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하는 언니들③ “노동현장이 성평등해지면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노조하는 언니들③ “노동현장이 성평등해지면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03.07 12:27
  • 수정 2022.03.07 1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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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날 인터뷰] 권수정·고은하·김은혜 금속노조 성평등 강사
“여성 사업은 18만 조합원이 대상” 기아차 등 전조합원 성평등교육

노조하는 언니들

이향춘, 김경신, 박미성, 이은정, 고은하, 권수정, 김은혜, 이병희, 이상미, 인숙교.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노조하는 언니’ 10명을 만났다. 이들은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 그러나 일터에서 겪은 상황을 덮고 넘어가긴 어려웠다. 임신한 동료의 아이가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건설현장에 여자화장실이 없어 곤혹을 겪고,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되고, 육아휴직을 썼다고 승진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일을 더 잘 하려면 일터가 바뀌어야 했기에 노동조합을 선택했다. 분투했던 언니들의 싸움은 일터를 넘어 세상을 바꿨다.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노동조합의 여성 사업은 여성 조합원만을 위한다는 착각이 있다. 여성 사업은 ‘소수를 위한’ 사업이라는 생각에 수많은 사안의 뒤로 밀려진다. 산별노조 내에서도 사업을 담당하는 국장 한 명이 있으면 다행이다. 이마저도 다른 사업과 겸임하며 여성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여성 사업은 여성들이 알아서 잘 하면 좋은 사업인 것이다.

권수정 민주노총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금속노조 18만 조합원, 민주노총 110만 조합원이 성평등 사업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여성 사업은 모두를 위한 사업이고, 노동조합 차원에서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다. 성평등 강사인 그의 꿈은 ‘금속노조 성평등 교육원’을 만드는 것이다. “노동현장이 성평등하면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분명히요. 그런데 지금까지 노동조합의 여성 사업은 센 언니들만의 사업이지, ‘우리 조직’의 일은 아니었어요. 조직이 더 집중해서 성평등 사업에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대한민국 최고의 노동자 성평등 교육원을 만들고 싶어요.”

사실 금속노조 성평등 강사단은 그간 다른 조직의 부러움을 받아왔다. 이들은 기아자동차 노사공동교육과정 중 사측에게 강사비를 받으며 전 조합원 2만 8,000여 명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한 경험이 있다. 무려 220회에 달하는 강의였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남한 사회에서 군대 이후 최대 집단 성폭력 예방 교육’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금속노조는 조직 사업장의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강사를 금속노조와 협의해 진행하기로 중앙교섭에서 합의하기도 했다. 노동조합 간부로 당선되면 3개월 안에 성평등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도 마련돼 있다. “성평등 사업을 확대시킬 일만 남았기에 우리의 미래는 밝다”고 입을 모은 권수정, 고은하, 김은혜 금속노조 성평등 강사와 대화했다.

왼쪽부터 권수정, 고은하, 김은혜 금속노조 성평등강사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우리가 우리 현실에 맞는
성평등 교육을 직접 하자”

김은혜 1년에 한 번씩 조합원들은 성평등 교육을 받아야 하고, 선출직 간부들은 3개월 이내에 받아야 하니까 교육 의뢰가 많이 들어오거든요. 그런데 외부 강사들의 강의를 현장에서는 어려워하는 경우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교육을 직접 뛰어다니자고 생각했어요.

권수정 금속노조가 2001년에 설립이 되었는데요. 2004년에 금속노조에 처음으로 조직 내 성폭력 사건이 보고됩니다. 그때 2차가해 개념을 규정에 집어넣었어요. 그리고 10년이 지난 2011년경 또 성폭력 사건이 발생을 했는데 처음과 똑같은 거예요. 여전히. 그래서 몇몇 동지들과 함께 ‘다른 방법이 없다. 우리가 교육을 받고 우리가 강사가 되자.’ 약간 도원결의 비슷하게 하고 성평등 강사 활동을 했던 것 같아요. 우리 현실에 맞는 교육을 노조 안에 있는 언니들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은하 저는 한국지엠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어요. 2016년에 둘째를 낳고 복직을 했는데 몇 개월 지나지 않아서 사내 성희롱 피해자가 됐어요. 피해자가 2명인가 더 있더라고요. 여기서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이게 또 누군가에게 가겠구나. 누구 하나는 멈춰야겠지? 그럼 난 뭘 할 수 있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성평등 강사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안내를 받았고, 그걸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제 이야기를 공유한 다음엔
반응이 바뀌는 게 느껴져요”

김은혜 저희는 강의 전에 사업장에 필요해 보이는 교육이 무엇인지 살펴요.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자체가 잘 안 됐다고 판단되는 단위는 기본 교육 위주로 하고, 조직문화 교육이 필요한 것 같으면 그걸 해요. 노래방 가서 도우미를 부르는 조합원이 있는 것으로 예측되는 조직이면 관련된 내용을 추가해서 하는 식이죠. 저는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은 노동권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많이 해요. 상대방이 불쾌함을 표현했을 때 그것을 멈추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문화와 맞닿아 있잖아요.

권수정 부담도 있죠. 민주노총 성평등 강사 양성 교육에서 해마다 30명씩 강사가 배출이 되는데, 교육생들의 질문에 대한 두려움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성평등 교육을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왜 우리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지’에 대한 항의가 많죠. 맨 앞에 앉아가지고 처음부터 씩씩대면서 듣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 말 많이 해요. 공감은 여성의 특성이 아니라 지성인의 특성입니다. 여자가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거 다 개뿔이다.

고은하 맞아요. ‘한 마디만 실수해봐라’ 이렇게 보시는 분들 있어요. 저는 처음부터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된 배경을 말해요. 내가 얼마나 평범한 여성이었고, 성공한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는지. 너와 나는 종이 한 장밖에 차이가 없다는 걸 이야기해요. 그런데 결혼을 했고, 애도 낳았고, 위기에도 봉착하게 됐는데, 여기 와 서 있게 됐다. 제가 특별한 일을 겪은 게 아니라는 말을 계속 했어요. 제 이야기를 공유한 다음에는 반응이 하나씩 바뀌어 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사람은 진짜 자기 얘기를 해야 닿는 게 있구나 싶었어요.

권수정 교육을 하면서 직장 내 성희롱 피해 경험을 얘기해요?

고은하 네. 그래서 그 멘트 했어요. 제가 마지막에 가해자에게 사과받을 때 그런 말을 했거든요. ‘부장님은 우리 딸한테 미안해 하셔야 한다고.’ 왜냐면 애가 그때 돌 막 지날 무렵이었는데, 엄마가 편안한 마음이 아닌데 애한테 잘해줬겠냐고. 그 이야기를 강의할 때 하는데 자꾸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위로하는 시선이었어요. 그날 저 혼자 많이 힐링했나봐요. 생각이 많이 났어요.

2만 8,000명, 220회
기아차 전조합원 교육

권수정 하고 싶은 교육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현실에서는 조합원 교육이 1년에 한 번이잖아요. 성평등 교육도 다양한 방식으로 할 수가 있는데 시간이 없는 게 아쉽죠. 또 이 일만 하는 인력이 한 명도 없어요. 성평등 교육만 하는 인력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우리 조직의 핵심 사업으로 성평등 사업이 추진돼야 해요.

고은하 저도 공감해요. 공통교안 하나 만들려면 강사들이 같이 모여서 계속 고민하고 업데이트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그럴 여건이 안 되거든요. 그래도 우리는 셀프 칭찬 많이 해도 돼요. 얼마나 대단해. 그 대공장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했다는 건 너무 짜릿한 거예요.

권수정 기아차 2만 8,000명 전 조합원 교육을 우리가 다 했어요. 노사공동교육 첫날, 첫 번째 시간에 갔죠. 사측이 보고 있으니까 ‘진짜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중간에 한 번 회사 관리자가 노조 조끼를 입지 말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다음부터 노조 조끼만 입고, 강사 명찰도 다 맞추고 그랬죠. 사실 이거는 노사 합의를 해서 회사가 우리 강사를 부르도록 관철시킬 힘이 있어야 하는 거거든요. 금속노조 아니면 못 하는 거죠.

김은혜 강사단 입장에서도 좋은 배움이 된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성평등 강사들이 집단적인 교육을 확 들어가는 게 없었다 보니까 각자 스타일 대로 교육을 했었어요. 그런데 기아차 교육을 위해 공통 교안을 모으는 경험을 했죠. 금속노조 성평등 강사단의 디딤돌을 잡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어요
다만 그것을 알고 있어야죠”

권수정 이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우리가 강사라고 완전무결하게 성평등을 실천하면서 산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저는 페미니스트고, 성평등 교육 맨날 하고 다니지만 가부장적인 것에 타협하면서 살기도 해요. 그러니까 본인이 성평등하지 못하다고, 잠재적 가해자라고 너무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 다 비슷해요. 다만 그런 것을 알고, 적어도 다른 사람이 나 때문에 불편하거나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고은하 인지하는 것과 못하는 건 천지차이기 때문에 그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미 여성으로 태어난 이상 이 세상에서 여성으로 직면한 어려움을 모른 척하지는 말자고. 많이들 못 본 척하니까요. 내가 모른 척하면 이것은 고스란히 동생들에게 딸들에게 대물림될 거예요. 함께하면 이겨내기 수월하니 같이 연대하자는 말을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