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②] 안전 시스템 갖추기, 기업의 애로사항
[커버스토리②] 안전 시스템 갖추기, 기업의 애로사항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4.13 00:01
  • 수정 2022.04.13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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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처법 어느 하나 명확한 것 없다” 자율적 규제 적응 어려움
​​​​​​​처벌만으로 안전 시스템 정착 가능?… 예방 위한 정책 고민도 필요

안전, 시스템을 입다

안전을 시스템적으로 관리하는 데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안전경영시스템 구축에 기업들이 더 열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시스템은 작동해야 시스템이다.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할지가 시스템을 돌린다. 우리 사회에서 안전경영시스템이 없었던 건 아니다. 잘 돌아가는 시스템이 부족했고, 재해를 줄이기에 역부족이었다. 이제 안전 관리를 굴러가는 시스템으로 만들 방안을 고민할 차례다.

커버스토리②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기업의 고민을 듣다

사고는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하거나 해로운 일’을 말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적 사실(Social Fact)로써 사고 발생 자체는 막을 수 없다. 다만 사고 발생을 최대한 줄일 수는 있다. 우연한 사고 확률을 줄여나가는 활동이 바로 ‘안전’이다. 안전을 시스템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재수가 없어서 사고가 일어났다’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하는 일과 같다. 사업장 내에서 사고를 유발하는 여러 원인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뜻이다.

안전은 노사 모두의 일이기도 하지만, 안전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우선적으로 사용자의 의무다. 물론 기업이 안전 시스템을 안착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안전 시스템 마련에 있어서 기업의 애로사항을 들어봤다.

‘자율적 규제’에
익숙하지 않은 기업들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시행 전후로 ‘로펌 특수’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국내 10대 로펌에서 작게는 25명, 크게는 100명 단위로 ‘중처법 대응팀’을 꾸렸다. 기업의 수요가 없으면 이 같은 서비스가 나오기는 어렵다. 노동계에서는 이를 두고 ‘안전에 힘쓰라고 했더니 거액의 자문료를 로펌에 주고 있다’며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그러나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 본부장은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임우택 본부장은 “경영책임자들이 실제적인 안전 투자를 하기보다는 법적인 책임만을 회피하려고 한다고 비판하는데, 그렇게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며 “당사자 입장에서는 책임이 아닌 부분에 대해 처벌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임우택 본부장은 중처법이 모호하다고 비판했다. 중처법이 말하는 안전보건의무가 정확히 뭔지, 지켜야 할 안전보건관계 법령이 무엇인지, 협력업체에 대한 안전조치는 어느 정도까지 이뤄져야 하는지 어느 하나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을 극도로 기피하는 기업으로서는 로펌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정말 중처법은 모호할까? 그렇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처법 이전 안전과 관련한 대표적인 법규는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이 있다. 산안법과 중처법의 차이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산안법은 지시적 규제인 반면, 중처법은 자율적 규제다. 지시적 규제란 금지사항을 정한 것이다. 안전을 위해 ‘이것만은 꼭 지키라’는 의미다. 반면 자율적 규제는 금지사항을 정하기 보다는 안전을 위해 ‘각자가 최대한 힘써라’는 의미가 강하다.

대표적인 지시적 규제 사례로 산안법은 유해-위험물질 사용 시 필요한 안전 조치 등을 규정한다. 여기서 유해·위험물질은 고용노동부의 시행령으로 정한다. 시행령에 명시된 유해·위험물질을 사업장에서 사용할 경우 관련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이 말은 반대로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물질이 위험성이 있다고 해도 시행령에 명시하지 않으면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지시적 규제를 특징으로 하는 산안법은 제정 이후 산재사고를 크게 줄이는데 기여했지만, 그 효과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 이유를 이헌희 DNV Supply Chain & Product Assurance Enterprise Risk본부 본부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DNV는 국제안전인증 중 하나인 ISRS 인증을 주관하는 비영리단체다.

“안전을 확보하기 용이하려면 기업의 변화요소가 적어야 한다. 4M(Man, Machine, Material, Method)이라고 해서 공법, 물질, 원부자재, 설비, 장비, 시설, 사람 등이 변경될 때 위험성이 극도로 높아진다. 예전에는 기업 하나 만들고 30~50년 유지하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에는 외부적으로 시장의 변화가 급속하게 나타난다. 다시 말해 4M에서 변화가 많으니, 안전 확보에는 훨씬 불리한 상황이다.”

시장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법으로 안전을 규율하기가 어려워졌다. 업종별, 기업별로 맞춤형 안전관리, 즉 자율적 규제가 산재 예방에 더 효과적인 상황에 온 것이다. 다만 산안법은 지시적 규제의 특성을 보이고 있지만, 자율적 규제의 요소도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2013년 법 개정으로 도입된 ‘위험성 평가’가 있다.

그런데도 현행 산안법으로는 각 기업의 자율적 규제를 촉진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중처법이 제정된 배경 중 하나다. 김규석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 산재예방감독정책관은 “경영 책임자가 관심과 의지를 갖고 작업 현장에서 실제로 산안법이 지켜지는지를 확인하고 지켜지지 않는다면 왜 안 지켜지는지 원인을 밝혀서 지켜지는데 필요한 조치를 해달라는 법”이라고 중처법을 설명한다. 요컨대 기업에서 중처법이 모호하다고 토로하는 배경에는 ‘자율적 규제’가 낯설게 느껴진다는 점이 강하게 작용한다.

경영책임자 ‘처벌’로
안전 시스템 정착 의문

또 다른 중처법과 산안법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누구를 처벌하느냐’에 있다. 산안법에서 명시하는 책임은 사업주, 즉 ‘법인’이 지켜야 한다. 반면 중처법의 이행 주체는 사업주와 더불어 ‘경영책임자’가 추가됐다.

지난 3월 25일 중대재해처벌법을 주제로 열린 굿모닝경제포럼에서 권오성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50인 미만 작은 회사에서는 중처법이 없더라도 산안법만으로도 대표이사 처벌이 가능했다”며 “하지만 큰 회사에서는 사망사고가 나더라도 현장소장, 공장장이 처벌의 대상이었지 대표이사는 해당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기업이 ‘실제로’ 안전에 신경 쓰도록 하기 위해서 중처법의 처벌 대상을 법인이 아닌 경영책임자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또한 권오성 교수는 “20세기 포디즘 체제에서 기업은 하나의 법인으로 모든 것을 관리하는 수직계열화 체계였다. 그런데 20세기 중반 모-자회사 관계로 지주회사를 만들면서 아웃소싱이 진행됐다”며 “여러 개의 법인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하나의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나의 사업을 제3자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안전 시스템을 준수하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중처법에는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가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 하지 아니한 경우”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 안전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잘 돌아가게 했는데도 사고가 날 수 있다. 이 경우에 대해서는 별도로 처벌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영계에서는 기업이 지켜야 할 의무가 모호한 상황에서 의무를 다할 경우 처벌받지 않는다는 말이 도대체 무엇이냐며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임우택 본부장은 “사업주가 고의로 사고를 일으키는 게 아니다. 과실의 형태로 산재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라면서 “기업에서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이행하며 평가, 관리하는 데 있어서 ‘불량했다’ 혹은 ‘잘했다’라고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사업장에서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공포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경영계의 우려는 중처법 시행 이후 산재 발생 사업장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 양상에서 더욱 커진다. 기업에서 안전 시스템이 정착하도록 돕기보다는 처벌 가능성에만 집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부담스럽다고 임우택 본부장은 이야기한다.

“기업들도 안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경영과 생산에 대해 손실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많이 갖고 있다. 다만 규제의 한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중처법의 목적이 처벌이 아니라 예방이라고 하는데, 이 법은 사실 처벌법이다. 장기적으로 조직 내 안전 시스템이 현장에서부터 정착돼야 하는데, 사고 난 사업장에 집중하는 사후 감독 위주의 규제로는 어렵다. 선제적인 예방을 위한 정부의 정책은 중처법 시행 이후에도 특별한 것이 없다.”

안전 시스템 구축,
중소는 ‘딴 나라 일’ 대기업은 ‘사람 없어’

다른 한편으로 규정의 모호성 및 처벌 가능성을 제쳐두고, 실제로 기업이 안전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은 무엇일까. 임우택 본부장은 “현장 특성마다 다르겠지만, 안전 시스템 중 인력, 조직, 예산이라는 부분에서는 특히 대기업에서 어느 정도 많이 준비돼 있는 것 같다. 대규모 사업장에서는 이행에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면서 “하지만 중소규모 사업장은 인력이나 예산에서 열악하다보니 대응 여건이 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오랫동안 중소규모 사업체에서 일해온 박동진 진영프로토 생산관리 공정개선팀 이사는 중소규모 사업체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영프로토는 한국노총에서 주관한 ‘소규모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안전보건 혁신사업’에 참여했다.

“대부분 중소기업, 소규모 업체가 국가에서 요하는 형식적인 서류 만들어 두고 가짜 사인 받는 식이다. 안전교육도 사인만 받고 안 시키는 경우가 태반이다. 사고가 났을 때 회사에서 의무를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쓰인다.”

중소규모 사업체의 경우 안전 시스템 마련을 위한 여건도 부족한 형편이지만, 실제 현장에서 마주하는 중대재해 빈도가 적기도 하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한국 산재 사고 사망의 80.9%(670명)가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체에서 일어났다. 50인 미만 사업체는 종사자 규모별 사업체 수 비중을 따지면 한국 전체 사업체의 95%를 훌쩍 넘는 400만여 곳이다. 중소규모 사업체에서 산재 사고 사망이 많이 일어나긴 하지만 실제 사고를 경험하는 사업체는 적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본부장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재해가 대부분 나지만, 사업장 수가 엄청 많기 때문에 사업장 수로 나누면 한 개 사업장에 40년에 한 건 정도 발생 한다”며 “중소규모 사업장들이 중대재해에 대한 체감은 (수치와 별개로) 낮다”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상시적인 산재예방 지원 정책 없이 중대재해 발생 이후에 법 위반 사항을 조사하는 중처법만으로는 중소규모 사업주가 적극적으로 안전 시스템 구축에 나서기는 어렵다.

반면 대기업에서는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실제로 시스템이 잘 돌아가도록 이행하는 데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일선 현장에서 일할 안전관리자를 채용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안전 시스템을 처음 구축하다 보니 현장 안전관리자에게 필요한 교육을 적절하게 해줄 수 없는 실정이다.

황인호 대한산업보건협회 중대재해예방실 팀장은 “현재 대기업의 고민은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라면서 “기업별 현장 안전관리자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보인다. 그러다 보니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전담조직에 투입되고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심심찮다”고 전했다.

임우택 본부장도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지도·감독할 수 있는 안전관리자에 대한 인력 수요가 많은데, 현재 전반적으로 수급 불균형인 상황”이라며 “상대적으로 처우나 낮거나 건설업같이 업종 특성상 사고가 다발하는 현장에서는 안전관리자 모집에서 미스매치를 보이는 것 같다. 이 문제는 향후 5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될 때 더 극심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안전 시스템 구축,
원-하청 역할 구분 모호해

대기업의 경우 협력업체에 대한 안전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큰 고민거리다. 특히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이슈가 걸려 있는 사내하청업체에 안전-보건 확보 의무 조처를 하기 부담스러운 것이다. 더불어 안전보건 확보 의무 이행에 있어서 원청과 사내하청업체 사이의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임우택 본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정부가 안전과 관련한 부분은 불법파견으로 보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쳤지만, 현장에서는 그러한 우려도 있다. 중처법상 안전보건 확보를 포함해서 하청업체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도 원청의 의무라고 돼있다. 중처법 체계상 하청업체의 인사, 조직, 예산과 관련한 부분에 있어서 원청이 관여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한 하자는 당연히 원청에 책임이 있다. 그 이외에 협력체계 구축과 관련해서 원청과 하청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규정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황인호 팀장은 사내하청업체의 경우, 원청은 시설, 설비, 장소에 대한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되, 그 이외의 역할은 사내하청업체에게 있다고 본다.

황인호 팀장은 “원청에서 사내하청업체와 역할 구분을 명확하게 해줘야 한다. 일에 대한 부분은 사내하청업체에서, 시설에 대한 안전은 원청에서 한다는 식”이라면서 “원청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안전모를 안 썼다고 일일이 단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해석상 모호한 부분이긴 하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경계를 명확히 그어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렇듯 중처법과 관련한 여러 쟁점은 계속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중처법이 기업들로 하여금 기존과는 달리 안전에 대한 관심을 대대적으로 쏟게 한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여기서 고민해야 할 지점은 어떻게 하면 기업의 애로사항이 중처법에 대한 반대로 귀결되지 않게 하느냐다. 기업이 애로사항을 극복하고 안전 시스템 마련할 수 있는 사회적 조치가 필요하다. 현재로선 법적 처벌이 주목받는 상황이나, 산재 예방을 위한 정책적 고민도 동시에 이뤄질 필요가 있다. 동시에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모범적으로 구축하고 안전 시스템을 안착시킨 사례를 쌓아갈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