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빨리 제대로 일하고 싶은 디아지오 노동자들
하루빨리 제대로 일하고 싶은 디아지오 노동자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3.21 20:11
  • 수정 2022.03.25 1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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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저 브랜드 매각‧신인사제도 도입 … 풀리지 않는 교섭
​​​​​​​천막농성 20일 차, “고용불안 느끼지 않고 제대로 일하고 싶다”
16일 오후 2시 서울시 중구 영국대사관 앞에서 진행된 '디아지오 코리아 노동법 준수' 집회 현장. 김영석 디아지오코리아노동조합 홍보부장(좌)과 김민수 디아지오코리아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윈저 쪽도 그렇고, 조니워커팀이나 그쪽도 마찬가지인데요. 특히 도매점 담당하는 분들은 아침에 눈 뜨고부터 ‘야 진짜 너희 회사 매각되냐?’ 이 전화를 계속 받아요. 스트레스가 상당하죠. 경쟁사들도 매각 문제를 가지고 ‘없어질 회사’라는 식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정신적 스트레스는 둘째 치고라도 영업적으로도 굉장히 큰 타격이에요.”

지난 16일 서울 중구 영국대사관 앞에서 ‘디아지오코리아 노동법 준수’ 촉구 집회가 열렸다. 그곳에서 만난 경력 16년 차 디아지오코리아 영업 노동자 이한수(가명) 씨가 말했다. 그는 천안‧당진에서 윈저 영업을 담당하고 있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그는 회사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영업환경 속에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난감하게도 회사가 발목을 잡는 격이라는 것이다. 지난 1년여 동안 디아지오코리아 노동자의 자부심은 천천히 희석되고 있었다.

윈저 브랜드 매각설
불안한 노동자들

한국노총 식품노련 디아지오코리아노동조합(위원장 김민수)은 2월 25일 총파업 출정식을 가졌다. 이보다 앞선 7일에는 96.63%의 찬성률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가결시켰다. 이들이 총파업을 결의한 이유는 ‘회사의 일방적인 태도’ 때문이다.

디아지오코리아노동조합은 임금교섭 과정에서 회사가 인상 지표로 사용되는 기업비교군을 일방적으로 수정했다고 말한다. 또한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인사제도 대신 ‘신인사제도’를 강행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디아지오코리아 전체 매출의 55%를 차지하는 윈저 브랜드 매각설이 여러 매체에서 보도되고 있는데, 회사에서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고도 말한다.

이 중에서도 노사 갈등을 장기화시키는 핵심 요인은 단연 윈저 브랜드 매각이다. 총 250여 명의 직원 중에서 절반가량이 윈저 브랜드를 담당하고 있다. 김영석 디아지오코리아노조 홍보부장은 조합원들 사이에서 고용불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입사 6년 차인 그도 충청 지역에서 윈저 영업을 담당하고 있다.

“윈저 브랜드 매각 진짜 되는 거냐. 만약에 매각되면 고용 승계는 되는 거냐. 이런 질문이 굉장히 많이 와요. 그런데 답변을 할 수 없는 처지예요. 노동조합이 아무리 회사에 질의하고 요청해도 아무런 대답이 없어요. 회사가 가진 브랜드를 매각하는 게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그런 소식이 뉴스에서도 나오는데 회사에서 오피셜하게 말하는 건 하나도 없으니 정말 답답한 거예요.”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이한수 씨는 지난해 9월 윈저 브랜드 매각 소식을 처음 접했다. 당시는 뜬소문이었다. 거래처나 경쟁사로부터 윈저 브랜드 매각 관련 소문을 들었다며 진위를 확인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한수 씨는 “당시(지난해 9월)에는 대표이사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12월에 언론 보도가 뜨고 나서는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고 ‘루머에는 대처를 하지 않겠다’는 말로 회피하기 시작했죠”라고 전했다.

언론 보도의 내용은 구체적이었다. 매각사와 매각대금, 매각방식, 업무양해각서 체결까지 상세한 내용이 담겼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디아지오코리오 노동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뿐만 아니라 7년 차 디아지오코리아 노동자 이은영(가명) 씨는 회사가 제시한 신인사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한다. 일을 더 잘하게 하기 위한 방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조합에 따르면, 회사의 신인사제도는 250여 명 중 170명가량의 영업 노동자에게 승진 기회를 ‘박탈’하는 방식이다.

“회사가 말하는 신인사제도는 해당 직무의 스페셜리스트를 키우기보다는 제너럴리스트에게 더 큰 보상을 주겠다는 것 같아요. 팀이 바뀌어야지 승진을 할 수 있다는 건데요. 사실 영업을 하다가 전략팀으로는 갈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채권팀이나 재무팀으로 넘어가기에는 힘든 구조예요. 한 자리에서 5년 동안 경력을 쌓은 사람보다 1년씩 다른 부서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승진을 잘하게 되는 거죠. 개인적으로 지금 인사제도에서 회사가 제시한 안을 추가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니니까요. 한 자리에서 열심히 일한 사람들을 인정해주지 않는 거죠.”

이에 대해 디아지오코리아는 현재 진행되는 교섭이 임금교섭인 점을 강조했다. 디아지오코리아는 "노사 간 의견을 좁히지 못하는 부분이 매각과 인사 관련 문제다. 간극이 좁혀지지 않을 뿐 회사가 일방적으로 강행하거나 노동조합과 대화에 나서지 않는 건 아니다. 교섭에 성실히 참여하고 있고, 회사안도 제시하고 있다"면서, "가급적 임금교섭의 목적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매각이나 인사 관련해서는 2022년 임단협에서 추후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교섭석상에서 노동조합은 매각 여부를 확답해달라고 하지만, 답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기에 일방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어 "대표이사도 노동조합에 비즈니스 관례상 제3자의 제안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해준 바 있다. 또한 브랜드 매각이 고용불안을 야기할 수 있기에 실제로 매각이 진행된다면 단체협약에 따라 90일 이전에 알리는 등 법을 준수하면서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며 "다만 매각 여부를 확답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믿었던 새 대표이사,
변화는 없었다

윈저 브랜드를 담당하지 않는 직원이라고 해서 일련의 사태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디아지오코리아는 희망퇴직을 대대적으로 시행했고, 신규채용은 진행하지 않았다. 380여 명에서 현재 250여 명으로 인원 규모가 축소됐다.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줄어가니 개인의 노동강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회사의 전망에 대해 걱정하는 직원이 늘었다.

이러한 경향은 지난 1년 반 동안 더욱 심해졌다. 이은영 씨는 약 1년 반 전 새로운 대표이사가 부임하는 당시 노동자들의 분위기를 기억하고 있다. 2015년 이후 회사의 매출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외국인 대표이사가 새로운 비전과 활력을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이내 기대감은 무력감으로 바뀌었다.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전임 대표이사가 그리 뛰어난 분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댄 해밀턴(Dan Hamilton) 대표이사가 처음에 왔을 때 동료들이 엄청 기대를 많이 했었어요. 그동안 디아지오에서 쌓은 커리어를 봤을 때 회사에 변화를 불어넣어 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컸었죠. 많이 믿기도 했고요. 그런데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변화가 더 없는 것 같아요. 직원들을 더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김영석 홍보부장은 지난 1년여 동안 회사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변화의 방향은 부정적인 쪽이었다.

“지난 1년 동안 진짜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인사팀이나 CR팀 등 본사의 여러 부서에서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고요. 그러면서 시스템적인 부분이나 인사제도가 하나둘 바뀌기 시작한 것 같아요. 업무적으로는 어느 순간 거래처에 나가는 지원 품목이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에요. 행사 같은 부분도 지금까지 국세청 고시나 규정을 잘 지켜서 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굉장히 타이트하게 관리되기 시작했어요.”

“하루빨리 제대로
일하고 싶어요“

16일 오후 4시경 디아지오코리아노동조합이 댄 해밀턴 디아지오코리아 대표이사 자택 앞에서 집회를 개최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지금이라도 회사가 생각을 고치고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한다면 노동조합은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하나 둘 셋 하면 대표이사가 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모든 힘을 다해서 함성을 질러주시길 바랍니다.”

16일 영국대사관 앞 집회를 마치고 디아지오코리아 노동자들은 댄 해밀턴 대표이사의 자택 앞을 찾아갔다. 김민수 디아지오코리아노조 위원장은 이날 집회를 대표이사에게 함성을 지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경영진들은 최전선에서 영업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는 것 같아요.” 이한수 씨의 말에서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최근에 주세법이 개정되면서 과거 고객들과 맺어왔던 여러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많고 고객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 놨어요. 수개월 동안 고객과 약속을 지킬 수 없는 부분을 계속 이야기했는데도 지금까지도 고치지 않고 있어요. 영업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내 자식 같은 브랜드인데. 회사가 약속을 못 지켜서 계속 마켓 쉐어를 뺏기는 상황에 다들 분개하고 있어요. 그렇게 상황을 만들어 두고 브랜드 매각 이야기가 나오니까. 진짜 한탄밖에 안 나오죠.”

김영석 홍보부장은 매주 한 번씩 대전역에서 서울행 KTX에 몸을 싣는다. 디아지오코리아 본사 앞 천막 농성장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가 대전과 서울을 오가면서 바라는 건 하나다.

“회사가 빨리 지금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잘 마무리해서 우리 구성원들이 고용불안을 느끼지 않고 제대로 일하고 싶어요. 지금도 코로나19 상황에서 영업사원들은 거래처 다니면서 계속 바쁘게 일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회사가 이런 점도 몰라준다는 게 너무 답답해요. 솔직히 하루빨리 해결돼서 그냥 저희가 하던 비즈니스를 제대로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