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동자의새해소망④] “은퇴 후에도 이 회사는 계속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금속노동자의새해소망④] “은퇴 후에도 이 회사는 계속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2.10 16:08
  • 수정 2022.02.22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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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는 폐업‧갑작스런 해고‧부담 없는 철수 그리고 먹튀 논란, 외투기업의 고질병
번복시키기 어려운 글로벌의 의사결정 … 산업정책적 개입 필요해

금속노동자의 새해소망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한 가지씩 목표를 세운다. 평소 간절히 바라고 쉽게 이룰 수 없는 것들이 주로 새해목표로 세워진다. 그렇기에 새해목표는 새해소망이라고 바꾸어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금속노동자들의 새해소망은 무엇일까? 작은 공단 노동자의 권리 보장, 안전한 일터 보장, 불법파견 철폐, 교섭창구단일화 폐지, 원하청 불공정 거래 근절, 외투기업 규제 등이 간결하게 말하자면 ‘노동기본권 실현’이었다. 금속노조가 ‘새해목표’로 이뤄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금속노동자들의 간절한 새해소망을 들어봤다

금속노동자의새해소망➃ ‘속수무책’ 외투기업 노동자

지난해 한국지엠 철수 당시 군산시청에 붙은 항의 현수막들.
2018년 한국지엠 군산공장 철수 당시 군산시청에 붙은 항의 현수막들. ⓒ 참여와혁신 DB

한국지엠은 2018년 2월 13일 군산공장을 폐쇄할 것이라고 알렸다. 군산공장 노동자들은 설명절이었던 당일 뉴스에서 회사의 폐업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5월 31일 정말로 군산공장은 폐쇄했다. 1,956명의 군산공장 노동자들 중 1,200여 명이 희망퇴직하고 나머지는 부평공장으로 전환배치됐다. 군산공장 비정규 노동자들과 협력사 노동자들은 그냥 일자리를 잃었다.

군산공장 폐쇄는 글로벌지엠의 사업재편 과정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난데없는 폐업. 갑작스런 해고. 부담 없는 철수. 그리고 제기되는 먹튀 논란은 정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정주교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조합원은 일련의 일들이 ‘외투기업’의 전형적인 문제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외투기업 노동자로서는 알면서도 뒤통수를 맞을 수밖에 없는 신세다.

뒤집을 수 없었던
글로벌지엠의 결정

군산공장 폐쇄 1개월 전인 2018년 4월 26일 글로벌GM과 정부 그리고 산업은행은 ‘한국지엠 정상화’를 위한 합의를 진행했다. 군산공장 폐쇄를 진행하되 글로벌지엠은 ‘향후 10년간 한국시장을 유지’하고, 산업은행은 8,100억 원을 한국지엠에 수혈한다는 내용이었다. 약속된 2028년까지 어느덧 6년여 시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의 질의를 통해 알려진 ‘향후 10년간 한국시장 유지’의 구체적인 내용은 ‘완성차 조립은 5년, 부품 및 KD(반조립) 부문은 10년’간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부평2공장은 당장 올해 8월, 부평1공장은 2025년, 창원공장은 2028년 이후 생산계획이 없다. 글로벌지엠과 우리 정부가 약속한 ‘10년간 한국시장 유지’ 조항은 한국지엠의 ‘경영정상화’보다는 ‘단계적 철수’라는 의미에 더 가까워 보인다.

정주교 조합원의 새해소망은 비교적 소박하다. 1990년 ‘대우국민차’(당시 대우조선공업 경형자동차사업부) 입사 이후 32년을 몸 바쳤던 소중한 일터가 은퇴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소박한 소망은 결코 쉽게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한국지엠이 글로벌지엠의 전기차 생산 과정에 합류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로벌지엠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생산을 전면 중단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지엠이 생산을 중단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기차 물량을 받아야 한다. 여기서 가장 큰 걸림돌은 한국지엠이 외투기업이라는 사실이다. 정주교 조합원은 금속노조 10기‧11기 동안 외투기업 담당 부위원장직을 52개월간 수행하기도 했다.

“글로벌지엠에서 한국지엠의 위상은 내연기관차의 마지막 생산 기지입니다. 현재 회사가 밝힌 생산계획을 아주 거칠게 말하면 부평공장은 2025년 이후, 창원공장은 2028년 이후에 전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위원장 임기 동안 이를 바꿔보고자 많이 노력을 했는데 뜻대로만 되진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글로벌의 계획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겁니다. 우리 정부나 산업은행도 마음대로 글로벌의 의사결정을 유도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닙니다. 2대 주주로서 한국지엠 지분 17% 가진 산업은행이라도 글로벌지엠의 의사결정을 뒤집기는 역부족입니다.”

정주교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조합원. 금속노조 10~11기에서 부위원장직을 역임했다.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산업전환 국면
흔들리는 한국지엠의 위상

군산공장 폐쇄는 막을 수 없었을까. 이는 글로벌지엠의 경영전략을 일부 수정해야 한다는 뜻과 같다. 그렇다면 어떤 맥락에서 글로벌지엠은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했을까.

정주교 조합원은 2012년경부터 군산공장 폐쇄 조짐이 보였다고 회고한다. 당시 유럽에서는 환경부담금을 통한 내연기관차 규제가 논의됐다. 내연기관차를 줄이고 전기차로 전환해야 한다는 ‘산업전환’이 본격적으로 화두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한 글로벌지엠의 대응은 기민했다.

“전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글로벌지엠이 제일 먼저 변화에 적응하는 기업인 것 같습니다. 글로벌지엠은 지난 10년 가까이 내연기관 생산을 줄여왔습니다. 2014년 메리 바라 회장 취임 이후 가속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도 메리 바라가 던진 ‘3ZERO’(탄소배출‧교통사고‧교통체증 제로)가 모든 자동차 회사의 화두가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의 일자리가 없어질지는 봐야 됩니다.”

그간 글로벌지엠은 북미‧해외를 가릴 것 없이 내연기관차 생산 및 판매를 점진적으로 줄여왔다. 해외 생산 및 판매 관련해서 보더라도 유럽시장 쉐보레 브랜드 판매법인 철수(2013년 12월), 러시아 공장 폐쇄(2015년 2월), 인도네시아 공장 폐쇄(2015년 6월), 호주 홀덴공장 폐쇄(2017년 10월),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2018년 5월), 호주 홀덴지엠 브랜드 철수(2020년 2월) 등이 있었다.

이 같은 글로벌지엠의 행보는 생산량을 확대해 수익을 극대화한다는 기존 전략에서 수익률 기준 포토폴리오로의 전환(수익률이 저조한 사업장의 구조조정)을 의미함과 동시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된 재원으로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에 투자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과정에서 특히 글로벌지엠의 유럽시장 철수는 생산물량 중 다수가 유럽 시장을 겨냥하는 한국지엠 군산공장에 큰 타격을 줬다. 군산공장 폐쇄를 앞두고 금속노조는 대안으로 ①공기업화 ②한국지엠‧르노삼성‧쌍용차 3사 합병을 주장했다. 하지만 두 대안 모두 채택되지 못했다.

“당시 공기업화가 화두였습니다. 산업연구원 연구자도 한국지엠, 르노삼성, 쌍용차까지 합쳐서 묶는 방식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현재 현대차‧기아의 독점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한국 자동차 산업이 경쟁력이 도태될 수 있다는 관점이었습니다. 그런 의견은 있었지만 실제로 시행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지금도 그 생각(3사 합병)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외투기업, 유치한다고 다가 아니다

정주교 조합원은 금속노조 부위원장으로 지내던 52개월 시간 동안 한국지엠을 비롯해 한국산연, 한국게이츠, 한온시스템 등 수많은 외투기업 문제를 마주했다. 그는 자동차 산업전환 과정에서 보이는 ‘자국 생산 흐름’에 빗대 외투기업의 생리를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외투기업이 진출하는 이유는 수익입니다. 무조건 수익이 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 전제 아래에서 논의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전기차 수익률이 내연기관차 수익률의 절반가량입니다. 아직까지 전기차 수요가 그리 크지도 않습니다. 일본, 프랑스, 미국, 독일 외투기업이 모두 물량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개발비가 많이 들고 수익성이 줄어든 점이 전 세계 자동차업계들로 하여금 전기차 생산을 자국에서 하게 합니다. 산업전환 국면에서 외투기업 철수를 어떻게 다룰 거냐. 답을 내리기 쉽지 않습니다.”

외투기업은 즉각적인 수익을 위해 투자한다. 장기적인 관점의 투자는 이뤄지기 어렵다. 이는 곧 대내외적으로 외투기업이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다면 언제든 철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외투기업의 본질을 조절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제도는 외투기업을 유치만 할 뿐이지 이렇다 할 견제‧조절 수단이 전무하다.

“외투기업에 대한 지원만 있고, 제재 수단이 없습니다. 법전을 다 뒤집어 봐도 없습니다. 많은 연구자들에게 WTO 무역협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외투기업 지원이나 제재 수단의 법률적 검토를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국제법상 다툼의 소지가 되기에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더불어 국회나 정치권에서는 외투기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습니다. 많은 인센티브를 주면서까지 국내에 외투 기업을 유치하려고 합니다. 이를 상징하는 게 현재 외투기업법입니다.”

한국지엠 부평공장 정문. ⓒ 참여와혁신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한국지엠 부평공장 정문. ⓒ 참여와혁신 DB

노동조합,
산업정책에 개입해야

정주교 조합원은 외투기업에 대한 조절기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산업정책적 관점이 반영돼야 한다. 한국 산업에서 어떻게 외투기업을 활용할 것인지와 더불어 외투기업의 탈선을 막을 수 있도록 사전적‧사후적으로 조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노동조합 혼자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책이 안 나오는 겁니다. 물론 노동조합 간부가 이렇게 얘기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원인을 알면 답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노동조합만의 힘으로, 개별 기업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산업정책에 개입해야 한다는 겁니다. 산업정책적으로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비단 외투기업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정주교 조합원은 산업통상자원부와 산업은행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2001년 대우자동차 파산 이후 글로벌지엠이 인수하는 과정을 똑똑히 기억한다. 당시 노동조합은 해외매각을 반대하며 ①공기업화 ②국내 매각을 주장했다. 1978년부터 1992년까지 대우자동차와 글로벌지엠의 합작회사 시절 겪었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선택이었다. 하지만 IMF를 겪은 당시 김대중 정부는 해외매각을 결정했다.

1999년 기아차 매각(현대차), 2000년 삼성자동차 매각(르노그룹), 2002년 대우자동차 매각(글로벌지엠), 2004년 쌍용차 매각(상하이차) 등 국내 완성차업계 재편 과정은 현재 현대차‧기아의 독점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산업 전문가들 사이에서 “외환위기 이후 단행된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과 구조개편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IMF 관리체제를 되도록 빨리 졸업하기 위해 대다수의 기업을 해외 매각하는 방식으로 처리를 했습니다. 산업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산업적 고려 없이 어떻게든 외화가 들어와야 한다는 생각에 치중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기조는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정주교 조합원은 말한다.

“2017년에 금호타이어 해외매각 저지 투쟁을 벌였습니다.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회사를 팔아야 되는데 국내에서 사려고 하는 기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도대체 산업은행의 역할이 뭐냐는 의문이 듭니다. 자동차에서 타이어가 없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를 중국에 팝니다. 쌍용차 사태를 겪고도 말입니다.”

“은퇴해도 이 회사는
계속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정주교 조합원은 외투기업의 성격과 국내에 들어오려는 이유에 맞춰 대응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외투기업이 국내에 투자하는 이유는 ▲기술 탈취 ▲경쟁기업 견제 ▲생산기지 활용 등 세 가지라고 말한다. 또한 외투기업의 성격을 순수한 사업 목적인지, 회사의 성장에는 관심 없는 투기 목적인지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6일 오후 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 권도혁 조합원이 '30년 흑자기업 일방적 공장폐업 외국계 먹튀자본 국회가 해결하라!' '한국게이츠 한국공장 폐업 후 중국산 부품수입 147명 집단해고 국회가 앞장서라' 피켓을 들고 1인시위 중이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2020년 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 권도혁 조합원이 '30년 흑자기업 일방적 공장폐업 외국계 먹튀자본 국회가 해결하라!' '한국게이츠 한국공장 폐업 후 중국산 부품수입 147명 집단해고 국회가 앞장서라' 피켓을 들고 1인시위 중이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한국게이츠는 2020년 6월 돌연 ‘흑자폐업’을 선언했다. 자동차 부품인 타이밍 벨트(고무 벨트)를 생산하는 한국게이츠는 1989년 ‘해외 생산기지’로 설립됐다. 그런데 한국게이츠가 생산하는 타이밍 벨트의 활용도가 낮아졌다. 타이밍 벨트가 승합차에는 여전히 필요했지만, 승용차에는 체인으로 대체됐다. 도태되는 부품을 언제까지 생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갑작스런 흑자폐업을 할 당위도 없다. 한국게이츠는 2013년 미국계 사모펀드 블랙스톤으로 주인이 바뀐 바 있다.

“한국게이츠는 국내에는 판매 법인만 남겨 놓고 생산 시설은 중국으로 이전하려 했습니다. 한국게이츠 뒤에는 투기자본인 블랙스톤이 있습니다. 산업적으로 한국게이츠가 생산하던 타이밍 벨트는 도태되는 부품이지만 아직은 필요합니다. 흑자폐업이 아니라 연착하는 방법을 쓰도록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외투기업이 국내에 들어오고 나갈 때 산업부 혹은 산업은행에서 6개월이든 1년이든 반드시 면밀하게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들어온 외투기업에 대해서도 관리가 필요합니다.”

외투기업이 야기하는 문제는 뾰족한 답이 없는 점에서 노동조합을 답답하게 한다. 정주교 조합원은 ‘퇴직자의 마음’을 말한다. 한 회사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정부의 역할이다. 또한 그의 소박한 새해 소망이기도 하다.

“이제 곧 은퇴해도 이 회사는 계속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퇴직자의 마음은 다 똑같을 겁니다. 내가 다녔던 회사가 계속해서 잘 돼서 은퇴 이후에 ‘나 저기 다녔어’라고 얘기하고 싶을 겁니다. 모든 퇴직자들의 소망 아니겠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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