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20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우리는 노동자다' 등 4선
[리뷰] 제20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우리는 노동자다' 등 4선
  • 손광모 기자, 백승윤 기자
  • 승인 2022.05.02 16:21
  • 수정 2022.05.03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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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와혁신이 주목한 제20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4선
“함께 살기 위한 맞울림. 다음 질문을 해주세요.”

[리뷰] 제20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함께 살기 위한 맞울림. 다음 질문을 해주세요.”
올해로 스무 해를 맞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열렸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우리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나 배제된’ 장애인이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투쟁의 기록을 담아왔다. 지난해 말부터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전 사회적 이슈가 된 가운데,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이제 ‘다음 질문을 던질 차례’라고 말한다. 지하철‧버스 등 공공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는 장애인이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 총 16개 작품 중 4편을 참여와혁신이 리뷰했다. 기획작 <우리는 노동자다>(장호경, 2021)와 <희망의 기록>(민아영, 2021) 그리고 선정작 <이사>(여인서, 2021), <희한하네>(2021, 정창영)이다. 리뷰는 손광모·백승윤 기자가 함께했다.

 

이것도 노동이야? 이것도 노동이다!
중증 장애인의 노동 다룬 <우리는 노동자다>

<우리는 노동자다>(감독 장호경, 2021, 기획 노들장애인야학, 제작 장호경, 다큐, 31분) 스틸컷 ⓒ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우리는 노동자다>는 2020년부터 시작된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중증 장애인의 ‘노동과정’과 ‘일상’을 담았다. 중증 장애인들은 그동안 일‘자리’에 앉을 수 없다고 여겨져 왔다. 노동을 할 수 없는 몸을 가졌다는 게 그 이유다. 이 작품은 장애인의 몸을 노동에 맞추는 게 아니라 노동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중증 장애인들의 ‘이것’도 노동이라는 것이다.

광모 : 승윤 기자는 어떻게 보셨나요? 저는 너무 어렵더라고요. 겉모습만 보면 노동보다는 공부에 가깝게 보였거든요. 여전히 이 작품에서 말하는 ‘보편적인 노동’의 시선에 갇혀 있는 거죠. 저희가 주로 노동 이슈를 다루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드는 것 같아요.

승윤 :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기존의 노동 개념 자체를 다르게 봐야 한다는 주장인데,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어요. 노동은 경제적인 생산성과 관계가 있다고 알아왔는데, 중증장애인의 노동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광모 : 파리 같은 도시에서 예술가의 활동을 지원하잖아요? 도시의 가치를 올린다는 측면에서요. 중증 장애인의 노동과도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중증 장애인들이 공공 일자리를 통해서 일일 카페도 운영하고, 기자회견에서도 나서고, 예술 활동도 하면서 우리사회의 공익적 가치를 올리니까요.
그리고 보통은 일자리에 사람을 맞추잖아요? 취업을 준비할 때 일정 스펙을 맞추는데, 중증 장애인의 노동은 사람에 맞춰서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하니까 낯선 게 당연한 것 같아요.

승윤 : 지난번 정명호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조지부 지부장 인터뷰가 기억나네요. 자본주의적 생산의 관점에서 장애인의 노동을 봐서는 안 된다. 우리가 노동을 정의한다는 거요.

그런데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또다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는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재작년 비장애인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시각장애인 노동자를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단절된 나를 세상으로 끄집어내고 사회와 연결해준 게 직장’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복지관 등 장애인들이 모인 공간에서만 일하도록 하는 건 결국 또 사회적 단절로 이어질 뿐인 것 같아요.

광모 : 그런 점에서 단순히 생계 수단으로만 환원할 수 없는 노동의 가치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승윤 : 그렇죠. 그분한테 ‘지원금 많이 주면 괜찮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더니, ‘그거는 국가가 우리 보고 그냥 돼지로 살라는 얘기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서 편안하게 사는 게 나는 싫다’라고 답한 게 기억나요. 지역사회가 장애인들과 ‘함께’ 살 준비를 마련토록 한다는 측면에서 중증 장애인의 노동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그 논의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게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로 이해했어요.

 

탈시설 장애인의
주체적 삶을 위한 <희망의 기록>

<희망의 기록>(감독 민아영, 2021, 기획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작 민아영, 다큐, 31분) 스틸 컷 ⓒ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대구시립희망원의 인권유린이 2016년 10월 세상에 알려졌다. 이전 7년 동안 희망원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 309명에 달했다. 갖가지 문제를 안고 있던 희망원은 2018년 12월 폐쇄됐다. 그런데 희망원에서 지내던 무연고자이면서 의사 확인이 어려운 중증‧중복 장애인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문제가 됐다. 30~40년 동안 시설에서 생활하던 이들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잘 몰랐다. 하지만 시설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희망의 기록>은 탈시설 장애인들이 주체적인 삶을 회복하는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광모 : 기사를 써야 하니까 이 작품을 세 번 정도 봤는데, 볼 때마다 보이는 게 더 많았어요. 열린 공간에서 큰 소리를 내거나 병원에서 드러눕거나 그런 행동을 볼 때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장면을 계속 보면서 한편으로 이분들의 무의식적 습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무의식적으로 중증 장애인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승윤 : 저는 마지막 메시지가 강하게 기억에 남아요. ‘대구 사람들은 대구에 장애인이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게 우리 사회의 현실인 것 같아요. 이를 깨려고 탈시설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보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어요. 저게 맞는 방법일까 하고요.

광모 : 지원사분들도 그런 기색을 보이잖아요? ‘내가 정말 지원할 수 있을까?’ 하고요. 저는 인생에서 제일 힘든 게 선택이라고 생각하는데, 작품에서 이분들에게 지원사들이 계속 뭘 좋아하는지 물어보잖아요? 그런 선택의 순간이 얼마나 힘들까. 그걸 계속하도록 하는 게 맞을까 생각했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주체적으로 사는 게 참 어렵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승윤 : 이 작품에서 나온 탈시설 장애인들이 언어적인 의사소통을 어려워하잖아요? 당사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과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광모 : 세 번째 보니까 눈에 들어온 것인데요. 주인공 중 한 명이 마트에서 더덕 고르고 나와서 쉬고 가는 장면이 나와요. 그때 지원사 분이 ‘표정이 좋아 보인다’고 말씀하시잖아요? 처음에는 그냥 하는 말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세 번째 볼 때는 미묘하지만, 아주 살짝 웃으시더라고요. 눈은 그대로인데 입이 살짝이요. 그런 점에서 당사자분들이 어떤 걸 좋아하고 원하는지를 우리는 과연 알려고 했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으로 이 영화는 <우리는 노동자다>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아까 ‘장애인을 격리하는 방식으로 일자리가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희망의 기록>에서도 주간 보호 서비스를 제공할 때, ‘공간적으로 분리돼 있지만 지역사회와는 단절된 또 하나의 시설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고민이 들었다고 해요. 작게는 직장, 크게는 지역사회에 스며드는 형식으로 가야 한다는 점에서 승윤 기자의 말에 공감이 되네요.
 

책임과 욕망 사이
장애인과 그 가족 이야기

<이사>(감독 여인서, 2021, 다큐, 20분) 스틸 컷 ⓒ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가난이 죄가 아니듯 장애도 죄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삶을 누르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사>는 장애인과 그 가족의 책임감을 발랄하게 그린다. 감독의 어머니는 전원생활을 꿈꾼다. 감독도 독립을 희망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동생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동생도 아직까지 독립생활에는 자신이 없다. 책임과 욕망 사이. 이들의 고민은 우리사회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광모 :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어요.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감정과 자신이 살고 싶은 방식에 대한 갈등을 무겁지 않게 잘 표현한 것 같아요.

승윤 : 동생에게 감독이 ‘혼자 살면 어떨 것 같아?’라고 물어본 장면이 기억나요. 동생과 함께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지만, 독립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혹시나 원하는 답을 듣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닌가. 누구든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것 같아요.

광모 : 감독이 ‘동생을 책임져야 할 것 같아’라고 어머니에게 말하니까 ‘그런 생각 하지마’라고 하잖아요? 또, 나중에 어머니가 ‘너희들만 괜찮다면 바로 마당 있는 집을 알아보러 다닐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하니까 감독도 ‘신경 쓰지 말고 알아보라’라고 말하고요. 주인공을 가족이 끝까지 책임질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책임을 조금이나마 서로 나누려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승윤 : 한 사람의 장애가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인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새삼 다가오네요. 주변인들이 자신의 욕망대로 선택한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제 부모님이나 할머니를 생각했을 때 드는 감정인 것 같아요. 누가 보호하고 누가 보호를 받는지 바뀌는 시점이 점점 다가오잖아요?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과 나의 삶에서 고민할 것 같아요.

광모 : <희망의 기록> 주인공들이 탈시설을 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는 무연고자이기 때문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연고자 있으면 이들이 법률 대리인으로서 중증 장애인 분들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잖아요? 다시 시설로 보내거나 경제적 사정이 안 좋으면 아예 방치하게 되고요. 가족이 전적으로 부양책임을 지다 보니 생기는 문제 같아요.

승윤 :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서 돌봄 서비스가 24시간 지원되지 않으면서 수많은 죽음이 발생한다고 말했어요. 돌봄 부담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는데, 엄청난 비극이죠. 사실 가족 중 한 명이 장애를 가졌거나, 병에 걸려서 부양하려면 일을 병행하기가 굉장히 어렵잖아요? 정신적·육체적·경제적으로 쪼들리면 급박한 상황으로 치닫게 되고요.

광모 : 맞아요. 가족이 전적으로 부양을 책임져야 한다는 점이 상당한 심각한 사회 문제까지 이어질 수 있는데, <이사>의 분위기는 되게 발랄한 것 같았어요.

승윤 : 주인공의 가족이 참 화목해 보였어요. 아버님도 재밌어 보이고, 어머니도 사려 깊은 것 같고요. 사실 상황이 좋지 않으면 그럴 여지가 없는 거잖아요? 화목하지 않은 가족은 훨씬 힘들겠죠.

광모 : <우리는 노동자다>의 주인공이 중증 장애인이긴 하지만, 장애인이 노동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점은 중증도와 상관없이 똑같은 것 같아요. <이사>에서 동생이 잡지사에 취업했는데, 무척 힘들어 했다고 나오잖아요?

승윤 : 맞아요. 내레이션에도 나오죠. ‘회사는 동생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던 것 같다’고요.

광모 : 다른 한편으로 <희망의 기록>에서 나오는 메시지가 <이사>의 가족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중증 장애인도 충분히 혼자 자립해서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니까요.

 

희한한 경험으로 가득한
장애인의 일상

<희한하네>(감독 정창영, 2021, 기획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제작 정창영, 브이로그, 8분) 스틸 컷 ⓒ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오랜만에 다 같이 교외로 나가 밥을 먹으려 하는 주인공 일행들. 브이로그로 무겁지 않게 장애를 표현하려는 그들의 계획은 단번에 무너졌다. 장애인콜택시가 동승자의 탑승을 거부한 것이다. 금강유원지에서 보내는 유쾌한 나들이 대신 별 수 없이 주인공 일행들은 옥천군청으로 발길을 돌린다. <희한하네>는 시사고발이 돼버린 주인공 일행의 하루를 보여준다.

승윤 : 너무 화가 나요. 동승자를 태우려면 공문을 보내라는 논리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네요. 비장애인이 택시 탈 때는 그런 식으로 얘기 안 하잖아요. 마음먹고 나서는 길인데, 저런 경우가 발생하면 하루가 그냥 사라져 버리는 거잖아요?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면 심각한 문제네요.

광모 : 짧게 지나가는 장면인데, 지원사가 아파트 경사로를 내려갈 때 뒷걸음으로 휠체어를 끌더라고요? 앞으로 휠체어를 밀면 위험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구나 생각했는데, 동승자 탑승을 거부한 장콜 기사님과 대비가 되더라고요. 장애인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갖춰야 될 소양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부분에서요. 그래서 한편으로 장애인 콜택시 기사님의 노동조건이 궁금하기도 했어요. 노동조건이 너무 안 좋으면 제대로 된 지원 서비스를 기대하기 힘드니까요.

승윤 : 장애인들이 장콜을 가장 선호하는데, 그것도 결국 대중교통이 장애인에게 장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잖아요? 장애인 따로 비장애인 따로 이렇게 도시 설계 자체가 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대중교통도 대중교통이지만 사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 자체도 문제죠. 우리 사회의 정책이나 제도가 장애인 당사자를 주체로 전혀 세우지 않았다고 느껴졌어요.

광모 : 4개 작품을 보면서 출연한 장애인 한 명 한 명이 참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희한하네>는 브이로그라는 형식상 한계가 있었겠지만 주인공의 활약이 적게 보여서 아쉽긴 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승윤 : 비장애인으로 살면서 장애인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진짜 적다는 걸 느꼈어요. 우리사회에서 장애인이 격리돼 있는 게 그 이유인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 장애인이 노동을 할 수 있게 되는 상황이 오면 기본적 권리의 측면에서 거의 모든 게 해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애인 이동권을 얘기할 때 ‘이동할 수 없는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말하잖아요? 지금은 그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마련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