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직업 될 그날까지” 투쟁 다짐한 가사·돌봄노조 출범
“보통의 직업 될 그날까지” 투쟁 다짐한 가사·돌봄노조 출범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2.06.16 21:03
  • 수정 2022.06.16 2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6일, 한국노총 전국연대노조 가사·돌봄서비스지부 출범식
가사근로자법, 최소한의 보호 기대되나 정부 지원과 정비 필요
16일 서울시 중구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가사·돌봄서비스노동지부 출범식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우리가 역사가 되자.” 제도 밖에 방치됐던 가사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출범시켰다. 같은 날 시행된 가사근로자법과 더불어 가사노동자의 권리 향상 기반을 닦을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11번째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을 맞은 6월 16일, 한국노총 전국연대노동조합 가사·돌봄서비스지부(지부장 최영미)가 출범식을 서울 중구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었다. 최영미 지부장은 “우리의 소득은 여전히 낮고 일자리는 불안정하며, 사고와 성희롱 사건에 대비하기 어렵고 아직도 우리를 직업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며 “모든 가사노동자가 다른 노동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 그날까지, 우리의 직업이 누구나 할 만하다고 말하는 보통의 직업이 될 그날까지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가사·돌봄서비스지부는 ▲모든 가사노동자에 전국민고용보험, 산재보험 적용 ▲안전한 노동을 위한 고객 대상 홍보와 업무안전지침 마련 ▲가사노동자의 전문성 제고 위한 직업훈련과 국가공인자격증 도입 ▲모든 국민이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가사서비스 이용권 제도 도입 등에 힘쓸 것을 선언했다.

출범식엔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김동만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이사장,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 이승석 사회경적경제연대회의 대표, 문종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안창숙 행복한 돌봄 이사장 등이 자리했다. 이수진(비례)·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은미 정의당 의원, 윤미향 의원(무소속)도 참석해 가사·돌봄서비스지부 출범을 축하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가사노동자의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투쟁, 가사노동자의 노동조합 활동을 통한 노동조건 개선 투쟁은 작금의 우리 앞에 놓여진 과제이자 시작점”이라며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가사노동자 스스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 한국노총이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동만 한국노동공제회 이사장은 “무엇보다 가사노동자들이 안정된 노동조합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 가사·돌봄서비스지부가 노동조합 활동에 고충을 겪는다면 플랫폼공제회에서 함께 해결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미영 가사·돌봄서비스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최영미 가사·돌봄서비스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가사근로자법, 정부의 적극 지원과 정비 필요

이날 가사근로자법(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가사노동자들은 노동관계법을 일부 적용받게 된다. 그러나 법의 적용 범위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모든 가사노동자가 차별 없이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여러 과제를 풀어가야 한다.

작년 6월 15일 제정된 가사근로자법은 “양질의 가사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하고 가사노동자의 근로조건을 향상”하기 위한 취지로 발의됐다. 이날 법 시행으로 가사노동자는 최저임금, 퇴직금, 연차 유급휴가와 더불어 4대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건강보험·국민연금) 등을 보장받는다.

또한 서비스 제공기관(직업소개소·플랫폼업체 등)과 서비스 이용자는 서비스 종류·제공시간·이용요금·손해배상 관련 사항 등이 포함된 표준이용계약을 서면 체결하고, 이 계약에 따라 서비스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특히 최소 임금 보장을 위해 노동시간은 주 15시간 이상이어야 하며, 가사노동자가 선택하거나 경영상 불가피한 경우에는 그 이하로 정할 수 있다. 최영미 지부장은 “오래된 호출노동을 고용관계로 만들었다”며 “이제 우리 동료와 후배들은 근로계약을 통해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다만, 법이 ‘인증제’를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모든 가사노동자가 법을 적용받지는 못한다. 가사근로자법은 고용노동부 인증을 획득한 ‘가사서비스 제공기관’ 소속 노동자로 한정한다. ▲가사노동자를 5명 이상 상시 고용(혹은 예정)하고 ▲대표자 외에 관리 인력 고용 ▲업무 중 발생할 수 있는 손해에 대한 배상 방안 등의 요건을 갖춘 기관만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인증받는다. 정부 인증 신청은 기관 자율에 맡기기 때문에, 기존 업체가 인증에 참여하지 않으면 소속 노동자는 법적 권리를 누리기 어렵다.

가사·돌봄사회화공동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고 “현실에서 이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가사노동자의 수가 과연 얼마나 될지 매우 우려스러운 대목”이라며 가사노동자를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이법 11조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동명 위원장은 “근로계약을 하지 않는 사각지대 가사노동자들이 여전히 많을 것”이라며 이들까지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 제·개정과 제도개선 활동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정부는 세제 감면 등으로 기관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가사서비스 제공기관과 서비스 이용자는 부가가치세를 감면받을 수 있다. 인증을 희망하는 기관은 정부의 무료 컨설팅 기회를 부여받는다.

가사서비스 제공기관과 가사노동자는 최대 36개월까지 고용보험료와 국민연금보험료의 80%를 지원받을 수 있다. 지원 요건은 ▲월평균 보수 230만 원 미만 ▲전년도 재산의 과세표준액 합계 6억 원 미만 ▲전년도 종합소득 3,800만 원 미만 등이다.

그러나 최영미 지부장은 “법이 현장에 정착되려면 정부가 대시민 홍보와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하는데 아직은 취약하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최영미 지부장은 “단적인 예로 국민연금보혐료와 고용보혐료를 지원한다지만, 가사노동자의 상당수가 만 60세 이상이라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다. 오히려 건강보험이 더 필요한데 지원 대상에서 빠졌다. 비용 부담이 적지 않다. 인증기관 확산과 취업을 장려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