정 거래로 대변되는 자동차 산업의 구조도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황의택 분회장의 새해 소망이 이뤄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금속노조가 부품사 대투쟁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승용차 중심의 대투쟁이 아나라 상용차 부품사도 함께할 수 있는 계획을 준비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에요. 아시다시피 현장에 일거리가 없고 생활임금이 너무 줄어서 조합원들이 많이 힘들어해요. 올해에는 사업장도 발전하고 조합원들이 건강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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