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③] 안전에 시스템을 입히는 방법
[커버스토리③] 안전에 시스템을 입히는 방법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2.04.14 00:01
  • 수정 2022.04.14 0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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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항공사’, ‘(주)진영프로토’ 사례로 본 안전시스템
기업 내 모든 구성원이 협력할 때 안전하다

안전, 시스템을 입다

안전을 시스템적으로 관리하는 데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안전경영시스템 구축에 기업들이 더 열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시스템은 작동해야 시스템이다.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할지가 시스템을 돌린다. 우리 사회에서 안전경영시스템이 없었던 건 아니다. 잘 돌아가는 시스템이 부족했고, 재해를 줄이기에 역부족이었다. 이제 안전 관리를 굴러가는 시스템으로 만들 방안을 고민할 차례다.

커버스토리③ 안전이 기업에서 만들어지는 과정

김해공항 여객터미널 현장점검 ⓒ 한국공항공사

안전보건관리체계 어떻게 만들까? 무엇에 중점을 두면 좋을까. 두 기업의 사례를 살펴봤다.

사례1 한국공항공사
안전이 제일인 공항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한국공항공사는 전국 14개 공항과 항공무선표지소 등을 운영하는 공항운영 전문 공기업이다. 2021년 4분기 기준 2,768명의 임직원이 일하고 있다.

공항이라는 공간은 안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특징이 있다. 한국공항공사는 “여객을 태운 항공기 사고는 심각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발생하기 때문에 ‘안전 최우선’이라는 사명이 공사 설립 때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곳에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이 곧 이용 시민의 생명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안전한 노동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는 게 한국공항공사의 생각이다. “활주로 같은 공항 시설물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 공항 종사자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며 “불안전한 작업 환경은 종사자의 노동의욕과 동기를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시설 관리에 악영향을 주기 마련”이라고 전했다.

안전을 민감하게 관리해도 사고 발생 확률은 존재한다. 한국공항공사의 설명에 따르면 주로 발생하는 안전사고의 유형은 이동식 사다리 사용 중 넘어짐, 시설물에 부딪힘 사고 등이다. 이외에도 대민 업무, 공항 시설물 유지 보수, 운송·보안·안내·미화 등의 업무가 동시에 진행되는 사업장의 특성상 다양한 형태의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안전관리에 꼼꼼함을 더하다

안전에 민감한 조직이다 보니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놓고 경영한다는 방침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부터 있었다는 게 한국공항공사의 설명이다. 다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을 좀 더 세밀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작업이 이어졌다. 한국공항공사는 작은 결함과 사고가 중대재해 예후 징조라고 보고 △안전인력과 예산 확대 △안전 전문성을 갖춘 인재 양성 위한 교육 확대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기 위한 인프라 확충 등으로 안전관리를 강화했다.

또한 다수의 시민이 이용하는 공항의 성격에 따라 중대재해처벌법의 중요 요소 중 하나인 중대시민재해 예방에도 신경을 썼다. 기존 공항안전관리체계를 정밀화하고 이용객 이용시설을 철저하게 안전 점검하고 있다.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무엇에 집중했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이행이 중요해졌다. 한국공항공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부터 ‘계획(Plan)-실행(Do)-점검 및 시정(Check)-개선(Action)’인 ‘P-D-C-A’ 방식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운영하고 있었다. ‘P-D-C-A’에 맞춰 안전보건방침 및 안전경영계획 수립, 안전전담인력 운영 및 안전예산 편성, 사업장 안전활동 및 안전점검 시행, 사업장 안전수준 측정 등을 하고 있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예고 이후부터는 관련 법규를 이행할 수 있는 실행 체계 구성에 집중했다. 관련 법규를 중심으로 법 이행 미비 사항을 확인하고 보완하는 활동을 전개했으며, CEO를 중심으로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TF팀을 구성했다.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다. 공항운영 관련 법령이 공항시설법, 건설기술진흥법, 시설물안전법, 위험물 안전관리법, 소방시설법, 전기안전관리법 등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관련 법령 중 중대재해처벌법이 요구하는 의무사항과 연관된 것을 찾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빠짐없이 점검하는 활동이 이뤄져야 했다.

핵심은 ‘CEO의 의지’와 ‘노동자 참여’

한국공항공사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했던 지난 과정을 돌아봤을 때 핵심은 ‘CEO의 안전경영 의지’와 ‘노동자의 적극적인 참여’라고 봤다.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해서 인원과 예산이 무엇보다 중요한 기초이기 때문에 이를 결정하고 실행할 CEO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안전보건관리체계가 현장까지 이어지기 위해서 CEO와 경영진이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직원과 직접 소통하는 의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노동자의 적극적 참여가 중요한 이유는 현장의 작업자가 위험 발굴을 빠르게 할 수 있고, 미처 파악하지 못한 위험을 현장 작업자의 시각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례2 ㈜진영프로토
소규모 사업장, 이렇게 준비하면 좋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2024년 1월까지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 유예한다. 하지만 산업재해 대부분은 작은 사업장에서 일어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1년 산재 사고 사망의 80.9%가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오히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세밀하게 준비해야 할 곳은 50인 미만 사업장일 수 있다.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진영프로토를 찾아가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 대한 힌트를 들어봤다.

진영프로토는 자동차, 선박, 의료 기기에 들어가는 시작품을 만드는 회사이다. 목형, 주조, 가공, 납품까지 시작품*을 만들고 팔기 위한 모든 작업을 종합적으로 하는 기업이다. 한국노총의 ‘소규모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안전보건 혁신사업’을 통해 50인 미만 사업장이지만 선제적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했다.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부와 외부 안전 전문가가 컨설팅 팀으로 참여했고, 진영프로토에서는 박동진 생산관리 공정개선팀 이사 등이 참여했다. 해당 사업은 2021년 3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됐다.
* 설계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소나 개발실에서 시험용으로 제조 가능성을 확인하거나 부품 및 기계의 동작과 기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만든 샘플

‘작업환경 개선’에서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까지

진영프로토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은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진행됐다. 하나는 작업환경 개선을 통해 위험 요소를 제거하거나 예방하는 물리적 공간의 변화다. 다른 하나는 ‘ISO 45001’이라는 ISO(국제표준화기구) 인증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진영프로토 사업장 현실에 맞게 안착시키는 것이다. 전자가 사업장의 하드웨어적 변화라면 후자는 사업장의 소프트웨어적 변화다.

작업환경 개선은 기계 설비 교체에서부터 방호 장치 설치, 바닥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한 에폭시 시공까지 넓게 진행됐다. 심지어 공구 적재함을 새로 설치하거나 적재대를 교체했다. 작은 부분인 것 같아도 제조 공장의 경우 특히 중요한 지점이다. 박동진 이사는 “정리정돈만 잘 돼 있어도 사고가 잘 안 난다”며 “정리정돈이 안 되고 공구와 자재가 널브러진 작업 공간에서는 동선이 꼬여 사고가 나기 마련인데 소규모 사업장에서 관리가 잘 안 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작업환경 개선에 소요되는 비용은 한국노총과 산업안전공단의 지원을 받았다.

ISO 45001 인증은 ISO 45001 매뉴얼에 따라 진영프로토가 준비해야 할 법 준수 사항, 예산과 인력 및 조직 구성 등을 점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진영프로토 임직원들이 필요한 교육을 받기도 했다. 인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국노총과 외부 안전 전문가의 도움이 있었다.

계단에 안전 난간을 설치한 전후 비교 사진 ⓒ 한국노총
사상 작업대를 설치한 전후 비교 사진 ⓒ 한국노총

현장 작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중요하다

박동진 이사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과정에서 ISO 45001 인증 과정이 제일 어려웠다고 소회했다. 작업환경 개선은 위험 요소를 발견하면 외부 업체에서 바꿔주는 것이지만, 인증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기업 자력으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 매뉴얼을 읽어 보며 진영프로토에 맞는 것인지 안 맞는 것인지 확인하는 작업도 어려웠다. 대부분의 소규모 사업장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할 때 겪을 수 있는 고민이기도 했다. 대규모 사업장에 비해 인적, 재정적 여력이 부족해 안전보건관리체계라는 시스템을 안착시키기 위한 인력 배치와 조직 변경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동진 이사는 이번 사업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ISO 45001 인증이라고 꼽았다. 기업 차원에서 안전 관리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현장 작업자의 참여도를 높여 안전 준수 및 위험 개선 활동이 전사 차원으로 진행된 것도 한몫했다. ISO 45001 인증을 위해서는 노동자 참여를 보장이 필수적이다. 진영프로토는 50인 미만 사업장이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의 법적 의무는 없었으나 인증을 위해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했다. 현장에서 설비 속도가 너무 빨라 작업 안전을 위해 속도가 느린 것으로 교체해 달라는 요청 사항이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해 올라왔다. 현장 작업자들의 말하지 않았으면 감지하지 못했을 부분이었다.

경영자의 생각이 중요하다

박동진 이사는 소규모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의 핵심을 ‘경영자의 마인드’라고 했다. 경영자의 의지가 없으면 회사의 관리체계 내로 안전이라는 키워드가 들어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동진 이사는 “작은 업체들은 따로 안전관리자가 없고 관리부서에서 알아서 해야 하는데, 대부분 안전 서류만 형식적으로 만들어 놓는다”며 안전에 예산을 투여하고 담당 조직을 구성하려면 경영자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렇다면 경영자의 의지를 올리는 데 어떤 방안이 있을까? 박동진 이사는 ‘사업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터넷 강의만 틀어놓으면 되는 형식적인 교육 말고 실질적으로 배울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효과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사업주가 참여하지 않았을 때 패널티를 부과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무엇을 점검하면 좋을까?

두 곳의 사례를 통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과정과 내용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서 쉽게 놓치는 부분은 없을까? 지난 3월 25일 중대재해처벌법을 주제로 열린 굿모닝경제포럼에서 정범진 삼성화재 기업안전연구소 산업안전팀장의 발제는 유용하다.

① 안전보건 목표 어디까지 세웠나요?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의 첫 시작은 안전보건 방침을 대표이사 명의로 서면 공표하고, 협력업체까지 모두 공지돼야 한다. 해당 방침에 따라 안전보건 목표는 전사 차원, 사업장 또는 사업부 단위, 모든 부서 단위까지 세워져야 한다. 정범진 팀장은 “보통 전사 차원 목표는 잘 수립하는데, 하위 부서까지 목표 수립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전사 차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위 부서의 목표와 할 일이 명확히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각 부서마다 세워진 안전 목표에 따라 기업 내 모든 조직이 안전보건 활동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② 안전보건 조직과 인력 편재
정범진 팀장은 안전보건 담당 조직과 인력이 별도로 존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전보건 전담 조직이 환경안전팀, 총무팀 등으로 편재돼 있어 안전보건 업무와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며 “고용노동부 해설서에 안전보건 전담조직은 안전보건과 무관한 업무를 함께 수행할 수 없다고 돼 있으니 명확한 (인력과 조직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③ 위험성 평가는 꼼꼼하게
사업장 유해위험 요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나온 위험성 평가를 통하면 된다. 위험성 평가는 통상적인 작업 활동에 잘 적용해서 하고 있다. 다만 놓치는 위험성 평가가 있다. 정범진 팀장은 “수리, 점검, 정비 작업과 같은 비정형 작업에서도 위험성 평가를 꼭 놓치지 말고 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일상적인 작업은 익숙하다 보니 사고 확률이 낮지만 많이 하지 않는 비정형 작업의 경우 사고 확률이 높아진다. 또한 정기 위험성 평가 말고 신규 설비, 해로운 물질 도입, 공정 변경 시에도 수시 위험성 평가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위험성 평가의 주체도 중요하다. 정범진 팀장은 “안전보건관리자는 위험성 평가를 기획하고, 기법을 교육하고, 조언하는 역할”이라며 “위험성 평가의 주체는 각 부서 관리감독자와 해당 작업의 노동자로 그들이 참여해 실시하는 것인데, 실제 기업에서 업무가 바빠 안전보건관리자에게 맡기게 되는데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안전보건관리자가 대행하면 법 위반을 하지 않기 위해 형식적으로 평가하고 보고서를 올릴 확률이 높다는 게 정범진 팀장의 설명이다.

안전보건관리체계, 어떻게 실행력을 담보하나?

안전보건관리체계가 구축됐다면 고민해야 할 지점은 실행력이다. 어떻게 하면 안전보건관리체계라는 경영시스템이 돌아가게 할 것인가이다.

여기서도 키는 경영책임자, 최고경영자가 쥐고 있다. 시스템의 기본은 ‘P-D-C-A’인데, Action이라는 개선 조치를 최종적으로 검토하고 개선안을 지시하는 일이 경영자의 일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은 정적이지 않고 돌아가며 발전하는데, 그 중요한 연결고리를 경영자가 가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전문경영인 체제로 빚어지는 경영자의 고민은 상당하다. 이헌희 DNV Supply Chian & Product Assurance Enterprise Risk본부 본부장은 “안전이 비용이냐 투자냐라고 물었을 때 대부분 투자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회계 기간 동안 투자해서 그 결과를 내 회계 기간에 도출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면 아무리 투자라고 해도 쉽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안전경영시스템을 장기적으로 운영하는 데 구조적인 걸림돌이다.

한편 안전보건관리체계가 효과적이려면 안전보건 담당 부서만 일하면 안 된다. 이헌희 본부장은 “안전관리는 인사에서 풀어줘야 할 문제도 있고, 협력사 관리팀에서 풀어줘야 할 일이 있고, 구매 부서에서 풀어줘야 할 일이 있다”며 “협력사 지원팀은 협력사 대금이 낮은 게 성과인데, 안전 평가를 고려했을 때 비싸더라도 다른 협력사와 계약을 진행하려면 부서 간 협업과 이해가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예로 같은 기업의 공장이라도 공장별 인적 구성에 따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안전보건관리를 정착시키기 위한 인사 부서와 협업이 필요하다. 이처럼 안전보건관리체계의 실행력은 기업 안의 모든 조직과 경영자가 머리를 맞댔을 때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