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이 산재 줄일까? 중처법 찬반토론
처벌이 산재 줄일까? 중처법 찬반토론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5.03 15:46
  • 수정 2022.05.04 1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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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자 처벌 가능한가, 처벌만이 수단인가, 자율적 규제 왜 안 됐나
​​​​​​​중대재해처벌법 여러 쟁점 두고 전문가 찬반 토론 진행

[리포트] 중대재해처벌법, 전문가들의 찬반 토론

4월 28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진행된 '제2차 KLI 산업안전보건포럼' 현장. ⓒ 한국노동연구원

논란의 중대재해처벌법, 과연 산업재해 감소에 득일까 실일까? 이를 따져 보는 전문가들의 찬반 토론이 산재노동자의 날인 지난 4월 28일 오후 3시 ‘한국노동연구원 제2차 산업안전보건포럼’에서 열렸다.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에 찬성하는 전문가는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다. 반면 중처법에 회의적인 입장인 전문가는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와 이근우 가천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였다.

 

찬성 의견 : 중처법이 왜 만들어졌겠나?

노동자가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노동자의 부주의 때문일까? 안전관리를 소홀히 한 현장안전관리자 때문일까? 아니면 그 현장을 책임지는 공장장이나 현장소장의 책임일까? 전형배 교수는 ‘일차적으로 기업에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안전보건은 기업의 담당 부서만 최선을 다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보다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안전과 위험이 결정된다. 가령 납기일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자에게 더 일을 시킬 것인지 아니면 일정 정도 손해를 감수할 것인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안전 여부는 달라진다. 노동자, 안전관리자, 현장소장에게는 의사결정 권한이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안전을 소홀하게 만든 기업에 더 큰 책임이 있다.

그간 산업안전보건법은 기업에 책임을 묻지 못했다고 전형배 교수는 지적한다. 이는 중처법이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다. 전형배 교수는 “중견 기업 이상에서는 사장님 처벌이 안 된다. 사장님은 안전보건 의무이행자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라며 “외주화, 사내도급 등으로 안전보건에 대한 경영상 결정에 관심이 높아져야 하는데, 형사법적 처벌이 불가능하니 최후 수단으로 경영책임자를 타깃으로 하는 법을 만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형사처벌 규정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실제 판결에서 처벌 수위가 높지 않다. 2018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건 판결 분석 연구’에 따르면, 자연인*에 대한 평균 벌금은 약 420만 원이며, 법인의 경우 448만 원에 그쳤다.
* 자연인(自然人) : 법률상 생물학적 육체를 가진 사람을 일컬음. 법적 권리는 있지만 사람은 아닌 법인(法人)과 구별된다.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한국노동연구원

전형배 교수는 “지난 40여 년간 산업안전보건법이 보여준 형사처벌의 현실이 중처법 제정 이유”라며 “사람이 아무리 많이 죽어도 기업에 대한 처벌 수준이 굉장히 낮다. 이천 물류센터 화재 사고로 38명이 죽었는데, 기업에 선고된 벌금이 4,000만 원이다. 대표권이 있는 경영책임자는 처벌받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중처법 제정 이전부터 시민사회와 법 제정 논의를 함께했던 최정학 교수는 “최고 경영자가 안전 문제에 대해서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 “기업 자체가 그냥 범죄를 하는 것이고, 그 기업 자체를 처벌할 수 있는 독립 모델을 고민했다. 그러니까 자연인의 범죄 행위를 전제하지 않고 법인을 독자적으로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대 의견 : 경영자에게 죄를 물을 수 있나?

하지만 사고에는 ‘우연히’라는 변수가 있다. ‘기업이 안전보건 시스템을 제대로 운영하지 않았다’와 ‘사고가 일어났다’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숨어있다. 결론적으로 시스템 미비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설명은 법원에서 먹히기가 힘들다. 형법상 인과관계가 형성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근우 교수는 “중처법의 접근 방법이 잘못됐다고 본다. ‘사장이니까 책임져라’인데 사장의 책임은 노동자의 사망에 있는 게 아니라 안전관리 미비에 있다”며 “죽음에 고의가 있는 게 아니라 과실이 있는 것이다. 인과관계상 거쳐야 할 연결 관계가 굉장히 많다. 단번에 최고경영자가 잘못했기 때문에 사망사고가 나는 것 아니”라고 설명한다.

정진우 교수는 중처법이 기업에 규정하는 의무가 모호하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형법상 범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사전에 법률로써 금지나 의무 사항을 규정해야 한다. 이를 죄형법정주의 원칙이라고 한다. 법률이 의무를 명확하게 설정하지 못한다면 실제 처벌이 이뤄지기는 어렵다.

정진우 교수는 “(중처법이) 효과를 거둘지 못할 거라고 본다. 한마디로 무죄가 속출한다는 것”이라면서 “결국 중소기업에 칼끝이 거의 집중될 것이다. 유전무죄법 무전무죄법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 한국노동연구원

그러면서 정진우 교수는 중처법 제4조 1항의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이라는 부분을 사례로 들었다.

“의무 주체가 시설‧장소를 지배하는 자인지, 운영하는 자인지, 관리하는 자인지 명확하지 않다. 현실에서 지배‧운영‧관리하는 주체가 모두 다른 경우가 꽤 있다. 중처법은 예방 의무를 이행하게 한다. 지배하는 자, 운영하는 자, 관리하는 자가 각각 따로 있는 경우 중처법이 의무 주체를 특정하기 매우 어렵다. 산업안전 업무에 오랫동안 종사한 사람이나 법률가에게 물어보면 답이 모두 다르다.”

이근우 교수는 “행정법에서는 합목적적 해석을 하라고 하지만 형법에서는 엄격해석이 원칙이다. 같은 종을 행정관리(산안법)에도 쓰고 형벌규정(중처법)에도 쓰면 해석법이 전혀 달라지는 것”이라며 “중처법이 없어도 최고경영자를 처벌할 수 있다. 형법의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처벌하면 된다. 그런데 중처법이 만들어지면서 형법 적용 가능성이 아예 빠져버린 것”이라고 전했다.

 

찬성 의견 : 모호해서 못 지킨다? 자율적 규제의 이유

전형배 교수는 중처법의 의무 규정이 모호하다는 지적에 대해 “1970년대 이후 서구의 안전보건 법령과 감독의 트렌드는 기업에 사업장 안전보건에 관한 위험성 평가 의무를 부여하고, 진단 결과에 따라 ‘스스로’ 알아서 안전보건에 관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이 고도화됨에 따라 정부 혹은 법이 금지 사항을 정해서 안전관리를 ‘지시’하기보다는 기업이 자기 사업장에 적합한 안전보건관리를 ‘자율적으로’ 시행하도록 규제가 변화했다. 1970년 이후 선진국에서는 지시적 규제에서 자율적 규제로 이행했다.

전형배 교수는 “법률이 다소 추상적으로 형성된 배경에는 서구 사회에서 포괄적인 안전보건에 관한 의무를 사업주에 부여해야 스스로 위험을 찾고 방지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라며 “법률이 구체적일수록 죄형법정주의상 형식적으로 타당하겠지만, 사고 예방은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업주가 스스로 나서서 안전관리에 힘쓰도록 해야 한다. 포괄적으로 의무가 규정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실제 법원에서 책임을 묻기 어렵다. 포괄적 의무에 따라서 과대 처벌되거나, 의무 규정이 모호해 과소 처벌될 수 있다. 여기서 전형배 교수는 “서구의 입법은 위험성 평가라는 제도를 가지고 절충점을 찾았다”고 말한다.

전형배 교수는 “정부가 상당한 양의 표준적 유해‧위험관리 방식을 제시하면서, 1차 의무이행자이자 형사처벌의 대상인 사업주에는 위험성 평가를 통해 사업장 현실에 알맞으며 정부의 규제 강도에 부합하는 자율 규범 수립 권한을 부여했다”며 “자율 규제는 사업주의 상당한 노력이 들어간다. 규제 완화 또는 형사책임 감경과는 관련이 없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2013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자율적 규제의 일환인 위험성 평가 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강제 사항이 아니기에 활용도가 떨어졌다. 다만 중처법 시행령(제4조)에 따르면, 위험성 평가를 반기마다 한 번씩 하도록 돼있다.

 

반대 의견 : 처벌, 반드시 필요한가?

하지만 사업주가 자율적 규제를 하도록 유도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처벌’이라는 형태를 사용해야 했는가에 대한 반론이 있다.

올해 초 정부는 중처법 시행 전후로 ‘처벌이 아닌 예방이 목적인 법’이라고 홍보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근우 교수는 “법을 처벌법이라고 해놓고 예방이 목적이라고 하면 말이 되는가. 정말 중처법이 예방 목적이었다면 법률도 예방 위주로 갔어야 한다”면서 “중처법에 중대재해 방지를 위한 지원 등도 포함돼 있지만 법 체계에서 그 비중이 극히 미미하며, 예방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비용추계서도 법안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산업재해율이 이렇게 높은 데는 누구보다 고용노동부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간 고용노동부가 예방적 감독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정진우 교수도 “중처법 도입 전에도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관리 체계라는 용어를 쓰고, 규정돼 있었다. 위험성 평가도 그중에 하나”라면서 “이를 제대로 현장에 정착시키려는 노력은 사실상 손 놓고 방치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보완해 적은 비용으로 훨씬 효과적으로 산재 예방이 가능했는데, 이를 포기하고 중처법을 제정한 것”이라고 했다.

반면 전형배 교수는 중처법 제정 이후 법원의 선고형이 강화돼야만 산재예방에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봤다.

전형배 교수는 “현재 중처법상 가중되지 않는 경우 1년 이상 30년 이하 징역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실무상 1년 이상이므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법원이 사법부의 독립을 외치면서 국민의 눈높이와 법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판결 내린다면, 계속 법정형을 높이자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예방을 위해서 법원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학 교수 역시 ‘기업’이 안전관리에 힘쓰게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실형”이 선고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정학 교수는 “중처법의 가장 중요한 취지와 목표는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기업과 경영자에게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 의무를 직접 부과하고, 이를 위반해 재해가 발생할 경우 이들을 처벌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관행을 깨뜨리는 상당한 정도의 실행이 선고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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