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하는 언니들②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줄 사람은 없는 거니까요”
노조하는 언니들②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줄 사람은 없는 거니까요”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03.04 12:24
  • 수정 2022.03.08 20: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의 날 인터뷰] 김경신·박미성 건설노동자·이은정 여성사업담당 국장
여성에게 안전한 건설현장은 모두에게 안전하다
화장실·탈의실·여성건설노동자 교육훈련 등 목소리 내와

노조하는 언니들

이향춘, 김경신, 박미성, 이은정, 고은하, 권수정, 김은혜, 이병희, 이상미, 인숙교.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노조하는 언니’ 10명을 만났다. 이들은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 그러나 일터에서 겪은 상황을 덮고 넘어가긴 어려웠다. 임신한 동료의 아이가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건설현장에 여자화장실이 없어 곤혹을 겪고,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되고, 육아휴직을 썼다고 승진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일을 더 잘 하려면 일터가 바뀌어야 했기에 노동조합을 선택했다. 분투했던 언니들의 싸움은 일터를 넘어 세상을 바꿨다.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왼쪽부터 이은정 건설노조 여성사업담당 국장, 박미성 건설노조 부위원장, 김경신 조합원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2019년 6월 18일 건설의 날. 여성 건설노동자들이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 섰다. 여성 건설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알리기 위한 기자회견이었다. 이들은 화장실, 탈의실, 사이즈에 맞는 안전장구가 없는 건설현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고, 일터에서 성폭력과 유리천장이 만연하다고 알렸다. 기자회견에는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산하 건설노조, 건설기업노조, 플랜트건설노조가 참여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여러 언론에 보도되며 이슈가 됐다. 여성 건설노동자의 삶과 노동환경이 조명받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다큐멘터리와 기사에 여성 건설노동자들이 등장하고, 관련 법 발의도 여럿 있었다. 같은 말을 매번 낯선 언론과 국회의원들에게 되풀이하는 시간들이었다.

김경신 건설노조 조합원(전 건설산업연맹 부위원장)은 “여성의 날뿐 아니라 그 외의 시간에도 여성들의 싸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가 나오든 안 나오든 여성 건설노동자들은 항상 건설현장과 정부를 향한 목소리를 내왔다. 결과적으로 현장과 제도를 움직인 건 이들의 꾸준한 목소리였다.

화장실·탈의실·휴게실 없어
더 열악했던 ‘그때’

김경신 조합원은 하늘로 출근하는 타워크레인 기사다.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가 ‘일요일엔 쉬게 하라’는 투쟁을 하는 것을 보고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2006년 즈음까지 건설노조에는 여성 사업이라고 할 만한 것이 특별히 없었다.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에서 각 산별노조·연맹들에게 여성할당 부위원장을 선출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린 것이 사업의 동력이 됐다. 여성 간부가 생기니 여성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가맹조직의 여성위원들과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가끔은 정말 그냥 와서 ‘잘 있었니?’ ‘잘 있었어.’ ‘우리 조직은 지금 뭘 하고 있어.’ ‘밥 먹을까?’ 하고 밥 먹고 가고, 처음에 시작은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각자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정책적인 사업을 만들어갔던 거죠. 남성 노동자들이 아무리 깨어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주는 사람은 없는 거잖아요.”

그렇게 잡았던 사업이 여자화장실과 탈의실 문제다. 이은정 건설노조 여성담당 국장은 “그때는 더 열악했다”고 기억했다. 이은정 국장이 말하는 ‘그때’는 여성 사업을 시작하기 전의 모습이다. 건설현장에서 여자화장실과 탈의실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던 때였다. “성별이 따로 구분돼 있지도 않고, 푸세식 화장실이었어요. 겨울에는 얼어 있고 문짝도 부셔져 있는 그런 화장실이요. 건설현장에 여성 건설노동자의 숫자가 원체 적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현장에 존재했지요.”

여성 건설노동자들은 화장실 사진을 찍어서 전시하는 등의 선전전, 조합원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법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 투쟁을 병행했다. 이에 고용노동부가 ‘화장실은 현장으로부터 300m 이내, 남녀 근로자가 함께 근무할 경우 구분하여 설치해야 한다’는 시행규칙을 내놓기도 했다. 김경신 조합원은 “아직 법으로 완전히 통과된 건 아니지만 시행규칙이 생기니 모션을 취하는 건설회사들이 생겼다”고 말했다.

“초창기에는 남성들도 화장실이 별로 없었어요. 지금은 화장실 개수가 턱없이 부족해서 멀리 가야 되기는 하지만 어쨌든 여성과 남성의 화장실이 다르게 있기는 하거든요. 그리고 플라스틱 화장실에서 컨테이너 화장실로 바뀌었죠.”

그러나 아직 일부 건설현장에서 화장실과 탈의실, 휴게실은 여성 건설노동자에 대한 ‘배려’로 치부되기도 한다. “화장실과 휴게실은 너무나 당연한 인간의 기본 권리예요. 처음에 실태조사를 할 때는 이것이 없다거나 사용하지 못한다는 여성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가끔 있다고 하는 곳들이 있더라고요. 그럼 사진을 좀 보내봐라. 그랬더니 분홍색 컨테이너 휴게실이(웃음) 있더라고요. 보다가 ‘와~ 신기하다! 근데 색깔이 왜 분홍색이냐.’ 그러면서 저희 내부에서 ‘우리가 지금 그거 가지고 트집을 잡을 건 아니잖아’하면서 즐거운 옥신각신을 해본 적이 있어요.”

화장실과 탈의실, 휴게실 등 편의시설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여성에게 편리한 건설현장은 모두에게 편리하고, 여성에게 안전한 건설현장은 모두에게 안전하다. “안전보호장구는 생명이잖아요. 그런데 여성 건설노동자에게 맞는 안전장구가 없어요. 신발이 커서 덜렁거리고, 깔창을 덧대신고, 장갑이나 안전모도 너무 커요. 그런데 여성만 덩치가 작은 건 아니죠. 작은 남성에게 맞는 사이즈도 없다는 거잖아요.”

더불어 건설현장 내 성희롱도 건설산업연맹 여성위원회가 풀어가야 할 숙제 중 하나다. “성희롱이 일상인 곳이라 ‘내가 성희롱을 당하고 있는지’, ‘내가 성희롱을 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곳이 건설현장”이라고 김경신 조합원은 설명했다. 현장의 이동이 빈번한 건설현장에 성희롱 예방교육은 매달 실시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환노위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왼쪽부터 이은정 건설노조 여성사업담당 국장, 박미성 건설노조 부위원장, 김경신 조합원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건설현장의 ‘맨’버십
여성노동자 숙련 막는 걸림돌

박미성 건설노조 부위원장은 18살 때부터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나르는 ‘탱크로리’, 버스기사 등 여러 일터를 거쳤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 왜 이렇게 차별이 심할까? 하는 의문이 어릴 때부터 있었어요. 남자 기사들보다 더 많이 일을 하는 것 같은데도 여러 차별들이 있더라고요.”

박미성 부위원장이 타워크레인 기사가 된 건 96년도다. 그가 타워크레인 기사를 선택한 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타워크레인분회가 단체협약으로 얻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설현장에도 유리천장은 있다. 건설현장에서 여성들은 보조적인 업무에 투입됐고, 같은 일을 해도 일당이 몇 만원씩 적었다. 그렇지 않으면 채용이 되지 않으니 남성보다 적은 일당에도 일터로 향하는 여성 건설노동자들이 많았다.

여성 건설노동자는 남성보다 숙련되는 속도가 느리다. 여성이 일을 배우는 속도가 느린 게 아니라, 남성에게 더 알려주려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김경신 조합원은 이를 ‘맨’버십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다 보니 일당도 더 적다. 숙련도는 건설현장에서 일당과 직결된다. 수도권에서 일하는 형틀목수의 경우 2022년 기준 양성공(17만 원)-준기능공(22만 원)-기능공(23만 5,000원)을 받는다. 건설산업연맹 여성위원회는 여성 건설노동자에게 심화과정 교육훈련을 제공해야 한다고 건설근로자공제회에 요구해왔고, 관련 교육과정이 개설되기도 했다.

“남성 카르텔 같은 게 있죠. 현장에 처음 들어가면 선배들이 일을 가르쳐줘야 해요. 목수나 철근이나 무슨 일을 하든 선배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주고, 어떻게 일을 해야 조금 덜 힘들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 기능이 빨리 습득되는데 그걸 여성 노동자한테 잘 안 가르쳐주죠. 그래서 같은 시기 현장에 들어갔더라도 여성은 양성공처럼 보조적인 업무를 하고, 남성들은 팀장이나 반장처럼 급이 높아져서 팀을 꾸려갈 수 있는 수준이 돼 있어요.”

“건설 노동자인 나를
신기하게 안 봤으면 좋겠어요”

건설산업연맹 여성위원회는 취업알선 담당자들의 성별 분업 인식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취업알선 담당자들은 건설 일을 여성에게 잘 소개해주지 않는다. 건설은 ‘여성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건설산업연맹 여성위원회는 취업알선 담당자들에게 성인지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요구한다. 여성이라 잘할 수 있는 일, 여성이라 하지 못할 일은 없다는 말이다. 이 요구는 제4차 건설근로자고용개선기본계획에 반영됐다. 기능훈련과 취업알선 담당기관을 평가할 때 여성의 기능훈련 참여율과 채용실적을 반영하도록 한 것이다.

“건설현장이 꼭 남성들 거라고 생각 안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생각하는 거지만 여성분들이 못하는 직업이 없어요. 레미콘 차, 버스, 타워기사 다 할 수 있어요. 여성분들이 도전을 했으면 좋겠어요.” (박미성 부위원장)

“제가 노동조합에서 일하긴 하지만, 여성이 하는 일, 남성이 하는 일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교육이나 선전, 총무는 주로 여성이 많이 하죠. 그런 것도 약간 차별이라 생각해요.” (이은정 국장)

“제가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타워기사라고 이야기하면 모든 사람이 저를 신기해 해요. 되게 대단한 것처럼 보시고. 그런데 계속 당하는 제 입장에서는 구경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건설현장에는 남성들이 많이 일하기 때문에 신기할 수 있죠. 그런데 이제는 제가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냥 ‘그 일을 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나를 신기하게 안 봤으면 좋겠어요. 그게 평등한 현장 아닐까 싶어요.” (김경신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