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함께 살기, 준비되셨나요?
장애인과 함께 살기, 준비되셨나요?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5.03 09:52
  • 수정 2022.05.04 19: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3년간의 과정 담은 희망의 기록
​​​​​​​[인터뷰] 민아영 감독(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활동가)

[인터뷰] 민아영 <희망의 기록> 감독(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활동가)

제20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열렸다. 그중 기획작 <희망의 기록>(2021, 민아영)은 탈시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스며드는 과정을 그린다. 2016년 10월 대구천주교구가 운영하던 대구시립희망원에서 참혹한 인권유린 사실이 밝혀졌다. 논란 끝에 2018년 12월 시설 폐쇄가 결정됐다. 그런데 남아 있는 시설 거주 장애인 중 무연고‧의사소통이 어려운 중중‧중복 발달장애인 9명은 오갈 곳 없는 처지가 됐다.

다시 시설로 가지 않는다면 남은 방법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뿐. ‘이들이 정말로 시설을 떠나 자립할 수 있겠냐’는 의심 속에서 <희망의 기록>은 시작됐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탈시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천천히 스며드는 과정을 담았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민아영 <희망의 기록> 감독을 지난 4월 26일 만났다.

민아영 <희망의 기록> 감독(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활동가) ⓒ 민아영

- <희망의 기록>은 대구시립희망원 폐쇄 이후 중증‧중복 장애인의 탈시설 과정을 담았어요. 이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 척결을 위한 대책위원회’에서 처음에 연락이 왔어요. 희망원에 있는 분 중에 무연고자이면서, 중증‧중복 장애 때문에 언어적으로 의사 확인이 어려운 분들이 탈시설을 하는데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거였어요. 앞으로 장애인 탈시설에 있어서 중요한 선례로 남을 사례일 거라고도 하셨죠. 사실 많이 부담스러웠어요. ‘제가요?’ 이 반응이 먼저였죠. 제가 그때 영상을 배우기 시작한 지 6개월밖에 안 됐으니까요.

- 어떻게 선뜻 촬영에 응했나요?

마땅한 사람이 없더라고요. 장애인 운동판에 언어로써 의사를 확인하기가 어려운 당사자를 주인공으로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머리를 굴려봤는데 진짜 없었어요. 그래서 퀼리티는 보장을 못 하는데 기록이라도 괜찮다면 같이 해보자 해서 시작했죠. 탈시설을 시도할 때 반대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들은 통제가 안 된다’, ‘지역사회에 나와도 힘들 것이다’ 등의 프레임을 굉장히 씌워요. 그때 ‘정말로 이 사람의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는 기록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 처음 영상을 찍으러 대구에 갔을 때가 궁금해요.

엄청나게 긴장하면서 대구에 갔던 기억이 나요. 큰 대회의실에서 활동가들과 했던 첫 회의가 여전히 눈에 선하죠. 탈시설 당사자분들이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게 다가왔어요.

당시 한 달 가까이 대구에 있었어요. 처음에는 카메라를 들지 않고 만나러 갔었어요. 가자마자 당사자분들한테 머리채 잡히고··· 정말 엄청난 환대를 받았죠. 하하.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어요. ‘어떻게 찍지?’부터 해서 ‘이 사람들이 정말 내 이웃이면 나는 과연 같이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진짜 많이 했어요,

- 카메라를 들기까지도 시간이 걸렸을 것 같네요.

둘째 날부터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들긴 했어요. 그런데 작업을 하면서 제가 그분들에게 너무 낯선 존재였다는 걸 느꼈어요. 낯선 존재가 갑자기 얼굴 들이밀면서 치근덕거리니까 당연히 부담스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상을 찍어야 하니까 섣부르게 다가갔던 거죠. 이분들의 표현이나 마음을 읽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거리를 많이 두면서 촬영했어요. 지원자들과 이들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조망을 하면서 한 분 한 분씩 조심스럽게 다가갔죠. 한 3년을 넘어가니까 어느 정도 캐치를 하게 된 것 같아요. 이때는 찍어도 된다. 이때는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들을요.

-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어요. 주인공 중 한 명이 마트에서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휴식을 취하잖아요? 그때 지원사분이 ‘표정이 좋다. 밝아졌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하다가 두 번째 봤을 때는 조금 알 것 같더라고요.

정말 한 끗 차이 같아요. 저도 제일 좋아하는 장면 중에 하나거든요. 마트에서 장을 본 다음에 집에 걸어서 가는 길이었어요. 그 길에 의자가 보이고 잠깐 쉬고 싶으니까 그 공간으로 지원사들을 데리고 가요. 자리에 그냥 앉아서 지상철이 지나가는 걸 보고요. 살짝 날이 더웠는데 바람이 좀 불었거든요? 눈을 감으면서 바람을 느끼는 표정을 지어요. 그 공간과 상황 자체를 편안히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후에 다시 집으로 향할 때도 기억에 남아요. 그 길이 약간 언덕길인데요. 처음에는 언덕을 올라갈 때 화를 낸다거나 주저앉아버리는 등의 표현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날은 지원자의 손을 잡았죠. 힘을 좀 나눠달라고요. 이렇게 표현 방식이 달라진 걸 보면서 신뢰가 만들어졌다는 게 보였어요. 표정이 밝아지셨다는 말에 담긴 총체적인 의미가 그 장면에 녹아 있는 것 같아요.

<희망의 기록> 스틸 컷. 장을 보고 난 후 주인공 일행이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 두 손을 꼭 잡고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다.  ⓒ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 편집하면서 주안점은 어디에 뒀는지 궁금해요.

‘감동 스토리로 빠지지 않아야 한다’였어요. 탈시설과 자립 생활이 답으로 보이는 건 피해야겠다. 30~40년 동안 시설에서 생활하다가 탈시설한 지 이제 3~4년 지났는데 큰 변화가 있다면 사실 되게 이상한 거죠. 물론 편집을 통해서 그런 순간들로 재구성할 수 있는데, ‘그게 진짜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죠.

그래서 각자의 모습 그대로 보여줄 수 있도록 편집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누군가한테는 이상해 보이고 낯설어 보이는 표현과 행동도 이분들이 계속해오던 모습이잖아요? 사실 앞으로도 이분들은 계속 그렇게 살아갈 거예요. 그렇다면 주변 사람들이 같이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죠.

어떠한 방향으로 서비스들이 설계돼야 하고, 지원자는 어떤 고민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신뢰와 안정감을 되찾으면서 따라오는 변화를 그냥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어요. 이걸 보는 사람들이 ‘나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나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런 고민을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어요.

- 작품에서 중증‧중복 장애인 당사자분들에게 ‘어떤 걸 좋아하냐’ 꾸준히 묻잖아요? 그런데 선택만큼 어려운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과정이 이분들에게 너무 힘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선택의 의미는 두 가지가 있어요. 먼저 선호도를 알기 위한 게 있죠. 이분들의 선호도나 취향을 아는 게 중요한 건 일상을 기획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시설에 있었을 때는 아침, 점심, 저녁 정해진 시간에 밥 먹고, TV 보고, 약 먹고, 자고. 이게 일상이었거든요? 그런데 지역사회에 나와서 그렇게 살 수는 없어요. 이분들이 스스로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를 기획해야죠. 그걸 하려면 기본적으로 이분들이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지를 알아야 했어요.

그래서 처음에 이분들과 함께 정말 많은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어떤 분은 짜장면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 어떤 분은 통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 스티커를 너무 좋아해서 매일 다이소에 가는 분도 있고, 차 타는 걸 좋아해서 하루 한 번 꼭 장콜을 타야 하는 분이 있는 걸 알게 됐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욕망이 다르잖아요? 이분들도 각각 다르거든요. 어떤 욕망을 가졌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개인별 지원 서비스가 나오고, 지역사회 안에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들을 하나씩 발견했어요.

- 작품을 보면서 정말 장애인들이 뭘 원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 장애인에 대해 잘 알려고 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장애인운동을 접하지 않았으면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모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모든 사람의 일상에 균열이 나기 시작할 거라고 봐요. 지하철만 봐도 마찬가지잖아요?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다 같이 아침 출근길에 오른다고 하면 늦어질 수밖에 없어요. 공공교통 자체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꾸려져 있으니까요.

그런 상황을 우리가 감내할 수 있을 것인가? 너무 중요한 질문인데, 어쩔 수 있나요. 감내해야겠죠. 그런데 그동안 그런 경험을 겪어본 적이 드물었다고 생각해요. 절친한 친구 중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친구가 겪는 삶을 직접 봤다면, 함께 식당 가는 것, 여행 가는 것, 같이 일하는 것 등을 포함해서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분명히 알았겠죠.

최근에야 비로소 이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게 많이 알려진 것 같아요. 물론 당장 하루하루가 급한 사람들이 이런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겠죠. 다만 그런 일상이 정말 지속 가능한지 한 번쯤 되물어 봤으면 좋겠어요.

- 끝으로 이 작품에 담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요?

탈시설에는 매우 많은 문제가 엮여 있어요. 일단 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고용 문제가 있어요. 저는 그 노동자분들이 새롭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일을 하다 보면 누군가의 삶을 지원하기보다 그저 생존만 하게 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노동이 지금 이 사회에서 필요한 노동인지 고민을 한번 해보면 좋겠어요. 장애인 권리와 노동자 권리가 충돌되는 형태로 얘기되지 않았으면 해요. 같이 싸워주셨으면 하죠.

두 번째로는 연고자가 있는 시설 장애인은 혹시나 탈시설을 하게 되면 가족에게 짐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이 있어요. 부모님들도 탈시설 하는 걸 꺼리는 경우도 있고요. 부양 기준에 대한 문제 때문이죠.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그런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탈시설에 심하게 반대했던 부모님들도 ‘이렇게 살 수 있는지 몰랐다’고 하면서 변화한 분도 많거든요.

사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 무연고자이기 때문에 탈시설을 할 수 있었던 측면도 커요. 연고자가 있었다면 연고자에게 선택권이 넘어갔겠죠. 다른 시설로 가거나 어쩔 수 없이 가족이 부양하거나 이런 과정을 겪었겠죠. 이 작품에서 더 이상 장애인의 가족이 모든 걸 책임지는 구조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도 얘기하고 싶었는데, 거기까진 못 갔어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